|
|
|
|
|
|
|
|
|
::: 아트앤스터디 지식메일입니다 :::
 |
| |
 |
|
| |
| |
 시간이라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 시간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들여다보면, 인류 지성사의 전개 과정을 알 수 있다. 먼저, 이성 중심주의로 대표되는 근대철학을 떠올려 보자. 그것은 안과 밖을 분리시켜, 바깥의 것들을 이성을 통해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 안으로 '내부화'시킨다. 근대철학의 포문을 연 데카르트는 신과 영혼을 제외한 모든 것을 공간적 외연을 가진 연장(res extensa)이라 부르며 철저히 기하학적으로 파악하려 하지 않았던가? 기하학이라는 논리에 맞게 기호화하고 길들이는 것, 이를 '순치'라 한다. 이러한 순치적 사고관은 근대철학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서구 지성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절대자를 상정하여 만물이 그 아래 빈틈없이 포섭된 합리적 세계를 꿈꿔온 것이 서양철학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이데아' 혹은 '로고스'에서 중세의 '신'으로, 다시 근대에 이르러 '이성'으로 절대자가 대체되었을 따름이다.
길들이는 것이 불가능한 혼돈의 원천, 시간
 그런데 고정된 틀 안에 길들이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한 악명 높은 적수가 있었으니, 바로 시간이다. 공간이란 가역적이어서 비교적 관리가 쉽지만, 시간은 아무리 의지를 갖고 의도한다 한들 되돌릴 수도 멈출 수도 없다. 한마디로, 내 손에서 벗어나 있는 우연적이고 불가해한 것, 불투명한 혼돈의 원천이 시간이다. 때문에 시간을 초월한 본질을 찾으려 했던 서양철학은 전통적으로 시간을 배격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어떻게 해야 시간을 공간화하고 조작할 수 있을까?" 이러한 노력의 대표적 예가 '시계'이며, 흘러가는 말을 공간화해서 잡아두려는 '문자'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상, 과학 기술문명 자체가 무질서를 질서화하려는 순치의 산물이다. 인위적인 순치가 잘된 것들을 가리켜 역사는 상식(common sense) 또는 양식(good sense)이라 칭송해 온 것이다.
현대 생성 존재론
그러나 20세기 전후로 등장한 현대 생성 존재론은 이러한 독선적 태도를 거부하고 과거의 사유가 배제시킨 외부, 타자, 차이, 다양성 나아가 소외된 것들의 중추적 핵으로서의 시간이야말로 세계의 근본이라 본다. 시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멸성이 아닌, 변화와 운동 그리고 창조를 포용한다는 의미이다. 즉, 전통철학이 영원성을 추구한 '시간 극복의 존재론'이었다면, 현대철학은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생성 존재론'인 것이다. 니체가 이러한 사유의 초석을 쌓은 후, 열역학과 진화론이라는 19세기 과학적 성취에 주목한 베르그송과 '과정'을 논한 화이트헤드를 거쳐, 20세기 후반 '차이'와 '사건'의 철학자 들뢰즈에게로 이어지는 계보가 형성되었다.
들뢰즈의 마주침 - 우리는 매일 마주치지만, 진정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경험을 (추상적 개념으로 환원시키고자 했던 과거와 달리) 생생한 존재 자체로 받아들인다. 생각해 보라. 저마다, 그리고 매 순간 다른 경험을 어떻게 일반화하고 통일시킨다는 것인가? 코드화된 세계와 충돌하여 충격을 일으키는 것, 사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 - 이것이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가 말하는 진정한 경험이자 마주침(rencontre)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접하지만 참되게 경험하고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기호화된 나의 세계에 어떠한 교란도 일으키지 않는, 이미 내부화된 대상들이기 때문이다.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마주침을 잘 보여준다. 주인공은 어느 날 마들렌 과자를 엽차에 담갔을 때 어릴 적 시골에서 겪은 일을 떠올린다. 의도치 않은 일이 다른 여러 기억 상자를 여는 열쇠가 되어, 그동안 잊고 지낸 무의지적 기억들이 연쇄반응 속에 끝없이 환기된다. 한두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이 사소한 사건을 소개하고자 프루스트는 무려 80페이지를 할애하는데, 벤야민이 접속사 soit que를 통해 계속 이어지는 그의 문장을 '말의 나일 강'이라 할 정도이다. 들뢰즈의 마주침이란, 나의 의식을 '툭' 건드리는 징후(symptoms), 즉 마들렌의 과자의 맛과 풍미, 소리 혹은 냄새와 같은 것이라 하겠다.
애벌레 주체와 타자
 들뢰즈는 '완결된 동일성'을 갖춘 근대적 자아 개념 역시 거부한다. 한 인간의 자아는 의식과 무의식이 분리되지 않고 서로 넘나드는 가운데 '무수한 작은 자아들'이 한데 모여 형성된다. 우리는 모두 애벌레 주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방금 보았던 게 뭐였지?"라며 갑자기 뒤를 돌아본 적 없는가? 온 신경을 집중하여 그 대상을 의식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의 영상과 느낌은 분명 나의 수많은 자아 중 하나에 들어왔었다. 이러한 수 만여 애벌레 주체 각각에 새겨져 있는 무의식적 기억들은 타자와의 마주침을 통해 건져 올려진다. 보았으나 본 것이 없고 들었으나 들은 바가 없는 코드화된 세계에서, 타자는 그 그물망을 찢고 출몰하여 나와 마주치는 것이다. 근대 주체가 소외시킨 타자야말로, 무미건조한 삶 속에서 나를 사유하도록 이끄는 중요한 자극제이다.
이렇듯, 순치를 거부하는20세기 현대 생성 존재론은 좁게는 근대철학에서 넓게는 서구의 지적 전통 자체에 대한 극복과 같다. 그리고 그 핵심에 시간이 자리하고 있다.
|
|
| |
참고강좌 : 이정우 교수 <철학사 입문코스 Ⅵ : 오늘날의 철학>) |
|
|
Written by cowgirlblues (cowgirl@artnstudy.com)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