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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4
아트앤스터디

당신에게 보내는 시한부 환자의 편지

이인 (인문사회학자)


내일 죽는다면 당신의 오늘은?

하 수상한 시절을 견디면, 그대, 잘 지내시나요? 가을의 기운이 완연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그대와 차 한 잔을 나누며 도란도란 수다를 떨고 싶은 요즘이네요. 평화롭게 치열한 나날 속에서 이 편지를 받아볼 그대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저는 추위가 조금씩 밀려들자 새삼스레 상실과 몰락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어요. 청명한 하늘에 흐뭇해하면서 세상을 울긋불긋 수놓는 단풍에 경탄하다가도 문득 서늘해진 날씨에 옷깃을 여미면서 죽음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괜스레 마음이 촉촉해지는 오늘 같은 날이면 당신과 인생에서 마지막 대화를 나누듯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어집니다.

만물이 피어 오르던 봄과 힘차게 박동하던 여름을 지나 스산해지는 가을이 오면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을씨년스러운 삶의 진실과 부대끼게 되지요. 저나 그대 가운데 한 사람이 내일 죽음을 맞아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이 편지가 유품이 되어 당신이나 저의 마지막 흔적으로 남을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더더욱 궁금합니다. 그대는 내일 죽는다면 오늘 어떻게 보낼 건가요?

억울하고 분한 나머지 방향을 알 수 없는 폭력을 터뜨리면서 보낼 수도 있겠죠. 사랑하는 사람과 어디론가 여행가고 싶을 수도 있을 겁니다. 석양을 바라보면서 유서를 쓴다든가 그동안 미뤄둔 채 하지 못했던 일을 할지도 모르지요. 아니면 앙금이 남은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화해를 청하거나 상처를 준 사람을 찾아가 용서를 구할 수도 있겠네요. 그저 장례를 치르기 위해 병원에 들어가 수속을 밟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위 질문에서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는 우리가 내일 죽는다면 어떻게든 변화를 시도할 것이라는 사실이지요. 내일 죽을 때 우리는 평소에 살던 방식으로 오늘을 보내지 않으라는 건 확실합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이 별로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삶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면 내일 찾아올 죽음은 지금 내 삶의 방식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위해서 지금 불행 속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앞날의 행복을 기대하면서 아등바등 악다구니를 벌여왔는데 죽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게 끝장난다면 억울하기 짝이 없지요. 내일 죽는다면 우리가 오늘을 어제처럼 보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지요. 행복은 지속되는 상태로서가 아니라 저 멀리 신기루처럼 아른거리기만 하거나 불꽃놀이처럼 터지다가 아련한 그리움을 남기곤 사라져버립니다. 그대는 어떤가요? 행복이라는 등불이 가슴에 켜져 있나요? 우리가 이렇게 대화하는 것도 우리 마음 안에 행복의 모닥불을 피우려는 노력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잉걸불이 살아나는 만큼 우린 좀 더 행복해지겠지요.

그런데 소스라치게도 많은 사람들이 행복의 잿더미에서 그냥 살아갑니다. 자지러지게도 다들 불행한데도 딱히 변화의 불씨를 지피는 사람이 드물지요. 놀랍게도 우리는 불행한 삶을 악착같이 고수하려고 합니다. 나름 열심히 살지만 일상의 관성에 젖어서 어제처럼, 그제처럼, 제자리걸음하듯 오늘을 살지요. 뻔하디 뻔한 일상에 안주하면서 뻔뻔하게 인생을 안일하게 흘려 보내고 맙니다.

죽음을 끌어안고 삶을 행복하게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요. 하지만 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나 자신의 행복을 나누기는커녕 원하는 만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분열되어 있죠. 행복하고 싶다고 말하더라도 막상 행복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어떤 삶이 더 행복한지 알더라도 감수해야 할 것들이 두려워 실천하지 못합니다. 행복하고 싶다고 반복되는 푸념은 행복할 능력이 없다는 무능의 고백이자 행복이 뭔지 모른다는 무지의 증거일 뿐이지요.

우리는 나 자신에 대해 너무나 모른 채 약간의 지식을 갖고 거만을 떨며, 남들에게 행복해 보이는 척하는 데 온통 신경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들이 나를 우러르고 부러워하더라도 내가 나를 속일 순 없지요.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하고 우쭐거려봤자 내 안의 공허와 불만은 사그라질 줄 모릅니다. 내가 나 자신에게도 수수께끼라는 사실과 내가 진정으로 행복하지는 않다는 고통의 소용돌이를 나는 결코 외면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나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천천히 변화시키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내 안의 소용돌이를 잠재우는 지혜를 얻고 내 안의 소용돌이를 건너는 용기를 키워야하니까요. 행복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자맥질할 때까지 저마다 자신의 강에서 지치지 않고 헤엄쳐 나가야겠지요. 인문학은 아주 다양한 상수원을 갖지만 결국 하나의 바다로 모입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물음의 바다로.

인문학은 그저 외국에서 수입해온 번드레한 지식을 갖고 으쓱하는 지적 허영이나 내 삶에 별 영양가가 없지만 남들이 알아주기 때문에 입에 달고 사는 지식 유희가 아닙니다. 인문학의 정수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행복을 더 높이는 데 있지요. 행복은 그저 잠깐의 쾌락이나 만족이 아닙니다. 내 존재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건강하고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을 때 나타나는 신호죠. 용기와 지혜는 행복한 존재의 특징입니다.

인간은 모두 죽기 때문에 우리는 모조리 시한부 환자입니다. 하지만 죽지 않을 것처럼 중요한 것들을 뒤로 미루고 시간을 낭비한 결과 후회로 얼룩진 인생이 되곤 하죠. 그렇다면 역설이지만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죽음을 가까이에 두어야 합니다. 죽음을 가슴에 품는 순간 더 이상 오늘은 어제와 똑같을 수 없기 때문이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산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아늑하게 뜨거워질까요?

인간은 모두 죽지만 죽음의 과정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죽음과 직면하면 우리의 삶은 보다 더 아름답고 진실해집니다. 오늘이야말로 좀 더 용기를 내어 더 행복해져야 할 순간이죠. 우리, 죽음을 끌어안고 삶을 행복하게 향유해요. 어쩌면 우리에게 그리 긴 시간이 남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긴 편지가 이제 끝납니다. 끝은 끝이 아니라 늘 새로운 시작을 낳지요.
사랑하는 그대와 다시 만나 이야기 나눌 날을 손꼽아 그리며.
그럼 안녕히.


필자 소개 이인 (인문사회학자)
현대 철학을 중심으로 공부하고 있으며, 인문학이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어떤 쓸모가 있을지 궁리를 한다. 전문화되고 어려운 인문학이 아닌 깊이 있되 누구에게나 와 닿는 인문학을 하려 한다. 지금까지 『어떻게 나를 지키며 살 것인가』, 『생각을 세우는 생각들』, 『혼자일 땐 외로운, 함께일 땐 불안한』, 『사랑할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냈고, 청춘에 대한 책을 여러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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