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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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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의 아름다움 |
김*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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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읽은 강은교 시인의 에세이 중에 '살아 있는 것은 싸다'라는 글이 생각났어요. 흔한 것들,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 값어치를 먹일 수 없는 것들이야 말로 아름답구나, 소중하구나. 김융희 선생님 강의 맛보기 듣고 패키지 구매했습니다. 후회 없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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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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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을 키우는 강의! |
조*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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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꿈, 상상력, 시학. 그리고 바슐라르.. 이 조합이 멋진 것 같아요. 우리시대는 상상력을 중요시하자고는 하지만.. 정작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강좌나 프로그램? 같은 건 많이 없잖아요. 아트앤스터디에서 요 강좌를 만나 기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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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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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슐라르의 상상력 철학~ 이미지 |
김*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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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슐라르~ 공부해도 공부해도 모자란 것 같습니다. 이번 강의를 들었더니 쭉 정리된 느낌이에요. 김융희선생님의 강의는 두 번째로 듣는데 어쩜 그렇게 조곤조곤 말씀을 잘하시는지..흡입력있어요. 원래 빨리 듣기로 들으려다가 그냥 들었네요. 이 강의 듣고 바슐라르가 더 좋아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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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이 남는 강의였습니다. |
김*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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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을 하시는 분 답게 김융희 교수님은 예술적 감각을 일으키시는 분인 것 같습니다. 강의를 참 아름답게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고, 물 불 공기 흙의 상상력을 다루는 강의 내용이 교수님과 정말 잘 어울리고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강의 였습니다. 바슐라르의 원소들 이야기만으로도 영감을 많이 얻게 되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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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신화에 앞서 상상력의 폭발을 경험하자~ |
김*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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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 10월 마녀샘의 ''''이미지의 시학-바슐라르 다시보기 '''' 강좌 후기를 , 바슐라르 입문자들을 위해 올려봅니다. 신화강의에 앞서 , 또는 신화 강의 이후 , 상상력의 신비한 세계에 호기심이 발동한다면, 이 강좌 를 추천하는 바! 참고 하시길~
------------------------------- 마녀샘과 함께 한 8주는 그야말로 한 편의 영화-신화같은 이야기라고 밖에 달리 표현이 안 되는 반전과 이어짐의 재미난 이야기 그 자체였다.
얼마나 재미있었느냐구?
백문이불여일견~ 참여하지 않은 자는 모르리...
호기심과 꿈, 상상력이 있다고 생각되시는 분들은 아래 글을 참조하여 다음번 기회는 절대놓치지 말고 입장하시길~
1교시 물교실 입장: 몽상교실의 특징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나처럼 아무 준비없이 입장한 사람들은 ‘마른 하늘의 물벼락’ 맞는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물벼락정도가 아니다. 나 완전 물에 빠져서는, 익사하는 줄도 모르면서 익사지경까지 갔다. 마치 개구리를 넣은 양동이 물을 서서히 데우면서 끓이면 개구리가 뜨거운 줄 모르고 죽듯이, 그렇게 서서히... 서서히... 물 속으로... 빠져든다. 난 세상에서 물 속이 제일 무섭다, 수영할 줄 앎에도. 숨 못 쉬는 곳이라서 그런가? 암튼 그런데도 물에 뛰어든 것은 순전히 뒤에 딱 버티고 선 마녀샘 때문이다. 마녀샘 눈에서 영혼의 색까지 스캔한다는 서치라이트급 빛이 나오는데 잘 못 걸리면 진짜 뼈도 못 추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 불맛보다 이 빛맛이 더 위력적이라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간혹 자신의 영혼색이 지옥행인지 천국행인지 무척 궁금한 호기심 충만한 자들이 뎀비려 하는데, 워~워~ 자중하시라. 결과를 알고 났을 때의 그 후유증은 초특급 쓰나미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력하여 구토를 동반한 인생에 대한 총체적 위기감을 느낀다고 하니 이것만은 비추.(비추천의 속어)
상황이 이와 같지만 여러분들은 수영 못한다고 겁내지 말고 입장하시길. 물에 빠져 거의 죽을 때 쯤 해서 마녀샘이 구해주니, 걱정말고 단번에 뛰어들길 권한다. 익사직전 상태가 되어야만 물이 아닌 우주에서 온갖 물고기랑 파랑새들, 금성, 수성 ,토성 등과 함께 유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몽상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튼 공포감으로 익사할 즈음 마녀샘이 크세르크세스 마법(항간에는 ‘때찌때찌 마법’으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으로 던진 채찍이 다가와 순식간에 꺼내주니 결국 믿고 도전하는 자만이 신비한 몽상의 기회를 얻으리라.
2교시 불교실 입장: 이곳은 물에 흠뻑 젖은 몸과 영혼을 말려 준다는 피닉스가 날아다니는 교실이다. 문제는 불새로 변신한 마녀샘이 신남을 주체 못하고 뜨겁고도 강렬한 불을 마구 마구 그것도 열과 성을 다해 그야말로 온몸으로 뿜어내는 통에 숨을 곳을 찾느라 요리조리 도망 다녀야 한다는 것. 도망다니기도 바쁜데 불똥 맞고 재가 되었다가 다시 태어나기까지 해야 하는(이 때 고통이 장난아니므로 피해다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본능!) 그 정신없이 반복되는 상황이란! 하지만 이런 숨바꼭질하는 듯한 스릴 속에서도 운이 좋으면 불똥 안 맞고도 자신의 가슴 속에서 아기 불새가 튀어나오는 신기한 체험이 가능한 곳이다. 이처럼 체류하는 동안 수십 번의 뜨거운 재탄생이라는 몽상체험은 필수코스지만 지금까지 다행히 119를 부르는 대형 참사도 화재도 없었으니 안심해도 좋을 듯.
3교시 대지교실 입장: 땅 끝 심연의 세계, 말 그대로 지옥의 교실이라 무서울 것 같지만 사실은 하데스 왕국의 보물 중의 보물인 ‘붉게 빛나는 황금’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머큐리로 변신한 마녀샘을 따라 광부가 되어 땅 속 깊은 심연동굴로 들어가 각자 맘에 드는 금속을 채취하여 연금술 실습을 하게 된다. 이곳에는 각자의 인생에서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한 우연의 법칙이란 게 작동하는데, 그야말로 ‘우연히’ 랜덤으로 연금술사의 돌을 획득하면 실제로 머리가 온통 황금빛으로 빛나며 귀환하는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마이다스의 나라인 듯. 단 욕심이 많은 사람은 진짜 황금이 되어 자칫 귀환이 불가하니 교실 입장 전 별도의 ‘강제소환보험’에 반드시 가입하여 혹시라도 모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것. 무엇보다 빛나는 머리에 들어간 온갖 고가의 연금술 재료비는 무료이므로 후광패션에 관심있는 패션리더나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시는 분들은 ‘매장’의 위험 부담 따위는 던져버리고 과감히 도전해 볼 만.
4교시 공기교실 입장: 이곳은 머큐리로 변신한 마녀샘을 따라 땅속 깊은 심연까지 가봤다고 생각하는 순간 땅 속 심연교실이 4교시 하늘/우주교실로 바뀌는 공간체험으로부터 시작된다. 마녀샘의 가르침을 잘 따라하면 심연을 박차고 하늘 끝 /우주까지 솟아오르게 된다. 물론 역방향으로의 하강비행도 필수코스로 준비되어 있다. 이곳은 한마디로 ‘머큐리 되기’ 체험장인데, 가끔 ‘아니마 -아니무스 되기’로 착각하여 사고가 발생하곤 한다. 여러 가지 착각유형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유형은 남성분들이 자신을 피터팬으로 여성분들은 자신을 웬디로 착각하는 것이다. 이들은 비(非)머큐리인 탓에 추락하는 일이 종종 생기는데, 그나마 웬디로 착각한 남성분들이나 피터팬으로 착각한 여성분들은 추락의 공포가 덜하다는 통계가 있으니 참고할 것. 암튼 이곳에서는 변신의 정체성을 꼬옥~ 확인하고 망각하지 않도록 비상하는 동안 거듭 다짐하고 있을 것.
이 교실의 매력은, 하데스와 에로스까지 만나는 극과 극의 비상을 할 수 있는데다가 무엇보다도 현실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오묘한 황금빛이 서린 파랑새까지도 탈 수 있어 일거양득이란 점. 이런 이유로 특히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 입장 전 대기시간이 2시간이 넘음에도 교실 앞은 기대감으로 이미 동동 뜨기 시작한 아이들로 혼잡함. 퇴실 후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째진다~”고 함. 이참에 누가 번지점프라도 하자고 하면 바로 따라갈 태세가 됨을 확인할 수 있다. 하강비상을 잘 해야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가르침을 잘 받은 효과인 듯.
한마디로 이 교실의 압권은 공기적 인간이 되어 탁 트인 고도에서 이마에 부딪치는 시원한 바람을 이마는 물론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 ‘위키드’의 초록 마녀가 날아오를 때의 그 기분을, 패러글라이딩을 할 때의 그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은 분. 중력에서 살짝 벗어난 해방감이나 울렁거림(사람에 따라 그 강도는 천차만별임)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강추.
상하로 비상하는 짜릿함과 자유로움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므로 평생 단 한 번도 날아 본 적이 없는 자들은 필히 입실하여 그 현기증과 함께 ‘우주의 진리’를 꼭 체험해 보기를.
또한 이곳은 스피노자의 사과나무가 아닌 니체의 고독과 연민이 차갑고도 따뜻하게 하늘 가득 뻗어나가는 ‘투명나무’가 보물처럼 자라고 있으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뼈에 사무치게 홀로 고독을 즐기는 자나, 니체를 좋아라하는 자라면 반드시 가 볼 것. 단 니체의 나무는 머큐리의 투명 모자를 써야 보이므로 ‘머큐리 되기’에 성공한 사람에게만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숙지하고 입장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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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기다리던 신화 강의가 개강하여 참석했다. 역시 선생님의 내공은 장난아님을 느꼈다. ''''나는 누군인지? ''''에 대한 내면의 빛을 탐구하는 여정을 다시 한 번 즐기게 되어 신난다. 오늘 하루도 돌아가는 길이 오히려 길이 됨에 끄덕이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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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 7강. 공기의 시학 I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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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강. 공기의 시학 I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1. 상승과 추락: 날개의 시학
공기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미지에 대한 시각 중심주의, 형상 중심주의적 사고는 공기적 이미지를 포착하기 어려운 것으로 만들지만 바슐라르의 상상의 세계에서의 공기는 모든 질료 속에서 꿈틀거리는 이미지의 원초적 힘을 가장 잘 들어내는 이미지로 보여진다.
꿈과 몽상은 인간 내부에서 우주의 심연과 만나는 상태로 표현되는데 이때 자신 안의 자신과 만나며 사물과 세계, 우주와 연결이 되는 상태를 느끼고 이성이 쉬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바슐라르는 공기의 꿈을 승화의 움직임이라고 한다. 공기는 떠오르는 것, 위를 향하는 것, 위로 향하기 위해 역방향의 힘이 한꺼번에 작용하는 것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이때 공기는 수직성을 특징으로 한다.
무언가가 위로 떠오르기 위해서는 무게는 점점 가벼워 져야하며, 무거운 것들을 버릴수록 위를 향해 비약할 수 있다. 공기의 꿈은 하늘을 향해, 혹은 물 위로 떠오르는 것을 상징하며 그런 꿈들은 자유로움을 이야기한다.
바슐라르는 날아오르는 꿈에 날개가 필요 없다고 하는데 이는 날개는 날고있는 상태에서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제 3자에 의해 관찰된 결과의 이미지이거나, 또는 이미 만들어진 기호에 의해 생겨나는 상징인 것이다. 이런 반복적 교육에서 이루어지는 상징에 대한 의미 습득은 자연적 상상력을 방해하고, 이런 날개의 이미지는 날고 있다는 것을 합리화하는 과정일 뿐 일 수 있다. 실제로 날개의 이미지는 추락할 때 허우적대는 이미지를 더 연상 시킬 수 있다.
날아오르기 위해 실제로 필요한 것은 발의 힘, 그러므로 체험된 비약, 날아오름의 감각은 발에서부터 시작된다. 또 체험된 공기의 이미지는 날개보단 바람의 흔적, 즉 휘날리는 옷자락, 물결치는 머리카락 등으로 보여질 수 있다.
바슐라르는 나는 꿈을 자유와 사랑의 꿈이라고 한다. 사랑의 신 에로스가 날개달리는 모습인 것도 사랑의 날아오르는 힘의 상징이다. 바슐라르는 사랑을 자신은 날개없이 도약하지만 상대방에게는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라고 한다. 여기서 날개의 이미지는 날아오르는 자신의 모습이 아닌 상대방의 모습에 투영된다.
“새는 인격화된 자유로운 공기다.”
날아오르는 이미지는 상상을 시작할 때 날고 있음에서 날개를 상상하게 되고 새를 그리게 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에로스를 비롯한 천사들에게 날개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외부로부터 이미지를 추론할 때 새로부터 날개를 보고, 날개로부터 날아오르는 힘을 그려낸다.
바슐라르는 공기적 움직임에서 생겨난 이미지로서의 새는 푸른색이나 검은색을 띤다고 한다. 상승하는 새는 푸른색, 추락하는 새는 검은 색이라고 말한다. 메테르링크의 ‘파랑새’ 이야기에서도 파랑새가 새장 속에선 검게 변하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파란색의 자유로움과 검은색의 무거움은 상반된 이미지로 천사의 이미지에도 적용된다.
바슐라르는 스위스의 정신분석의 로베르 드쥬와이유의 몽상요법을 주목하는데, 그는 위로 떠오르는 공기 원소를 체험할 수 있게 암시를 하며 환자를 치료한다. 과거의 감정을 다시 떠오르게 하고 인정하게 하여 콤플렉스를 해소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다른 감정의 체험으로 마음의 방향을 바꾸어 과거의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이다.
이렇듯 하늘로 향하는 가벼움을 느끼게 해주는 공기의 몽상은 긍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이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행동을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상상력을 통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이미지를 가지고 은유적인 행동을 함으로 실제의 마음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한다. 바슐라르는 시의 기능, 은유적인 말의 기능을 이미지가 살아나게 하는 것, 이미지를 현실로 꿈꾸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딱딱한 이성적 판단, 개념들이 아닌 꿈꾸고 몽상하여 만들어내는 마법같은 이미지의 힘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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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 6강. 흙의 시학 II : 하강과 휴식, 잠과 꿈 속으로 |
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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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 흙의 시학 II : 하강과 휴식, 잠과 꿈 속으로 1. 동굴, 어머니의 배: 죽음과 탄생의 집 흙의 몽상은 땅 속으로 우리를 이끌어 그 안을 오고 가는 운동 속에서 안과 밖을 하나로 연결한다. 바슐라르는 <휴식>에서 상상력의 “리듬분석과 조성”을 언급하는데 이는 고정되지 않은 리듬을 지니는 반복적이고 살아있는 연결이 사물과 사람을 하나의 톤으로 조정한다는 내용이다. 바슐라르는 철학적 변증법과 상상의 변증법의 차이를 비교하는데 여럿에서 하나의 개념으로 종합하는 철학과 하나에서 여럿을 낳는 분리하는 상상은 서로 반대의 길을 걷는 듯 보인다.
“상상력이란 사물들 속으로 옮겨진 인간 주체 외에 어떤 것도 아니다” 라고 그가 말한 것처럼 상상 속의 땅은 사람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배의 이미지를 지닌 상상 속의 땅은 먹고 마시고 소화하고 배설하며, 임신하고 출산한다. 상상이 땅의 내부로 향할 때 상상의 주인공은 먹는 존재와 먹히는 존재 모두가 될 수 있다. “회색빛 곤들매기의 뱃속에서 그는 창백한 연어를 발견했고 창백한 연어의 뱃속에는 매끈한 송어가 있었다. 송어의 뱃속에는 푸른 공이 있었고 푸른 공 안에는 붉은 공이 있었다. 붉은 공을 깨트리자 붉은 공의 한 가운데에 아름다운 불티가 있었다. 그것은 하늘에서 빠져 나와 구름들을 가로질러 하늘의 여덟 개의 궁륭을 거쳐 대기권의 아홉 개의 아치를 지났던 것이다.”(<휴식>156)
바슐라르가 이야기 한 요나 콤플렉스는 깊은 곳으로 즉 땅의 내부로 파고드는 상상이 결국 그 깊은 곳에서 넓은 바깥, 즉 우주로까지 뻗어나가는 이미지로 설명된다. 여기서 고래의 뱃속은 마치 땅 속과 같은 작용을 하게 된다. 성서 속 인물인 요나는 피노키오와 마찬가지로 고래 뱃속으로 삼켜져 들어가고, 산채로 그 안을 통과하게 된다. 삼켜진 고래의 안은 집, 어머니의 품 안과 같은 안락함을 느끼게 하며 따뜻한 열기 또한 존재한다. 또한 그 안의 물의 이미지는 위액처럼 동화작용을 하여 고래의 배 속에서 빠져 나온 요나는 변형과 부화의 과정을 거쳐 의식적인 삶으로 되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이 벌레의 삶에서 지금 우리는 대지적 속성의 삶밖에는 살지 못한다. 대기적, 공기적 삶은 꽃 위의 나비의 이미지를 통해서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인간을 위한 꽃들, 인간이 천상의 황금 자양을 찾게 될 그 꽃들은 어디에 있는가? 어딘가에 이러한 꽃들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무덤 저 너머이다.”(<휴식>201)
바슐라르의 설명처럼 이집트인들은 벌레의 삶 중 번데기의 단계가 그들이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닐 모습의 전 단계 인 것처럼 그들의 죽음 또한 아름다운 진정한 삶을 위한 번데기의 단계라고 생각 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장례의식은 애벌레의 번데기화 단계를 흉내 내어 몸에 약품처리를 해 붕대로 칭칭 감는 미라를 만들어 내었다.
죽은 뒤 관으로 들어가는 것은 다시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땅에서 어머니의 뱃속에서 또 동굴로 상상력을 뻗치게 한다. 어머니의 뱃속과 유사하게 느껴지는 동굴은 신화 속에서 종종 우주적 모태의 역할을 하는데 페루의 신화는 동굴이 마나를 응집하고 있고 그 안에서 달과 태양, 그 외의 모든 생명체가 나왔다고 전한다. 또한 동굴은 휴식과 은신, 사랑의 장소로, 또 울림을 일으키는 청각을 위한 장소로도 표현된다. 바슐라르는 동굴이 대낮의 햇살과 지하의 어둠이 뒤섞이는 오묘한 장소로써 예언이 이루어지고 꿈을 꾸는 장소라고 말한다. 그는 마치 신화 속에서 태양이 대지의 여신의 배꼽에서 솟아난 것처럼, 동굴이 삶과 죽음의 상반된 이미지를 한번에 보여주는 우주적 태양의 자궁이라고 말한다.
2. 뱀과 뿌리: 미궁과 신비제의 땅을 상상하는 의식이 움직일 때 그것은 마치 한마리의 뱀처럼 대지 속을 뚫고 들어갔다 다시 밖으로 나오고 옥죄이고 돌돌 말리는 등 행위를 시작한다.
“뱀은 생명과 죽음을 다 주는 존재로 상상되고, 유연하면서도 단단하고 꼿꼿하면서도 둥글고, 부동적이면서도 잽싸다.”(<휴식>.204) 땅 속에서 뱀의 이미지는 식물화가 되어 뿌리로도 표현되는데 마치 뱀처럼 뿌리 또한 지탱하며 찌르는 힘을 가졌다. 사람의 모습을 닮은 ‘만드라고라’라는 식물은 뽑힐 때 소리를 지르는데,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죽지만 그 식물은 불치의 병에 사용되는 전설의 약재이다. 사람의 죽음으로부터 태어난 이 식물이 새 삶을 준다는 만드라고라의 이야기에는 죽음과 삶의 이미지가 겹쳐있다.
흙 속에 숨겨진 뿌리는 나무의 생명의 핵심이다. 그 뿌리가 땅 속을 헤치고 뻗어나가듯 땅 속의 이미지의 상상은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우리의 마음 깊은 곳, 생명의 깊은 비밀을 체험하는 경험 사물과 세계의 내면을 깊게 파헤치는 경험을 체험하게 해준다. 그것이 우리에게 알지 못했던 것을 알려주고 사람은 스스로 흙 속을 탐구하는 뱀이자 뿌리가 되어 새로운 것들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고 바슐라르는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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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 5강. 흙의 시학 I : 나는 대항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
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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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 흙의 시학 I : 나는 대항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1. 돌과 바위, 산: 저항과 의지 바슐라르는 흙의 의미지를 외향적, 내향적 상상력으로 분류하여 접근하였다. 흙의 외향적 상상력: 의지와 저항 흙은 다른 원소에 비하여 불활성이고, 고정되고 포착 되기 쉬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 흙은 물질적 대상으로 만지고 변형할 수 있으며, 구체적이고 감각적이다. 이 존재감이 흙으로 무엇인가 만들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고 여기서 흙에 대한 외향적 상상력이 작동하여 흙으로 형태를 만드는 공작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흙의 의지는 우리의 욕망이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아 흙을 원하는 모습으로 변형 시키기 위해 다양한 행위를 필요로 한다. 이는 남성적인 성향이 강한 세계라고 할 수 있는데, 흙, 돌, 바위, 산등의 단단함에 대항하고 싸우고 길들이며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는 것이다.
“사물의 단단함, 사물의 부드러움은 우리를 생명의 여러 유형과 마주하게 한다. 저항하는 세계는 우리를 정적인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손이나 도구의 사용으로 사물과 에너지를 주고 받으며 생명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의 실체의 안쪽을 열어준다. 생명이 없는 흙을 사람의 의지로 형태화 하였을 때 사물이 우리의 의지의 초점이 된다.
여기서 단단한 돌과, 바위와는 다르게 물에 섞인 진흙은 부드럽고 완화된 의지를 불러낸다. 구워지기 전까지의 찰흙은 손의 감각에 의해 만져지며, 형태를 만들어낸다. 반죽하는 예술가를 산파로 비유하는데 반죽을 할 때 무의식적 움직임은 상상과 이미지가 사유와 관념이 되는 과정 이전의 단계이며 꿈꾸는 인간이 만드는 꿈의 일부가 된다.
2. 대장장이와 연금술사 : 돌에서 보석으로 보석은 땅 속 씨앗, 별, 생명을 불린다. 불변의 아름다움 단단함, 투명함 빛으로 존재한다. 오랜 시간 땅 속에서 자라나 완성된 생명체의 이미지를 갖는다.
연금술 땅 속에서 오랜 기간 만들어지는 보석을 인간의 연구로 단 기간에 재현하려는 욕망에서 탄생한 것으로 죽음과 재탄생의 서사를 실천한다.
연금사들은 “청결하게 하기 위해서 더럽히고 재생하게 하기 위해서 부패시키고, 자기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를 잃어버려야 하는” mortification의 과정을 실연한다. 그들은 삶은 죽음의 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부패의 단계 후 금속을 부드럽게 데우는 ‘하소’의 단계에서 거친 금속의 회춘이 시작된다. 그리고 금속의 힘을 다시 응집시키는 ‘응고’의 단계가 소금을 통해 이루어 진다. 여기서 소금은 중심을 잡게 하는, 집중시키는 물질이다. 상반되는 물질들을 소금의 응집력을 사용하여 이슬과 같이 순수한 완성체를 만들어낸다. 이 완성체는 무방비 상태의 순수성이 아닌 과정을 거친 ‘순화된 의지’의 순수함이다.
“이러한 순수함은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는 순수함이다. 이런 순수함은 불순한 것을 공격한다.”
연금술사의 몽상 속 금속들의 이야기는 단지 황금이란 물질을 만들어 이득을 보려는 기술이 아니라, 그들이 금속의 의지와 싸우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인 것이다.
“ 사랑의 저주와 노여움의 저주가 섞인 정열적인 분위기 속에서 부드러운 말과 모욕적인 말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사물보다는 인간을 이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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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 4강 불의 시학 II : 나는 태우고 변형시킨다. |
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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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불의 시학 II : 나는 태우고 변형시킨다
1. 소멸과 재생: 피닉스와 엠페도클레스
피닉스 전설 속 불새, 불에서 태어나 불에서 죽으며 다시 알을 낳고 태어나 영원히 산다. 여기서 영원은 죽으면서 사는 것, 즉 순간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피닉스는 새이며 불 자체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불이 영원히 꺼지며 다시 타오르는 것, 즉 소멸과 부활의 순간으로 체험된다.
“그는 유일하다. 그는 독특하다. 그는 삶과 죽음의 마술적 순간들의 스승이며 둥지와 장작더미의 중대한 이미지들의 기묘한 통합이다. 그는 자신의 장작더미가 불타오르는 최후의 순간에 최고의 영광에 도달한다. 이 지고한 이미지의 제목은 ‘죽음에 의한 승리’여야 할 것이다.(<불의 시학의 단편들>,101)
피닉스는 독수리, 매 등의 맹금류로, 또는 한줄기의 빛나는 눈빛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바슐라르의 불의 체험 바슐라르는 어린 시절 태양이 이글거리던 여름 물에서 솟구치는 물총새가 하늘로 사라지는 장면을 목격한다.
“ 마치 창공으로 쏘아올린 화살처럼 불새가 솟아오른다 날카로운 외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었나? 빛의 새에게서 놀란 아이에게서, 아니면 고독한 아이에게서 오는 것이었나? 새는 아주 빨리 수면을 흔들어 아마 그의 유일한 노획물이었을 물방울을 뿌리면서 하늘을 향해 다시 떠났다. 불로 달궈진 새처럼 푸른 물총새였다. 새는 사라졌고 꿈이 시작된다.”
이처럼 시간을 순간으로 정지시키는 이미지, 즉 피닉스의 이미지를 체험하는 것이 영원을 체험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피닉스를 체험한다는 것은 불을 체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엠페도클레스 콤플렉스
엠페도클레스는 4원소론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왕이 되기를 거부하고 에트나 화산에 몸을 던져 사라졌고, 화산이 토해낸 신발 한 짝 만이 남았다고 전해진다.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아무도 확인 할 수 없었다. 그는 피닉스가 된 현자라 여겨지고, 완전한 소멸의 욕망을 통해 다시 부활하는 몽상의 상징이 된다.
“영웅으로 죽기 위해서는, 화산의 불 속에서 엠페도클레스적인 죽음을 무릅쓰기 위해서는, 지고의 행위 이전에, 결국 아니마가 간직하고 있는 모든 추억을 멀리하여 용해하고 감미로운 삶과 충실한 삶의 모든 비가를 지워버리며, 잊을 수 없는 것을 잊어야 한다.”(불의 시학의 단편들,202)
헤라클레스의 죽음 속 엠페도클레스 콤플렉스
바슐라르는 헤라클레스의 삶을 불이라고 한다. 그는 일생 동안 분노를 통해 난관을 통과하고, 분노로 자신의 존재를 배양했다. 모든 것을 죽이고, 부숴버리었는데 파괴를 당한 괴물들이 그의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게 된다. 그러자 그는 스스로 장작불에 올라가 일생을 마감한다. “불은 그의 죽음의 존재임이 틀림없다.”
2. 빛의 칼: 분석과 순수화의 열망
“불은 태어나고 성장하는 모든 것을 삼키며 잔뜩 먹고 배를 가득 채운 뒤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지면 결국에는 자기 자신마저도 삼킨다.”(<불의 정신분석>,124)
불은 살아있는 유기체와 유사하게 살기 위해 먹고 소화시키고 배설하는 행위를 한다.
불의 이미지에 순수화의 열망이 더해지면 승화된 불, 이상화 된 불, 정화된 불이라 불리는 빛이 된다. 불의 유기체적 요소(소화,배설 작용)이 사라지면 불의 추상화가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불이 정신화 된 빛이 된다. 이것은 반 생명적인 빛으로, 수학과 기하학 같은 과학의 세계의 탄생을 의미한다.
과학은 앞서 이야기한 헤라클레스가 히드라의 머리를 불로 지져버리듯이 순수화를 열망하며 자라나는 이미지의 번식을 막는다. 그것이 지식이 되어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여 지배하는 관념이 되는 것이다. 이때 불은 정화의 의식, 변형의 상징이 되며 날고기가 불을 거쳐 소화하기 쉬운 음식이 되 듯 이미지들이 의식의 불을 거쳐 지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과학은 순수화의 이상을 향하지만 순수화에 도달하긴 힘들다. 그것은 과학 또한 살아있고 변화하는 생명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자기비판과 교정활동이 필요한 것이다. 과학의 이상 추구는 과학의 윤리로서 유지되어야 하며, 과학 활동 내부의 합리화의 욕망은 이론의 변형과정을 거쳐야 한다
바슐라르는 <불의 정신분석>에서 불의 은유들을 언급하며 객관적 인식을 얻으려 하였다. 그러나상상력은 객관적 인식을 방해하고, 그러면서도 우리에게 풍부함과 행복감을 선사한다는 모순이 생긴다. 바슐라르의 불의 정석은 삶과 닮은 모순을 담고있다.
“내적인 불은 자신의 그 어떤 속성에서도 변증법적이 된다…이 변증법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불과 연결되어있는 모든 콤플렉스는 괴로운 콤플렉스요 신경증이 되는 동시에 시가되는…거꾸로 뒤집을 수 있는 콤플렉스다…우리는 불의 활동 속에서는 물론 불의 휴식 속에서도, 불꽃 속에서는 물론 재 속에서도 낙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불의 정신분석>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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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 3강. 불의 시학 I: 나는 살아있다 그러므로 투쟁한다 |
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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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불의 시학 I : 나는 살아있다 그러므로 투쟁한다
1. 금지와 반항: 프로메테우스의 고뇌
프로메테우스: ‘앞을 내다보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 준 그리스의 신으로 신들의 불을 인간에게 전해준 대가로 키우카소스 산의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뜯어 먹히는 형벌을 받는다.
불-금지-거역-죄의식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 속 불은 불에 대한 앎이 징벌을 부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기서 불은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알고자 하는 욕망의 충족은 위험함을 내포하고 있다.
프로메테우스 콤플렉스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들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우리의 스승들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알고자 하는 모든 성향을 프로메테우스 콤플렉스라는 이름으로 정리할 것을 제안한다.”(<불의 정신분석>33)
‘허용된 것 이상’의 것을 알려하고 아버지나 사회적 편견을 능가하는 것, 그런 욕망의 증가와 내면의 지식욕이 커질 때 스스로 불이 되어 불타오르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프로메테우스 적 인간은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 싶어하며 그로 인해 스스로를 자기 사고의 에너지로 형성해야 하는 고투하는 인간이 된다. 창조적이며 고통 받는 고독한 인간의 전형이 프로메테우스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이성적이며, 지성을 가진 선구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의식을 밝히는 댓가로 자신의 티탄적 본성을 희생하며 이것은 ‘죄의식’을 탄생 시킨다. 인간이 가진 최고의 재산인 불이 훔쳐진 것이라는 점과, 불사신들의 고통을 댓가로 이루어진 것이란 점에서 불은 금지와 거역으로 인한 죄의식을 만들어낸다.
2. 불과 빛, 그리고 눈과 시각: 오이디푸스의 경우
오이디푸스 신화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는 아들이 태어나면 아버지를 죽일 것 이라는 예언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버림 받은 후 자신의 신분을 알지 못한 채 이웃나라의 왕자로 자라난다. 그는 우연히 길에서 만난 노인을 아버지인줄 모르고 죽이게 되고, 스핑크스의 문제를 해결한 영웅으로 추앙 받아 왕이 되어 어머니인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한다. 테베의 역병과 기근이 그 예언의 결과임을 알게 된 그는 자책하며 자신의 눈을 찌르고 떠난다.
눈과 시각
불은 빛과 열기가 함께 있다. 하지만 빛은 열기가 없이 차가운 빛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은 불로부터 태어난 의식의 빛이 열기를 잃을 때, 이성과 판단력으로 인해 사랑을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아들의 어머니 고착으로 본다. 바슐라르는 반대로 아버지에 대한 불복종, 권위에 대한 불복종, 금기에 대한 불복종으로 이를 해석한다. 그래서 그는 오이디푸스와 프로메테우스를 함께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에게,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스스로에게 내린 벌이라는 점이 다르다.
오이디푸스는 의식하지 못한 상태로 아버지를 살해하였고, 무지함이 앎으로 넘어갔을 때 자신의 눈을 찌르는 형벌을 가하게 된다. 그는 “나에게 이 쓰라리고 쓰라린 불행을 일으킨 건 아폴론이다.”라고 말하는데 아폴론은 태양빛의 신, 시각의 신이다. 오이디푸스에게 영웅의 칭호와 왕위를 안겨준 아폴론의 지혜는 ‘이성의 빛’ 과‘계몽’을 의미한다. 이 빛은 오히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자로 만들어버린 위험한 빛인 것이다.
이 차가운 의식의 빛은 수직성을 가진 하늘의 눈, 감시자의 이미지로 징벌하는 신의 이미지를 낳는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아폴론적이고 소크라테스 적인 의식 중심의 철학을 비판한다. 시각, 이성, 의식 중심주의의 문명은 열이 빠져나가고 빛만 남은 차가운 이성으로 인해 사랑을 잃어가는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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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 2강. 물의 시학 II: 흐르는 생명 속으로 |
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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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 물의 시학 II : 흐르는 생명 속으로
1) 물과 달, 여성성: 아프로디테와 관음
아나미오메네(Anadyomene) : 갑자기 솓아나는 것, 갑자기 출현하는 것.
신화 속 아프로디테는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모습으로 태어난다. 그녀는 ‘거품에서 태어난 여신’ 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가 막내아들 크로노스에 의해 거세당한 후 떨어진 정액이 바다에 가라앉았다 솟아오른다는 신화 속 내용처럼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갑자기 솟아나는 아나디오메네의 순간을 상징한다. 이것은 삶 속에서 체험되는 선물 같은 순간을 나타내는 것이다.
태초의 세계는 인간이 최초로 경험하는 물의 경험, 어머니의 젖, 모유의 경험으로 아늑한 행복감, 풍요로움 잠의 이미지를 띈다. 그리고 그 체험은 우리의 입, 입술, 혀의 느낌과 함께 관능의 이미지를 낳는다. 바슐라르는 입과 관련된 욕망의 시작을 행복한 만족감으로, 프로이트는 금기나 억압으로 상반되게 해석한다.
a. 어머니의 젖, 모유 - 행복감, 잠의 이미지 b. 입, 입술, 혀의 느낌 - 관능의 이미지 c. 젖의 이미지는 불투명성을 지닌 물의 이미지 - 달빛이 비친 호수의 이미지 d. 호수 위에 떠오른 달 - 호수는 그릇에 담긴 하늘 e. 조각달 - 하늘의 조각배 f. 물고기는 새 - 새는 물고기
이런 식의 사고를 거쳐 달빛 젖은 호수는 어머니의 포근함과 관능이 합쳐진 장소로 변모하는데 바슐라르는 상상력이 움직이며 만들어지는 이미지에 ‘마술적 관여’의 힘이 작동한다고 한다.
마술적 관여: 세계에 꿈을 투영하는 것으로 주관과 객관, 안과 밖이 섞여 서로를 바꾸는 일.
보들레르의 시 <조응(correspondence)> “내가 숲 속을 거닐 때 숲은 향기와 색채와 소리로 서로 화답하고 정다운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용연향, 사향, 훈향처럼, 무한한 것으로 확산되어 영혼과 관능의 환희를 노래한다.”
시는 영혼이 물질과 만나 꾸는 꿈의 기록으로서 내면의 자연과 외부의 자연이 만나 조응하고 교감하며 창조된다. 바슐라르는 그것을 ‘마술적 관여’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포근함과 관능으로 인한 물에 대한 끌림은 역으로 물이 무언가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느낌으로 변하여 유혹하는 물의 이미지를 낳는다.
- 뱃사람을 유혹하는 사이렌의 이미지 - 인어의 이미지 - 물에서 목욕하는 젊은 처녀의 이미지
이러한 이미지의 연쇄는 ‘처녀수장의식’의 관습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유혹하는 물을 다시 깨끗한 물로 정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의 결과이다.
물의 도덕성 : 어머니의 젖으로서의 물의 순수하고 깨끗한 첫 이미지로 인해 물의 도덕성이 생겨나 물을 더럽히는 행위는 어머니에 대한 모독으로 여겨지는 무의식적 도덕이 작용한다.
바슐라르는 기원 전 8세기 헤시오도스에 의해 쓰여진 <일과 나날들> 속에 등장하는 구절을 언급한다. “바다로 흘러가는 강의 하구나 그 수원에서는 결코 오줌을 누어서는 안된다. 이것을 꼭 명심해 두어라. 거기에서 또한 당신의 또다른 심리적 요구도 충족시켜서는 안된다. 그것 역시 불길한 짓이다.”(<물과꿈>p.195)
이 이야기 속에서 물의 도덕성은 물이 깨끗해야 한다는 위생학적 이유 이전 물의 이미지와 관련이 있으며 관념이 이미지로부터 태어난다는 그의 생각을 말해준다.
가장 순수한 깨끗한 물은 우리에게 생명력과 활기, 기쁨을 주지만 그만큼 오염되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순수한 존재가 가장 타락한 존재로 폄하 될 수 있는데 이것은 악한 물로 취급된다.
물의 정화력에 대한 이미지로 인해 물은 불순물을 씻어낸다는 것을 상징하는데 이로 인해 젊어지는 샘,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한 모금의 물, 악인을 잠에서 깨우는 한 방울의 눈물 등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페르시아의 신도는 정화의 원칙을 너무 멀리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어서 모든 종족의 더러움을 목욕으로 없애기 위해, 그들이 신앙심 없는 자를 보고 더럽혀 졌을 때 눈을 씻는다. 그래서 언제든지 목욕을 할 수 있도록 긴 주둥이를 갖춘 물을 가득채운 단지 하나를 가지고 다닌다.”(<물과 꿈>p.203)
바슐라르의 연구 속 물의 정화적 이미지는 물이 새로움을 주고 다시 태어나게 하며 눈을 씻어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해준다고 한다. 물에 씻긴 백조가 새로움, 순수함, 젊음, 관능의 이미지를 끌어내고, 아침에 물 위로 떠오르는 태양은 물에 씻겨 빛을 되찾은 새로 태어난 젊은 태양이며, 물 위로 솟아오르는 보름달은 물의 에너지를 담은 달이며, 솟아오르는 아프로디테는 물의 생명과 모성, 관능을 지닌 태모신으로 모두 솟아나는 ‘아나디오메네’의 순간을 이야기한다.
2) 난폭한 물의 괴물들
난폭한 물의 이미지 : 바슐라르는 먹을 수 있는 샘물을 물의 이미지의 출발점으로 여겼다. 그래서 짠물인 바닷물의 이미지를 민물과 대비시킨다.
-바빌로니아의 신화 : 짠물의 여신 티아마트는 젊은 손자 마르둑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데 그 과정에서 마르둑은 티아마트의 몸을 둘로 잘라 하늘과 땅에 붙여 세계의 질서를 잡는다. 태모신에서 괴물 용으로 변한 티아마트는 짠물이 악한 물이라는 이미지를 만든다.
20세기 신화학자인 조지켐벨은 이 이야기가 여성혐오의 결과물로 태초의 모신 문명에 대한 ‘신화적 비방’이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고있다고 한다.
짠물에 대한 경험은 마실 수 없다는 것과, 바다의 변덕스러운 이미지의 공포와 연결되며 난폭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데 바슐라르는 이 난폭한 이미지가 남성적 이미지를 띈다고 한다. 이것은 삼지창을 든 포세이돈이 바다의 신으로 등장하는 것과도 이어진다.
크세르크세스 콤플렉스
“크세르크세스가 세스토스와 아비도스 시 사이에 몇 개의 다리를 놓도록 명령한 후에 다리들이 완성되자 무시무시한 폭풍우가 일어 다리의 동아줄을 끊어버리고 배들을 다 부셔버렸다. 이 소식을 접하자 화가 난 크세르크세스는 노여움 속에서 헬레스폰트의 바다에 삼백번의 채찍질을 내리치게 하고 거기에 수갑 하나를 던지게 했다. 그는 또 뜨겁게 달구어진 쇠로 물에다 낙인을 찍게 했다고 한다. 그가 바다를 향하여 광기어린 채찍질을 하면서 야만스럽고 광기어린 연설을 행한 것은 분명한 일이다. ‘바다여, 그대는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례한 짓을 저질렀으므로 그대의 주군은 그대를 벌하는 것이다. 짐 크세르크세스는 하는 수 없이 그대를 건너가리라. 그대는 위선적이고 더러운 물이므로 그 누구도 그대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는 것은 당연하도다.’ 그는 이와 같이 바다를 처벌하고 다리의 건축을 지휘했던 자들의 목을 베었던 것이다.” (<물과꿈>,p.255)
물을 향해 대응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무의식 속에 바깥 세계를 자신과 같은 것으로 경험하는 마음과 관련되어있다.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물에도 마음이 있다는 것은 사람의 심층적인 마음에 작동하는 방식이다.
난폭한 물을 잠재우기 위해 제물을 바치는 ‘심청’ 이야기도 실제로 거행되었을 때는 야만스런 풍속이지만 이미지로써 존재할 때 심청이 물에서 다시 떠올라 부활하는 ‘아나디오메네’의 순간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만드는 축복의 순간으로 작용한다.
“정확하게 역동화된 문화적 이미지(원초적 체험에서 제대로 끌어올려진 문학적 이미지)는 독자를 역동화시키는 것이며, 공명하는 혼 속에서 독서에 대한 일종의 위생법, 상상력의 체조, 신경중추의 체조를 야기시키는 것이다. 신경조직은 이와 같은 시편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물과 꿈>,p.263)
이미지의 변형과정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들은 현실과 직선으로 연결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문자적 해석이 어렵다. 크세르크스가 바다에 화풀이하는 행위로 자신의 권위와 힘을 과시하는 것, 티아마트를 죽인 마르둑이 바빌로니아의 최고의 신이 된 것과 같은 이야기들은 현실 속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
“히드라가 안개 속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자”
바슐라르는 태초의 물의 여신인 ‘히드라(Hydra)’를 도와주자는 말로 물이 길을 따라 흐르듯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시의 언어, 물의 말로 노래하면 우리 안에 물이 흐르듯 생명이 흐른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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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 1강. 물의 시학 I : 우주적 거울로서의 물 |
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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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물의 시학 I : 우주적 거울로서의 물
1) 바슐라르(Gastin Bachelard, 1884-1962)와 사원소의 상상
상상력의 철학자라 불리우는 바슐라르는 ‘상상력의 형이상학’이란 제목의 강의를 시작으로 고대 자연의 4원소인 불, 물, 공기, 흙을 하나의 원형으로 하는 글을 쓰게된다.
<불의 정신분석>(1938) <물의 꿈>(1942) <공기와 꿈> (1943) <대지와 의지의 몽상>(1948) <대지와 휴식의 몽상>(1948) <몽상의 시학>(1961) <공간의 시학>(1957) <초의 불꽃>(1961)
바슐라르의 연구 속 상상력 -세계와 교감하는 능력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세계와 상호하는 능력 -영혼의 창조적 능력
그는 예술작품, 신화, 민담, 습속들에 대한 구체적인 실례를 통해 상상력이 움직이는 길과 방향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4원소는 그리스의 자연철학자인 엠페도클레스(A.C.490년경)에 의해 물, 불, 흙, 공기가 자연의 ‘근원적 뿌리’(rhizome)라고 하고 이 네 가지 힘이 사랑과 미움이란 힘에 의해 서로 얽히며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주관한다 믿었다.
바슐라르는 이 네 가지 원소들이 사람의 마음 속 보편적인 자연성을 표현해주는 개념이라고 여겨 이 뿌리, 리좀을 힘과 방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역동적인 힘을 지닌 물질이라 생각하였다. 따라서 자연의 네 뿌리인 4원소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실체적 힘을 의미한다.
바슐라르는 우리의 상상력은 자연을 만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이미지들은 시를 만들어내며 그렇게 만들어진 시는 우리에게로 돌아와 우리를 바꾸는 힘을 가진다고 한다.
이미지 창조력으로서의 상상력은 꿈과 몽상을 통해 움직이며 나와 대상 사이 전이와 투사가 함께 이루어지는 상태에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그 이미지는 내부에서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을 지닌다.
몽상 -깨어있는 상태에서 꿈을 꾸는 의식 상태. -내 앞에 펼쳐진 대상, 세계와의 연결을 유지하며 세계와 함께 꿈을 꾸는 의식 상태. -외부와 연결을 유지하며 세계의 깊은 뿌리속으로 들어가 역설적으로 나의 내면을 만나는 활동
이미지는 스스로 고정됨 없이 증폭, 비약하며 스스로 피어난다. 상상을 통해 체험하게 한다. 2) 나는 물을 보고 물은 나를 본다 : 나르시스와 에코
<물과 꿈> ‘물질의 상상에 대한 에세이’
바슐라르는 물질에 대한 상상을 물의 상상이 어떻게 피어나는지 관찰하는 것에 비유한다. 우리가 체험하는 물, 기억된 물은 H2O가 아니지만 (주관적인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의 보편적 원형을 담고 있는 신화나 민담 속 물은 상상의 기본 줄기를 더듬어 볼 수 있게 해준다.
‘나르시스 이야기’ 잘 생긴 청년이 샘 위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반해 그 얼굴의 주인과 만나려 물속에 빠져 죽는다.
-심리학적 해석 : 나르시스 콤플렉스, 자기애 증상 -바슐라르의 해석 : 물 위에 비친 세계 전체의 사랑
바슐라르는 나르시스가 물 위에 비친 자신이 포함된 세계 전체의 풍경에 매료되었다 이야기하며 그 고정될 수 없는 이미지, 나르시스의 물은 최초의 거울이라고 한다. 물을 바라보는 이와 물은 일시적으로 하나가 된다. 나와 내 앞의 ‘그것’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고 내 마음이 ‘그것’에 투영되며 ‘그것’의 마음이 내게 전이된다. 이 때 ‘그것’은 더 이상 ‘그것’이기를 멈추고 ‘당신’이 되거나 또 다른 ‘나’로 변한다.
상상하는 자연과 상상된 자연, 꿈꾸는 자연과 꿈으로 나타나는 자연은 하나이다. 나르시스가 물 위의 이미지를 보며 세계의 이미지를 창조하듯 사람이 물질에 대한 상상을 시작할 때 물질과 내면의 영혼이 깨어나게 되며 그때 우주의 영혼도 함께 깨어난다.
3) 비쉬누의 꿈 환상으로서의 세계
인도의 창조신화 속 비쉬누 신의 꿈은 우유바다 위에 누워 잠을 자는 그의 꿈으로부터 피어난 세계가 우주라고 말한다. 신의 배꼽에서 피어나는 연꽃이 피어나자 창조주인 브라흐마 신이 태어나고 네 개의 얼굴을 가진 이 신은 비쉬누 신이 잠에서 깨어나면 사라진다. 이 세계를 마야(maya), 환상, 꿈이라고 부른다.
중국의 철학서 <장자>의 ‘나비의 꿈’ 이야기 속 장자는 나비가 되었다 꿈에서 깨어보니 자신만 남아있었다. 그는 혹시 자신이 나비의 꿈속 등장인물이 아닐까 묻는다.
이 두 이야기를 포함한 많은 현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꿈과 현실은 구분되지 않고 하나의 띠로 연결되어있다. 이미지 속 이야기들은 언어로 포착하기 힘든 실상을 상징과 은유를 통해 전달한다.
바슐라르는 내면의 이미지가 현실을 규정하는 측면이 개념적 논리가 현실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강하다고 한다. 현실은 이미지의 세계와 유사하게 냄새와 촉감, 감정과 느낌이 뒤섞인다. 개념적 사유처럼 명료하고 명석판명하기 위해 이미지를 제거하는 것은 과학이고 이것은 시와는 반대의 의미를 지닌다. 시가 개념구조로 바뀐다면 더 이상 시로서의 존립근거가 없고 죽은 말, 죽은 이미지가 된다. 죽은 이미지는 현실을 제대로 표현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관조하기 전에 꿈꾼다. 모든 풍경은 의식의 풍경이기에 앞서 꿈의 경험이다. 사람은 미적 정열로 먼저 꿈에서 본 풍경만을 바라본다.”(<물과 꿈>에서)
물의 상상은 신화 속 젖으로서의 물처럼 삶의 시작과 그것에서 솟아나는 다양한 이미지들을 알게해준다. 그리고 나르시스의 이야기 속 물처럼 물이 흐르듯 흘러가는 표면의 순간적 이미지들과 그리고 그 깊이에 숨겨져 있는 알 수 없는 심연의 상태들을 나타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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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이미지, 시, 변화 생동의 힘... |
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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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융희 선생님 강의 2번째인데.... 참 좋네요.^^ '색, 인문학'도 듣고 있는데... 새로운 강의 더 해주시면 좋겠다는.....
자연의 4 뿌리로서의 4원형 물, 불, 흙, 공기는 고정되어 있는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실체적 힘이라...
우리의 상상력은 자연을 만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이미지들은 시를 만들어내며, 그렇게 만들어진 시는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와... 우리를 바꾸는 힘을 가진다는...
시작과 끝은 하나로 이어진다는...
음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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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문건호님:) 김융희 선생님 강의 너무 좋지요! ㅎㅎ <삶의 길목에서 만난 신들의 이야기> 에 이어 바슐라르 강의까지! 아트걸이 건호님의 공부를 응원할게요. 아트걸 (15.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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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미지 |
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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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강좌를 통해서 바슐라르의 상상력을 통한 이미지의 창출 과정을 일상생활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개념의 조합이 아닌 상상력의 이미지화를 통한 바슐라르의 문제의식이 본 강의를 통해 명확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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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 님:) 김융희 선생님 강의 너무 좋지요 :) 선생님의 ''색, 인문학'' 강의도 추천드려요! 바슐라르를 배우는 유익한 시간 되셨기를.. 아트걸 (1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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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거리가 많아지는 강의 |
윤*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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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느끼지 못했던 자연에 대한 다른시각으로 바라보는 좋은 강의라 생각됩니다.일상생활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것을 강의를 통해 더욱 자세히 알게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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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국진 님:) 이 강좌를 들으셨다면, 김융희 선생님의 <色, 인문학> 강좌도 추천해드립니다! 강좌평 감사드려요. 아트걸 (15.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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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슐라르의 상상력 |
서*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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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슐라르에 대해서는 과학철학에서 이름만 몇 번 들어보았을 뿐 그 외의 다른 이론들에 대해서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바슐라르의 상상력에 대해 새롭게 배울 수 있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세상의 만물이 '앎의 대상'이 아니라 이것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고 생각하게끔 한다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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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상 님:)
네, 맞습니다. 세상만물은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 저도 깊이 생각하고 있는 점이에요. 세상이 어떤 마음 결로 내게 말을 걸어올지 기대되네요. 리뷰 감사합니다. admin (14.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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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류*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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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무척이나 궁금했던 바슐라르의 철학에 대해 이렇게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강의해주시는 것에 깊은 감사함이 있습니다. 물과 히드라, 그리고 불과 피닉스 등을 통하여 생명이 갖고 있는 끊임없은 연속성과 그 연속성으로 인하여 삶이 생기있어진다는 생명의 풍요로움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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