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리뷰> |
옛 지식인들은 어떤 책을 읽었을까 - 조선시대 책의 모든 것 |
하누리 |
|
|
|
우수
|
ㅋㅋㅋ 아 웃겨!! 허균 이야기 1강 |
우*화 |
|
|
|
"이 강의를 듣는 사람은 무슨생각으로 듣는지 모르겠지만 .... 아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일꺼예요 " -교수님 -
오 ~~ 맞아 !! ㅋㅋ
편안한 목소리, 교수님인데 부담감이 하나도 안드네 ~ ㅋ 그저.. 난 옛날 이야기를 듣는 느낌 !! ?
허균이 그런 사람이었나 ?? ( 요거 ~ 요거 ~ 드라마 나오면 대박치지 않을까 ? )
허균 책이 ~ 다 어디로 갔을까 ? 이걸 궁금해 하시는 교수님도 재밌으시고 허균의 기억력에 놀라울 따름이고.... ( 이부분이 제일 재밌고 자랑스러움 )
p.s 허균이 역모죄(?)로 사형을 당했다 주장 1 : 아마 역모죄가 아닐거야.. 이유는 .. 무슨 역모죄를 3년을 논쟁하냐 ? ㅋㅋㅋㅋㅋㅋ 요것 도 우낌
여하튼,, 난 당신의 강의를 듣고 오늘 웃고 있음 *^____________^*
|
|
|
|
 |
*^_________________^* 저도 따라 웃어봅니다. 할아버지에게 옛날 이야기를 듣는 느낌으로 편안하게 들을 수 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즐거운 강의 되세요! 아트걸 (12.2.23) |
|
|
|
|
|
|
|
우수
|
조선시대 '책'을 주제로한 미시사? |
최*안 |
|
|
|
백승종 선생님의 미시사 강의를 이벤트로 듣고 사소한듯한 사료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유추해볼수있다는 것에 흥미로웠습니다.
김풍기 선생님의 이번 강의는 책이라는 소재를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을 보다 가깝게 느낄수있다는 점에서 또다른 '미시사'강의라고 봐도 될듯 싶네요.
조선 시대 이야기와 더불어 책에 담긴 보다 이전시대의 이야기와 사상들 그리고 김풍기 선생님의 개인 경험을 통해 독서와 공부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
|
|
|
 |
독서와 공부의 의미를 재확인한 김풍기 선생님의 강의! 정말 좋았죠? 앞으로도 아트앤스터디에 대한 더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아트소녀 (12.2.13) |
|
|
|
|
|
|
|
우수
|
오늘밤, 책꽂이를 찬찬히 훑어 보면서 |
s**l0803 |
|
|
|
첫 수업에서 나와 비슷한 행동을 했던 옛 사람을 만났다. 무려 중국의 남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름도 유명한 ‘양무제’. 한번쯤 역사책에서 접해봤을 인물이다.
‘양무제’는 그 옛날옛적, 종이도 먹도 붓도 모두 귀한 시대에 무려 14만권이라는 책을 왕실에 쌓아놓았다고 한다. 6세기에 이만큼을 모았다는 것도 놀랍지만, 더 기가 막힌 사실은 무제의 맏아들인 ‘원제’가 이 책들을 모두 불태웠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어떤 허무주의에 빠져 귀한 장서들을 태웠을 ‘원제’는 두고두고 지식인들의 원망을 사지 않았을까? 왕실 소유의 책들은 유통도 쉽지 않았다고 하던데, 책들은 아마 불 속에서 울부짖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허균의 일화는 더욱 새롭다. 선생님의 해석에 따르면, 허균은 칙사로 파견된 중국에서 공금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국경을 넘는 그의 손에는 3000권의 책이 들려있었다고 한다. 공금을 횡령해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정황이 의심된다.
이런 저런 식으로 허균 개인이 모은 책들과,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책들을 합치면 상당한 양이 되었을 듯하다. 그런데 1618년, 허균이 역모 혐의를 받고 사형 당한 이후 그의 장서는 행방이 묘연하다고 하다.
이 책들 또한 뿔뿔이 흩어져 어딘가에서 주인을 원망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살아남아 필요한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 행복한 새 삶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두 가지 에피소드는 책은 보관은 물론이고, 유통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집에 쌓여있는 책들이 내게 원망의 잔소리를 퍼붓는 것도 당연하다.
새 책을 집에 고이 모셔와 아무도 못 보게 처박아 놓으니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들은 얼마나 안타까울까. 오늘밤에는 책꽂이를 찬찬히 훑어 보면서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세상에 나올 기회를 만들어 봐야겠다. 비록 아직 읽지 않은 책이라도, 그건 과거의 나의 관심사를 나타내 주는 중요한 표식이라는 선생님 말씀에 한 가닥의 위안을 얻으며.
|
|
|
|
|
|
|
4 |
귀신 이야기 듣다가 밤에 잠 못 잤습니다 |
이*현 |
|
|
|
3강 귀신, 인간의 마음을 흔들다 편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조선 전기 소설에 귀신이 많이 등장했다는 사실도 신기했고, 유교 사회에서 귀신을 연구했던 선비들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강의 듣고 나서 며칠 동안 괜히 밤에 화장실 가는 것도 무서웠어요. 그래도 교수님 말씀대로 혼란한 시기에 귀신 이야기가 성행했다는 분석은 충분히 공감됐습니다. |
|
|
|
|
|
|
5 |
사적인 에피소드가 곁들여져서 지루하지 않았어요 |
최*수 |
|
|
|
다른 인문학 강의는 너무 딱딱하고 지루한 경우가 많은데, 이 강의는 김풍기 교수님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툭툭 던져 주셔서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옛날이야기 듣는 기분으로 편안하게 완강했습니다. 조선 시대 지식인들의 삶을 책이라는 창을 통해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
|
|
|
|
|
6 |
영락대전 관련 오류는 아쉽네요 (5강) |
강*늘 |
|
|
|
8강에서 청나라 강희제가 영락대전을 만들었다고 설명하신 부분은 명백한 오류인 것 같습니다. 영락대전은 명나라 영락제 때 편찬된 것이 맞습니다. 사소한 실수일 수도 있지만, 인문학 강의에서 팩트 오류는 신뢰도에 영향을 주니 다음 강의에서는 꼭 수정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만족합니다. |
|
|
|
|
|
|
7 |
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 강의 |
정*훈 |
|
|
|
책은 단순히 지식을 담는 도구가 아니라, 시대를 관통하는 사유의 역사를 보여주는 매개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언해본을 통해 백성들에게 지식이 확산되는 과정이나, 금서(禁書)가 사회에 미친 영향 등 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
|
|
|
|
|
|
8 |
짧지만 임팩트 있는 강의! |
김*영 |
|
|
|
내용이 쉽고 재미있어서 짬 내서 듣기 좋았어요. 허균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었고, 책을 모으고 아끼던 옛 선비들의 마음이 느껴져서 저도 집에 있는 책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네요. |
|
|
|
|
|
|
9 |
교재 없이 들어도 괜찮은가요? |
박*진 |
|
|
|
강의는 좋은데, 교수님이 추천하신 책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를 꼭 읽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책 없이 강의록만으로는 좀 부족한 느낌도 들긴 했습니다. 내용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데 책을 구매해야 할까요? |
|
|
|
|
|
|
10 |
미시사적 접근이 신선했어요 |
윤*아 |
|
|
|
조선 시대의 거대한 역사적 사건보다는, 책이라는 사소한 소재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일상과 생각을 들여다보는 미시사적인 접근이 매우 신선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옛 서당의 풍경이나 한시를 주고받던 문인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어요. |
|
|
|
|
|
|
11 |
메간체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어요 |
오*준 |
|
|
|
2강 언해본 강의 중 메간체에 대한 설명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여성들이 주로 사용했던 이 문체가 얼마나 우아하고 유려했는지에 대한 교수님의 묘사가 좋았습니다. 결국 일상 속 글쓰기가 문화의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낸다는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섬세하게 언어를 사용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
|
|
|
|
|
|
12 |
강의 분량이 좀 길게 느껴졌어요 |
이*원 |
|
|
|
강의 내용 자체는 좋았지만, 한 강좌당 시간이 90~100분으로 너무 길어서 집중하기 조금 힘들었어요. 2교시나 3교시로 나눠서 들으니 괜찮긴 했지만, 처음부터 시간을 조금 줄여서 구성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
|
|
|
|
|
|
13 |
옛 시골 이야기가 좋았어요 |
서*지 |
|
|
|
강의 중간중간 툭툭 던져 주시는 옛 시골의 정감 있는 분위기나 개인적인 에피소드들이 참 좋았습니다. 강의가 훨씬 인간적으로 느껴졌어요. 딱딱한 이론만 나열하는 것보다 훨씬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
|
|
|
|
|
|
14 |
한시의 매력을 새롭게 알았습니다 |
문*성 |
|
|
|
5강 한시의 매력 편을 들으면서 학창 시절 어렵게만 느껴졌던 한시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교양으로서 한시를 짓던 조선 지식인들의 삶과, 그들이 한시 선집을 통해 문장을 연마했던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한시를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
|
|
|
|
|
|
15 |
서당 교육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
김*재 |
|
|
|
4강 서당의 독서 풍경을 통해 옛 서당이 단순히 교육기관을 넘어 마을 공동체의 결속력을 다지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특히 학채를 현물로 냈다는 이야기나,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가 함께 보던 필사본 이야기는 현대 사회에서 잃어버린 공동체적 가치를 생각하게 합니다. |
|
|
|
|
|
|
16 |
연암 박지원 그룹에 대한 심화 학습을 원합니다 |
조*희 |
|
|
|
7강 연암 그룹의 저술들 편이 좀 짧게 느껴졌습니다. 연암 박지원과 유득공의 『발해고』, 백동수의 『무예도보통지』 등 흥미로운 주제가 많은데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연암 그룹에 대한 심화 강좌가 따로 개설된다면 꼭 수강하고 싶습니다. |
|
|
|
|
|
|
17 |
강의는 좋았는데, 제가 시험 기간이라... |
오*민 |
|
|
|
솔직히 강의 내용은 정말 좋았습니다. 특히 책의 유통과 사유의 확장에 대한 관점은 매우 새롭고 깊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말고사 기간이라 밤을 새워 공부하는 와중에 들으려니 집중이 잘 안 되더라고요.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다시 처음부터 차분히 들어보고 싶습니다. |
|
|
|
|
|
|
18 |
더욱 책읽기를 좋아하겠어요 |
s**esang |
|
|
|
그저 책읽고 강의듣기를 좋아하는 내게 김풍기선생님의 책'조선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 와 관련 강의는 많은것을 기대케한다.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읽던 책이 아트앤스터디에서 직접 강의가 있을 줄이야. 한강 한강 강의를 들으며 관련되는 책을 참조하니 깊이가 더해진다. 한시도 많이 접할 수 있어, 오랫만에 옛날 국어시간으로 돌아간 느낌이든다. |
|
|
|
|
|
|
19 |
왜 영락대전을 강희제가 만들었다고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
조*진 |
|
|
|
8강을 듣다 보니 청나라 강희제가 영락대전을 만들었다고 하시네요. 영락대전은 명나라 영락제가 만든 것 아닌가요?? 처음에 들었을 때는 그냥 실수하시는 거겠거니 했는데 아예 강의 자료 pdf에도 나와 있네요. |
|
|
|
|
|
|
20 |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의 이름이 책 한권에 나란히 적혀있는 것은 |
꼬* |
|
|
|
고려도경이란 책이 있다. 중국의 사신이 고려를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의 풍경을 기록한 책이라고 한다. 이 책에는 당시에도 마을마다 학동들이 모여 공부할 수 있는 곳이 두어 곳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19세기에 이르면 서당은 전국적으로 분포해, 근대교육기관이 들어오기 전까지 민중교육의 시초가 된다.
서당은 주로 마을단위로 이루어졌다. 훈장이 직접 생계유지를 위해 서당을 열기도 했고, 지역의 유지가 제반비용을 책임지고 훈장을 초빙해 자식들과 친척아이들을 불러 모아 가르치는 경우도 있었다. 조합식 서당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마을의 몇 사람이 돈을 각출해서 내거나 마을전체가 함께 돈을 대고 아이들을 맡기는 형태였다. 서당의 등록금은 학채라고 불렸다. 학채는 주로 현물위주였는데, 1년 농사를 지어 추수철에 맞춰 한꺼번에 냈다. 여름옷과 춘추복, 겨울옷을 철마다 훈장에게 드리기도 했다고 한다. 서당은 마을과 함께 하는 운명 공동체였던 것이다.
서당은 마을의 결속력을 공고히 하는 기관이기도 했다. 마을 아이들은 집안어른들이 아침에 일터에 나갈 때 함께 집을 나서 서당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하나 둘씩 동네친구들이 모이는 것을 기다렸다 수업을 시작했다. 학습 시스템은 요즘 말하는 ‘도제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훈장이 접장을 가르치면, 접장은 밑에 우수한 여러 학동들을 가르치고 그 학동이 또 후배에게 배움을 나누었다고 한다. 어린 아이 때부터 자연스레 마을 구성원과 친숙해 질 수 있는 분위기였다. 옛 서당은 바쁜 현대인들이 상실해 가고 있는 공동체적 가치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곳이었던 것이다.
천자문은 서당에서 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교재였다. 그런데 천자문은 어려워서, 학문에 입문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이 천자문을 초학교재로 가르치는 것은 문제가 크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자문을 활용한 이유는, 봉건적 이데올로기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교재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천자문의 孝當竭力 효도함에는 마땅히 힘을 다하고 忠則盡命 충성하면 곧 목숨을 다한다 는 구절을 배우면, 학동들은 이를 암송하고 번역을 따라 읽으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상을 머리에 담는다. 천자문은 유교가 사회에 유포하고자 했던 윤리를 체화시키기에 좋은 도구였던 것이다.
반면, 천자문 필사본은 집안의 역사를 증명하는 책이기도 했었다. 어떤 고서를 봐도 아이들이 보는 책에는 책 주인 이름이 여러 번 쓰여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의 이름이 책 한권에 나란히 적혀있는 것은 ‘대대로 내려오는 책’이라는 증거이다. 오늘날 책이 끊임없이 소비되고 있는 현상과는 반대다. 시대가 변하면서 풍속은 박물관에 박제되기도 하고 새롭게 태어나기도 하지만, 조상에게 책을 물려받는 전통이 사라졌다는 것은 아쉬운 현실이다.
|
|
|
|
|
|
|
21 |
정감 가는 옛 시골 이야기를 툭툭 던져 주시는 선생님 |
꼬* |
|
|
|
정감 가는 옛 시골 이야기를 툭툭 던져 주시는 선생님과의 세 번째 만남. 강의안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수업과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이름 하여, <귀신, 인간의 마음을 흔들다>.
귀신, 귀신이라는 정체불명의 생명체(?)에 관심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 존재의 모호함이야말로 인간이 귀신에 매료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는 이유다. 그런데 귀신이야기가 최치원이 살았던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 귀신이야기가 가장 많이 읽힌 시기는 조선전기라고 한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에는 귀신이 자주 회자되는 경향이 있다는데,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던 당시의 혼란한 생활상을 반영하는 거라고 보여 졌다. 강의를 듣다보니 각 초등학교마다 하나씩은 있던 괴담들이 비로소 이해가 갔다. 이승복 동상 밑에 어린아이의 머리가 밤마다 나타난다던가, 밤늦게 구교사 1층 화장실의 다섯 번째 칸에는 자살한 혼이 떠다닌다든지 하는 귀신이야기들은 믿기지 않으면서도 학교를 다니는 한,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는 괴담들이었다. 오죽 우리에게 학교 괴담이 많으면, 영화 <여고괴담>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후 꾸준히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을까. 이게 다 우리사회에서 ‘학교’가 가진 이미지를 상징성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시와 각종 규율에 찌들어 사는 한국학생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 초현실적인 ‘귀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냈으리라.
재미있는 건, 유학을 나라의 근간으로 받아들인 조선시대 선비들이 귀신을 연구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불교가 규명하지 않았던 ‘귀신’이라는 존재를 설명함으로써 유교와의 차별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실제로 남효은은 2년간 귀신을 연구해서 펼쳐지는 것은 신, 수렴되는 것은 귀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귀신론을 썼다고 한다. 결국 귀신은 우주의 운행 중 하나다는 결론을 내린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귀신’에 대한 일반 백성의 생각을 바꾸려 했던 시도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불교에 바탕을 둔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제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일상 속에서 진정한 변혁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최초의 소설인 금오신화, 그 다음의 설공찬전, 나중에 등장하는 홍길동전은 비록 모두가 귀신이야기는 아닐지언정, 현실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꿈과, 변신술, 부적, 등이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된다. 시대를 뛰어넘어 사랑받았던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역시 드러내놓고 읽지 못했을 뿐, 조선시대에도 여전히 괴담소설은 성행하지 않았을까. 아마 양반들도 몰래 숨어서 즐겼던 취미생활 중 하나였을거란 생각이 든다.
|
|
|
|
|
|
|
22 |
메간체는 굉장히 우아하고 유려하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
꼬* |
|
|
|
언젠가 일본의 경쟁력은 번역에서 나온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일본은 100년도 더 전인, 메이지 유신 시대 정부 안에 번역국을 두고 서양 고전들을 엄청나게 번역했다. 그때 일본이 번역한 책 중 아직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게 수두룩하다고 한다.
확실히 원서를 읽을 실력이 되면 좋지만,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소수다. 만약 우리가 고전이라 일컫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라든가, 칸트의 ‘판단력 비판’ 등의 책을 프랑스어와 독어로 읽어야만 한다면 관련 공부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질 거다. 그래서 한 나라의 문화 발전에 있어서 좋은 번역은 중요하다.
우리 조상들도 번역의 이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듯하다. 2강에서 ‘언해본’을 배우며 든 생각이다. 언해본은, 본래 한문으로 되어있는 것을 한글로 번역해 놓은 책이다. 현재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훈민정음 언해본은 연산군 시대의 한글 탄압에서 살아남은 책이라고 한다. 어느 머리 좋은 집안에서 세종 때 하사받은 언해본을 압수당할까봐 뒤집어 다른 한문책을 필사해 위장했다가 일제시대 때 다시 나타났다는 에피소드는, 언해본의 굴곡 많은 역사와 더불어 한글이 널리 보급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짐작하게 했다.
한글의 발명 이후, 수많은 언해본이 나왔다. 월인천강지곡 등 수많은 불경들부터 두시언해와 삼강행실도까지 백성들에게 나라의 중심 가치관을 전파하기 위해 번역을 정성들여 했다고 한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16세기에 나타난 메간체라고 하는 문체였다. 주로 여성들이 쓰거나 연인이 주고받은 연애편지에서 나타나는 메간체는 굉장히 우아하고 유려하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결국 일상 속에서 축적된 우리말 글쓰기의 경험이 독자적인 우리문화의 영역을 만들어내는데 크게 기여한 셈이다.
프랑스 소설가이자 번역가였던 앙드레 지드는 “국가는 뛰어난 작가 모두에게 시간 일부를 외국 걸작의 번역에 쏟아붓도록 강요해도 무방하다”고 했다. 번역가는 단순히 외국어를 모국어로 정확하게 옮기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문화의 전달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상들이 열심히 닦아 놓은 한글을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사용하고 있는 걸까. 그동안 읽었던 알쏭달쏭 한 번역책들은 과연 내가 독해를 못해서였을까, 아니면 번역이 좋지 않았던 탓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