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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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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강의 |
문*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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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재미난 강의입니다. 특히나 강사분이 너무 재치가 있어 중간중간에 웃을 수 있어 듣는 동안에도 귀가 즐거웠습니다. 강의도 알찼는데 최진석 강사님의 다른 강의는 없는 것 같아 아쉬움이 듭니다 다른 최진석 강사님의 철학강의도 생겼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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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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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라는 야만 |
엄*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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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원시 영토 기계, 야만 전제 군주 기계, 문명 자본주의 기계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원시 사회는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있었을까. 우리처럼 화폐 중심적, 자본주의적 교환 체제는 아니었을 것 같다. 지금의 우리는 내가 A에게 선물을 했다면 A는 다시 나에게 무엇인가로 답례를 한다. 하지만 원시 시대에는 우리와 달랐다고 한다. 나는 A에게 선물을 하고 A는 B에게 선물을 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들은 왜 그런 얼토당토 안한 방식으로 살았던 것일까. 손해만 보는 방식 아닌가. 그렇지 않다. 원시 시대에는 이런 방식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빚을 주는 방식으로 서로에게 빚진 상태를 유지하고 이로써 서로에게 마음을 쓰고 연대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반대로 오늘날 우리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돈(뿐 아니라 뭐든지 되갚으면)을 갚으면 그만, 이라는 의식이 강하다. 그렇게 되면 너와 나의 관계는 깨끗이 청산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식으로 운용되는 공동체는 서로에게 책임도 그에 따른 신뢰도 마음씀도 없는 차가운 공동체가 된다.
세월호부터 메르스에 이르기까지 타자에게 전혀 마음을 쓰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들이라고 본다. 삼성병원은 쉬쉬하느라 바빴고 세월호는 또 어떤가. 이 사건은 너무도 끔찍해 말도 꺼내기 싫다.
원시 시대에는 저런 방식으로 필요한 만큼만 쓰고 나머지는 선물로 보내거나 태워 없앴다. 축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축적을 해서 부와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방식이었을까. 이렇게 본다면 야만에 가까운 것은 문명 사회라고 볼 수 있다.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을 보면 더 많이 베풀고 잉여를 남기지 않는 것을 통해 원시 사회는 유지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제군주제와 문명 자본주의 단계에 이르면 이러한 사회 운용 체제는 깨지고 만다.
전제군주제는 군주라는 절대적 권력(베풀기 보다 축적에서 나온 힘)을 중심으로 유지되었고 자본주의에서는 화폐라는 절대적 권력이 노동력을 갈취하며 잉여를 축적해, 사회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유지되는 사회가 정상적일까. 자본주의는 거의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고(물에서부터 성까지) 돈만 있으면 만사형통인 것 같이 운영되지만 돈이라는 수단을 목적으로 뒤바꿔 버린 도착적인, 아주 이상한 사회일 뿐이다.
근대 자본주의는 이전까지의 모든 사회 기계들과는 구분되는 메커니즘을 가진다. 원시 영토 기계나 전제군주 기계가 생산의 흐름을 가두고 그 낙차를 이용해 힘을 가지는 방식으로 작동했다면 자본주의 기계는 신분도 폐지하고, 노동력은 자유롭게 이동하게 놔두는 방식으로 거의 모든 것들을 해방시켰다. 단 화폐라는 물신만 빼고. 화폐는 추상이다. 실체가 없다. 따라서 그것은 상징계에 속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마치 라캉이 말한 대상a처럼 실재 같은 것인데 화폐는 모든 사물을 내재성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존재론적으로 평면화’ 한다. (어려운 말들이 계속되지만 인내심만이 살길이다 ㅠ)그 자신만 제외하고. 바로 이 자기 비판의 무능력, 불가능성이 자본주의를 그 너머로 이끌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오늘도 더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다. 문제는 책을 읽는 일인데, ,,,,,책을 읽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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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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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오이디푸스』가 말하려는 것 |
유*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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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안티 오이디푸스>는 도전해야지, 언젠가, 하는 책 중에 하나다. 생각나면 한번쯤 펼쳐보긴 한다. 그리고 닫는다. 올여름, 이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봐야겠다, 마음먹었다. 혼자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책, 수유너머 최진석 선생님이 강의를 해주신다기에 책부터 샀다. 거금을 들여, 새번역판!
사놓고 앉아서 책표지를 보며 혼자 중얼거린다. 왜 오이디푸스에 반대하지? 오이디푸스는 뭐지? 그래서 당신이 주장하는 건 뭐지? 정말 궁금하다. 그런데 까막눈이라 읽을 수 없어 답답할 뿐이다. 강의는 먼저 시원하게 이 간단한 물음들에 대한 답변으로 시작한다.
오이디푸스의 가족 신화는 말하자면 엄마, 아빠, 나의 감각형 구조 속에 구성원 각자를 구속하고 주어진 역할로 축소하며 위계화 시킨다. 이들 구성원을 욕망의 흐름, 생산의 흐름으로 움직이기를 허락하지 않고, 특정한 방식으로 ‘분할하고 위계를 할당하여 단일하게 규정된 회로’를 만든다. 그래서 ‘오이디푸스 구조에서는 각 항들 사이에 고착화된 위계가 시작되고 反생산의 회로가 반복’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기본적으로 이런 회로에 반대한다.
이런 구조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다. 아니 생산되기로 예정되어 있는 것들만을 만들어 낼 뿐이다. 이런 회로에 반대하면서 들뢰즈, 가타리는 ‘기계’라는 말을 쓰는데 기계는 새로운 조합, 분해가 가능한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인간도 기계이고, 자동차도, 사물도 모두 기계라 할 수 있다. 인간 기계들이 어떻게 기존의 조합을 해체해서 새롭게 어울릴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자 한다. 이렇게 해서 이들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안티 오이디푸스>의 과제는 자본주의적 분업의 거대 기계를 중단시키기 위해 자본주의적 생산의 흐름을 꺾는데 있다."
이들이 말하는 ‘기계’는 질료들의 흐름, 힘의 지속적인 이행을 절단하고 이어붙인다. 이 때문에 기계들은 임시변통, 재주꾼이라 부를 수 있다. 잘못된 결합으로 뭔가 잘못 생산될 수도 있지만. 포스트잇,은 잘못 만들어진 물건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유용하게 쓰고 있는가. 이게 없으면 논문도 못쓴다는..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정체성으로 우리는 사회에서 신분을 유지하고 그럭저럭 살아간다. 교사로 학생으로, 신입사원으로, 과장으로, 주부로 등등. 하지만 나는 공부만 하는 학생이기를 넘어서 다른 욕망을 가질 수 있다. 춤추고 노래할 수 있고 다른 친구들과 밤에 만나서 학교 공부 말고 다른 불온한 서적들을 읽을 수도 있다. 이런 흐름들을 차단하는 게 우리 사회이다. 위험해서이건 쓸모없어서이건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 위험하고 쓸모없다고 하는 건 그들의 이데올로기일지 모른다.
저자들이 ‘기관없는 신체’를 말하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특정한 방식으로 인간을 옴짝달싹 못하게 기관화시켜 순응하는 인간형, 분업화된 인간형, 특정 임무만을 수행하는 자본주의적 인간형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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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가 뻥 뚫리는 기분이에요! |
박*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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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가타리가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다가올 줄은 몰랐어요. 늘 제목만 보고 '저건 내 영역이 아니다...' 했는데, 최진석 교수님 강의를 들으니 철학이 현실 문제와 얼마나 밀접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가족과 국가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라는 이야기가 제 맘을 울렸습니다. 최근 직장을 옮기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주체와 욕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었어요. '기관 없는 신체' 개념을 이해하려 3강을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모르겠네요. 쉽지 않은 내용이지만, 교수님의 유머러스한 비유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강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강의도 꼭 개설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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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 강의료 너무 비싼 거 아닌가요 |
김*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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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입문해 보려고 큰맘 먹고 들었는데, 첫 강의부터 너무 어렵고 딱딱해요. 들뢰즈, 가타리가 뭔지도 모르고 온 사람도 있을 텐데, 너무 학문적인 이야기만 하시는 것 같아서 좀 실망했습니다. 저는 그냥 일상 속의 욕망에 대한 쉬운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니, 분자혁명이니 하는 용어들이 쏟아지니까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강의 자료도 교안만 덩그러니 있어서 아쉽습니다. 다른 분들 후기는 좋다는데, 제가 기대했던 강의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환불하기에는 아깝고... 그래도 일단 2강까지는 들어보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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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유의 지평을 넓혀준 강의 |
이*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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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오이디푸스』를 혼자 읽으려다 포기했는데, 이 강의 덕분에 그 거대한 사유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이 어떻게 작동하고 억압되는지에 대한 분석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원시 사회의 증여와 오늘날 화폐 자본주의를 비교하는 부분(4강)은 정말 신선했고,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교수님의 명쾌한 해설과 깊이 있는 지식 전달 덕분에 어려운 내용도 비교적 쉽게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 교수님의 1차원적 농담(?)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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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 말씀은 좋은데 내용이 너무 어려워요 |
오*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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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관심 있던 분야라 들었는데, 제가 철학 배경지식이 너무 부족해서 그런지 이해하기 버거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교수님은 정말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시는 게 느껴지고, 강의도 재미있게 하려 노력하시는데, 개념 자체가 워낙 난해해서 진입 장벽이 높네요. 들뢰즈, 가타리 입문자에게는 조금 불친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욕망하는 기계'나 '기관 없는 신체' 같은 개념들을 조금 더 친절하게 예시와 함께 설명해 주셨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다음에 들을 때는 관련 책을 좀 읽고 와야 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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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가타리 입문 강의로 최고! |
정*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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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의 사상을 접해보고 싶었지만 워낙 어렵다는 평이 많아 망설였는데, 최진석 교수님 강의는 정말 명쾌합니다. 『안티 오이디푸스』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구조적으로 잘 설명해주셔서 큰 그림을 잡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특히 5강에서 프로이트/라캉과 들뢰즈/가타리를 비교하며 '분열분석'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는 부분이 압권이었습니다. 이제 원서를 읽을 용기가 생겼습니다. 이 강의를 듣기 전의 나와 들은 후의 나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진 것 같습니다. 강력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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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시간이 너무 길어요... 집중력이.. |
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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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강좌가 120분~140분씩 되니까 중간에 집중력이 너무 흐트러져요. 1교시, 2교시... 이렇게 나뉘어 있지만, 전체 길이가 길어서 자꾸 딴짓하게 되네요. 내용의 깊이는 정말 좋지만, 학생들의 집중 시간을 고려해서 강의 길이를 조금 줄이거나, 챕터를 더 세분화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주말에 몰아 들으려고 했는데, 3강쯤 오니까 너무 지쳐서 일주일 내내 붙들고 있었습니다. 내용을 따라가기는 했지만, 몰입도가 좀 떨어져서 아쉬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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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가족이라는 굴레를 넘어서 |
윤*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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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문구에 이끌려 수강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평화로운 가족/국가의 모습 뒤에 숨겨진 억압적 메커니즘을 통찰력 있게 분석해주시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단순히 비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분자혁명'을 통해 다르고 낯선 미래를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적극적인 비전을 제시해준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직 문제로 부모님과 갈등을 겪고 있던 시점이라, 이 강의가 부모님의 욕망과 저의 욕망이 어떻게 충돌하는지 객관적으로 사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강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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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필수인 것 같아요. |
홍*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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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자체는 훌륭하지만, 배경지식이 없는 분들은 반드시 『안티 오이디푸스』 책을 옆에 두고 함께 들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책 없이 강의만 들으면 개념 정리가 잘 안됩니다. 교수님께서 워낙 방대한 내용을 빠르게 전달하시다 보니, 저는 책의 해당 부분을 찾아서 읽어가며 들었습니다. 다음에는 이 책에 대한 독서 모임 형식의 강의가 개설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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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강*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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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냥 요즘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나 싶어서 교양 삼아 들어봤는데, 너무 난해한 철학 용어들 때문에 당황했습니다. '욕망하는 생산', '기관 없는 신체'... 이런 말들이 무슨 뜻인지 검색하면서 듣느라 진도가 안 나가요. 중간중간 교수님 비유는 재미있었지만, 본론으로 들어가면 다시 캄캄한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저처럼 철학 입문자가 아니라, 이미 들뢰즈나 푸코 등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분들을 위한 강의 같습니다. 저만 이해를 못 하는 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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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강의! 제 삶의 방향을 바꿔준 것 같아요. |
주*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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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제가 진정으로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고 살았습니다. 이 강의를 듣고 제가 국가와 가족이라는 거대한 '기계'에 어떻게 길들여져 왔는지 깨닫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5강의 '타고난 성, 만들어진 성'에 대한 이야기는 저의 정체성과 깊은 관련이 있어 눈물을 흘리며 들었습니다. 강의 내용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분자혁명'처럼 다가왔습니다.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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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철학의 새로운 발견 |
서*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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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와 라캉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통해 들뢰즈와 가타리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한 강의가 매우 논리적이고 체계적이었습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감옥'에서 벗어나 '즐거운 분열'로 나아가자는 메시지가 힘이 되었습니다. 강사님의 해박한 지식과 명료한 전달력이 빛나는 강의였습니다. 수유너머의 다른 강의들도 찾아 들어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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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유 훈련에 좋은 강의 |
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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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사유의 깊이를 한 단계 높일 수 있었던 강의입니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주시는 교수님의 역량에 감탄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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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가타리 세계에 한 발짝 |
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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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그들의 사상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습니다. '분열분석'이라는 낯선 개념이 현실 세계와 연결되는 지점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강의를 듣는 동안 계속 멈춰 세우고 생각해야 했지만, 그 과정 자체가 사유의 힘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강의 내용 중 20세기 초의 정신분석학 이야기가 제 전공 분야(심리학)와 겹쳐서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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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농담은 좋은데... 본론은 너무 어려움 |
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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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말씀 중에 "아는 척하지 마세요"라는 농담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솔직히 강의 내용은 15% 정도 이해한 것 같습니다. 저도 아는 척 안 하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너무 어렵습니다! 강좌 소개에는 입문자도 들을 수 있을 것처럼 쓰여 있었는데, 거의 전공 심화 수준 같아요. 제 돈 주고 고통받는 기분이었습니다. 강의 중간에 제가 겪은 개인적인 오이디푸스적 상황과 연결해보려고 했는데, 결국은 그 이론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해서 연결이 잘 안 되더라고요. 아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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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성의 장, 평면화, 주체... 개념의 향연 |
황*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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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어떻게 모든 것을 '존재론적으로 평면화'시키는지에 대한 4강의 설명이 머릿속에 깊이 남습니다. 화폐라는 추상이 모든 사물을 내재성의 장으로 끌어들인다는 통찰은 정말 엄청났습니다. 이 강의를 통해 평소 막연하게 느꼈던 사회의 부조리함이 철학적 개념으로 명확하게 정리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넘어, 철학적 개념을 통해 현실을 분석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 강의, 정말 최고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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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대로 후기 - “전체에 저항하는 부분 (충동)대상” |
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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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체가 하나의 통일된 인격체이고 동일성을 지닌 존재라고 여긴다. ‘나는 나’다. 네가 아닌 이상. 그래서 이런 자기동일적인 ‘나’들은 그러므로 자기동일적인 ‘너’들과 무리없이 소통하며 지낸다. 하지만 랭보가 ‘나는 타자다’ 라고 말해버린 이래 우리는 내가 정말 나인가, 하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내 속엔 내가 너무 많고,, 이런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정상생활을 하려면 하나의 전체로서, 자기동일적-통일체로서 나(너)는 나(너)를 통제할 수 있으며 통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즉각적으로 안다. 그러면 그럴수록 뭔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내 안에서 자꾸만 꿈틀거린다는 것을. 소설책이든 머든 책한권을 읽으려면 너댓 시간은 그래도 앉아 있어야 까닭이 난다. 도서관에 책을 들고 간다. 그리고 커피를 마신다. 들어와서 잠깐 읽다가 다시 커피를 마시러 나간다. 한시간 전에 마신 카페인 소화도 안됐는데 말이다. 구순 충동이다. 라캉은 충동을 네가지, 구순충동, 항문충동, 시각충동, 청각 충동으로 구분했다(라캉의 재탄생, pp 417~423). 충동은 언제나 부분 충동인데 이것들은 파편화되어서 전체를 이루는 법이 없다. 이 부분 충동들은 그래서 언제나 ‘전체’에 저항한다.
니코틴에 대한 욕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우는 이유는 피우는 행위 자체가 입을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이 즐거움의 원천은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관자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충동은 욕망과 다른데 욕망이 항상 무엇인가의 결핍에서 오는 근원적인 불만인 반면에 충동은 대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관 자체의 즐거움, 만족을 스스로 얻을 수 있다.
신체의 부분들이 자아의 통제를 벗어나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유아기 때 인간은 자신을 전체로 인식하지 못하다가 거울 단계에 들어서야 자기를 전체로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전체, 통일체로서의 주체 관념은 성장하면서(상징계로 진입하면서) 자기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목적에 따라 움직이게 하고 통제한다. 하지만 이런 상징계에 통합되거나 통제되지 않는 무엇이 있다. 그것은 기괴한 것이며 낯선 것(the Real, 실재)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바로 이런 실재에 주목했다.
이 실재와의 만남이 우리의 실제 삶이라고 말한다. 상징적 질서(억압적인)에서 일탈 하는 것, 탈주 하는 것, 이것들과 어떻게 조우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있을지가 이들의 고민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는 자, 이런 형상을 슈레버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 분열증자로서 슈레버는 우리의 정상적 문법을 따르지 않았지만 그가 만든 세상은 또 다른 세상, 우리가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세상이고 그곳에서 다른 창조적 질서가 만들어진다고 본 것이다.
다음호를 기대해 주세요. 크하하!!!
수업은 어렵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1차원적 농담을 많이 해주셔서(이런거 좋아함 ㅠ) 따라는 가고 있는데 잘 가고 있는지 탈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강의 리뷰는 언제나 아찔하게, 다 말하지 않음(역량 부족의 알리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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