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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
연암이 들려주는 걸쭉한 사람이야기 |
공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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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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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힘, 정신의 힘 |
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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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전호근 선생님의 여섯 번째 강의를 들으며 든 생각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라니! 전호근 선생님은 강의록의 제목을 기막히게 붙여오셨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것은 현실세계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우뚝하려는 정신의 힘을 일컬으며, 그러한 정신의 힘을 믿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연암은 <하풍중로당기荷風竹露堂記>와 <불이당기不移堂記>, 두 글을 통하여 사대부가 마땅히 취해야 할 이상적 정신세계를 설파한다. 연암은 겉으로 드러난 형상을 베낄 뿐인 형사(形寫)와 사생(寫生)의 윗 단계에, 형상 속에 고요히 감춰진 정신적 가치에 주목하는 심사(心寫)와 사의(寫意)의 관점을 올려놓는다. 연암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 굳이 서양철학의 난해한 개념들을 끌어올 필요는 없으리라.
연암은 <하풍중로당기荷風竹露堂記>에서 대나무에 매달린 새벽 이슬을 보며, 수천 그루 연꽃이 보내오는 향기를 맡으며, 파초 소리에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그리고 야윈 매화를 바라보면서, 백성들을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는 사대부 엘리트의 도덕적 당위를 다짐한다. 또한 <불이당기不移堂記>에서는 왕에게 올린 입바른 상소때문에 죽을 위기에 처해서도 한 점 두려움 없이 태연했던 영목당 이양천(李亮天)을 '눈 속의 잣나무'로 비유하며 그 정신을 칭송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의 두 텍스트에는, 전호근 선생님과 그동안 함께 읽은 어느 연암의 글보다도 유교적 정신관이 뚜렷하게 펄떡이고 있었다.
연암과 당대 성리학 엘리트들이 추구했던 인문적 정신세계에 대하여 한두 마디로 평가하고 호불호를 논하려는 우를 범해선 안 되리라. 그러나, 역시 필자의 공부가 부족해서겠지만 '사대부의 고고한 정신세계'에 대한 강조는 솔직히 어느 정도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현실에 흔들리지 않는 선비들의 '불이(不移)'의 기상은 참으로 뛰어난 것이거늘, 연암 자신이 다른 여러 작품을 통해 비웃고 있듯, '몰락한 정신주의'보다 더욱 추잡한 것은 없지 않는가. 그리고 아마도 조선시대 전반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우리들의 뭉뚱그려진 시각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추위를 뚫고 피는 매화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름답지만, 우린 매화의 아름다움에 찬탄한 당대 사대부들에는 더 이상 쉽게 열광하지 못한다.
귀족(사대부)적 정신주의는 한 물 간지 오래지만, 인문학을 되살리려는 뭇사람들의 노력들은, 따지고 보면 '귀족'처럼 자기긍지를 갖고 '귀족'과 같은 높은 정신세계를 꽃피우려는 시도라는 생각을 간혹 하곤 한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폐쇄적인 엘리트주의를 옹호하고 싶은 게 아니고, 자기 자신을 '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지나치게 적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세상은 알고보면 결코 '평등'하지 않으며, 꼭 그럴 필요도 없다. 모두들 '평등'이라는 멋진 구호를 입에 바른 채 남을 질투하고 남 위에 올라서려고 버둥거리는 세상에서, 자신이 벗이 성균관장에 있자 자신의 장남 종의(宗儀)에게 편지를 보내 성균시(成均試) 시험을 치지 못하게 했던 연암 박지원의 조용한 실천이 가슴을 친다.
어쨌거나 이 여섯 번째 강의에 대한 리뷰는 혼란스러움의 고백이다. 신념이 우스워진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하나. '정신의 힘'이 냉소받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가슴뻐근히 예찬하고, 또 무엇을 목숨걸고 거부해야 할 것인가.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우리들 각자가 ‘나답게’ 살기란 왜 그리 어려운가. 연암의 바람과 같이 인간이 참되고 높은 정신세계를 지니기란 어찌 그리 어려운가. 리뷰를 쓰다보니 결국 한 10년 전쯤 소름끼치게 감탄했던 루소의 '사람은 모이면 모일수록 타락한다'는 말이 또 다시 머릿속에 갸웃거리는 걸 보면, 나도 그간 참 게으르게 공부했다는 자책감에 새삼 부끄러울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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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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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사람이 나의 벗 |
노*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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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통하는 벗을 사귄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많은 않다. 공통의 관심사 혹은 비슷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끼리 한번이라도 더 어울리게 되는 법이고, 그런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자주 볼 자리가 생기기까지를 고려해본다면 그러한 벗은 참된 인연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진정한 벗을 잘 사귀는 일이 당연하기보다는 덕목이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단순히 예쁘고 잘생긴 혹은 소위 잘 나가는 사람과 친한 사이로 거듭나고 싶어 하며 맹목적으로 따르는 왜곡된 친구 사귐이 주위에도 여러 있다. 이 중 대부분은 그 잘난 사람과 내가 ’아는 사이’라는 점에 의의를 두고 있어 안타까웠다. 그렇다면 진정한 벗 사귐이란 무엇일까.
연암의 북학의서는 위의 올바르지 못한 교우관계를 지닌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준다. 연암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붙잡고 물어보아야 한다고 한다. 이는 학문도 배운 사람에게 물어야 한다는 당시의 성리학적 학문관과 대비 되었다. 연암은 지식에는 위계가 없으며 나이, 배운 정도가 나보다 낮을 지라도 분명 배울 점이 있다고 단언한다. 순임금과 공자도 물어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알았고 그들이 성인이 된 것은 다른 사람에게 묻기를 좋아해서 잘 배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당시 조선에는 폐쇄적인 사고가 만연했기에 배움과 벗사귐에 대한 재해석은 습득되기 어려워 한계가 있었다.
진정한 벗 사귐에 대한 가르침은 회우록서에 수록된 홍대용의 이야기에도 나타나있다. 홍대용은 화이의 차별을 인정하는 동시에 마음을 열고 진심을 통해 중국 한 골목에서 선비 세 사람과 깊은 벗이 되었다. 조선의 여론이 청을 적으로 내두를 때 청은 올바르고 좋은 법도와 문물을 배우기에 좋은 상대라고 칭한 것도 그였다. 우리는 주변인의 말에 좌지우지되기가 쉽다. 한 사람에 대한 평판을 여기저기서 모아 제 멋대로 편집해 그 사람을 단정 짓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가 피하고 폄하하는 인물을 참되게 알아보려 한 적이 과연 몇 번이나 있을까. 혹은 ‘나도 저렇게 생각하는데’라고 속마음이 외치는 와중에 손가락질하는 다수의 뭉텅이에 은연중에 끼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보다 주도적으로 벗을 알아보고 사귐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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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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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의 능숙한 유려함과 진솔한 담백함, 거침없는 단단함을 닮고 싶다 |
m**_jeong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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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최고의 문장가로서의 연암의 진면목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연암의 글은 읽을수록 새로운 맛이 나고 생각해볼수록 새로운 의미가 나타난다. 연암의 능숙한 유려함과 진솔한 담백함, 거침없는 단단함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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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의 문장, 그 유려함과 자유로운 정신을 닮고 싶다 |
민*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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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의 글이 왜 5천 년래 최고의 문장으로 불리는지 알게 해준 강의입니다. 전호근 교수님의 해설을 따라 『연암집』의 원문을 읽으며, 당시 성리학 엘리트들의 위선과 가식을 넘나드는 연암의 자유로운 정신과 신랄한 풍자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하층민까지 친구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담아내는 그의 파격적인 실천이 놀라웠습니다. 연암의 능숙한 유려함과 진솔한 담백함, 그리고 거침없는 단단함을 닮고 싶다는 소망을 마음속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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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창신(法古創新), 지금 시대에 절실한 가르침 |
김*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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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옛날의 중국을 버리고 지금의 조선을 써라' 강의에서 배운 법고창신의 정신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절실한 가르침임을 깨달았습니다. 옛 것을 본받되 변통할 줄 알고, 새롭게 만들면서도 전아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글쓰기라는 연암의 조언이 명쾌했습니다. 손빈의 병법이나 관운장의 좌상에 대한 이야기처럼, 현재의 진실을 꿰뚫는 치열함을 가지고 옛것의 정신을 새롭게 빚어내야 한다는 연암의 가르침을 통해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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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록 오탈자 및 오류, 수강에 불편을 느꼈습니다 |
강*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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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내용은 연암의 사유를 깊이 있게 다루어 훌륭했지만, 2강 강의안 내용이 원 강의와 전혀 다른 내용으로 업로드되어 있었습니다. 다행히 관리자님이 확인 후 수정해 주셨지만, 유료 강좌에서 이런 강의록 오류가 발생한 것은 수강생에게 큰 불편을 주는 일입니다. 강의의 질만큼이나 자료의 정확성과 운영의 섬세함이 중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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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사귐의 진정한 의미, 세상 모든 사람이 나의 스승 |
노*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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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 '세상 모든 사람이 나의 벗' 강의는 진정한 벗 사귐과 배움의 태도에 대해 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연암이 길 가는 사람이라도 붙잡고 물어보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당시 성리학적 학문관과 대비되는 지식에는 위계가 없다는 자유로운 정신을 보여줍니다. 홍대용이 화이의 차별을 넘어 벗을 사귄 이야기처럼, 주도적으로 벗을 알아보고 사귐에 정성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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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유교적 정신의 재조명 |
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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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에서는 연암이 연꽃 바람, 댓잎 이슬(하풍죽로당기)과 눈 속의 잣나무(불이당기)를 통해 사대부 엘리트의 이상적 정신세계와 백성을 향한 도덕적 당위를 설파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현실세계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우뚝하려는 정신의 힘을 강조한 부분이었습니다. 몰락한 정신주의를 경계하며 자기 긍지를 갖고 높은 정신세계를 꽃피우려는 연암의 노력을 재조명할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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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의 글쓰기, 전쟁과 같은 치열함 |
이*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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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무릇 글이란 이런 거지' 강의에서 글쓰기를 전쟁에 비유하며 글자는 군사, 뜻은 장수라고 설명한 연암의 방식이 압권이었습니다. 글쓰기가 용모를 꾸미는 것과 같이 거짓이 아닌 진실을 담아야 하며, 백 번 싸워 이기는 글을 쓰기 위해 엄청난 공부가 뒷받침되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글은 뜻만 드러내면 그만"이라는 담백함 뒤에 숨겨진 연암의 치열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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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길고 지루한 강의, 속도를 높여야 할 듯 |
최*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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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내용의 깊이는 좋지만, 한 강당 러닝타임이 너무 길어(평균 100분 이상)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교수님의 차분한 강의 스타일은 좋았지만, 속도가 느린 편이라 2배속으로 들어야 했습니다. 녹취록 형식의 강의록도 도움이 되었지만, 긴 호흡의 강의가 주는 학습의 피로도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음에는 강의 시간을 압축해서 진행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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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끌리는 철학자는 맹자, 놀러 간다면 장자 |
노*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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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말미의 교수님 인터뷰 내용 중 "가장 끌리는 철학자는 맹자, 놀러 간다면 장자"라는 대답이 유쾌하고 명쾌해서 좋았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맹자의 열정과 좌절하지 않는 힘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공감하며, 동양 철학의 가장 큰 장점인 수양론(수신, 양생)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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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처를 보면 주인을 안다, 복을 누린 사람 |
박*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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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 '거처를 보면 주인을 안다'에서 하풍죽로당의 건축 정신과 판돈녕부사 이공의 삶을 다룬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연암이 '이 당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사계절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단순한 풍류가 아니라, 백성들을 사랑하고 아끼려는 사대부 엘리트의 도덕적 당위를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는 실천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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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연암의 조용한 실천에 가슴이 울컥 |
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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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평등'이라는 멋진 구호를 입에 바른 채 남을 질투하고 남 위에 올라서려고 버둥거리는 세상"에서 연암 박지원의 조용한 실천(장남에게 성균시 시험을 치지 못하게 한 일)이 가슴을 친다는 수강평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귀족적 정신주의가 한물간 시대라도, 자기 긍지를 갖고 높은 정신세계를 지향하려는 태도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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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이름을 새겨봤자, 차이와 다양성의 존중 |
유*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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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바위에 이름을 새겨봤자'에서 김홍연이라는 기이한 인물의 이름을 명산의 벼랑에 새기는 행적과 연암의 반응을 다룬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연암이 그를 '괴상한 인물'로 규정하길 거부하고, "뭇사람들은 각기 자기 만족에 사는 법이니 꼭 서로 배울 것은 없지"라고 긍정하며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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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함양 박씨전, 조선의 구습을 고발하다 |
이*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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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강 <열녀 함양 박씨전 병서>를 통해 조선의 구습에 평생을 고통받다 '죽어가는' 여인들의 아픔을 섬세하고 절절한 문체로 그려낸 연암의 글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연암이 단순히 풍자만 한 것이 아니라, 당대 사회의 비극적 현실에 대해 따뜻한 시선과 인간적인 연민을 가졌던 인문학자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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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난 아이와 코골이, 연암의 신랄한 풍자 |
노*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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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에서 글 못 쓰는 사람들을 이명난 아이나 코골이 하는 시골 사람에 비유하며 자기중심적인 헛된 망상을 신랄하게 풍자한 연암의 문장이 통쾌했습니다. '글은 뜻만 드러내면 그만'이라는 단순한 조언이 허위와 과장으로 포장된 당시 사대부들의 문장을 겨냥한 날카로운 비판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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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의 글을 교과서 외우듯 받아들이지 말라 |
홍*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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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께서 강의 내내 "연암 당대 조선의 맥락과 지금 우리의 맥락은 다르다"고 반복하신 말씀이 중요합니다. 연암의 문장을 교과서 외우듯 받아들이면 연암이 그토록 갑갑해 했던 '반쪽짜리 학문'이 될 것이라는 경고에 공감합니다. 연암처럼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되, 나의 시대와 현실을 꿰뚫어 보는 주체적인 글쓰기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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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환집서의 익살과 중간의 미학 |
곽*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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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8강 <낭환집서>에서 말똥구리의 말똥과 여룡의 구슬 비유를 통해 참된 식견은 언제나 옳고 그름, 이편과 저편의 '중간'에 있다는 중용의 미학을 보여준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예리한 익살 속에 깊은 통찰을 담아내는 연암의 글쓰기 능력이 부러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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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 이후 - 전호근의 『연암집 읽기』 여덟 번째 강의 |
나*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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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이 자신의 벗들에게 쓴 두 글 ‘낭환집서蜋丸集序’와 ‘선귤당기蟬橘堂記’을 읽는 것으로, 지난 1월부터 시작된 두 달간의 <연암집 읽기> 강좌가 모두 끝났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 연암 박지원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흔치 않을 것이다. 동시에 그 사람들 중 ‘연암집’ 원전을 앞에 두고 직접 해석하면서 음미해본 이도 많지 않으리라. 어쨌거나, ‘연암의 나날’은, 우리가 그를 붙잡고 그가 남긴 글을 읽는 한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첫 강의를 들은 후 “글이란 결국 시대와 삶의 '마음밭'이 기록된 하나의 궤적이라면, 앞으로 이 강의실에선 앞으로 연암의, 전호근의, 그리고 우리 학생들 각각의 궤적이 포개지고 뒤엉키리라”는 소감을 밝힌 지도 어느덧 두 달 전이다. 매주 마포의 인문숲에서 따끈한 (공짜) 원두커피를 마시며 연암 박지원, 전호근 선생님과 함께 2011년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큰 행운이고, 행복이었다. 다른 수강생 분들도 그러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마지막 텍스트 <예리한 익살이 빛나는 연암의 나날>은 연암이 자신의 가까운 벗인 유득공, 이덕무와 나눈 소박한 글들이었다. 박지원은 유득공의 숙부인 유연(柳璉)이 묶은 낭환집(蜋丸集)에 부친 서문에서 “말똥구리는 자신의 말똥을 아끼고 여룡(여의주)의 구슬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여룡 또한 자신에게 구슬이 있다 하여 말똥구리를 비웃지 않는다”고 말한다. 참된 식견은 언제나 옳고 그름, 이편과 저편의 ‘중간’에 있다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연암은 ‘선귤당기蟬橘堂記’에서 이덕무의 호 ‘선귤당’에 대해 “이름은 너의 몸에 속한 것이 아니라 남의 입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름’의 덧없음에 대해 천연덕스레 수다를 떨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상기하자면, 이 강의의 제목은 “5천년래 최고의 문장을 읽는다”였다. 퇴계와 율곡, 다산을 비롯한 기라성 같은 이들 가운데서도 5천년 최고의 문장가라니! 참으로 스케일이 큰 제목이었다. 한문 문장과 고전들에 거의 무지하다시피 한 필자가 연암의 글이 5천년래 최고인지 아닌지 판단할 재량은 없다. 다만 필자는 연암 박지원의 글을 읽고 ‘연암처럼 되고 싶다’는 소망 하나만은 마음속에 잘 새기게 됐다. 통 크고 대범하게 세계를 바라보고, 자유분방하게 사고하면서도, 엄청난 공부가 뒷받침된 뛰어난 문장을 쓰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물론, 전 선생님이 <연암집 읽기> 강의를 통틀어 줄곧 반복하신 말씀은 “연암 당대 조선의 맥락과 지금 우리의 맥락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읽은 연암의 문장을 교과서 외우듯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면, 아마 연암이 그토록 갑갑해 했던 ‘반쪽짜리 학문’이 될 게 분명하지 않을까 싶다. 연암은 그런 후세 사람들을 보며 수염을 곤두세우고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이리저리 훑어본 기록에 따르면, 연암은 자신과 절친했던 후배가 술에 취하여 예(禮)를 어기자, 그 자리에서 그를 두들겨 팬 적도 있다고 한다.
연암의 문장 베스트 3를 꼽아보면서 강의 리뷰를 마친다. 5천년래 최고의 문장인지는 확신할 수 없으되, 가히 ‘최고라고 일컬어질 만한 문장’이란 어떤 것인지 전호근 선생님의 해석을 통해 슬쩍 맛보길 바란다. (무릇 연암은 자신의 눈으로 자신이 사는 시대와 현실을 가장 생생히 묘파해내는 글을 최고로 쳤다고 배웠다. 이 세 개의 문장 역시 나의 기준에서, 내 가슴을 뭉클하게 감동시켰던 기준으로 선정한 것일 뿐이다.)
3위: “아! 자기 홀로 아는 경우는 늘 남이 몰라줄까 걱정하고, 자기만 깨닫지 못하는 경우는 다른 사람이 먼저 깨우쳐주는 것을 싫어하니, 어찌 귀가 울고 코를 고는 경우에만 이런 병이 있겠는가” (嗟乎라 己所獨知者 常患人之不知하고 己所未悟者 惡人先覺하나니 豈獨鼻耳有是病哉아) : ‘공작관문고서孔雀舘文稿序’ 中
연암, ‘글 못쓰는 사람들’을 꾸짖다. 나를 가장 뜨끔하게 했던 문장.
2위: “그렇다면 지금은 옛날과 상대되는 말이고, 비슷하다는 것은 저것과 비슷하다는 말이니,무릇 비슷하다는 것은 그저 비슷한 것일 뿐이고, 저것은 그대로 저것일 뿐이다. 저것과 비슷하게 하는 것은 저것이 아니니 나는 아직 비슷한 것이 저것이 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然則今者는 對古之謂也요 似者는 方彼之辭也니 夫云似也는 似也요 彼則彼也라 方則非彼也니 吾未見其爲彼也라) : ‘영처고서嬰處稿序’ 中
연암, 중국‘빠’들에게 한 방 날리다. 나를 가장 통쾌하게 했던 문장.
1위: “까마귀는 온갖 새가 다 검은 줄 알고, 백로는 다른 새가 희지 않은 것을 의아해하는구나. 흰 새와 검은 새가 각기 옳다고 우기면 하늘도 그 송사에 싫증내겠구나. 사람은 모두 두 눈이 갖춰져 있지만 한 눈을 감아도 잘 보인다. 어찌 꼭 두 눈이라야 밝게 본다 하겠는가. (…) 뭇사람들은 각기 자기만족에 사는 법이니, 꼭 서로 배울 것은 없지. 그는 이미 뭇사람과 다른 길을 갔는데, 이 때문에 서로 의아하게 여긴 거지.” (烏信百鳥黑하고 鷺訝他不白이라 白黑各自是면 天應厭訟獄이리라 人皆兩目俱나 矉一目亦覩니 何必雙後明이리오 (…) 衆生各自得하니 不必强相學이라 大深旣異衆하니 以玆相訝惑이라) : ‘발승암기髮僧菴記’ 中
연암, 젊은 시절 호방했지만 후에 외롭게 늙은 승려를 위로하다. 나를 가장 애잔하게 했던 문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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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전호근이라는 메타포에 대하여 |
이*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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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이라는 메타포에 대하여 — 전호근의 『연암집 읽기』 일곱 번째 강의
1 나는 ‘그’를 모른다
모든 사람은 서로에 대한 ‘상징’이다. 우리는 삶이라는 길목에서 숱한 인연들과 마주치고 이런저런 관계를 맺은 채 살아가지만, 기실 모든 타인은 나에게 던져진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예컨대 내가 아무개를 좋아한다고 치자, 나는 아무개가 던져주는 따뜻한 미소와 정다운 표정을 좋아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영원히 그 ‘아무개’를 좋아할 수는 없다. 아무개의 따스한 미소와 정다운 표정이 아무개는 아니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의 거리는 생각보다 훨씬 멀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더라도 여기에 예외는 있을 수 없다. ‘타인’이라는 온전한 ‘존재’를 내가 손에 잡으려는 순간, 타인은 그 손길에서 미끄러진 채 여전히(그리고 언제까지나) 저 멀리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실존적으로 고독하다, 그러므로 내가 좋아하는 건, 아무개가 아니라, 끝내 ‘아무개의 따스한 미소를 좋아하는 나 자신’일 수밖에 없으리라. 이것은 타인에 대한 배타적인 인식이 아니다. ‘나’와 ‘남’은 서로 떨어져있어 아름다우며, 칼릴 지브란의 말대로 “사원의 기둥들은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서 자랄 수 없다.”
2 ‘그’는 강의를 잘한다
연암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게다. 전호근의 연암집 읽기 7강 <연암이 들려주는 결 고운 사람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우리는 ‘나’와 ‘타인’간의 엄정한(혹은 냉정한) 거리를 깨닫게 된다. 우리 후세 사람들은 연암이 남긴 글을 읽으며, 그가 ‘결 곱게’ 그려내는 타인이란 결국 연암 자신의 ‘결 고운 마음’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강의시간에는 연암의 <열녀 함양박씨전서烈女咸陽朴氏傳 幷序>와 <함양군학사루기咸陽郡學士樓記>을 읽었다. 특히 유명한 앞의 글에서, 연암은 조선의 구습(舊習)에 평생을 고통받다 ‘죽어가는’ 여인들을 바라보며, 더없이 섬세하고 절절한 문체로 그녀들의 아픔을 뿐이다. 말하자면, 연암은 '혁명가'는 아니었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서 이제 두 달간 아트앤스터디에서 <연암집>을 강의한 전호근 선생님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고백컨대, 필자는 강의를 잘하는 분을 좋아한다. (이 말은 강의를 못하는 강사님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도 된다. 물론 속으로만.) 다른 말을 덧붙일 필요도 없이, 전호근 선생님은 강의를 ‘잘한다.’ 동양고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잠시 짬을 내어 아트앤스터디에 들어와 <연암집 읽기> 1강을 감상하기 바란다. 유유한 강(江)처럼 흐르면서도 (많은 강사분들이 은근슬쩍 드러내는) 쓸모없는 포즈와 과잉과 자찬은 쏙 뺀 ‘진짜’ 강의가 바로 거기 펼쳐질 것이다.
3 나는 ‘그’를 배운다
오글오글한 말인가? 어쨌든 강의도 모두 끝난 지금, 내가 전호근 선생님에게 ‘아부’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나는 다만 전호근이라는 학자, 전호근이라는 선학(先學)이 두 달간 보여준 여러 ‘상징’들에 감탄하고 있단 말을 하는 것이다. 또 그가 보여준 ‘상징’들을 내가 척 알아보고, 그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안달하고 있단 점에 대해선 나 자신에게 자랑스럽다. 그 분이 보여준 대나무 같은 눈빛, 맑고 담담한 인상, 몇 번을 읽었는지도 모를 만큼 거의 외울 정도로 술술술 읽히던 연암의 텍스트, 간간이 인용하던 서양철학, 쑥쓰러운 듯 던지던 농담과, 수강생들이 안 웃어도 전연 신경 쓰지 않는 듯하던 그 ‘쿨함’, 내공에서 우러나오는 겸손한 한 마디 한 마디…. 이런 것들이, 순간적으로 휘발하는 그 작은 장면들이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도 또 뭐가 아쉽다고 바쁜 전 선생님께 부탁해 몇 가지를 기어코 더 여쭤보았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필자보다 먼저 전 선생님을 만났던 서울경제신문 인터뷰 기사(http://j.mp/dYMsNL)를 보고 나서 뒤의 질문과 답변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 다음은 전호근 선생님과의 e-mail 인터뷰 전문.
Q. 문자학과 문헌학은 '기피학문'에 속하고, 한 마디로 지루하고 힘든 작업에 가깝다고 쓰신 적이 있으십니다. 물론 그만큼 중요한 학문이라고 강조하셨구요. 그러한 문자학과 문헌학, 번역의 길로 뛰어든 특정한 계기가 있으신지요?
A. 지루하고 힘들다고 했지만 그건 처음 시작할 때 이야기고 조금 맛을 들이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아닌가?) 일본의 문자학 대가라 할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 같은 학자들의 저술은 대체로 방대한 것들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문자소요(文字逍遙)》 같은 자그마한 책도 있습니다. ‘소요’라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산책하듯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문자이야기입니다. 언젠가 저도 그런 책을 한번 써보고 싶습니다.
Q. 작업이 지루하고 힘드실 때 어떻게 버텨내시나요? 말하자면, 쉴 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무엇인지요?
A. 가장 힘들 때는 어려운 구절을 번역할 때입니다. 한두 구절 때문에 하루가 다 가는 수가 있거든요. 그럴 때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갑니다. 물론 귀에 이어폰을 꽂고요. 기왕이면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찬찬(Chan Chan)’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요... 가끔씩 재즈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스트레스 해소에 그만이거든요.
Q. 연암이 쓴 시와 <열녀함양박씨전 병서> 등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시거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는 말씀을 간혹 하셨는데요. 성격이 조금은 감성적인 편에 가까우신지요? 자주 눈물을 흘리는 편이신지요...? (^^)
A. 별로 감성적인 인간은 아닌 것 같아요. 눈물도 흘리는 일이 거의 없고요. 그런데 저는 우스운 구절을 보고 웃지 못하면 정말 웃어야 하고, 울어야 할 구절을 읽고 울지 못하면 정말 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그런 구절이 나오면 ‘어찌됐든 웃고’, ‘무조건 울게’ 되는 거죠.
Q. 선생님이 공저하신 <번역된 철학 착종된 근대>에서 '(우리 사회에선) 전근대와 근대가 섞인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둔갑하는 듯한 느낌'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굳이 '고전 번역'이라는 맥락을 떠나서도 해당되는 말씀일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의 현상이나 맥락 속에서도 저러한 느낌을 받으시는 경우가 있으신지요?
A. 그게 중세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서구사회가 그네들의 근대를 비판하는 이야기를 끌어다가 우리에게 남아 있는 전근대적 요소가 그들의 근대보다 낫다는 증좌로 제시하는 경우를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지요. 비판해야 할 근대를 제대로 향유하지도 못한 처지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이야기한다면 그건 포스트가 아니라 전근대라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Q. 강의 중 간혹 미셸 푸코나 롤랑 바르트를 비롯한 서양철학자들을 언급하기도 하셨죠. 아트앤스터디에서도 서양철학이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서양현대철학의 인기에 대해선 다양한 시각과 해석들이 존재하는데, 전호근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아트앤스터디와 같은 공간에서는 서양철학 중에서도 프랑스 철학이 인기죠. 그건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를 상당히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례로 저도 우리 사회의 죽음에 대한 문제를 고민할 때는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나 들뢰즈를 뒤적이거든요.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의 텍스트를 보는 것만으로 현대 한국인의 삶을 이해하거나 설명하기가 어렵거든요.
Q. 연암을 비롯한 동양철학의 가치에 대해서도 여전히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양철학의 가장 큰 약점 한 가지와, 가장 큰 강점 한 가지를 간단히 들려주세요.
A. 저는 근본적으로 철학에 동서의 구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편의상 그런 식으로 나누어 말한다면 동양철학의 가장 큰 장점은 수양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가는 수신(修身), 도가는 양생(養生)이라고 하지요. 자신의 삶은 보다 높은 곳으로 이끌려는 부단한 노력이 동양철학 전반에 면면히 흐르고 있지요. 반면 수사학이나 논리학이 약한데 그게 약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물론 이번에는 <연암집> 강의를 하셨지만,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 그리고 다산 등 다양한 동양사상가들에 대해 강의를 하고 계시지요. 개인적으로 이들 중 가장 '끌리는' 학자는 누구인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A. 가장 끌리는 철학자는 맹자입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열정 때문이지요. 상황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맹자를 떠올리면 좌절하지 않게 됩니다.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한다면 맹자를 따라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놀러 간다면 장자를 따라 갈 겁니다. 하하..
Q. 지난 수업 뒷풀이에서 '올해부터는 마음먹고 책을 내보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하셨습니다. (^^) 마지막으로 수강생들과 '잠재적 수강생'들에게 앞으로의 학문적 계획을 들려주세요.
A. <장자 강의>의 초고가 집필된 상태입니다. 한 두 달 사이에 마무리 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맹자 강의>, <주역 강의>, <주역 강의> 등의 초고가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오랜 학문적 동지인 김시천선생과 함께하는 <맹자 대담>도 준비 중입니다. 근데 이게 과연 다 나올지 모르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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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바람, 댓잎 이슬 |
이*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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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의 Elite!?
엘리트(Elite)에 대한 정의는 접근 관점에 따라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최상의 교육과정을 밟은 후 최고의 사회적 지위를 차지한 사람을 일컬을 수도 있고, 매순간 안주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 최고의 과정과 결과를 추구하는 사람을 의미할 수도 있다. 과연 조선시대의 엘리트는 어떠했을까? 연암의 글 두 편을 통해 당대 이상적인 엘리트상을 살펴보자.
2. 연꽃 바람, 댓잎 이슬 (하풍죽로당기 荷風竹露堂記)
쟁쟁한 벌열 가문에서 태어난 천재 연암은 오랜 세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소위 백수로 지냈다고 한다. 연암이 사절단 정사인 사촌형을 따라 중국에 가서, 남들이 바쁘게 공적 업무를 처리하는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책이 <열하일기>이다. 백수라는 여유로움(?) 덕에 그의 내공이 오롯이 글에 집약될 수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연암이 오랜 무직 생활을 청산하고 벼슬길에 나간 것은 그의 나이 50세 때이고, 55세에는 안의 현감으로 승진하였다. 그가 현감으로 있을 적에 청나라에서 보고 온 건축들을 본따서 안의현에 많은 건축들을 지었는데, 그 중 하나가 '하풍죽로당'이다.
우리 전통건축의 명칭을 가만히 살펴보면 참 서정적이고 시적인 이름이 많다. '하풍죽로(荷風竹露)'라는 이름 또한 그러한데, 한자를 풀어보면 바람이 불면 연꽃향이 불어오고 댓잎에 이슬이 맺힌다는 의미이다.
'동산을 지나면 만 개의 대나무에 구슬이 주렁주렁 매달리는 것은 맑은 이슬 내린 새벽이고, 난간에 기대면 수천 그루의 연꽃이 향기를 보내오는 것은 맑은 바람이 부는 아침이고, 가슴이 답답하며 생각이 어지럽고 탕건이 늘어지고 눈꺼풀이 무거워지다가 후두둑하는 파초 소리를 듣고 정신과 생각이 갑자기 맑아지는 것은 시원한 소나기가 내리는 한낮이고, 아름다운 손님과 함께 누대에 오르면 옥 같은 나무들이 깨끗함을 다투는 것은 비개인 뒤 밝은 달이 떠오른 날 저녁이고, 주인이 휘장을 드리우고 매화와 함께 야위어 가는 것은 눈이 살짝 내린 한밤 중이다.'
연암은 '이 당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사계절을 감상할' 수 있다고 했지만, 오히려 그의 글을 통해서 직접적인 감각보다 더 진하고 깊은 이미지가 다가온다. 그런데 연암은 자연에 취해 한껏 풍류를 즐기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또 대에 따라 사물에 붙여서 각기 하루 동안의 구경거리를 드러내게 한 것이지만 저 백성들과 함께함이 없다면 이것이 어찌 태수가 이 당을 지은 본뜻이겠는가. / 아! 훗날 이 당에 머무는 이가 연꽃이 아침에 피어 향기가 멀리 퍼지는 것을 보거든 마치 바람처럼 따사로운 은혜를 베풀고, 대나무가 새벽에 이슬에 무젖어 골고루 적셔진 것을 보거든 새벽이슬처럼 백성들을 널리 사랑해야 할 것이니, 이것이 내가 이 당의 이름을 하풍죽로당이라 하여 훗날 올 사람을 기다리는 까닭이다.'
연암이 굳이 버려진 창고를 고쳐 다시 짓고 그 이름을 '하풍죽로'라 한 것은,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백성을 향한 마음을 항상 그 스스로 각인시키고 또한 뒤이어 올 후임에게도 상기시키기 위해서였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서있는 엘리트들은 그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안팎의 많은 도전을 거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는 일은 물론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 지위에 걸맞는 진정한 역할을 깨닫고 다른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시키는 자세일테다. 학벌, 직업 이런 것들은 다만 표면적인 요소일 뿐, 진정한 '엘리트'의 필요충분조건은 자기의 뛰어난 능력을 개인 또는 그 주변 좁은 범위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쏟아붓는 치열한 희생의 자세일 것이다.
3. 눈 속의 잣나무 (불이당기 不移堂記)
사함이라는 친구가 스스로 '죽원옹'(대나무처럼 굳은 절개를 지닌 사람)이라 호를 붙이고, 자기의 집에 '불이'(청렴결백한 마음을 움직이지 않겠다)라는 편액을 걸어놓았다. 그런 후에 연암에게 이에 대한 글을 지어달라 했는데, 연암은 '이 집에서 한 그루의 대나무도 보지 못했다. 이름이란 '실질'의 손님(객체, 즉 빈껍데기)인데 나더러 손님이 되란 말인가?'하며 짖궂게 딴죽을 건다. 곧 웃으면서 그를 위해 실질을 채워주겠다며 자기의 처숙이자 스승인 이양천과 문인화가 이인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날 이양천이 이인상에게 '제갈공명 사당의 잣나무'*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이인상은 그림이 아닌 설부(雪賦)를 써서 잣나무라고 내놓는다. 잣나무가 어디 있냐는 이양천의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잣나무는 그 안에 있다네. 바람과 서리가 매섭게 몰아치면 변하지 않을 수 있는 게 있겠는가. 그대가 잣나무를 보고 싶다면 눈 속에서 찾아보시게.' 이인상은 무성한 잎과 튼튼한 가지를 그럴듯 하게 그렸다고 해서 '제갈공명 사당의 잣나무'가 함유한 진정한 정신과 뜻을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평소에 절개니 청렴이니 말만 하며 좇는 것은 쉬울지 모르나, 추운 겨울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는 잣나무처럼 혹독한 상황에 처했을 때 변치 않는 꿋꿋함이야말로 진정한 '제갈공명 사당의 잣나무'라는 것을 말하려 했던 것이다.
그 뜻을 모방하며 겉으로만 좇는 대신에 삶을 통해 진정으로 구현해낸 사람은 이양천 그 자신이었다. 이양천이 언사로 죄를 얻어 유배를 떠났을 때, 힘들고 고된 와중에도 남을 원망하거나 스스로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고 임금에 대한 충정을 저버리지 않았다. 형제가 유력자에게 부탁하여 자신을 풀어주려 한다는 소식을 듣자, '바다 한 가운데에서 썩어 죽는다 한들 그런 일은 하지 않겠다'고 딱 잘라 이야기한다. 조금만 줄이 닿아도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는 근래의 경우를 댈 것도 없이, 말처럼 쉽지 않은 꿋꿋한 절개와 기상이다.
사함을 위해 실질을 채워주겠다던 연암은 끝에 가서 일침을 놓는다. '지금 우리 사함은 성품이 대나무를 사랑한다. 아, 사함은 참으로 대나무를 아는 사람인가? 날씨가 추워진 뒤에 내가 또 그대의 마루에 오르고 그대의 정원을 돌아다니면 눈 속에서 대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인가?' '대나무 같은 절개'를 표방한 그의 집에 실제로 대나무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이인상이 잣나무가 없는 설부를 통해 잣나무의 뜻을 드러냈듯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흔들리지 않는 기상을 보일 때 사함은 그 스스로 실질의 대나무가 될 수 있을 것이다(연암의 사람을 들었다 놓는 말솜씨에 사함은 얼마나 가슴이 덜커덩했을까).
매일 같이 닥쳐오는 일상에서 초심과 의지를 잃지 않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야 오죽할까. 그럼에도 흐트러짐 없는 곧은 절개와 기개를 유지하는 일이 선비, 즉 조선의 엘리트가 추구하던 것이었다.
*제갈공명의 잣나무: 두보의 시에서 인용
촉나라의 승상 - 두보
제갈승상의 사당을 어디서 찾을까 하니 금관성 밖 잣나무 우거진 곳이네 섬돌 위의 푸른 풀은 봄빛 받아 빛나고 잎새 사이의 꾀꼬리 노래는 아름답게 울리네 삼고초려로 이룬 천하삼분의 계책 두 임금을 섬기며 지킨 노신의 일편단심 출사의 뜻 못 이루고 몸이 먼저 떠나가니, 후세의 영걸들의 옷깃을 눈물로 적시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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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벗 사귐이란 무엇일까 |
김*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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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강 : 세상 모든 사람이 나의 벗
마음이 통하는 벗을 사귄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많은 않다. 공통의 관심사 혹은 비슷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끼리 한번이라도 더 어울리게 되는 법이고, 그런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자주 볼 자리가 생기기까지를 고려해본다면 그러한 벗은 참된 인연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진정한 벗을 잘 사귀는 일이 당연하기보다는 덕목이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단순히 예쁘고 잘생긴 혹은 소위 잘 나가는 사람과 친한 사이로 거듭나고 싶어 하며 맹목적으로 따르는 왜곡된 친구 사귐이 주위에도 여러 있다. 이 중 대부분은 그 잘난 사람과 내가 ’아는 사이’라는 점에 의의를 두고 있어 안타까웠다. 그렇다면 진정한 벗 사귐이란 무엇일까.
연암의 북학의서는 위의 올바르지 못한 교우관계를 지닌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준다. 연암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붙잡고 물어보아야 한다고 한다. 이는 학문도 배운 사람에게 물어야 한다는 당시의 성리학적 학문관과 대비 되었다. 연암은 지식에는 위계가 없으며 나이, 배운 정도가 나보다 낮을 지라도 분명 배울 점이 있다고 단언한다. 순임금과 공자도 물어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알았고 그들이 성인이 된 것은 다른 사람에게 묻기를 좋아해서 잘 배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당시 조선에는 폐쇄적인 사고가 만연했기에 배움과 벗사귐에 대한 재해석은 습득되기 어려워 한계가 있었다.
진정한 벗 사귐에 대한 가르침은 회우록서에 수록된 홍대용의 이야기에도 나타나있다. 홍대용은 화이의 차별을 인정하는 동시에 마음을 열고 진심을 통해 중국 한 골목에서 선비 세 사람과 깊은 벗이 되었다. 조선의 여론이 청을 적으로 내두를 때 청은 올바르고 좋은 법도와 문물을 배우기에 좋은 상대라고 칭한 것도 그였다. 우리는 주변인의 말에 좌지우지되기가 쉽다. 한 사람에 대한 평판을 여기저기서 모아 제 멋대로 편집해 그 사람을 단정 짓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가 피하고 폄하하는 인물을 참되게 알아보려 한 적이 과연 몇 번이나 있을까. 혹은 ‘나도 저렇게 생각하는데’라고 속마음이 외치는 와중에 손가락질하는 다수의 뭉텅이에 은연중에 끼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보다 주도적으로 벗을 알아보고 사귐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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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과 적 |
곽*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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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과 적 — 전호근의 『연암집 읽기』 다섯 번째 강의
벗
불교의 초기 경전에 속하는 <선지식경善知識經>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느날 법회가 끝난 후 아난 존자가 부처님에게 다가가 여쭈었다 '좋은 친구들과 사귀며 함께 공부한다면 이미 도의 절반을 달성한 것과 같지 않습니까.' 이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지 말라. 좋은 벗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은 도의 전부를 이룬 것과 같다.'
아트앤스터디 인문숲 강의실에서 ‘벗’에 대한 연암의 두 텍스트를 읽었다. 하나는 박제가(朴齊家)의 <북학의北學議>에 서문으로 부친 <북학의서北學議序>였고, 다른 하나는 홍대용(洪大容)의 <간정동회우록乾淨衕會友錄>의 서문으로 쓴 <회우록서會友錄序>였다. 연암 박지원과 초정 박제가, 그리고 담헌 홍대용까지, 셋 다 이름만으로도 국사책 몇 페이지를 거뜬히 장식한 걸출한 북학파 선구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교유한 따끈한 흔적들. 어느 시인의 말대로, “진정 높은 것들은 높은 것들 속에서, 진정 깊은 것들은 깊은 것들 속에서 나오게 마련”인가.
우 정
대체로 연암은 홍대용에게 부친 <간정동회우록>의 서문에서 홍대용이 몸소 겪었던 이상적인 우정의 상을 묘사하고, 박제가의 글에 부친 <북학의서>에서는 그러한 우정을 고사(枯死)시키는 조선의 정신적 궁벽함 · 폐쇄성을 묘사한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앞의 글은 활달한 편이며 뒤의 글은 무겁게 느껴진다. 연암의 제자이자 학문적 벗이었던 초정이 1778년 연암보다 먼저 청에 다녀와서 남긴 책이 바로 <북학의>다. 연암은 그 서문을 “학문하는 방도는 다른 것이 없다.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붙잡고 물어보아야 한다”(學問之道 無他, 有不識 執塗之人而問之可也)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 길가는 사람은커녕 가까운 ‘벗’들끼리도 서로 배우고 묻지 않는 당대의 분위기를 비판하고 있다.
고로, 우정이든 사랑이든, 사람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기심’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세계와 서로가 처한 환경, 더 나아간다면 서로의 실존적 위치까지를 끊임없이 궁금해하며 알고자 하는 의지야말로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밑바탕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렇듯 활짝 열린 호기심으로 유지되는 관계에 우리는 ‘참된 벗’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지 않을까. 연암은 담헌 홍대용이 중국 항주의 벗들을 사귀었던 장면을 묘사하면서 부쩍 신이 나 보인다. '…마침내는 결의하여 형제가 되었으니 서로 흠모하고 기뻐하기를 마치 욕심 부리는 듯하고 서로 등지는 일이 없기를 마치 저주하고 맹세하는 것 같아서 그 의리가 사람들을 감읍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終結爲兄弟, 其相慕悅也如嗜欲, 其相無負也若詛盟, 其義有足以感泣人者)
적
지금껏 읽은 <연암집>에서 연암이 서문을 써준 벗들의 면면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연암의 곁에는 수많은 벗들이 있어 그와 돈독한 우정을 나눴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제아무리 연암인들 어찌 ‘세상 모든 사람이 나의 벗’이라고 장담할 수 있었겠는가. 전호근 선생님은 과연 연암의 시 한 편을 불쑥 소개해주었다. “저물녘 용수산에 올라 그대를 찾았으나 오지 않았더군요.”(暮登龍首山, 候足下不至)로 시작하는 그 시엔, 젊은 시절 연암이 절친한 벗 유한준과 나누던 절절한 감성이 묻어있다. 허나 유한준과 연암은 차차 글쓰기에 관한 견해를 달리해 사이가 벌어지고, 마침내 유한준은 연암의 <열하일기>를 “오랑캐의 연호를 쓴 책”이라고 비방하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알아듣는 사람에게만 들린다. 아름다움을 모르는 벗과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고, 탁월함에 이르지 못하는 벗과 탁월함을 논할 수 없다. '당대 아웃사이더의 지적 회합'과도 같았던 연암학파의 우정은, 한편으로 우리에게 <참된 우정은 냉엄한 것>이라는 진실을 일깨워주는 것도 같다. '적을 만들 줄 모르는 사람은 친구도 만들 수 없다'고 어느 심리학자가 그랬던가. 온갖 견해와 풍문들로 질척이는 세계 속에서, 연암이 그러했듯 자신이 추구하는 진리를 차갑게 인식하고 그에 매진하며, 결코 비판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다. 그러면 가장 순수한 도반들을 구할 수 있을 지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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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하면 떠오르는 말, 법고창신 |
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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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암하면 떠오르는 말, 법고창신
현재는 과거와의 연속선 상에 놓여 있으므로 과거와 아무런 관련 없는 현재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항시 흐르는 것이기에 과거와 완전히 같은 현재도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거가 축적되어 쌓인 현재라는 지면에 발 디딛고 서 있는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서 미래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이 물음의 대답으로 연암이 내놓은 것이 바로 '법고창신'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법고창신의 사전적 의미는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이다. 과거를 본받되 과거를 반복 또는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이에 대한 연암의 친절하지 않은 척 친절한 (온갖 비유와 고사를 넘나들면서도 차근차근한) 설명을 따라가보자.
2. 옛날은 오래 전의 '지금', <영처고서>
고전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옥석이 가려져 남았기에 그 안에 시대를 아우르는 가르침과 감동이 보장되어 있다. 세월이라는 엄정한 심판에도 살아남은 고전에, 어찌 감히 지금 쏟아지는 수많은 작품들 중 아무것이나 갖다 견줘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고전의 진가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그 권위에만 압도되어 과거를 무조건 떠받들고 좇으려 한다. 덮어놓고 과거를 칭송하는 자들을 보고 연암을 혀를 쯧쯧 찬다.
'옛날을 기준으로 지금을 본다면 지금이 참으로 비속하기는 하지만 옛사람도 자기 시대를 스스로 옛날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시를 보던 때도 또한 하나의 지금일 뿐이다.'
현재 고전을 바라보면 고전은 당연히 과거에 속한 것이지만, 고전이 만들어지던 당시에 고전은 스스로의 현실에 충실했다. 고전은 당대의 이야기를 하지만 현상의 표면만 얼키설키 담아낸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변치 않는 진정성까지 꿰뚫어냈기에 오늘날까지 인정받아 온 것이다. 그럼에도 당장의 휘황찬란한 권위에만 고개를 조아리는 사람들은 고전에 담긴 정신성을 읽어내기 보다 그 겉만 훑고 표면만 따라하는 데 급급하다.
현재를 읽어내고 꿰뚫으려는 치열한 노력 없이 단지 과거만 그럴 듯하게 흉내낸다면 그것은 '명품'에서 한참 벗어난 '짝퉁'밖에 되지 않는다. 똑같이 가짜에 익숙한 사람들의 눈에는 모조품이 진품처럼 보일지 몰라도 진실을 볼 줄 아는 사람의 눈에는 영락없이 가짜일 뿐이다. 허위에 물든 어른들이 관운장의 우락부락한 초상을 보면 앓던 병도 나을 정도로 겁에 질리지만, 진실한 아이의 눈에는 '눈동자를 긁어도 눈을 깜박이지 않고 코를 건드려도 재채기를 하지 않는' 그저 그림일 뿐이다. 스스로 명품이 되고 싶으면 눈에 쉬이 보이는 고전의 윤곽만 따르려 하지 말고, 현재의 진실을 꿰뚫어 보려는 치열함이 있어야 한다. 고전 또한 오래 전의 '현재'를 이야기함으로써 시대를 초월하지 않았나.
3. 옛 것을 바탕으로 빚어낸 새로운 것, <초정집서>
과거에도 사람들은 그 당시의 '지금'을 잘 살기 위해서 치열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 치열함의 흔적이 역사이며 그 산물로 전통이라는 이름의 문화와 사상, 그리고 고전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그들이 치열하게 살아내었던 시공간이 지금도 '현재'라는 이름으로 주어져 있다. 현재를 잘 살아내기 위해서 과거를 돌아보아 조언을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재가 엄연히 과거와 다를진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한다면 오히려 현재를 제대로 살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 현재가 투자라면 돈을 잃을 것이고 전쟁이라면 패배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두 발 딛고 서있는 지금 이 순간을 명확히 이해하여 과거의 가르침을 현재에 맞게 변용하여 빚어낼 줄 알아야 한다.
'옛것을 본받는 자들은 옛 자취에 빠지는 것이 병통이고 새롭게 만드는 자들은 법도에 어긋나는 것이 걱정이다. 만약 참으로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새롭게 만들면서도 전아할 수 있다면 요즘의 글이 옛글과 같은 것이다.'
법고창신의 원리가 고정된 유형(有形)의 것이 아니므로 일대일로 대응되는 공식을 통해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 공식이 있다면, 늘 변화하며 새롭게 찾아오는 이 순간순간들 만큼의 새로운 공식들이 생겨날 뿐일테다. 공명선은 배움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기에 남들을 좇아 책에서만 배우려 하지 않고 스승의 행동으로부터 직접 배우려 했고, 한신은 현재의 상황에 적합한 병법의 '죽을 곳에 놓인 뒤에 살아난다'라는 구절을 읽어내고, 그것을 현재에 맞게 적용하여 배수진을 쳐서 승리하였다. 현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과거에만 들어맞는 고정된 공식을 그대로 따를 뿐이고, 현재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옛 공식의 고정된 형태 속에 꿈틀거리며 현재까지 맥이 통하는 무형의 흐름을 읽어서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4. 변화의 한가운데 서서
연암이 살았던 18세기는 변화의 시기였다. 기존의 중국 중심의 세계관이 흔들리면서, 현재의 튼튼한 바탕이 되었던 과거의 권위가 붕괴되고 과거와 현재의 균열이 급격히 벌어지던 때였다. 그럼에도 기존의 세계관에만 얽매여 과거를 향해 거꾸로 돌아앉은 사람들이, 시대를 꿰뚫는 연암의 날카로운 눈에 오죽이나 답답하게 비쳤을까. 연암은 그들이 변화하는 현재를 직시하고 이에 맞춰 과거로부터 배울 점을 찾아내서, 새롭고 주체적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연암이 던진 법고창신이라는 화두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서구를 모델로 하여 경제발전에 총력을 기울여왔지만, 이제는 전통문화와 우리 고유의 것을 돌아보고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는 정체성과 개성을 확립하려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속에 주체적이고 창조적으로 나아가야 하는 지금, 법고창신의 정신이 절실한 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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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냉정해서 아름다운 ㅡ 전호근의 『연암집 읽기』 ㅍ |
박*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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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해서 아름다운 ㅡ 전호근의 『연암집 읽기』 네 번째 강의
1. 추위는 가고….
전호근 선생님과 연암 박지원을 읽는 커리큘럼이 반을 지났다. 지난 1월 초부터 한 달여를 들락거린 아트앤스터디 인문숲 주위의 겨울바람도 어느새 뭉툭해지고 느슨해졌다. 누구나 느끼고 있듯, 올 겨울의 그 맹렬했던 추위도 이제는 어김없이 쪼그라들며 물러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 멈춰있는 것은 없다.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오며, 그렇게 모든 것은 변하고 있다.
2. 유하혜의 감동, 공자의 감
'노나라에 어떤 남자가 있었는데 이웃의 과부가 폭우로 집이 무너지자 그에게 와서 하룻밤 재워달라고 했는데 들이지 않았다. 과부가 유하혜는 성문이 닫힐 때 들어오지 못한 여자를 몸으로 따뜻하게 녹여주었지만 아무도 그를 음란하다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당신은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그는 유하혜는 그래도 되지만 자기는 안 된다고 하면서 “나는 유하혜를 따라하지 않음으로써 유하혜의 행동을 배우려 한다.”고 대답했다. 공자가 그 이야기를 듣고 “유하혜를 이 사람보다 더 잘 배운 사람이 아직 없었다.”고 칭찬했다.' ㅡ『詩經』
네 번째 텍스트로 우리는 <옛날의 중국을 버리고 지금의 조선을 써라>를 읽었다. 전호근 선생님이 이름붙인 저 강의록 제목에서의 ‘중국’과 ‘조선’은, 다분히 상징적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강의록에는 연암이 박제가(朴齊家)의 <초정집>에 서문으로 부친 <초정집서>와, 마찬가지로 이덕무(李德懋)의 <영처고>를 위해 쓴 <영처고서> 두 텍스트가 들어있다. 그리고 만약 연암의 이 두 글을 시적(詩的)으로 압축할 수 있다면, 아마도 연암이 들고 있는 위의 예화가 될 것이리라. 개인적으로 유아혜의 일화는 공자의 가르침 중 최고의 절창으로까지 느껴졌다. 뜬금없이 눈시울이 데워질 정도였다.
3. 고정된 윤리는 윤리가 아니다
'원칙은 구체적 상황이 지니는 특이성의 흐릿한 복제일 뿐이다. 원칙은 구체적인 책임에 대한 요구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 존 카푸토
“나는 유아혜를 따라하지 않음으로써 유아혜를 배우려 한다”는 말은 옛것을 수동적으로 따르지 않으려는, 고정된 윤리적 준칙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배움의 태도를 나타낸다. 그리고 그것을 포착하는 공자의 걸출함…. 누군가를 따라하지 않음으로써(혹은 정반대로 행동함으로써) 그를 배운다는 말은 겉보기에는 불합리하고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에서도 온갖 역설들이 겹겹으로 포개져있지 않던가? ‘옳은’ 생각과 ‘옳은’ 행동이라는 것이 어디 딱 부러지게 규정될 수 있던가? 존 카푸토의 말처럼, ‘원칙’은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저마다의 상황에 따라서 변할 수밖에 없는 유동적인 것이다. 화석화된 윤리는 윤리가 아니다.
4. 보라, 지금의 조선을
'견해는 자유지만 사실은 신성하다.' ― 찰스 스콧
그리고, 그 어떤 원칙과 이념도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인식할 때, ‘사실’을 존중하는(아니, 존중할 수밖에 없는) 인식론의 싹이 틔워지기 마련이다. 화려하고 깔끔한 환상 속에서 세계는 구원되지 않는다.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채 둥둥 떠다니는 견해들의 범람 속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구체적인 ‘사실’의 세계에서 멀어져버린 사유는 이미 ‘죽은 사유’다. 연암이 박제가와 이덕무의 글을 치켜세운 것은 바로 그러한 죽은 사유들이 뒤덮고 있는 조선의 맥락 속이었다.
5. 머물지 않음에 대하여
'우정은 반드시 잔을 부딪칠 필요가 없다 / 우정은 반드시 의가 좋을 필요가 없다 / 우정은 간단하게 말해서 / 우리가 서로 영원히 잊지 않는 것이다.' ― 왕멍
“사실을, 있는 그대로”라는 태도는, 때로는 냉정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촌스럽고 비루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당대의 성리학 엘리트들은 (조선이라는 '관념'이 아닌) 조선의 피혜한 현실을 도저히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18세기의 조선은 조선이고, 우리들은 21세기의 시끌벅적함 속에서 나뒹굴고 있다. '무릇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일 뿐이다'라는 연암의 말처럼, 모든 것들이 순간 순간 변화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어떠한 대상에도 얽매이거나 집착하지 말 것. 현대철학의 말마따나 언제나 유목하는 자세로, 그저 '있는 그대로'에 충실할 것…. 그러나 그건 꽤나 외로운 일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6. 마음의 추위
이 리뷰를 쓰기 직전, 우연찮게 연암의 절친한 벗이자 <영처고>의 저자이기도 했던 이덕무의 가난에 대하여 들었다. 어머니와 누이를 영양실조, 폐병으로 잃고 그 불효를 크게 슬퍼하면서도, 동상에 터진 손을 부여잡고 공부를 멈추지 않았던 이덕무…. 그리고, 막상 강의실에서는 대충 넘겨보았던 '새롭게 만든답시고 잔재주를 부릴 바에야 차라니 옛것을 본받다가 고루해지는 편이 낫다'는 연암의 말이 새로이 눈에 들어왔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봄은 오는데, 왠일인지 마음에는 삭풍이 한가득 밀려온다.
냉정해서 아름다운 ㅡ 전호근의 『연암집 읽기』 네 번째 강의
1. 추위는 가고….
전호근 선생님과 연암 박지원을 읽는 커리큘럼이 반을 지났다. 지난 1월 초부터 한 달여를 들락거린 아트앤스터디 인문숲 주위의 겨울바람도 어느새 뭉툭해지고 느슨해졌다. 누구나 느끼고 있듯, 올 겨울의 그 맹렬했던 추위도 이제는 어김없이 쪼그라들며 물러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 멈춰있는 것은 없다.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오며, 그렇게 모든 것은 변하고 있다.
2. 유하혜의 감동, 공자의 감
'노나라에 어떤 남자가 있었는데 이웃의 과부가 폭우로 집이 무너지자 그에게 와서 하룻밤 재워달라고 했는데 들이지 않았다. 과부가 유하혜는 성문이 닫힐 때 들어오지 못한 여자를 몸으로 따뜻하게 녹여주었지만 아무도 그를 음란하다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당신은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그는 유하혜는 그래도 되지만 자기는 안 된다고 하면서 “나는 유하혜를 따라하지 않음으로써 유하혜의 행동을 배우려 한다.”고 대답했다. 공자가 그 이야기를 듣고 “유하혜를 이 사람보다 더 잘 배운 사람이 아직 없었다.”고 칭찬했다.' ㅡ『詩經』
네 번째 텍스트로 우리는 <옛날의 중국을 버리고 지금의 조선을 써라>를 읽었다. 전호근 선생님이 이름붙인 저 강의록 제목에서의 ‘중국’과 ‘조선’은, 다분히 상징적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강의록에는 연암이 박제가(朴齊家)의 <초정집>에 서문으로 부친 <초정집서>와, 마찬가지로 이덕무(李德懋)의 <영처고>를 위해 쓴 <영처고서> 두 텍스트가 들어있다. 그리고 만약 연암의 이 두 글을 시적(詩的)으로 압축할 수 있다면, 아마도 연암이 들고 있는 위의 예화가 될 것이리라. 개인적으로 유아혜의 일화는 공자의 가르침 중 최고의 절창으로까지 느껴졌다. 뜬금없이 눈시울이 데워질 정도였다.
3. 고정된 윤리는 윤리가 아니다
'원칙은 구체적 상황이 지니는 특이성의 흐릿한 복제일 뿐이다. 원칙은 구체적인 책임에 대한 요구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 존 카푸토
“나는 유아혜를 따라하지 않음으로써 유아혜를 배우려 한다”는 말은 옛것을 수동적으로 따르지 않으려는, 고정된 윤리적 준칙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배움의 태도를 나타낸다. 그리고 그것을 포착하는 공자의 걸출함…. 누군가를 따라하지 않음으로써(혹은 정반대로 행동함으로써) 그를 배운다는 말은 겉보기에는 불합리하고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에서도 온갖 역설들이 겹겹으로 포개져있지 않던가? ‘옳은’ 생각과 ‘옳은’ 행동이라는 것이 어디 딱 부러지게 규정될 수 있던가? 존 카푸토의 말처럼, ‘원칙’은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저마다의 상황에 따라서 변할 수밖에 없는 유동적인 것이다. 화석화된 윤리는 윤리가 아니다.
4. 보라, 지금의 조선을
'견해는 자유지만 사실은 신성하다.' ― 찰스 스콧
그리고, 그 어떤 원칙과 이념도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인식할 때, ‘사실’을 존중하는(아니, 존중할 수밖에 없는) 인식론의 싹이 틔워지기 마련이다. 화려하고 깔끔한 환상 속에서 세계는 구원되지 않는다.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채 둥둥 떠다니는 견해들의 범람 속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구체적인 ‘사실’의 세계에서 멀어져버린 사유는 이미 ‘죽은 사유’다. 연암이 박제가와 이덕무의 글을 치켜세운 것은 바로 그러한 죽은 사유들이 뒤덮고 있는 조선의 맥락 속이었다.
5. 머물지 않음에 대하여
'우정은 반드시 잔을 부딪칠 필요가 없다 / 우정은 반드시 의가 좋을 필요가 없다 / 우정은 간단하게 말해서 / 우리가 서로 영원히 잊지 않는 것이다.' ― 왕멍
“사실을, 있는 그대로”라는 태도는, 때로는 냉정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촌스럽고 비루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당대의 성리학 엘리트들은 (조선이라는 '관념'이 아닌) 조선의 피혜한 현실을 도저히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18세기의 조선은 조선이고, 우리들은 21세기의 시끌벅적함 속에서 나뒹굴고 있다. '무릇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일 뿐이다'라는 연암의 말처럼, 모든 것들이 순간 순간 변화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어떠한 대상에도 얽매이거나 집착하지 말 것. 현대철학의 말마따나 언제나 유목하는 자세로, 그저 '있는 그대로'에 충실할 것…. 그러나 그건 꽤나 외로운 일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6. 마음의 추위
이 리뷰를 쓰기 직전, 우연찮게 연암의 절친한 벗이자 <영처고>의 저자이기도 했던 이덕무의 가난에 대하여 들었다. 어머니와 누이를 영양실조, 폐병으로 잃고 그 불효를 크게 슬퍼하면서도, 동상에 터진 손을 부여잡고 공부를 멈추지 않았던 이덕무…. 그리고, 막상 강의실에서는 대충 넘겨보았던 '새롭게 만든답시고 잔재주를 부릴 바에야 차라니 옛것을 본받다가 고루해지는 편이 낫다'는 연암의 말이 새로이 눈에 들어왔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봄은 오는데, 왠일인지 마음에는 삭풍이 한가득 밀려온다.
책 : 연암집 세트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747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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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옛날의 중국을 버리고 지금의 조선을 써라' |
이*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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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강 : 옛날의 중국을 버리고 지금의 조선을 써라
초정집서를 보면 연암은 무조건적으로 옛 것을 본받거나 무작정 새롭게 만드는 자세를 경계했다. 옛 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새롭게 만들면서도 전아할 수 있는 글을 좋은 글이라 하였다. 무슨 일이든지 극단적인 것은 아니하느니만 못하므로 적절한 그 정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박제가의 글을 빛내도록 연암이 쓴 초정집서를 보면 옛 것의 지혜로움을 본받되 그 방식을 창의적으로 계승하는 바에 대해 알 수 있다. 제나라의 손빈은 용맹한 위나라와 싸울 때마다 후퇴하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조금씩 아궁이 수를 줄여 나갔다고 한다. 첫날은 10만개 둘째 날은 5만개 셋째 날은 3만개, 이렇게 줄여나가는 아궁이 수를 보고 위나라는 제나라의 군사들이 무리지어 도망갔다고 생각했고, 이 추측을 이용해 손빈은 위나라 군을 섬멸 했다고 한다. 이러한 지혜를 역으로 계승한 바가 있으니 우승경의 ‘아궁이 수 늘리기’가 있다. 우승경은 오히려 아궁이 수를 늘려 적으로 하여금 더 많은 군사가 모이고 있다고 추측하게 했고 그 결과 적들로 하여금 먼저 후퇴하게 하였다. 손빈의 병법을 곧이곧대로 따라 하기보다는 변통해서 기지를 발휘했다는 점에서 창의적 계승을 몸소 실현했다 할 수 있다. 연암은 사물이나 사상의 절대적 존재를 지지하지 않았다. 고로 ‘법고’와 ‘창신’ 그 둘의 조화를 지향한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영처고서에서 보다 잘 발전되어 나타난다. 연암은 옛날 시와 오늘날의 시가 비슷하지 못하다는 자패의 혹평을 인용해 이에 대항한다. 연암은 옛날과 오늘날을 연속선상에 두고 비교한다. 사실 이 둘을 구별하는 명백한 기준은 없다. 상대적인 차이이며 과거의 것들도 결국 그 언젠가의 하나의 지금 이였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옛것을 받아들이되 그 권위와 명예에 압도당하지 않아야 한다. 영처고서에는 그러한 권위나 지식에 얽매이지 않은 시각에 대해 나온다. 관운장에 대한 지식이 있는 성인 남녀와 전혀 정보가 없는 어린아이들을 비교한 예가 있는데 성인 남녀들은 그 좌상 아래에 들어가면 혼이 빠질 정도로 무서워하나 관운장에 대한 지식에 얽매이지 않은 아이들은 흙덩어리로서의 새로운 그 자체로 받아드린다는 이야기이다. 연암은 옛 것을 절대적으로 거부한 것이 아니다. 전통적 글쓰기를 지향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근대적 글쓰기를 추구했다는 것이 연암의 특징이다. 융통성 있게 배우고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현재의 우리의 몫이다. ‘무에서 창조되는 유’라는 게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결국 모든 것은 현존하는 것에서부터 창의적으로 발전된다. 그러한 창조적 사고를 하는 게 우리가 현재 배우고 또 앞으로 지향해 나가야 할 가르침이라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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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
고전의 진가 |
채*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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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진가를 확인하게 하는 시간이네요.
세월이 가도 읽혀지는 글은 뭔가 다르다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됐어요. 선생님의 충분한 설명, 적절한 예, 매끄러운 전개에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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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재미있고 유익한 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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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에 대한 관심으로 접근하게 된 강의였지만 전호근이라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행운을 가져다 주는 강의였습니다. 앞으로도 선생님의 강의를 꾸준하게 들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동양고전이라는 딱딱한 텍스트의 껍질을 상냥하고 때론 투박하게 깨뜨려주시네요. 하지만 그 내용물을 음미하기엔 저의 역량이 아직 부족한 것 같습니다. 좀 더 그 맛을 음미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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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
연암 강의 수강생들과의 가상 인터뷰! |
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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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생들, 연암을 말하다 ― 전호근의 『연암집 읽기』 세 번째 강의 ― 연암집 읽기 3강 “연암이 들려주는 걸쭉한 사람이야기” 후 강의 수강생들과 가상 인터뷰
# 주성철 씨(대기업 과장, 36세) : 월요일엔 퇴근 후 커피숍으로 달려가서 노트북으로 아트앤스터디 홈페이지를 열고, 전호근 선생의 강의를 듣고 있는 수강생입니다. 지난 3강에서 연암이 풀어내는 ‘사람이야기’를 듣고선 깜짝 놀랐습니다. 연암이 마치 저를 꾸짖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특히 강의록의 두 꼭지 중 첫번째 글, <지키지 않음으로써 지킨다>(이존당기以存堂記)를 들으면서 그랬습니다. 연암이 ‘말썽쟁이’ 장중거(張仲擧)에게 하던 말이 어쩌면 그렇게 와닿던지요. 요즘 제가 회사에서 한창 사람들과 복닥거리면서 진을 빼고 있기 때문인지...
장중거는 호방한 성격이었지만 스스로를 다잡지 못하고 실수를 연발하여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맙니다. 그래서 충격을 받아 방에 ‘이존(以存)’이라는 두 글자를 걸어두고 칩거하려고 결심하지요. 연암은 그에 대해 이렇게 충고합니다. “지금 중거가 남이 자기를 해칠까 두려워하여 밀실에 숨고서는 스스로 보존하기를 바라지만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 자기 몸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今仲擧懼物之害己也 蟄于密室 欲以自存 而不知自害者存乎其身) 그리고 연암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장중거에게 ‘몸 안에 몸을 숨기는 비법, 보존하지 않음으로써 보존하지 않는 비법’을 기막히게 풀어줍니다. 연암처럼 지근거리에서 저렇게 지혜로운 꾸짖음을 들려줄 ‘어른’이 제 곁에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부장님... 흐미...ㅠ.ㅠ)
# 김영란 씨(프리랜서 작가, 42세) : 전호근 쌤의 맛깔스러운 강의를 잘 듣고 있는 수강생입니다. 먼저 연암의 강의를 함께 듣는 학생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대해서 퍽 놀랍고 반가운 느낌이 듭니다. 고린내 팍팍 풍기는(?) 옛날책을 읽는 강의에 사람이 너무 없으면 어떡하지... 이런 쓸데없는 걱정도 했었는데 말이죠.ㅎ 뭐랄까, 약간 동지의식이 든다구요.ㅎ
전호근 쌤도 그렇고 학생 분들도, 연암의 그 끊길 줄 모르는 문장들을 상당히 높이 평가하고 있더라구요. 아마 ‘연암체’라는 말도 있다지요? 하지만, 요새 연암이 쓰는 것과 같은 길고 긴 ‘만연체’는 솔직히 ‘범죄’ 아닌가요?ㅋㅋ 하고픈 말이 글머리에 속전속결로 나타나는, 업계 표현으로 ‘섹시’한 글이 먹히는 세상인 걸요. 연암처럼 에두르고 퉁기고 능청을 떨면서 글 말미에야 진심을 드러내다가는… 에구.ㅋㅋ 사람들은 왜 이렇게나 바빠지고 급해진 것일까요?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암의 글이 우리를 붙잡아놓는 힘은 뭘까요?
# 유민수 씨(무직, 27세) : 전호근 선생님 머릿속엔 뭐가 들었길래 저렇게 술술술 중국 고사들과 고전의 글귀들을 인용하는지 모르겠어요.ㅋ 대단하십니다. 저는 한자 공부도 할 겸 이 강의를 신청했는데, 덕분에 강의 시간에 아주 몰입해서 잘 듣고 있습니다. 물론 강의 끝나고 복습을 해야 그게 제 것이 될 텐데 말이죠;; 4월에 있는 한자검정시험 준비도 슬슬 버닝해야!! 암튼 정호근 선생님, 한자시험 전문강사를 부업으로 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하하.
오늘 들은 강의에선 <바위에 이름을 새겨봤자>(발승암기髮僧菴記)의 김홍연(金弘淵)을 보고서는 좀 뿜었습니다.ㅎ 나라 안의 명산에 숨어있는 기이하고 외진 곳마다 찾아가선 자신의 이름을 새겨두었던 김홍연. 그것에 대해서 성질을 부리다가 어쩔 때는 또 반가워하던 연암의 모습.ㅋㅋㅋ “뭇사람들은 각기 자기 만족에 사는 법이니 꼭 서로 배울 것은 없지.”(衆生各自得 不必强相學)라고 말하던 연암 박지원. 님 좀 짱인 것 같아요.ㅋㅋㅋ
# 천정배 씨(정치인, 57세) : ‘공정사회’란 MB정권의 정치적 수사가 유행이 되어버린 세상입니다. 새삼 다시 말할 필요도 없이, 지난 고위공직자 청문회를 보신 국민들은 모두 저 ‘공정’이란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절감하셨겠지요. 조선사회 지배계층의 허위의식과 당쟁모략에 절망했던 연암이 저 우스운 공정사회론을 듣고 땅 아래서 다시금 절망하고 있지 않을까요.
전호근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연암집은 18세기 조선의 ‘혁명적 문제아’였던 연암 박지원의 사상을 맨살 그대로 접할 수 있단 점에서 참으로 고마운 강의입니다. 얼마 전 제가 MB정권을 “죽여버려야” 한다고 해서 또 저 정부와 여당은 한바탕 난리를 쳤지요. 그러나 생전의 연암은 저의 진심을 이해해주리라 믿습니다. 연암은 장중거에게 “사람과 사람이 사귀고 일의 이치가 부합하는 데는 일정한 도리가 있으니 그 이름을 예라 한다”(夫人物之交 事理之會 有道存焉 其名曰禮)고 말했습니다. ‘예’를 논하기 이전에, 최소한의 준법의식조차 없는 저 정권은 더 이상 정의와 공정을 논할 자격이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손으로 민주주의를 지킵시다.
연암의 글에는 장자의 막힘 없는 사유와 '자연스러움'에 대한 강조가 깊숙이 배어있는 듯 느껴진다.
# 김수민 씨(동양철학과 대학원생, 29세) : 앞에 천정배 의원님이 좀 흥분하셨군요... 글쎄요. 연암은 평생 중앙의 제도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철저한 ‘비주류’이자 ‘아웃사이더’로서 후세에 이름을 남겼지요. 4선 국회의원이신 천 의원님과는 상황이 좀 다르지 않나 생각됩니다. 물론 연암도 비어와 속어로 이루어진 독설을 즐겼다고 하나, 과연 연암의 그것이 천 의원님이 했던 것처럼 노골적이고 직접적이었나 하는 점에 대해선 의문이 있습니다.
저는 연암이 이렇게 풍성히 중국의 고전들을 인용하고 있는 것을 직접 읽으면서 새삼 놀라고 있습니다.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컨텍스트인 것 같아요. 그래서 매주 강의를 들은 후에 <장자>와 <맹자>, <사기> 등을 다시 뒤져보느라고 아주 죽겠습니다.^^ 전호근 선생님의 강의야 이쪽에선 워낙 유명하니 다시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연암의 글과 사상에 대해선, 한양대 정민 교수가 연암집에 부친 찬사를 인용하는 것으로 족하겠지요. “서늘함은 사마천을 닮았고 넉살 좋음은 장자에게서 배운 솜씨다. 소동파의 능청스러움, 한유의 깐깐함도 있다. 불가에 빠진 사람인가 싶어 보면 어느새 노장으로 압도하고, 다시금 유자의 근엄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 강미경 씨(주부, 38세) : 연암 박지원은 읽으면 읽을수록 참 매력적이에요. 저는 연암의 문장보다도 그의 자유롭고 여유 넘치는 사고방식이 정말 존경스러워요. 편히 특권을 누릴 수 있었던 사대부 집안에 태어났으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자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과 막역하게 소통하지요. 그리고 어느새 그들의 마음을 열어내고는, 거기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길어올리구요. 요새는 연암 같은 ‘글쟁이’를 눈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쉬운 마음도 들어요.
이번 강의에서도 연암은 공동체에서 ‘사고’를 친 후 마음에 상처를 입은 장중거에게 다가가고, 젊은 시절 자신만만한 기행을 일삼다가 늙어서 쓸쓸해진 김홍연을 만나 그를 위로합니다. 저는 특히 연암이 <발승암기>에서 김홍연에게 부친 게송을 읽으며 속으로 너무 찡했습니다. “그는 이미 뭇사람과 다른 길을 갔는데, 이 때문에 서로 의아하게 여긴 거지”(大深旣異衆 以玆相訝惑)라고 김홍연의 늙음을 따스히 긍정하던 연암의 모습... 어쩌면 연암은, 이미 그 나름의 '다름'과 '차이'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란 생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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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에서 열하까지 |
권*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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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그룹의 다정한 벗들이 백탑 아래 즐겁던 시절들이 선연하다. 먼저 나지도 않고 나중 나지도 않고 남쪽이거나 북쪽으로 서로 떨어져 나지도 않아 가까운 데에서 태어나 자란 벗의 고마움과 귀함이 한이없다. 허세를 모르고 허영을 모르는 연암의 글들은 경이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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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 강의안 수정 |
강*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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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 강의안 내용이 이상합니다. 연암집 원강의와는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여러번 확인했습니다. 빠른 수정바랍니다. 글이 짧으면 올려지지 않아 불필요한 말까지 계속 쓰게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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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강성두님 동영상 화면 스킨에 제공하는 강의록은 정상인데, 다운받으시는 PDF 강의록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확인 즉시 수정하였습니다.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답변 드립니다 (11.1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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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이라는 메타포에 대하여 |
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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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이라는 메타포에 대하여 — 전호근의 『연암집 읽기』 일곱 번째 강의
1 나는 ‘그’를 모른다
모든 사람은 서로에 대한 ‘상징’이다. 우리는 삶이라는 길목에서 숱한 인연들과 마주치고 이런저런 관계를 맺은 채 살아가지만, 기실 모든 타인은 나에게 던져진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예컨대 내가 아무개를 좋아한다고 치자, 나는 아무개가 던져주는 따뜻한 미소와 정다운 표정을 좋아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영원히 그 ‘아무개’를 좋아할 수는 없다. 아무개의 따스한 미소와 정다운 표정이 아무개는 아니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의 거리는 생각보다 훨씬 멀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더라도 여기에 예외는 있을 수 없다. ‘타인’이라는 온전한 ‘존재’를 내가 손에 잡으려는 순간, 타인은 그 손길에서 미끄러진 채 여전히(그리고 언제까지나) 저 멀리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실존적으로 고독하다, 그러므로 내가 좋아하는 건, 아무개가 아니라, 끝내 ‘아무개의 따스한 미소를 좋아하는 나 자신’일 수밖에 없으리라. 이것은 타인에 대한 배타적인 인식이 아니다. ‘나’와 ‘남’은 서로 떨어져있어 아름다우며, 칼릴 지브란의 말대로 “사원의 기둥들은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서 자랄 수 없다.”
2 ‘그’는 강의를 잘한다
연암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게다. 전호근의 연암집 읽기 7강 <연암이 들려주는 결 고운 사람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우리는 ‘나’와 ‘타인’간의 엄정한(혹은 냉정한) 거리를 깨닫게 된다. 우리 후세 사람들은 연암이 남긴 글을 읽으며, 그가 ‘결 곱게’ 그려내는 타인이란 결국 연암 자신의 ‘결 고운 마음’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강의시간에는 연암의 <열녀 함양박씨전서烈女咸陽朴氏傳 幷序>와 <함양군학사루기咸陽郡學士樓記>을 읽었다. 특히 유명한 앞의 글에서, 연암은 조선의 구습(舊習)에 평생을 고통받다 ‘죽어가는’ 여인들을 바라보며, 더없이 섬세하고 절절한 문체로 그녀들의 아픔을 뿐이다. 말하자면, 연암은 '혁명가'는 아니었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서 이제 두 달간 아트앤스터디에서 <연암집>을 강의한 전호근 선생님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고백컨대, 필자는 강의를 잘하는 분을 좋아한다. (이 말은 강의를 못하는 강사님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도 된다. 물론 속으로만.) 다른 말을 덧붙일 필요도 없이, 전호근 선생님은 강의를 ‘잘한다.’ 동양고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잠시 짬을 내어 아트앤스터디에 들어와 <연암집 읽기> 1강을 감상하기 바란다. 유유한 강(江)처럼 흐르면서도 (많은 강사분들이 은근슬쩍 드러내는) 쓸모없는 포즈와 과잉과 자찬은 쏙 뺀 ‘진짜’ 강의가 바로 거기 펼쳐질 것이다.
3 나는 ‘그’를 배운다
오글오글한 말인가? 어쨌든 강의도 모두 끝난 지금, 내가 전호근 선생님에게 ‘아부’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나는 다만 전호근이라는 학자, 전호근이라는 선학(先學)이 두 달간 보여준 여러 ‘상징’들에 감탄하고 있단 말을 하는 것이다. 또 그가 보여준 ‘상징’들을 내가 척 알아보고, 그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안달하고 있단 점에 대해선 나 자신에게 자랑스럽다. 그 분이 보여준 대나무 같은 눈빛, 맑고 담담한 인상, 몇 번을 읽었는지도 모를 만큼 거의 외울 정도로 술술술 읽히던 연암의 텍스트, 간간이 인용하던 서양철학, 쑥쓰러운 듯 던지던 농담과, 수강생들이 안 웃어도 전연 신경 쓰지 않는 듯하던 그 ‘쿨함’, 내공에서 우러나오는 겸손한 한 마디 한 마디…. 이런 것들이, 순간적으로 휘발하는 그 작은 장면들이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도 또 뭐가 아쉽다고 바쁜 전 선생님께 부탁해 몇 가지를 기어코 더 여쭤보았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필자보다 먼저 전 선생님을 만났던 서울경제신문 인터뷰 기사(http://j.mp/dYMsNL)를 보고 나서 뒤의 질문과 답변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 다음은 전호근 선생님과의 e-mail 인터뷰 전문.
Q. 문자학과 문헌학은 '기피학문'에 속하고, 한 마디로 지루하고 힘든 작업에 가깝다고 쓰신 적이 있으십니다. 물론 그만큼 중요한 학문이라고 강조하셨구요. 그러한 문자학과 문헌학, 번역의 길로 뛰어든 특정한 계기가 있으신지요?
A. 지루하고 힘들다고 했지만 그건 처음 시작할 때 이야기고 조금 맛을 들이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아닌가?) 일본의 문자학 대가라 할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 같은 학자들의 저술은 대체로 방대한 것들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문자소요(文字逍遙)》 같은 자그마한 책도 있습니다. ‘소요’라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산책하듯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문자이야기입니다. 언젠가 저도 그런 책을 한번 써보고 싶습니다.
Q. 작업이 지루하고 힘드실 때 어떻게 버텨내시나요? 말하자면, 쉴 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무엇인지요?
A. 가장 힘들 때는 어려운 구절을 번역할 때입니다. 한두 구절 때문에 하루가 다 가는 수가 있거든요. 그럴 때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갑니다. 물론 귀에 이어폰을 꽂고요. 기왕이면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찬찬(Chan Chan)’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요... 가끔씩 재즈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스트레스 해소에 그만이거든요.
Q. 연암이 쓴 시와 <열녀함양박씨전 병서> 등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시거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는 말씀을 간혹 하셨는데요. 성격이 조금은 감성적인 편에 가까우신지요? 자주 눈물을 흘리는 편이신지요...? (^^)
A. 별로 감성적인 인간은 아닌 것 같아요. 눈물도 흘리는 일이 거의 없고요. 그런데 저는 우스운 구절을 보고 웃지 못하면 정말 웃어야 하고, 울어야 할 구절을 읽고 울지 못하면 정말 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그런 구절이 나오면 ‘어찌됐든 웃고’, ‘무조건 울게’ 되는 거죠.
Q. 선생님이 공저하신 <번역된 철학 착종된 근대>에서 "(우리 사회에선) 전근대와 근대가 섞인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둔갑하는 듯한 느낌"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굳이 '고전 번역'이라는 맥락을 떠나서도 해당되는 말씀일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의 현상이나 맥락 속에서도 저러한 느낌을 받으시는 경우가 있으신지요?
A. 그게 중세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서구사회가 그네들의 근대를 비판하는 이야기를 끌어다가 우리에게 남아 있는 전근대적 요소가 그들의 근대보다 낫다는 증좌로 제시하는 경우를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지요. 비판해야 할 근대를 제대로 향유하지도 못한 처지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이야기한다면 그건 포스트가 아니라 전근대라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Q. 강의 중 간혹 미셸 푸코나 롤랑 바르트를 비롯한 서양철학자들을 언급하기도 하셨죠. 아트앤스터디에서도 서양철학이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서양현대철학의 인기에 대해선 다양한 시각과 해석들이 존재하는데, 전호근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아트앤스터디와 같은 공간에서는 서양철학 중에서도 프랑스 철학이 인기죠. 그건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를 상당히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례로 저도 우리 사회의 죽음에 대한 문제를 고민할 때는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나 들뢰즈를 뒤적이거든요.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의 텍스트를 보는 것만으로 현대 한국인의 삶을 이해하거나 설명하기가 어렵거든요.
Q. 연암을 비롯한 동양철학의 가치에 대해서도 여전히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양철학의 가장 큰 약점 한 가지와, 가장 큰 강점 한 가지를 간단히 들려주세요.
A. 저는 근본적으로 철학에 동서의 구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편의상 그런 식으로 나누어 말한다면 동양철학의 가장 큰 장점은 수양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가는 수신(修身), 도가는 양생(養生)이라고 하지요. 자신의 삶은 보다 높은 곳으로 이끌려는 부단한 노력이 동양철학 전반에 면면히 흐르고 있지요. 반면 수사학이나 논리학이 약한데 그게 약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물론 이번에는 <연암집> 강의를 하셨지만,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 그리고 다산 등 다양한 동양사상가들에 대해 강의를 하고 계시지요. 개인적으로 이들 중 가장 '끌리는' 학자는 누구인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A. 가장 끌리는 철학자는 맹자입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열정 때문이지요. 상황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맹자를 떠올리면 좌절하지 않게 됩니다.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한다면 맹자를 따라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놀러 간다면 장자를 따라 갈 겁니다. 하하..
Q. 지난 수업 뒷풀이에서 "올해부터는 마음먹고 책을 내보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하셨습니다. (^^) 마지막으로 수강생들과 '잠재적 수강생'들에게 앞으로의 학문적 계획을 들려주세요.
A. <장자 강의>의 초고가 집필된 상태입니다. 한 두 달 사이에 마무리 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맹자 강의>, <주역 강의>, <주역 강의> 등의 초고가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오랜 학문적 동지인 김시천선생과 함께하는 <맹자 대담>도 준비 중입니다. 근데 이게 과연 다 나올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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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 이후 - 전호근의 『연암집 읽기』 여덟 번째 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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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 이후 - 전호근의 『연암집 읽기』 여덟 번째 강의
연암이 자신의 벗들에게 쓴 두 글 ‘낭환집서蜋丸集序’와 ‘선귤당기蟬橘堂記’을 읽는 것으로, 지난 1월부터 시작된 두 달간의 <연암집 읽기> 강좌가 모두 끝났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 연암 박지원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흔치 않을 것이다. 동시에 그 사람들 중 ‘연암집’ 원전을 앞에 두고 직접 해석하면서 음미해본 이도 많지 않으리라. 어쨌거나, ‘연암의 나날’은, 우리가 그를 붙잡고 그가 남긴 글을 읽는 한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첫 강의를 들은 후 “글이란 결국 시대와 삶의 '마음밭'이 기록된 하나의 궤적이라면, 앞으로 이 강의실에선 앞으로 연암의, 전호근의, 그리고 우리 학생들 각각의 궤적이 포개지고 뒤엉키리라”는 소감을 밝힌 지도 어느덧 두 달 전이다. 매주 마포의 인문숲에서 따끈한 (공짜) 원두커피를 마시며 연암 박지원, 전호근 선생님과 함께 2011년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큰 행운이고, 행복이었다. 다른 수강생 분들도 그러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마지막 텍스트 <예리한 익살이 빛나는 연암의 나날>은 연암이 자신의 가까운 벗인 유득공, 이덕무와 나눈 소박한 글들이었다. 박지원은 유득공의 숙부인 유연(柳璉)이 묶은 낭환집(蜋丸集)에 부친 서문에서 “말똥구리는 자신의 말똥을 아끼고 여룡(여의주)의 구슬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여룡 또한 자신에게 구슬이 있다 하여 말똥구리를 비웃지 않는다”고 말한다. 참된 식견은 언제나 옳고 그름, 이편과 저편의 ‘중간’에 있다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연암은 ‘선귤당기蟬橘堂記’에서 이덕무의 호 ‘선귤당’에 대해 “이름은 너의 몸에 속한 것이 아니라 남의 입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름’의 덧없음에 대해 천연덕스레 수다를 떨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상기하자면, 이 강의의 제목은 “5천년래 최고의 문장을 읽는다”였다. 퇴계와 율곡, 다산을 비롯한 기라성 같은 이들 가운데서도 5천년 최고의 문장가라니! 참으로 스케일이 큰 제목이었다. 한문 문장과 고전들에 거의 무지하다시피 한 필자가 연암의 글이 5천년래 최고인지 아닌지 판단할 재량은 없다. 다만 필자는 연암 박지원의 글을 읽고 ‘연암처럼 되고 싶다’는 소망 하나만은 마음속에 잘 새기게 됐다. 통 크고 대범하게 세계를 바라보고, 자유분방하게 사고하면서도, 엄청난 공부가 뒷받침된 뛰어난 문장을 쓰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물론, 전 선생님이 <연암집 읽기> 강의를 통틀어 줄곧 반복하신 말씀은 “연암 당대 조선의 맥락과 지금 우리의 맥락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읽은 연암의 문장을 교과서 외우듯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면, 아마 연암이 그토록 갑갑해 했던 ‘반쪽짜리 학문’이 될 게 분명하지 않을까 싶다. 연암은 그런 후세 사람들을 보며 수염을 곤두세우고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이리저리 훑어본 기록에 따르면, 연암은 자신과 절친했던 후배가 술에 취하여 예(禮)를 어기자, 그 자리에서 그를 두들겨 팬 적도 있다고 한다.
연암의 문장 베스트 3를 꼽아보면서 강의 리뷰를 마친다. 5천년래 최고의 문장인지는 확신할 수 없으되, 가히 ‘최고라고 일컬어질 만한 문장’이란 어떤 것인지 전호근 선생님의 해석을 통해 슬쩍 맛보길 바란다. (무릇 연암은 자신의 눈으로 자신이 사는 시대와 현실을 가장 생생히 묘파해내는 글을 최고로 쳤다고 배웠다. 이 세 개의 문장 역시 나의 기준에서, 내 가슴을 뭉클하게 감동시켰던 기준으로 선정한 것일 뿐이다.)
3위: “아! 자기 홀로 아는 경우는 늘 남이 몰라줄까 걱정하고, 자기만 깨닫지 못하는 경우는 다른 사람이 먼저 깨우쳐주는 것을 싫어하니, 어찌 귀가 울고 코를 고는 경우에만 이런 병이 있겠는가” (嗟乎라 己所獨知者 常患人之不知하고 己所未悟者 惡人先覺하나니 豈獨鼻耳有是病哉아) : ‘공작관문고서孔雀舘文稿序’ 中
연암, ‘글 못쓰는 사람들’을 꾸짖다. 나를 가장 뜨끔하게 했던 문장.
2위: “그렇다면 지금은 옛날과 상대되는 말이고, 비슷하다는 것은 저것과 비슷하다는 말이니,무릇 비슷하다는 것은 그저 비슷한 것일 뿐이고, 저것은 그대로 저것일 뿐이다. 저것과 비슷하게 하는 것은 저것이 아니니 나는 아직 비슷한 것이 저것이 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然則今者는 對古之謂也요 似者는 方彼之辭也니 夫云似也는 似也요 彼則彼也라 方則非彼也니 吾未見其爲彼也라) : ‘영처고서嬰處稿序’ 中
연암, 중국‘빠’들에게 한 방 날리다. 나를 가장 통쾌하게 했던 문장.
1위: “까마귀는 온갖 새가 다 검은 줄 알고, 백로는 다른 새가 희지 않은 것을 의아해하는구나. 흰 새와 검은 새가 각기 옳다고 우기면 하늘도 그 송사에 싫증내겠구나. 사람은 모두 두 눈이 갖춰져 있지만 한 눈을 감아도 잘 보인다. 어찌 꼭 두 눈이라야 밝게 본다 하겠는가. (…) 뭇사람들은 각기 자기만족에 사는 법이니, 꼭 서로 배울 것은 없지. 그는 이미 뭇사람과 다른 길을 갔는데, 이 때문에 서로 의아하게 여긴 거지.” (烏信百鳥黑하고 鷺訝他不白이라 白黑各自是면 天應厭訟獄이리라 人皆兩目俱나 矉一目亦覩니 何必雙後明이리오 (…) 衆生各自得하니 不必强相學이라 大深旣異衆하니 以玆相訝惑이라) : ‘발승암기髮僧菴記’ 中
연암, 젊은 시절 호방했지만 후에 외롭게 늙은 승려를 위로하다. 나를 가장 애잔하게 했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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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힘, 정신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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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힘, 정신의 힘 — 전호근의 『연암집 읽기』 여섯 번째 강의
지난 2월 28일, 길상사에서 법정 스님의 1주기 추모재가 열렸다. 특정 종교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한 시대를 맑게 풍미했던 스님이 돌아가신지 어느덧 1년이 지난 것이었다. 한해 전만큼은 아니었지만 법정 스님을 추모하기 위해 다시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스님의 유지를 잇는다는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와 길상사는 마치 1주기를 기념하듯 스님의 빈 자리를 둘러싼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었다. 길상사에서 내겐 스님이 생전에 가장 아꼈다는 <숫타니파타>의 말씀이 처량하게 떠오를 뿐이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전호근 선생님의 여섯 번째 강의를 들으며 든 생각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라니! 전호근 선생님은 강의록의 제목을 기막히게 붙여오셨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것은 현실세계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우뚝하려는 정신의 힘을 일컬으며, 그러한 정신의 힘을 믿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연암은 <하풍중로당기荷風竹露堂記>와 <불이당기不移堂記>, 두 글을 통하여 사대부가 마땅히 취해야 할 이상적 정신세계를 설파한다. 연암은 겉으로 드러난 형상을 베낄 뿐인 형사(形寫)와 사생(寫生)의 윗 단계에, 형상 속에 고요히 감춰진 정신적 가치에 주목하는 심사(心寫)와 사의(寫意)의 관점을 올려놓는다. 연암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 굳이 서양철학의 난해한 개념들을 끌어올 필요는 없으리라.
연암은 <하풍중로당기荷風竹露堂記>에서 대나무에 매달린 새벽 이슬을 보며, 수천 그루 연꽃이 보내오는 향기를 맡으며, 파초 소리에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그리고 야윈 매화를 바라보면서, 백성들을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는 사대부 엘리트의 도덕적 당위를 다짐한다. 또한 <불이당기不移堂記>에서는 왕에게 올린 입바른 상소때문에 죽을 위기에 처해서도 한 점 두려움 없이 태연했던 영목당 이양천(李亮天)을 '눈 속의 잣나무'로 비유하며 그 정신을 칭송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의 두 텍스트에는, 전호근 선생님과 그동안 함께 읽은 어느 연암의 글보다도 유교적 정신관이 뚜렷하게 펄떡이고 있었다.
연암과 당대 성리학 엘리트들이 추구했던 인문적 정신세계에 대하여 한두 마디로 평가하고 호불호를 논하려는 우를 범해선 안 되리라. 그러나, 역시 필자의 공부가 부족해서겠지만 '사대부의 고고한 정신세계'에 대한 강조는 솔직히 어느 정도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현실에 흔들리지 않는 선비들의 '불이(不移)'의 기상은 참으로 뛰어난 것이거늘, 연암 자신이 다른 여러 작품을 통해 비웃고 있듯, '몰락한 정신주의'보다 더욱 추잡한 것은 없지 않는가. 그리고 아마도 조선시대 전반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우리들의 뭉뚱그려진 시각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추위를 뚫고 피는 매화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름답지만, 우린 매화의 아름다움에 찬탄한 당대 사대부들에는 더 이상 쉽게 열광하지 못한다.
귀족(사대부)적 정신주의는 한 물 간지 오래지만, 인문학을 되살리려는 뭇사람들의 노력들은, 따지고 보면 '귀족'처럼 자기긍지를 갖고 '귀족'과 같은 높은 정신세계를 꽃피우려는 시도라는 생각을 간혹 하곤 한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폐쇄적인 엘리트주의를 옹호하고 싶은 게 아니고, 자기 자신을 '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지나치게 적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세상은 알고보면 결코 '평등'하지 않으며, 꼭 그럴 필요도 없다. 모두들 '평등'이라는 멋진 구호를 입에 바른 채 남을 질투하고 남 위에 올라서려고 버둥거리는 세상에서, 자신이 벗이 성균관장에 있자 자신의 장남 종의(宗儀)에게 편지를 보내 성균시(成均試) 시험을 치지 못하게 했던 연암 박지원의 조용한 실천이 가슴을 친다.
어쨌거나 이 여섯 번째 강의에 대한 리뷰는 혼란스러움의 고백이다. 신념이 우스워진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하나. '정신의 힘'이 냉소받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가슴뻐근히 예찬하고, 또 무엇을 목숨걸고 거부해야 할 것인가.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우리들 각자가 ‘나답게’ 살기란 왜 그리 어려운가. 연암의 바람과 같이 인간이 참되고 높은 정신세계를 지니기란 어찌 그리 어려운가. 리뷰를 쓰다보니 결국 한 10년 전쯤 소름끼치게 감탄했던 루소의 "사람은 모이면 모일수록 타락한다"는 말이 또 다시 머릿속에 갸웃거리는 걸 보면, 나도 그간 참 게으르게 공부했다는 자책감에 새삼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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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벗 사귐이란 무엇일까 |
그**월햇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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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강 : 세상 모든 사람이 나의 벗
마음이 통하는 벗을 사귄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많은 않다. 공통의 관심사 혹은 비슷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끼리 한번이라도 더 어울리게 되는 법이고, 그런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자주 볼 자리가 생기기까지를 고려해본다면 그러한 벗은 참된 인연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진정한 벗을 잘 사귀는 일이 당연하기보다는 덕목이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단순히 예쁘고 잘생긴 혹은 소위 잘 나가는 사람과 친한 사이로 거듭나고 싶어 하며 맹목적으로 따르는 왜곡된 친구 사귐이 주위에도 여러 있다. 이 중 대부분은 그 잘난 사람과 내가 ’아는 사이’라는 점에 의의를 두고 있어 안타까웠다. 그렇다면 진정한 벗 사귐이란 무엇일까.
연암의 북학의서는 위의 올바르지 못한 교우관계를 지닌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준다. 연암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붙잡고 물어보아야 한다고 한다. 이는 학문도 배운 사람에게 물어야 한다는 당시의 성리학적 학문관과 대비 되었다. 연암은 지식에는 위계가 없으며 나이, 배운 정도가 나보다 낮을 지라도 분명 배울 점이 있다고 단언한다. 순임금과 공자도 물어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알았고 그들이 성인이 된 것은 다른 사람에게 묻기를 좋아해서 잘 배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당시 조선에는 폐쇄적인 사고가 만연했기에 배움과 벗사귐에 대한 재해석은 습득되기 어려워 한계가 있었다.
진정한 벗 사귐에 대한 가르침은 회우록서에 수록된 홍대용의 이야기에도 나타나있다. 홍대용은 화이의 차별을 인정하는 동시에 마음을 열고 진심을 통해 중국 한 골목에서 선비 세 사람과 깊은 벗이 되었다. 조선의 여론이 청을 적으로 내두를 때 청은 올바르고 좋은 법도와 문물을 배우기에 좋은 상대라고 칭한 것도 그였다. 우리는 주변인의 말에 좌지우지되기가 쉽다. 한 사람에 대한 평판을 여기저기서 모아 제 멋대로 편집해 그 사람을 단정 짓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가 피하고 폄하하는 인물을 참되게 알아보려 한 적이 과연 몇 번이나 있을까. 혹은 ‘나도 저렇게 생각하는데’라고 속마음이 외치는 와중에 손가락질하는 다수의 뭉텅이에 은연중에 끼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보다 주도적으로 벗을 알아보고 사귐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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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
벗과 적 |
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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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과 적 — 전호근의 『연암집 읽기』 다섯 번째 강의
벗
불교의 초기 경전에 속하는 <선지식경善知識經>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느날 법회가 끝난 후 아난 존자가 부처님에게 다가가 여쭈었다 "좋은 친구들과 사귀며 함께 공부한다면 이미 도의 절반을 달성한 것과 같지 않습니까." 이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지 말라. 좋은 벗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은 도의 전부를 이룬 것과 같다."
아트앤스터디 인문숲 강의실에서 ‘벗’에 대한 연암의 두 텍스트를 읽었다. 하나는 박제가(朴齊家)의 <북학의北學議>에 서문으로 부친 <북학의서北學議序>였고, 다른 하나는 홍대용(洪大容)의 <간정동회우록乾淨衕會友錄>의 서문으로 쓴 <회우록서會友錄序>였다. 연암 박지원과 초정 박제가, 그리고 담헌 홍대용까지, 셋 다 이름만으로도 국사책 몇 페이지를 거뜬히 장식한 걸출한 북학파 선구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교유한 따끈한 흔적들. 어느 시인의 말대로, “진정 높은 것들은 높은 것들 속에서, 진정 깊은 것들은 깊은 것들 속에서 나오게 마련”인가.
우 정
대체로 연암은 홍대용에게 부친 <간정동회우록>의 서문에서 홍대용이 몸소 겪었던 이상적인 우정의 상을 묘사하고, 박제가의 글에 부친 <북학의서>에서는 그러한 우정을 고사(枯死)시키는 조선의 정신적 궁벽함 · 폐쇄성을 묘사한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앞의 글은 활달한 편이며 뒤의 글은 무겁게 느껴진다. 연암의 제자이자 학문적 벗이었던 초정이 1778년 연암보다 먼저 청에 다녀와서 남긴 책이 바로 <북학의>다. 연암은 그 서문을 “학문하는 방도는 다른 것이 없다.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붙잡고 물어보아야 한다”(學問之道 無他, 有不識 執塗之人而問之可也)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 길가는 사람은커녕 가까운 ‘벗’들끼리도 서로 배우고 묻지 않는 당대의 분위기를 비판하고 있다.
고로, 우정이든 사랑이든, 사람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기심’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세계와 서로가 처한 환경, 더 나아간다면 서로의 실존적 위치까지를 끊임없이 궁금해하며 알고자 하는 의지야말로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밑바탕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렇듯 활짝 열린 호기심으로 유지되는 관계에 우리는 ‘참된 벗’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지 않을까. 연암은 담헌 홍대용이 중국 항주의 벗들을 사귀었던 장면을 묘사하면서 부쩍 신이 나 보인다. "…마침내는 결의하여 형제가 되었으니 서로 흠모하고 기뻐하기를 마치 욕심 부리는 듯하고 서로 등지는 일이 없기를 마치 저주하고 맹세하는 것 같아서 그 의리가 사람들을 감읍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終結爲兄弟, 其相慕悅也如嗜欲, 其相無負也若詛盟, 其義有足以感泣人者)
적
지금껏 읽은 <연암집>에서 연암이 서문을 써준 벗들의 면면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연암의 곁에는 수많은 벗들이 있어 그와 돈독한 우정을 나눴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제아무리 연암인들 어찌 ‘세상 모든 사람이 나의 벗’이라고 장담할 수 있었겠는가. 전호근 선생님은 과연 연암의 시 한 편을 불쑥 소개해주었다. “저물녘 용수산에 올라 그대를 찾았으나 오지 않았더군요.”(暮登龍首山, 候足下不至)로 시작하는 그 시엔, 젊은 시절 연암이 절친한 벗 유한준과 나누던 절절한 감성이 묻어있다. 허나 유한준과 연암은 차차 글쓰기에 관한 견해를 달리해 사이가 벌어지고, 마침내 유한준은 연암의 <열하일기>를 “오랑캐의 연호를 쓴 책”이라고 비방하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알아듣는 사람에게만 들린다. 아름다움을 모르는 벗과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고, 탁월함에 이르지 못하는 벗과 탁월함을 논할 수 없다. '당대 아웃사이더의 지적 회합'과도 같았던 연암학파의 우정은, 한편으로 우리에게 <참된 우정은 냉엄한 것>이라는 진실을 일깨워주는 것도 같다. "적을 만들 줄 모르는 사람은 친구도 만들 수 없다"고 어느 심리학자가 그랬던가. 온갖 견해와 풍문들로 질척이는 세계 속에서, 연암이 그러했듯 자신이 추구하는 진리를 차갑게 인식하고 그에 매진하며, 결코 비판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다. 그러면 가장 순수한 도반들을 구할 수 있을 지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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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해서 아름다운 ㅡ 전호근의 『연암집 읽기』 |
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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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해서 아름다운 ㅡ 전호근의 『연암집 읽기』 네 번째 강의
1. 추위는 가고….
전호근 선생님과 연암 박지원을 읽는 커리큘럼이 반을 지났다. 지난 1월 초부터 한 달여를 들락거린 아트앤스터디 인문숲 주위의 겨울바람도 어느새 뭉툭해지고 느슨해졌다. 누구나 느끼고 있듯, 올 겨울의 그 맹렬했던 추위도 이제는 어김없이 쪼그라들며 물러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 멈춰있는 것은 없다.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오며, 그렇게 모든 것은 변하고 있다.
2. 유하혜의 감동, 공자의 감
"노나라에 어떤 남자가 있었는데 이웃의 과부가 폭우로 집이 무너지자 그에게 와서 하룻밤 재워달라고 했는데 들이지 않았다. 과부가 유하혜는 성문이 닫힐 때 들어오지 못한 여자를 몸으로 따뜻하게 녹여주었지만 아무도 그를 음란하다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당신은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그는 유하혜는 그래도 되지만 자기는 안 된다고 하면서 “나는 유하혜를 따라하지 않음으로써 유하혜의 행동을 배우려 한다.”고 대답했다. 공자가 그 이야기를 듣고 “유하혜를 이 사람보다 더 잘 배운 사람이 아직 없었다.”고 칭찬했다." ㅡ『詩經』
네 번째 텍스트로 우리는 <옛날의 중국을 버리고 지금의 조선을 써라>를 읽었다. 전호근 선생님이 이름붙인 저 강의록 제목에서의 ‘중국’과 ‘조선’은, 다분히 상징적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강의록에는 연암이 박제가(朴齊家)의 <초정집>에 서문으로 부친 <초정집서>와, 마찬가지로 이덕무(李德懋)의 <영처고>를 위해 쓴 <영처고서> 두 텍스트가 들어있다. 그리고 만약 연암의 이 두 글을 시적(詩的)으로 압축할 수 있다면, 아마도 연암이 들고 있는 위의 예화가 될 것이리라. 개인적으로 유아혜의 일화는 공자의 가르침 중 최고의 절창으로까지 느껴졌다. 뜬금없이 눈시울이 데워질 정도였다.
3. 고정된 윤리는 윤리가 아니다
"원칙은 구체적 상황이 지니는 특이성의 흐릿한 복제일 뿐이다. 원칙은 구체적인 책임에 대한 요구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 존 카푸토
“나는 유아혜를 따라하지 않음으로써 유아혜를 배우려 한다”는 말은 옛것을 수동적으로 따르지 않으려는, 고정된 윤리적 준칙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배움의 태도를 나타낸다. 그리고 그것을 포착하는 공자의 걸출함…. 누군가를 따라하지 않음으로써(혹은 정반대로 행동함으로써) 그를 배운다는 말은 겉보기에는 불합리하고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에서도 온갖 역설들이 겹겹으로 포개져있지 않던가? ‘옳은’ 생각과 ‘옳은’ 행동이라는 것이 어디 딱 부러지게 규정될 수 있던가? 존 카푸토의 말처럼, ‘원칙’은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저마다의 상황에 따라서 변할 수밖에 없는 유동적인 것이다. 화석화된 윤리는 윤리가 아니다.
4. 보라, 지금의 조선을
"견해는 자유지만 사실은 신성하다." ― 찰스 스콧
그리고, 그 어떤 원칙과 이념도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인식할 때, ‘사실’을 존중하는(아니, 존중할 수밖에 없는) 인식론의 싹이 틔워지기 마련이다. 화려하고 깔끔한 환상 속에서 세계는 구원되지 않는다.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채 둥둥 떠다니는 견해들의 범람 속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구체적인 ‘사실’의 세계에서 멀어져버린 사유는 이미 ‘죽은 사유’다. 연암이 박제가와 이덕무의 글을 치켜세운 것은 바로 그러한 죽은 사유들이 뒤덮고 있는 조선의 맥락 속이었다.
5. 머물지 않음에 대하여
"우정은 반드시 잔을 부딪칠 필요가 없다 / 우정은 반드시 의가 좋을 필요가 없다 / 우정은 간단하게 말해서 / 우리가 서로 영원히 잊지 않는 것이다." ― 왕멍
“사실을, 있는 그대로”라는 태도는, 때로는 냉정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촌스럽고 비루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당대의 성리학 엘리트들은 (조선이라는 '관념'이 아닌) 조선의 피혜한 현실을 도저히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18세기의 조선은 조선이고, 우리들은 21세기의 시끌벅적함 속에서 나뒹굴고 있다. "무릇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일 뿐이다"라는 연암의 말처럼, 모든 것들이 순간 순간 변화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어떠한 대상에도 얽매이거나 집착하지 말 것. 현대철학의 말마따나 언제나 유목하는 자세로, 그저 '있는 그대로'에 충실할 것…. 그러나 그건 꽤나 외로운 일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6. 마음의 추위
이 리뷰를 쓰기 직전, 우연찮게 연암의 절친한 벗이자 <영처고>의 저자이기도 했던 이덕무의 가난에 대하여 들었다. 어머니와 누이를 영양실조, 폐병으로 잃고 그 불효를 크게 슬퍼하면서도, 동상에 터진 손을 부여잡고 공부를 멈추지 않았던 이덕무…. 그리고, 막상 강의실에서는 대충 넘겨보았던 "새롭게 만든답시고 잔재주를 부릴 바에야 차라니 옛것을 본받다가 고루해지는 편이 낫다"는 연암의 말이 새로이 눈에 들어왔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봄은 오는데, 왠일인지 마음에는 삭풍이 한가득 밀려온다.
냉정해서 아름다운 ㅡ 전호근의 『연암집 읽기』 네 번째 강의
1. 추위는 가고….
전호근 선생님과 연암 박지원을 읽는 커리큘럼이 반을 지났다. 지난 1월 초부터 한 달여를 들락거린 아트앤스터디 인문숲 주위의 겨울바람도 어느새 뭉툭해지고 느슨해졌다. 누구나 느끼고 있듯, 올 겨울의 그 맹렬했던 추위도 이제는 어김없이 쪼그라들며 물러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 멈춰있는 것은 없다.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오며, 그렇게 모든 것은 변하고 있다.
2. 유하혜의 감동, 공자의 감
"노나라에 어떤 남자가 있었는데 이웃의 과부가 폭우로 집이 무너지자 그에게 와서 하룻밤 재워달라고 했는데 들이지 않았다. 과부가 유하혜는 성문이 닫힐 때 들어오지 못한 여자를 몸으로 따뜻하게 녹여주었지만 아무도 그를 음란하다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당신은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그는 유하혜는 그래도 되지만 자기는 안 된다고 하면서 “나는 유하혜를 따라하지 않음으로써 유하혜의 행동을 배우려 한다.”고 대답했다. 공자가 그 이야기를 듣고 “유하혜를 이 사람보다 더 잘 배운 사람이 아직 없었다.”고 칭찬했다." ㅡ『詩經』
네 번째 텍스트로 우리는 <옛날의 중국을 버리고 지금의 조선을 써라>를 읽었다. 전호근 선생님이 이름붙인 저 강의록 제목에서의 ‘중국’과 ‘조선’은, 다분히 상징적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강의록에는 연암이 박제가(朴齊家)의 <초정집>에 서문으로 부친 <초정집서>와, 마찬가지로 이덕무(李德懋)의 <영처고>를 위해 쓴 <영처고서> 두 텍스트가 들어있다. 그리고 만약 연암의 이 두 글을 시적(詩的)으로 압축할 수 있다면, 아마도 연암이 들고 있는 위의 예화가 될 것이리라. 개인적으로 유아혜의 일화는 공자의 가르침 중 최고의 절창으로까지 느껴졌다. 뜬금없이 눈시울이 데워질 정도였다.
3. 고정된 윤리는 윤리가 아니다
"원칙은 구체적 상황이 지니는 특이성의 흐릿한 복제일 뿐이다. 원칙은 구체적인 책임에 대한 요구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 존 카푸토
“나는 유아혜를 따라하지 않음으로써 유아혜를 배우려 한다”는 말은 옛것을 수동적으로 따르지 않으려는, 고정된 윤리적 준칙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배움의 태도를 나타낸다. 그리고 그것을 포착하는 공자의 걸출함…. 누군가를 따라하지 않음으로써(혹은 정반대로 행동함으로써) 그를 배운다는 말은 겉보기에는 불합리하고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에서도 온갖 역설들이 겹겹으로 포개져있지 않던가? ‘옳은’ 생각과 ‘옳은’ 행동이라는 것이 어디 딱 부러지게 규정될 수 있던가? 존 카푸토의 말처럼, ‘원칙’은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저마다의 상황에 따라서 변할 수밖에 없는 유동적인 것이다. 화석화된 윤리는 윤리가 아니다.
4. 보라, 지금의 조선을
"견해는 자유지만 사실은 신성하다." ― 찰스 스콧
그리고, 그 어떤 원칙과 이념도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인식할 때, ‘사실’을 존중하는(아니, 존중할 수밖에 없는) 인식론의 싹이 틔워지기 마련이다. 화려하고 깔끔한 환상 속에서 세계는 구원되지 않는다.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채 둥둥 떠다니는 견해들의 범람 속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구체적인 ‘사실’의 세계에서 멀어져버린 사유는 이미 ‘죽은 사유’다. 연암이 박제가와 이덕무의 글을 치켜세운 것은 바로 그러한 죽은 사유들이 뒤덮고 있는 조선의 맥락 속이었다.
5. 머물지 않음에 대하여
"우정은 반드시 잔을 부딪칠 필요가 없다 / 우정은 반드시 의가 좋을 필요가 없다 / 우정은 간단하게 말해서 / 우리가 서로 영원히 잊지 않는 것이다." ― 왕멍
“사실을, 있는 그대로”라는 태도는, 때로는 냉정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촌스럽고 비루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당대의 성리학 엘리트들은 (조선이라는 '관념'이 아닌) 조선의 피혜한 현실을 도저히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18세기의 조선은 조선이고, 우리들은 21세기의 시끌벅적함 속에서 나뒹굴고 있다. "무릇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일 뿐이다"라는 연암의 말처럼, 모든 것들이 순간 순간 변화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어떠한 대상에도 얽매이거나 집착하지 말 것. 현대철학의 말마따나 언제나 유목하는 자세로, 그저 '있는 그대로'에 충실할 것…. 그러나 그건 꽤나 외로운 일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6. 마음의 추위
이 리뷰를 쓰기 직전, 우연찮게 연암의 절친한 벗이자 <영처고>의 저자이기도 했던 이덕무의 가난에 대하여 들었다. 어머니와 누이를 영양실조, 폐병으로 잃고 그 불효를 크게 슬퍼하면서도, 동상에 터진 손을 부여잡고 공부를 멈추지 않았던 이덕무…. 그리고, 막상 강의실에서는 대충 넘겨보았던 "새롭게 만든답시고 잔재주를 부릴 바에야 차라니 옛것을 본받다가 고루해지는 편이 낫다"는 연암의 말이 새로이 눈에 들어왔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봄은 오는데, 왠일인지 마음에는 삭풍이 한가득 밀려온다.
책 : 연암집 세트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747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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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중국을 버리고 지금의 조선을 써라' |
그**월햇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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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강 : 옛날의 중국을 버리고 지금의 조선을 써라
초정집서를 보면 연암은 무조건적으로 옛 것을 본받거나 무작정 새롭게 만드는 자세를 경계했다. 옛 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새롭게 만들면서도 전아할 수 있는 글을 좋은 글이라 하였다. 무슨 일이든지 극단적인 것은 아니하느니만 못하므로 적절한 그 정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박제가의 글을 빛내도록 연암이 쓴 초정집서를 보면 옛 것의 지혜로움을 본받되 그 방식을 창의적으로 계승하는 바에 대해 알 수 있다. 제나라의 손빈은 용맹한 위나라와 싸울 때마다 후퇴하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조금씩 아궁이 수를 줄여 나갔다고 한다. 첫날은 10만개 둘째 날은 5만개 셋째 날은 3만개, 이렇게 줄여나가는 아궁이 수를 보고 위나라는 제나라의 군사들이 무리지어 도망갔다고 생각했고, 이 추측을 이용해 손빈은 위나라 군을 섬멸 했다고 한다. 이러한 지혜를 역으로 계승한 바가 있으니 우승경의 ‘아궁이 수 늘리기’가 있다. 우승경은 오히려 아궁이 수를 늘려 적으로 하여금 더 많은 군사가 모이고 있다고 추측하게 했고 그 결과 적들로 하여금 먼저 후퇴하게 하였다. 손빈의 병법을 곧이곧대로 따라 하기보다는 변통해서 기지를 발휘했다는 점에서 창의적 계승을 몸소 실현했다 할 수 있다. 연암은 사물이나 사상의 절대적 존재를 지지하지 않았다. 고로 ‘법고’와 ‘창신’ 그 둘의 조화를 지향한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영처고서에서 보다 잘 발전되어 나타난다. 연암은 옛날 시와 오늘날의 시가 비슷하지 못하다는 자패의 혹평을 인용해 이에 대항한다. 연암은 옛날과 오늘날을 연속선상에 두고 비교한다. 사실 이 둘을 구별하는 명백한 기준은 없다. 상대적인 차이이며 과거의 것들도 결국 그 언젠가의 하나의 지금 이였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옛것을 받아들이되 그 권위와 명예에 압도당하지 않아야 한다. 영처고서에는 그러한 권위나 지식에 얽매이지 않은 시각에 대해 나온다. 관운장에 대한 지식이 있는 성인 남녀와 전혀 정보가 없는 어린아이들을 비교한 예가 있는데 성인 남녀들은 그 좌상 아래에 들어가면 혼이 빠질 정도로 무서워하나 관운장에 대한 지식에 얽매이지 않은 아이들은 흙덩어리로서의 새로운 그 자체로 받아드린다는 이야기이다. 연암은 옛 것을 절대적으로 거부한 것이 아니다. 전통적 글쓰기를 지향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근대적 글쓰기를 추구했다는 것이 연암의 특징이다. 융통성 있게 배우고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현재의 우리의 몫이다. ‘무에서 창조되는 유’라는 게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결국 모든 것은 현존하는 것에서부터 창의적으로 발전된다. 그러한 창조적 사고를 하는 게 우리가 현재 배우고 또 앞으로 지향해 나가야 할 가르침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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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는 감탄사가 절로 |
m**_j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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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의 글은 재미있다. 물 흐르듯 길고 유려하게 이어지는 문장도 재미있고, 무엇보다 그가 맛깔나는 입담으로 시원시원 쏟아내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이번에 연암은 한 성깔 하는(했던) "걸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역시나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는 그의 진정성이 진하게 배어있어 결국은 ''아~''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지키지 않음으로써 지킨다(이존당기 以存堂記)
어쩌다 보면 주변에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좋게 말하면 대범하고 나쁘게 말하면 경솔해서 본인은 악의가 없어도 자꾸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 가만 보고 있으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도 나오는, 그런 막걸리 같이 걸진 사람. 연암이 살던 때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나 보다. 장중거라는 이름을 가진 자인데, 본래 거리낌 없는 성격에 술에 취하면 호방함이 민폐로 이어지는 유형의 사람이다. 그런데 그 민폐가 보통이 아니었는지 고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광생(狂生, 미친X)이라고 욕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를 감옥에 집어 넣자는 소리까지 나오자, 중거는 지난 날을 후회하며 사람들의 비방을 피하기 위해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기로 결심했다. 문 앞에 ''이존(以存)''이라는 글자를 커다랗게 써붙이고 말이다. 주역에 나오는 ''용과 뱀이 숨는 것은 몸을 보존하기 위해서이다''라는 구절에서 취한 말이란다.
연암은 이를 보고 코웃음을 친다.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 자기 몸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뿐더러, 사람이 하루 아침에 변해 방 안에만 머무르면 오히려 괜한 의심만 불러일으키니 연암이 보기에 참으로 가소로웠다. 의기소침해진 중거가 연암에게 자기가 어디에 숨어야 하냐고 되묻자, 그에 대한 연암의 대답이 걸작이다.
"나는 자네의 몸을 그대의 귓구멍이나 눈구멍 속에 집어 넣을 수 있으니 비록 천지가 크고 사해가 넓다 하나 그보다 더 넉넉할 수 없을 것이다. 자네는 여기에 숨고 싶은가? 사람과 사람이 사귀고 일의 이치가 부합하는 데는 일정한 도리가 있으니 그 이름을 예라 한다. 자네가 자네 몸을 이기기를 마치 큰 적을 꺾듯 하여, 이것을 따라 절제하고 이것을 따라 몸가짐을 지켜서 그 차례에 맞는 것이 아니면 귀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면 몸을 숨김에 넉넉히 남은 곳이 있을 것이다. (중략) 마음은 귀나 눈보다 훨씬 범위가 넓으니 그 차례에 맞는 것이 아니면 마음 속에서 움직이지 않게 하면 내 마음의 전체와 대용이 참으로 마음 사이를 떠나지 않게 되어 어디에 가든지 몸이 보존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중거는 몸을 숨길 안전한 곳을 찾으려는 데만 몰두하지만 연암은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냈다. 사람들이 그를 해치려는 원인을 중거 자신이 지니고 있으므로 그가 어디에 있든 사람들의 비방은 항상 그를 따라올 것이다. 비방을 멈추게 하고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에게 내재된 문제의 원인을 스스로 없애는 수밖에 없다. 그의 문제는 예의에 어긋난 방종한 행동과 말투이다. 그런데 그는 예의가 무엇인지 몰라서 지키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절제력이 부족하여 자꾸 정도를 넘어섰던 것이다. 게다가 그가 날마다 가까이 한 술과 건달 무리들은 그를 점점 더 무분별하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와 정도를 넘어서려는 방종함을 스스로 절제하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예(禮)를 지키라는 연암의 조언은 지극히 유교적이다. 그런데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기발하고 재미있다. 중거가 당장의 위험만 피하기 위해 숨을 곳을 찾는 것이 얄팍한 술수일 뿐임을 연암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연암은 그것을 처음부터 비틀고 들어가는 대신에 중거의 눈높이에 맞춰 ''정말로 숨기에 안전한 곳''을 일러주려 한다. 예에 어긋나는 것을 몸 안에 들이지 않는다면 비로소 그 빈 자리에 스스로의 몸을 들여서 보호할 수 있다,는 전개는 연암의 직관력과 스케일이기에 가능했다. 자칫하면 싱거운 잔소리로 들릴 법한 말에 갖은 양념을 쳐서 잡다하지 않고 맛깔스럽게 내오는 능숙함이 대단하다. 그의 능숙함의 근저에는 법고창신의 정신이 깔려있다. 몸을 몸 안에 숨겨라. 이것은 "천하를 천하에 감춰라"는 장자의 말을 중거의 상황과 ''예''라는 키워드에 맞게 변용한 것이다. 현재의 흐름을 포착해내는 안목과 더불어 그 흐름에 맞춰 옛 것을 새롭게 되살려내는 법고창신의 정신. 그 덕에 중거는 "몸 안에 몸을 숨겨 보존하지 않음으로써 보존함"이라는 역설의 깨달음을 마음 깊이 얻을 수 있었다.
바위에 이름을 새겨봤자(발승암기 髮僧庵記)
이 글에서 연암은 김홍연이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연암이 풍악산에서 "나는 새의 그림자조차 끊어질 만큼 험준한 벼랑" 위에 새겨진 ''김홍연''이라는 이름을 보게 된 것을 시작으로 가는 곳마다 그 세 글자와 마주치게 된다. 그런데 김홍연을 알게 되는 경위를 말하는 연암의 입담이 정말 재밌다.
"그 뒤 나는 나라 안의 명산을 두루 돌아다녀서 남으로는 속리산과 가야산에 오르고, 서로는 천마산과 묘향산에 올랐다. 궁벽하고 외진 곳에 이르게 되면 스스로 세상 사람들이 이르지 못한 곳 끝까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늘 김홍연이 새겨놓은 글을 보게 되었는데 문득 화가 나 대관절 김홍연이 어떤 놈이기에 감히 이렇게 당돌하단 말인가 하고 꾸짖었다.
대체로 명산에 노닐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지극한 위험을 범하고 숱한 어려움을 물리치지 아니하면 기이하고 뛰어난 경관을 찾을 수 없다. 내가 평소에 지난 날의 자취를 생각해보면 벌벌 떨면서 스스로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다시 산에 오를 때가 되어서는 홀연히 지난 번의 다짐을 잊어버리고 가파른 바위를 디디고 아득히 깊은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썩어가는 나무다리와 말라버린 사다리에 몸을 붙이고서 종종 말없이 신명에게 빌어서 행여 스스로 돌아가지 못할까 벌벌 떨면서 두려워 하다가 크게 새기고 붉은 색 인주로 메운, 사슴 정강이 만한 글씨가 늙은 나뭇가지와 오래된 칡넝쿨 사이에 보이는 듯 마는 듯 서려 있으면 반드시 김홍연이었다. 그런데 이때에는 도리어 기쁜 마음이 마치 위험하고 어려운 때에 옛 친구를 만난 것 같아서 그 때문에 힘을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기어 올라가곤 하였다."
개성을 존중한다는 오늘날에도 일정한 사회적, 상식적 기준이 있어서 여기에 어긋나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다. 하물며 그 옛날, &#65279;떠돌아 다니면서 험한 바위산마다 자기의 이름을 새기는 김홍연의 행적이 얼마나 기이하게 비쳤을까. 하지만 연암은 그에게 ''괴상한 인물''이라는 딱지표를 붙이길 거부한다. 연암 스스로도 기이하다는 평을 듣고 있었기에 김홍연을 이해할 수 있던 것일까. 그는 우연히 만난 김홍연의 모습에서 젊은 시절의 호탕함을 알아채고 그를 인정한다. 저마다의 삶이 있고 저마다의 가치가 있을 수 있음을, 18세기를 살았던 연암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글에 의탁하여 세상에 전해지기를 바라는 김홍연을 위해 연암은 게송을 짓는다. 연암의 붓을 통해 김홍연이라는 이름 석 자와 함께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포용을 마음 속에 새겨볼 수 있다.
"까마귀는 온갖 새가 다 검은 줄 알고, 백로는 다른 새가희지 않은 것을 의아해 하는구나. 흰 새와 검은 새가 각기 옳다고 우기면 하늘도 그 송사에 싫증내겠구나. 사람은 모두 두 눈이 갖춰져 있지만 한 눈을 감아도 잘 보인다. 어찌 꼭 두 눈이라야 밝게 본다 하겠는가. 한 눈뿐인 사람들 사는 나라도 있다 하네. 두 눈도 오히려 적다고 의심하여 도리어 이마에 덧붙이기도 하고, 다시 저 관음불은 모습을 바꾸면 눈이 천 개나 되는구나. 천 개의 눈이 다시 필요할 것인가? 장님도 검은 것은 볼 수 있다네. 김군은 병에 걸린 사람으로서 부처에 의지하여 자기 몸 보존한다네. 돈을 쌓아 놓고 쓰지 않는다면 거지의 가난과 다를 것이 뭐 있겠나. 뭇사람들은 각기 자기 만족에 사는 법이니 꼭 서로 배울 것은 없지. 대심은 이미 뭇사람과 다른 길을 갔는데, 이 때문에 서로 의아하게 여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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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소쇄원에 가보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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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의 <담연정기>에는 "벽 틈에서 늙어 가고 있는 소나무 한 그루"라는 구절이 나온다. 벽 안에서도 아니고 벽 밖에서도 아니고 그 '틈'에서 늙어간다는 게 무슨 말일까. 담연정은 지금 없어졌지만 담양 소쇄원에서 이 같은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고 한다. 소쇄원을 두르는 야트막한 담은, 물길이 있으면 그 길을 위한 뚫린 구멍을 내놓고 있고, 나무가 있으면 잠시 끊어진 채 나무를 위한 틈을 마련하고 다시 이어져 있다. '담연정'의 늙은 소나무도 마찬가지로 그를 위해 잠시 끊어진 담 사이에서 한가롭게 가지를 늘어뜨리며 서 있었을 것이다.
소쇄원의 정경
담연정은 판돈녕부사 이공이라는 사람이 지은 정자이다. 연암은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공이 날마다 빈객들과 정자에서 소요하고 거문고를 타고 바둑을 두면서 스스로 흡족해 하니 맑고 한가하고 평온하고 훤함이 거의 남과 나의 경계를 잊어버리고 득실을 나란히 보는 듯 하였다." 조선시대 선비가 입신양명을 이룬 후에 가장 이상적으로 여겼다던 유유자적한 삶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상을 머릿속으로만 그려보고 시를 통해 아쉬움을 달래는 데 그친다. 많은 시조와 가사에서 그들은 속세와 완전히 단절된 채로 약간은 궁핍하게 살아가고, 자연을 벗삼아 무욕의 삶을 살고 싶지만 당장 임금을 보필하고 선정을 베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공은 멋진 정자도 짓고, 매일 찾아오는 손님도 많고, 그 많은 손님을 접대할 수 있고, 머리를 싸매며 해야 할 일 없이 '날마다' 그들과 함께 즐긴다. 심지어 욕심도 없고 치열하게 이익을 다투지도 않는 담박한 성품을 지녔다. 당시 사람들이 "세상에서 복을 온전하게 누린 사람"이라며 부러워할 법하다. 그런데 연암이 보기에 이공은 그 복을 누릴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연암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도하와 청장의 비유를 든다. 도하는 도랑이나 늪지에서 물고기를 잡기 위해 무진 애를 쓰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반면에 맑은 연못에 사는 청장은 별 다른 노력 없이 편안하게 다가오는 물고기를 잡아 먹는다. 인간도 그러해서 부와 명예를 절로 지니게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자꾸 비껴가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 이공은 전자에 속하도록 태어났다. 판돈녕부사는 실제로 해야 할 일 없이 왕족이나 외척을 예우하기 위한, 이를테면 명예직이다. 원래 부유하고 명예롭게 태어났기 때문에 더 많은 부와 명예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었고, 그 특권이 당연시되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기를 받거나 남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담박하고 원만한 성격을 잃지 않으며 이상적인 삶을 가꿔나갈 수 있었다. 조선시대보다 훨씬 많은 기회가 주어졌고 또 그에 대한 의식이 팽배한 현대에 '천리(天理)' 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선뜻 감이 잡히지 않는다. 다만 고정된 운명이라 이해하기에 협소한 오역인 것 같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만물의 결이라 이해하기에 너무 막연하다. 수많은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쌩뚱맞게 담양 소쇄원에 가보고 싶어진다. 자연 그대로를 따라 유유하게 얹혀 있는 소쇄원의 모습에서 생동감으로 꿈들대며 다양한 자연의 결을 읽어 보고 싶고, 그 결에 맞춰갈 때 얻게 되는 자유로움을 느껴보고 싶다. 그 흐름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으면 '천리에 따르는 삶'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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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의 능숙한 유려함과 진솔한 담백함, 거침없는 단단함을 닮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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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5천 년래 최고의 문장가라는 연암 박지원.
저번 학기 학교에서 고전문학 수업을 들을 때, 우리나라 문학의 최고봉에 오른 사람들을 쭈욱 살펴보았다. 물론 그 중에는 연암 박지원이 있었는데, 쟁쟁한 문장가들 사이에서도 연암에게는 유독 '최고의 문장가'라는 수식어가 강조되었다. 실제로 그가 살았던 18세기 당시에, 문인들 사이에서 연암의 문장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서 '소품문'이라는 새로운 문체가 확립되었다고 한다. 전통적인 고문(古文)에 반하는 그의 기발하고 생생한 문장은 당시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정도여서 정조가 시행한 문체반정의 주요 표적이 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놀라웠다. 지금까지 나에게 한자는 다만 뜻과 소리로 이루어진 글자일 뿐이었다. 그런데 한자로 이루어진 문장과 한문으로 이루어진 글이 뜻을 추출해내야 하는 '분석대상'이 아니라 '스타일'을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새삼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알고 싶어졌다. 사람들이 그토록 칭송하는 연암의 문장에 대해 알고 싶어졌고, 고전 문장 고유의 스타일을 느끼고 싶어졌다. 하지만 내가 들은 수업의 성격 상 한 학기 동안 우리나라의 쟁쟁한 문학과 문장가들을 다 살펴봐야 했기에 연암에 대해 깊이 파고들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배움에 뜻을 두면 길이 열리는 법! (응?-_-;;) 마침 아트앤스터디 인문숲에서 <<연암집 읽기>>라는 수업이 개설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시험을 코 앞에 두고 억지로 한자를 머릿속에 쑤셔 넣었던 과거는 뒤로 하고...이제는 배움에 대한 들끓는 욕망(!)으로 연암의 문장과 친해져 보리라 결심했다.
전호근 선생님과 함께 한 <<연암집 읽기>>의 첫 시간.
앞으로 8주 동안 연암이 남긴 글을 하나로 묶은 방대한 <<연암집>> 중에서 총 16편의 글을 살펴볼 예정이다. 처음 읽은 글은 <공작관문고서(孔雀館文稿序)>, 즉 공작관에서 지은 글집의 서문이라는 뜻이다. 이 서문에서 연암은 진실한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허위와 과장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된 문장을 비판하며 무엇보다도 '진실'을 중시했다. 또한 글을 쓸 때 억지로 거창한 것을 끌어들이는 것보다 "기와 조각이나 돌 부스러기인들 내 뜻을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주변의 소박한 일들에 대해 쓰는 것을 더욱 진실된 것으로 여겼다.
그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여 거짓되고 병든 문장을 "귀가 울고 코를 고는 것"에 비유한다. 이명 때문에 저 혼자 귀에 들리는 "동글동글 별 같은 피리소리"를 이웃집 아이가 알아주지 못하자 슬퍼하는 아이와, 심하게 코 고는 것을 깨웠더니 코 곤 적이 없다며 벌컥 화를 내는 시골 사람이 있다.
일찍이 시골 사람과 함께 잠을 잘 적에 코 고는 소리가 우렁차서 어떤 때는 토하는 것 같고 어떤 때는 휘파람 부는 것 같고 어떤 때는 탄식하는 것 같고 어떤 때는 우는 것 같고 어떤 때는 불을 부는 것 같고 어떤 때는 솥 안의 물이 끓는 것 같고 어떤 때는 빈 수레가 덜컹거리는 것 같고 숨을 들이 쉴 때는 드르렁거리며 톱질하는 소리가 나더니 내 쉴 때는 마치 새끼돼지가 씨근대는 소리가 났다.
시골 사람이 코 고는 소리를 묘사한 장면인데, 장자의 <제물론>에 나오는 '땅의 피리'에 관한 구절을 연암의 스타일로 패러디했다. 장자가 대지와 자연이라는 거대한 스케일로 이야기를 이끌었다면, 연암은 솥과 수레와 같은 일상적인 소재들을 사용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진실되게 드러낼 수 있다면 말을 꼭 거창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연암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자기 홀로 아는 경우는 늘 남이 몰라줄까 걱정하고 자기만 깨닫지 못하는 경우는 다른 사람이 먼저 깨우쳐 주는 것을 싫어하니 (중략) 문장에도 이런 병통이있는데 정도가 더 심할 뿐이다." 연암의 따끔한 일침이다. 연암은 틀에 박힌 상투적인 문체에 빠져 오히려 뜻을 잃어버리고 형식에만 치우치는 글을 싫어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억지로 꾸미는 순간 글은 진정성을 잃어버리고 거짓이 된다. 다만 자기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라는 것이 좋은 글을 위한 연암의 첫 번째 조언이다.
그런데 공작관문고서 첫 머리의 "글은 뜻만 드러내면 그만"이라는 담담한 말투에서 그의 글이 간결하고 단순할 것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연암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절묘한 비유와 생생한 묘사를 곁들여 톡 쏘는 사이다 같은 신랄함으로 쏟아낸다. 또한 고사(故事)를 인용하되 그것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 적절하게 엮을 수 있는 능수능란함을 지녔다. 이러한 그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글이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이다. 여러 비유와 고사들이 그것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연암의 붓에 의해 자연스럽고 절묘하게 글 속에 녹아들어 있다(하지만 글쓴이에 의해 자연스럽게 녹아든 고사도 읽는 이의 무지함에 맞닥뜨리면 트인 길에서 자꾸 급정차하는 것 마냥 그 흐름이 끊기게 된다. 흠...). 연암의 처남 이중존이 우리나라 과거시험 답안지를 모은 책을 엮어 이름을 <소단적치>라 붙이고 그 서문을 연암에게 부탁했다. 소단적치는 풀이하면 '문단의 붉은 기치' 정도가 되는데, 이 모두를 이끌 수 있는 글이 연암의 <소단적치인>이니 전호근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야말로 '압권'이라 할 수 있다(압권은 본래 과거시험에서 1등 답안지를 다른 답안지들을 누를 수 있는 맨 위에 놓은 데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이 글에서 연암은 글을 병법에 비유하고 있는데, 글자를 군사로 뜻을 장수로 비유하는 데서 시작하여 제목, 운율, 대구, 함축 등을 각각 병법에 대응시키고 있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병법에 비유하여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연암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합변지권(合變之權-부합하게 하느냐 변통하게 하느냐의 권도)'이다. 병법은 고정된 법칙이 아니라 처한 때와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통할 수 있으며 변통해야 한다. 연암은 여기에 주목하여 글쓰기도 병법과 같다고 보았다.
국어시간에 이미 대구, 운율, 비유, 글의 논리성과 통일성 등에 대해 배웠지만 그것들을 실제로 활용하여 글을 써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수많은 사례와 친절한 설명이 있지만 그것을 곧이 곧대로 좇아가는 것은 다만 모방일 뿐이다. 글을 쓰려면 우선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하여 스스로 가야 할 길을 알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풀어내고 엮어내어 그 길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요령을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옛 것을 단순히 모방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여기에 맞춰 옛 것을 자유롭게 활용하고 변용하여 새로운 것으로 빚어내야 할 것이다. "합변지권은 때에 있는 것이지 법에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것이 연암이 내게 던진 두 번째 조언이다.
우리 역사 최고의 문장가로서의 연암의 진면목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아직 두 편의 글을 접해봤지만 연암의 글은 읽을수록 새로운 맛이 나고 생각해볼수록 새로운 의미가 나타난다. 연암의 능숙한 유려함과 진솔한 담백함, 거침없는 단단함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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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란 무엇인가? |
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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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란 무엇인가? — 전호근의 『연암집 읽기』 첫 번째 강의
전호근 선생님의 「5천 년래 최고의 문장을 읽는다: 박지원의 『연암집』읽기」 첫 번째 강의가 1월 10일 서울 마포 아트앤스터디 인문숲에서 시작되었다. 매서운 칼바람에 코끝이 찡했어도, 열댓 명 남짓한 수강생들이 들어찬 강의실 안엔 훈훈한 기운이 흘렀다. 갓 스물을 넘긴 듯한 대학생부터 4~50대의 '아저씨'와 '아줌마'에 이르기까지 수강생의 연령분포는 다양했다.
#1. 글쓰기란 삶의 기록이다
강의를 구구절절 소개하는 대신, 연암의 글들을 "맨살 그대로" 전달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후 바로 본론에 들어가는 전호근 선생님의 모습이 담백하게 느껴졌다. 전 선생님은 이덕무, 이서구, 박제가, 유득공 등을 아우르는 연암학파 혹은 '한시 4대가'의 우두머리로서의 연암, 주위 사람들의 설득에 못 이겨 과거를 치러 갔으되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거나 또는 그림을 그려 제출하는 기행(奇行)을 일삼은 연암, 그리고 파란만장한 18세기를 온몸으로 통과했던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성격의 연암 등에 대하여 간략히 훑으며 강의에 들어갔다.
전호근 선생님은 연암의 문장을 말하기에 앞서 다산 정약용의 "우리가 이미 옛사람들의 마음을 잃었기에, 우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을 상기시켰다. 글이란 결국 시대와 삶의 '마음밭'이 기록된 하나의 궤적이라면, 앞으로 이 강의실에선 앞으로 연암의, 정호근의, 그리고 우리 학생들 각각의 궤적이 포개지고 뒤엉키리라. 『연암집』에서 가려 뽑은 열여섯 텍스트를 중심으로 말이다. 헌데, 우리는 왜 연암의 문장을 읽는 것일까?
#2. 글쓰기란 뜻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전 선생님의 풀이와 해설을 따라서 우리는 <공작관문고서孔雀館文稿序>를 읽었다. <공작관문고서>는 연암이 안의(安義)의 현감을 맡던 시절 쓴 <공작관기孔雀館記>의 서문에 해당하는 글. 이 서문은 "글은 뜻만 드러내면 그만이다"(文以寫意則止而已矣)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글쓰기에서 엄격하고 단칼 같은 실용성을 주창한 셈이다. 이런 연암의 태도는 논어에서 "말은 뜻만 전달하면 그만이다"(子曰 辭達而已矣)라 말한 공자의 태도와 잇닿아 있다. "먼저 실천한 후에 여유가 남는다면 학문에 힘을 쏟아라"(行有餘 力則以學文)는 논어의 다른 문장도 참조할 만하다.
앞으로 두 달간 살펴보겠지만, 연암의 문장들은 괴팍한 '날것'들의 예로 가득하다. 장자의 <지북유>편에 등장하는 "道는 잡초, 기왓조각, 심지어 똥오줌 사이에도 있다"란 가르침에 충실한 것. 그는 이렇듯 논어와 장자의 맥을 잇고 있지만, 중국사상의 가르침을 체현하면서도 정통적인 문장을 답습하지 않고 그 문장들을 "가지고 놀 정도"로 자유로이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연암만의 위대성이 있단다. 전 선생님은 앞으로 우리들이 그것을 알게 될 것이리라 자신했다.
#3. 글쓰기란 혼자 웅얼거리는 게 아니다
연암은 글쓰기가 자칫 빠질 수 있는 '소아병'적인 함정에 대해서도 갈파하고 있는 듯하다. 연암은 "글을 잘 짓고 못짓고는 나에게 달려 있고 비방과 칭찬은 남에게 달려 있는 것"(得失在我 毁譽在人)이라고 단언한다. 글쓰기란 혼자서 웅얼거리면서 아니다. 글쓰기는 남을 감응시키는 일이고, 남을 설득하는 작업이며, 타인과의 소통의 일환이다.
자신이 공들이고 공들인 글을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소리는 연암 당대에든 지금이든 얼마나 많은가. 연암은 이를 준엄하면서도 유쾌하게 꾸짖고 있다. 연암에 따르면 이러한 불평은, 귀에서 앵앵거리는 자신의 이명(耳鳴)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잠결에 코골이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남을 감명시킬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을 알기 위해 이제 강의의 다음 텍스트로 넘어갈 차례다. 연암의 처남 지계공(芝溪公)이 엮은 <소단적치騷壇赤幟>란 책에 쓴 연암의 글을 읽어보자. <소단적치>는 지계공이 과거 시험에 합격한 100편의 글을 묶은 책이며,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은 바로 그 책에 부친 연암의 서문이다.
#4. 글쓰기란 전쟁이다
연암은 <소단적치>의 서문에서 "글을 잘 짓는 이는 아마도 병법을 잘 알 것"(善爲文者, 其知兵乎)이라고 글쓰기와 전쟁을 비유한다. 연암은 유려한 문장들을 통해 이 비유를 전개하는데, 그에 따르면, "글자는 비유하자면 군사이고, 뜻은 비유하자면 장수이며, 고사를 다루는 것은 전장의 진지이고, 글자를 묶어 구와 장을 이루는 것은 대오를 지어 행진하는 것과 같다. 운율을 맞추어 아름다운 표현으로 빛나게 하는 것은 징과 북을 치고 깃발을 휘날리는 것과 같고, 앞뒤의 문구가 서로 호응하는 것은 봉화이고, 비유는 기병을 달리게 하는 것이며…."
연암은 글을 쓰는 것은 마치 용모를 꾸미는 것과 같아 거짓으로 근엄한 체하여 엄숙한 척하는 것은 오히려 ‘쥐약’과 같은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연암이 글쓰기를 위해 하찮은 것을 버리지 않는다 해서, 그가 중국의 고사를 인용하는 데 인색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이것이 연암집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고,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상당히 집중해야 했던 이유다) 말하자면, 연암은 글쓰기에 관하여 느슨한 아마추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프로'였으며, 그가 글쓰기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엄청난 공부를 했음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지계공의 말에 따르면, 연암의 책 읽기는 마치 "인정사정 없는 옥관이 옥사를 판결할 때 사소한 것이라도 모두 따져 심문하는 듯했다"고 한다.
#5. 글쓰기란 ‘새롭게 읽는 것’이다
정호근 선생님은 두 시간이 넘는 강의동안 단 1~2분도 느긋하게 흘려보내지 않고, 마치 전쟁하듯, 연암의 풍성하고 화려한 글을 풀이해주며 강의를 진행했다. 강의는 여유 있기보다는 빡빡했다. 그러나 수업에 참여한 교실 안의 모두들, 한자와, 사서삼경과, 옛 중국 고사들의 숲속에서 기분 좋게 헤엄치는 것이 느껴졌다. 글쓰기에 관한 연암의 두 텍스트를 읽는 강의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필자는 첫 강의를 통해 적어도 연암 박지원의 문장들에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는 '재미'와 '힘'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듯싶다. 전 선생님은 "고전의 최후의 결정자는 결국 고전을 읽는 사람"이라면서 필자를 포함한 학생들의 분투를 기원했다. 굳이 선생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이왕 『연암집』이라는 고전을 꺼내들었으니 모두들 그의 빛나는 문장들을 통하여 무언가를 듬뿍 얻어가리라고 다짐하고는 있을 게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아, 그러니 당신들도 『연암집』을 어서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느 순간, 전 선생님을 비롯한 이곳 강의실의 학생들이 연암의 말처럼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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