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견되고 있는 동시대 사유의 선구자, 세르미셸 세르는 우리가 탐구하는 ‘동시대 사유의 지형’을 형성한 당사자라기보다는 그 스승의 세대에 속하는 철학자이다. 그렇지만 프랑스 철학계에서도 고립된 인물이었고 가장 독특한 스타일을 유지했던 이 낯선 철학자는 철학계에서도 충분히 연구되지 못했다. 하지만 세르는 과학과 시, 철학을 넘나드는 사유로 브뤼노 라투르와 같은 새로운 사유의 주창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재발견과 연구를 통해 점점 커지고 있는 사상가이기도 하다. 부르바키의 현대 대수학, 사이버네틱스 이론 등 최신의 과학기술 지식을 역사와 철학을 통해 사유하며 자신만의 길을 걸었던 세르, 그가 어떻게 우리 시대의 사유를 선취하고 있는지 만나 보도록 하자.
루크레티우스와 물리학의 탄생
헌신적인 학자의 오랜 노력 덕분에 우리에게 소개된 『물리학의 탄생』은 기이한 책이다. 형식적으로는 고대 원자론자로 알려진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책이다. 그렇지만 과학사와 철학사를 넘나들면서 루크레티우스의 고대 철학은 단순한 원자론적 유물론이 아니라 클리나멘(어긋남)으로부터 혼돈, 흐름, 소용돌이를 통해 세계의 생성과 본질을 탐구하는 가장 현대적인 철학적 고전으로 새롭게 읽힌다. 그 과정에서 물리학은 자연과의 계약이 되고, 역사는 물질의 흐름과 공명하며, 삶과 죽음은 거대한 정보의 순환 속에서 새로운 의미로 드러난다. 이렇게 경계를 무너뜨리는 전방위적 사유가 함축적이면서도 시적인 문장으로 아름답게 펼쳐진다.
동시대 사유의 궤적을 찾는 여정
이승현 강사는 21세기의 ‘지금, 여기’를 읽어내기 위한 사유들, 그러한 사유들의 궤적과 지형도를 파악하려는 연속강좌의 대장정을 진행 중이고, 이번 강좌는 세 번째의 시간에 해당한다. 물리학과 사이버네틱스를 다룬 두 번의 강좌 이후, 정보이론적 관점에서 물리학과 역사, 철학을 새롭게 읽어내며 우리에게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어 보였던 세르가 위치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 될 것이다. 낯설고 어렵지만 당대의 철학적 사조들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길을 걸었던 사유의 시인 세르를 만나보면 왜 그가 우리 시대에 소환되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