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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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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 명쾌! |
이*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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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고대철학 강좌만 듣다 요즈음 들어 미학에 마음이 동해서 들은 강좌입니다. 트렌드하고는 거리가 먼~ 나이라서 현대예술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키워드는 낯설지 않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현대적 가치들에 새삼 놀라고 갑니다. 두고두고 들어볼만한 강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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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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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본 지는 좀 되었는데.. |
박*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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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강의평을 남기네요. 강의 본 건 작년이었는데. 저에게 이 강의는 제가 그 동안 뉴스나 책에서 많이 듣고 봤던 예술 용어에 대해서 개념을 잡아주는 의미가 있었어요. 현대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몇 번 들어봄직한 개념들을 명확히 이해하게 해준 강의였습니다. 키워드 사전이라는 강의 제목이 딱 맞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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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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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습니다. |
채*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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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의 진짜 재미있습니다. 다만 강의 제목이 조금 거창하달까... 그런 감이 있어서 시작이 조금 망설여지기는 했습니다. 막상 들으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닌데요, 좀 난해한 주제들인 것 같기는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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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했던 현대예술, 키워드 중심으로 명쾌하게 정리! |
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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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예술이 늘 어렵고 복잡하게만 느껴졌는데, 이 강좌를 듣고 큰 틀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아우라'부터 '푼크툼', '디아스포라' 같은 핵심 키워드들을 단순히 사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대 사회의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어떤 예술 작품에 적용되는지를 명확하게 짚어주셔서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정윤수 교수님의 강의는 전달력과 통찰력이 뛰어나서 15시간이 넘는 긴 시간인데도 몰입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4강 '육체의 재현 - 걸그룹 현상을 중심으로'는 대중문화를 예술 이론으로 분석하는 시도가 흥미로웠습니다. 현대 사회와 예술의 관계를 깊이 있게 고민하는 분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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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현혹되지 마세요. 생각보다 별로입니다. |
박*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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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사전'이라는 제목을 보고 현대 예술 용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강의 내용이 키워드 해설보다는 강사님의 개인적인 비평과 감상에 치우쳐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2강 '도시와 산책자'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경험과 불만을 길게 이야기하셔서 정작 핵심 이론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습니다. 강의는 명쾌한 편이지만, 원하는 정보를 얻기 힘들었고, 중간중간 흐름이 끊겨서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수강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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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의 '아우라'를 이렇게 쉽게 이해하다니! |
이*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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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아우라' 편이 정말 좋았습니다. 복제 기술 시대의 예술 작품이 원본이 가진 고유한 아우라를 어떻게 상실하는지, 그리고 대량생산 시대의 예술이 갖는 의미를 명쾌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학부 시절 이해하기 힘들었던 개념인데, 영화 <금옥만당>, 찰리 채플린, 조슈아 벨의 에피소드를 통해 와닿게 설명해 주셔서 감탄했습니다. 단순히 이론만 나열하지 않고 대중적 사례를 들어주셔서 귀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덕분에 현대 예술에 대한 흥미가 배가되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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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시선과 몸에 대한 깊은 성찰 |
정*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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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 '시선'과 7강 '정체성' 부분이 저에게 가장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시선이라는 프레임에 갇히고, 우리의 몸이 어떻게 재현되고 소비되는지에 대한 성찰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저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였습니다. 얼마 전 SNS에서 제 사진이 '대상화'되는 경험을 겪었는데, 이 강의를 듣고 그 불쾌함의 근원을 이론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어 좋았습니다. 강의의 깊이가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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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와 언캐니, 혼란스러웠어요. |
김*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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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그로테스크' 편이 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로테스크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것은 좋았는데, 현대 문화의 사례로 넘어가는 부분이 다소 비약적으로 느껴졌고, '언캐니(두려운 낯설음)' 개념과 너무 섞여서 명확한 구분이 힘들었습니다. 강의 시간이 워낙 길다 보니 모든 것을 다루려는 욕심이 앞섰던 것 같아요. 전반적인 큰 줄기는 좋았지만, 일부 키워드 해설은 더 간결하고 핵심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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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지 않은, 살아있는 인문학 강의 |
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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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의는 자칫하면 지루해지기 쉬운데, 정윤수 교수님의 강의는 시사적인 이슈나 대중문화 현상을 적절히 섞어주셔서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축구 칼럼니스트 출신이라 그런지 비평의 시선이 날카롭고 유머러스한 부분도 있어서 재미있게 완강했습니다. 특히 5강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의 비교 분석은 매우 흥미로웠고, 현재 한국 사회의 자기혐오와 경외심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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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강의, 다만 자료 다운로드가 불편했어요. |
강*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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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내용과 교수님의 명쾌한 설명에 매우 만족합니다. 현대예술의 난해함을 해소시켜주는 최고의 강좌입니다. 다만, 강의 자료를 다운로드 받는 과정이 조금 번거로웠습니다. 공지된 위치에서 찾기가 어려웠는데, Q&A 게시판을 보니 저 말고도 다른 수강생들도 비슷한 불편함을 겪은 것 같더군요. 강의의 질은 최상이지만, 시스템적인 부분이 개선된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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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크툼에 대한 새로운 이해 |
문*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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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 '시선' 편에서 푼크툼(punctum)에 대해 다루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순히 롤랑 바르트의 사진 미학 개념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우리의 일상적 시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해 주셔서 좋았습니다. 사진을 찍거나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시선과 주체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들은 후 미술관에 갔을 때 작품을 보는 방식 자체가 바뀌는 경험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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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높은 편, 초심자에게는 비추천 |
최*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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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예술에 대한 기초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들었는데, 초반 아우라 개념부터 조금 버거웠습니다. 물론 강사님이 쉽게 풀어주려고 노력하셨지만, 워낙 다루는 주제들이 깊고 철학적이라 완전히 따라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강좌 제목처럼 '기초 트레이닝'이라기보다는 중급 이상의 심화 과정에 가깝다는 느낌입니다. 저 같은 초심자는 관련 서적을 먼저 읽어보고 듣는 것을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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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와 호모사케르, 지금의 우리 이야기 |
백*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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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8강 '디아스포라와 호모사케르'는 지금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다루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리적 혹은 정신적으로 '고향을 잃은' 디아스포라의 감각과, 법의 보호 밖에 있는 '벌거벗은 삶', 호모사케르로서의 현대인을 연결 지어 설명하는 통찰력이 놀라웠습니다.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저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아 위로와 동시에 현실 인식을 얻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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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의 날카로운 시각이 살아있는 강좌 |
공*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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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로서의 강사님 시각이 강하게 반영된 강의입니다. 단순히 학술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그 내용들이 현실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대중문화의 새로운 이해'나 '거대 도시와 작은 인간' 같은 주제를 다룰 때 사회학적, 철학적 분석이 깊어서 좋았습니다. 다만, 가끔 강사님의 개인적인 비판이나 분노가 길어져서 핵심에서 벗어난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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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강을 고려 중인 명강의 |
유*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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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미술을 전공했는데, 학부 때 들었던 미학 강의보다 훨씬 명쾌하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현대 예술의 다양한 갈래를 키워드로 꿰뚫어 보는 시야를 얻었고, 특히 작업하는 데 필요한 영감을 많이 받았습니다. 교수님의 다음 강의가 기대될 정도입니다. 6개월 수강 기간이 넉넉해서 복습하며 다시 들어볼 생각입니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를 이해하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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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에피소드는 좋았지만 시간이 아쉬워요 |
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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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중간중간 강사님의 경험이나 관련 에피소드들이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강좌당 110분~130분 정도로 너무 길어서 끝까지 집중하기가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내용이 좋기 때문에 차라리 강의를 10강이나 12강 정도로 나누고 시간을 줄여서 구성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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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타 콤플렉스와 가족주의? |
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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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에서 걸그룹 현상을 분석하며 '로리타 콤플렉스'와 '가족주의'를 대비한 부분이 논리적으로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두 개념의 연결고리가 약했고, 지나치게 단정적인 해석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중문화 비평은 흥미로웠지만,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해당 주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수강생이라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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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깊이 있는 인문학을 만났어요 |
송*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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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볍고 휘발되는 지식들만 접하다가 오랜만에 뼈대 있는 인문학 강의를 들었습니다. 현대예술이라는 복잡한 미로를 헤쳐나가는 '약도'라는 표현처럼, 이 강의를 듣고 나서 예술 작품과 사회 현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특히 벤야민, 아도르노 같은 사상가들의 개념을 현대적인 맥락에서 재조명해 주신 것이 좋았습니다. 지적인 갈증을 해소시켜 준 훌륭한 강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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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차고 재미있습니다. |
조*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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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강좌 한 강좌 진행될 때마다 얼른 끝나지 않기를 바랄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많이 들어왔던 현대예술 키워드들이지만 용어설명을 넘어 세상을 읽는 감각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흔들어놓는 좋은 강의였습니다. 작업하는 예술가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것 같습니다. 정윤수 문화평론가님의 새 강의도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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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나 저녁에 듣기에 적합한 강의 |
박*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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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이나 낮보다는 밤이나 저녁같은 감정적일 때 보면 좋은 강의 정윤수님도 말솜씨하나는 기가막힌 것 같다. 사람이란 존재가 맞는 말만 할 수도 없고 심지어 맞는 말도 하면서 재미까지 있을수는 없으니 그게 참 아이러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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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용 님:) 낮보다는 밤이나 저녁에 어울리는 강의라니! 더 듣기 좋을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아트걸 (1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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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 |
월**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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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7년 워싱턴 포스트지의 요청으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은 지하철에서 연주를 했다. 그의 명성에 기대지 않고 순수하게 그의 연주에 감동한 사람은 얼마나 됐을까? 45분간의 연주로 번 돈은 몇 십 달러. 그의 연주회 티켓은 한 장당 평균 100달러. 지하철에서 연주하기 불과 며칠 전의 연주회는 몇 개월 전부터 매진 상황! 2 영화 <금옥만당> 中. 요리 대결을 심사하던 전문가들은 곰 발바닥 요리와 원숭이 골 요리에 온갖 수식어를 출동시켜 그럴 듯한 평을 내놓는다. 곰이나 원숭이는 포획이 금지된 동물이라 경찰이 등장하는데...... 이걸 요리한 사람, 대회 주최자 모두 잡혀갈 상황. 하지만 양쪽 모두 가짜 곰발바닥, 가짜 원숭이 골임을 밝힌다. 향이 어쩌네, 식감이 어쩌네, 원재료가 어쩌네 라고 한 이 인간들, 어쩌나. 3 [찰리 채플린 닮은꼴 대회]에 우연히 출전하게 된 찰리 채플린. 얼마나 굉장한 사람들이 많았던 걸까. 진짜 찰리 채플린은 [찰리 채플린 닮은꼴 대회]에서 무려 3등이나 했다고. 4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정말 알고 있는가? 아니, 알 수 있는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아우라가 아니라 명백히 그 실체가 있는 것들에도 우린 혼동을 하곤 한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정확히 집어낼 수 있는가? 콜라와 펩시, 스타벅스 커피와 맥도날드 커피, 명품백과 특A급 이미테이션...... 당신은 확신할 수 있는가? 그것이 그것만이 가질 수 있는 향취를 지녔고, 그래서 구별할 수 있다고. 5 <현대예술 키워드 사전> 1강 진짜에서만 느껴진다는 아우라를 난 감지할 수 있을까, 백아의 벗 종자기처럼. 종자기처럼 지음의 경지에 이르면 그 아우라를 볼 수 있을까? 봄으로써, 봐도 볼 수 없던 그 세상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과 볼 수 없기 때문에 있다고 믿는 게 아닐까 하는 불신 사이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도슨트를 들어도 이해는커녕 용납조차 안 되는 작품들이 있는 건 나의 무지 탓인 걸까, 아니면 현대 예술이 원래 그 모양인 걸까를 이 수업을 듣고 나면 결론 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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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지나치게 산뜻한 관계 |
월**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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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산에 가면 어디 가야 해요?" "서울에 갈 만한 데가 어디에요?" 이런 질문에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무엇을 볼지, 무엇을 할지를 정해놓고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여행인가? 그건 소비다. 문화적 욕망을 충족시키면서도 꽤 남들과 차별화할 뭐, 그렇고 그런 "거리". 모든 공간은 수집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2. 나그네가 하룻밤 묵어가자 청하는 시대는 여행에 불편함은 있을지언정, 생활이 있었고, "다름"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미 인터넷으로 숱하게 봐버린 것들을 실제로 보는 정도가 되어버린 지금의 여행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매년 호주로, 미국으로, 중국으로 어학 연수 등을 가면서도 "나를 찾는 여행"이란 과장된 수식어를 붙이는 것을 보고 듣는 데에도 나름 익숙해졌지만 온갖 의미를 부여하는 그들의 행위에는 질릴 대로 질렸다. 관광에서 과연 뭘 얻을 수 있을까, 이곳에서도 찾지 못한 자신을 대체 어디서 찾겠다는 거냐고 조소하곤 한다. 여행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 관점으로 보자면 인간은 이 한 세상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에 불과하고, 나도 여기 저기를 다니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과잉된 의미 찾기는 자연스레 이미지를 사는 것으로 이어지곤 한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허름한 원주민의 집이나 사막 한가운데 천막 안에서 우유죽을 들고 있는 눈 큰 소녀, 유럽 대성당 등을 찍은 사진을 보면 미식거릴 때가 있다. 그것은 선망의 대상일 수도 있고, 타자화의 대상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본질이 없다는 것이다. 며칠간의 머무름으로 일방적으로 가하는 그 시선 끝에서 우리는 자아도취에 취해 그 이미지를 사고, 자랑질한다. 그래서 난 폭력적으로 카메라를 갖다대는 그 행위들이 불편하고 또 불편하다. 그저 먹는 행위에 불과할 뿐인데 갖은 미사어구를 붙여 눈동자네 뭐네 하는 이야기들을 듣는 것은 한 마디로 노이즈다. 3. 해운대 앞을 가로막은 높은 건물들. 베니건스, 스타벅스, 아웃백, 피부 관리실을 겸한 피부과, 인도 레스토랑, 퓨전 일식집들이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고, 해변엔 부산을 모르는 사람들만 바글거린다. <현대예술 키워드 사전> 2강에 나온 말처럼 지속적 인간 관계가 부재한, 생활이 소거된 장소가 되어버린 해운대, 명동, 북촌......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용산, 동인천...... 4. 계획도시 창원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유쾌하지 못하다. 물론 그곳을 기억하게 할 사람들이 없는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골목이 없는 그곳이 답답했다. 1차와 2차와 3차로 이어지는 동안 우리는 이 상가 3층에서 1층으로, 그러다 건너편 상가 1층으로 이동할 뿐이었다. 참, "창원의 집"을 추천하진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것이 왜 그런 형태로 그곳에 존재해야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으니까.
5. 도시 스토리텔링은 배려 없는 친절이다. 덕수궁 앞의 수문장 교대식이 사실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복장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영국의 것을 그대로 차용해와 그럴 듯 하게 만든 가짜라는 것, 어떤 문헌에도 수문장 교대식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 없다는 정윤수 선생님의 말에 허탈한 웃음만 나올 뿐. 헐. "장애우"란 소름끼치는 그 말과 이 잔혹한 현실의 대비처럼, 도시 스토리텔링은 그곳의 지금과 대비된다. 지나치게 친절하면서도 너무나 산뜻한 관계 속에서 사람과 도시는 서로를 외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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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
억압, 그로테스크 |
월**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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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로테스크는 억압에 대한 저항, 불편한 진실이다.
2. 어느 문화사업 관계자들이 패션사업 종사자가 하는 강연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보며, 의외라며, 자기네 사업 취지와 맞지 않다며 둘러서 비난(?)하던데 꽤 재미있었다. 그 곳에서 전시되는 작품들 중에 도슨트를 들어도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수준 이하의 작품들보다 그 패션사업 종사자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이상하게 xx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네요." 하며 자신들의 고급스런 취향을 어필하려는 건지 모르겠는 요상한 말을 하는데 하루 하루 입고 나가는 옷에 갖은 의미를 갖다 붙이는 작태도 짜증나지만 패션은 결코 문화사업이 아니다란 그 사고방식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새로운 디자인, 건축가 등에 환호하면서 상업 패션이라면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보려 하지도 않는 그 오만불손함은 어디서 나온 걸까. 물론 나 또한 패션사업에 종사하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패션에서 에코, 에코 하는데 진정한 에코는 더 이상 옷을 만들어내지 않는 거라고, 그러니까 올해의 트렌드는 에코입니다 라는 그 문구 자체가 싫다고, . 패션산업 종사자들에게 미안하지만 너네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지구환경을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이다. 물론 소비자로서 끊임없이 소비해온 것에 대한 죄책감도 고백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찝찝했다. 사실 이 시대에 뭔가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게 패션뿐인가? 멀쩡한 건물을 부쉈다가 다시 짓고 하지 않는가? 이상한, 종이 낭비인 소설, 짜깁기한 책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분명 어떤 패션에도 메시지가 들어있음을 우린 부정할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비비안웨스트우드와 알렉산더 맥퀸. [현대예술 키워드 사전]3강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듯 그들은 기존의 패션뿐 아니라 문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던 것들을 끌고 들어오기도 하고, 금기시 되던 것을 표현하기도 했다. 설사 그것이 그로테스크하고, 귀족적 취향이 아니라 한들, 그것이 어떤 메시지를 품고 있고, 단순히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함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기득권의 눈에 아름다운 것을 이야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을까? 3. 세상에 아름다운 게 얼마나 많은데 굳이 보기 불편한 걸 억지로 끌고 들어오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작가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또 뻔하디 뻔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패션 디자이너들도 있다. 저항을 말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고, 기득권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예술에 대해서만은 자신의 귀족적(?) 취향, 값비싼 것만을 골라낼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높은 안목을 은근히 자랑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중엔 지식인도 있고, 예술가도 있고, 노동자도 있지만 그 내면에는 기득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깔려 있음을 인정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사실은 그게 정말 그로테스크한 건지도 모른다. 귀족적 취향의 진보가 나쁠 건 없지만 그저 다른 취향이라 여긴다면 그걸 굳이 과시할 이유가 없을 텐데 남들보다 우월하다 여기는 그것이 꽤나 징그럽다는 것을 알까. 펑크를 하는 기득권이 이해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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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있지도 않은 소녀 |
월**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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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노래를 좋아하기도 한다. 미쓰에이 노래나 투애니원은 보는 재미가 있다. 카라나 티아라 등을 보며 뜨악해 하는 그 감정은 생기지 않으니까 상대적으로 편하게 듣는다. 너에게만 준다든지, 너밖에 없다든지 하는 가사도 아니고, 삼촌팬 의식 정도를 넘어선 과한 설정의 의상들도 아니라서(고양이손이라니...... 맙소사) 공감이라는 게 가능하다. 소녀시대, 카라가 "소녀를 소비"하게 하기 위한 유형이라면 투애니원, 미쓰에이는 워너비, 대리인 정도랄까. 한때 카라가 의상이며, 뭐며, 어설펐던 시절에도 카라에는 숨은 삼촌팬들이 존재했는데 사실 그 때야말로 "미완의 존재"였달까.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순수함? 그때 소녀시대보다 카라를 좋아하는 진골 삼촌팬들이 있었더랬다. 당시, 뼛속까지 삼촌팬 DNA를 지니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선 소녀시대는 지나치게 프로페셔널하다, 꾸민 티가 난다 등의 의견이 있었다.
-광고 등 개인활동면에서만 보면 미쓰에이나 투애니원 중에서는...... 가장 "소녀"틱한 멤버가 가장 잘 팔리고 있다. 그 그룹 이미지에 대한 기여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소녀 그룹에 대한 두 가지 시선. "로리타 컴플렉스(소녀애) vs 가족주의". 난 가족주의는 이해할 수 없다. 여성이 보이그룹을 좋아하는 것에도 다분히 성적 판타지 요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짐승돌의 등장은 이미 예견된 바(!). 난 한번도 오빠 삼고 싶어서 남자 연예인을 좋아한 적이 없다. 뭐, 노래를 잘한다거나 춤을 잘 춘다거나 옷을 잘 입어서 좋아할 순 있지만 오빠? 남동생? 대체 누가 여동생의 꿀벅지를 보고 싶어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노출이 없는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해서 로리콤이 가족주의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더럽혀지지 말아야 할 순결함이란 것 자체가 그것이 이 한국 사회에서는 남성이 여성을 바라볼 때 쉬이 버리지 못하는 그 시선이 아닌가. 90년대 당시, SES,핑클에 비해 베이비복스가 욕을 먹은 이유기도 하다. 뭐, 지금은 한없이 즐기지만 그래도 성역의 존재는 있기 마련이다. SES의 순수 소녀의 계보는 아이유에게로 이어진다.
-왜 소녀는 "소녀"가 되고 싶을까. 소녀는 "만들어진 표상"이다, 적어도 우리가 아는 "그 소녀"라면. 까르르 웃는 그 소녀. 의미 없이 웃고, 알 수 없는 그 소녀. 매혹적인 객체, 그러나 주체가 될 수 없는 그 소녀.
-난 한 번도 소녀였던 적이 없다. 중학교 시절, SES의 유진을 보고 "아, 저 사람이 소녀구나."라고 생각해버렸다, 웃기게도. 나도 소녀였건만 난 단 한번도 그 소녀가 되어본 적이 없다. [현대예술 키워드 사전] 4강에서 오형근 작가의 아래 사진을 봤다. 작가가 지시한 바는 전혀 없지만 하나같이 모델들은 "소녀"를 연기했다고.
-걸그룹을 좋아하는 것이 "소녀"라는 기호를 소비할 뿐이란 의견에는 공감할 수 없다. "섹시한 성녀"였던 아이비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로 한동안 활동을 하지 못했다. 하나의 기호에 불과하다면 어째서 그녀를 매도하고, 좋아하지 않게 된 걸까? 분명 나는 남성 연예인에게 감정 이입을 할 때가 있다. 욕망의 대상화는 전혀 없는 상태일까? 신들린 춤을 보여주는 그에게 난 감정이입을 하며, 대리 만족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라는 존재 자체가 성적 매력을 가지고 있을 때 쉽게 혹은 자주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다. 사실은 "이미 성적 대상화가 이루어진 상태의 이미지에서 그 기호를 소비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소비하는 존재와 소비 당하는 존재의 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현실의 소녀들이 걸그룹, 특히 센 캐릭터를 좋아한다고 해서 워너비, 강해지고자 하는 욕구의 분출로 보기만은 어렵다. 섹시하고 강한 여성 캐릭터를 좋아하는 남성도 분명 존재한다는 전제를 배제하고서라도 그 센 여성은 그 나름의 "소비될" 가능성을 지녔다. 세지만 충분히 섹시하다고 여겨지는 몸매를 지녔거나 센 가사의 노래를 부르더라도 한 멤버가 굉장히 소녀적이거나..... 여성 아티스트가 그렇다고 해서 성적 대상화의 굴레에 갇힐 수 밖에 없다라고 한정 짓고자 하는 목적은 아니다. 그 개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돈나처럼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걸그룹을 좋아하는 삼촌팬들을 푸는 방식에서 불행히도 "성적 대상화"란 혐의를 벗길 순 없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지만, 자우림의 김윤아를 좋아하던 한 남성에게 그 이유를 묻자 의외의 답을 들었다. 저 하이힐에 밟히고 싶다고. 여왕님이란 설정 하에서 그녀를 좋아하는 건가 싶어서 더 이상 그와 자우림 이야기는 할 수 없다. 우리 사이엔 분명 열지 말아야 할 문이 존재하는 듯 했다.
-난 갑자기 이 시가 불현듯 떠올랐다. <한 잎의 구멍>. 이 세계에서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매도 당하는 기분이라면..... 이 시에서 당신이 자유롭다면 재고의 여지가 있을 지도 모른다. 혹은 나 또한 남성을 대상화하기도 한다면 위로가 될까.
한 잎의 구멍 나는 한 구멍을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 같은 쬐그 만 구멍, 그 한 잎의 구멍을 사랑했네. 그 구멍의 솜털, 그 구멍의 맑음, 그 구멍의 영혼, 그 구멍의 눈물,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구멍의 순경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구멍을 사랑했네. 구멍만을 가진 구 멍, 구멍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구멍, 구멍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구멍, 눈물 같은 구멍, 슬픈 같은 구멍, 병 신 같은 구멍, 시집 같은 구멍, 그러나 누구나 가질 수는 없는 구멍 영원히 나 혼자만 가지는 구멍, 나밖에 아무도 가질 수 없는 구멍,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가혹한 구멍 *오규원의 「한 잎의 여자」를 덮어쓰다. -김언희의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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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적 시선 |
월**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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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해지고 싶다는 욕망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자아라는 것 그 자체가 쉽게 말하자면 "나"라는 것만 슬쩍 건져 올려 -나만 식별할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다른 색을 입혀 구별하는 건데 특별해지고자 하는 욕망이 없다면 대체 그는 누구인가? 신인가? 태초에 "이미" 특별한 존재가 아니고서야 그 욕망이 없을 수가 없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신 외의 존재에 거리를 두고, 판단하며 때로는 음미한다.
고백하자면 난 탐미주의자다. 정확히 말하자면 탐미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다. 공연을 볼 때조차도 어떠한 부분에서든 그것을 발견해버리고야 만다. 절제미일 수도 있고, 숭고미일 수도 있고, 섹시미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것을 입에 올리면 "대상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듣는 것이다. 물론 섹시미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정말 그렇다면 나는 빌어먹을 년이다. 난 너무나 많은 걸 대상화시키는 사람이니까. 궁금한 것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나와 다르게 공연을 보고, 책을 보고,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그 자체로만 볼 수 있는 능력 아니, 기능을 탑재했냐는 것이다. 젠장, 어떻게 내 것이 아닌 다리를 보고 대상화하지 않고 그 각선미에 감탄할 수 있으며, 내 것이 아닌 목소리를 대상화시키지 않고 그 자체로 감동하며, 또 어떻게 내 것이 아닌 지성미에 지극히 순수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인가. 그 거리가 그 대상을 더 분명하게 느끼게 해주지는 않는가? 난 아시안체어샷의 음악이 좋다. 가끔 멘트에서 살짝 거슬리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무대에서 그들은 정말 섹시하다. 이들을 성적으로만 소비하고, 그들의 몸을 파편화하여 즐긴다면 그것이 문제시될 수 있지만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미"를 이야기하는 것을 죄악시할 필요는 없다고 나는 결론 내린다. 우리는 공부를 할수록 "나쁜" 단어와 "착한" 단어를 구별하려고 한다. "대상화"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 성향 중 하나이며, 그것이 어떻게 악용되는가를 우린 이야기해야 하지 않은가? 이미 진부해져버린 오리엔탈리즘, 타자화, 대상화란 단어에 대해 우리는 정리를 해볼 필요가 있다. 낯설지 않은 단어에 대해 우린 지나치게 긴장감을 잃고 사용하곤 한다. -오리엔탈리즘이나 옥시덴탈리즘이나 웃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판소리가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는 뉴스가 나온 날, 어떤 국악인이 판소리의 우수성에 대해 일장 연설을 했고, 그 주위의 아주머니, 아저씨들 역시 타 문화를 폄하하며, 역시 우리의 것이 좋은 것이여~ 를 넘어선 과도한 샤바 샤바를 선보였다. 난 역시 참지 못하고, 약간의 불편함을 표시했는데 그 국악인은 감히 자기 앞에서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이지 않은 나를, 자국 문화에 대해 힐난이나 해대는 못된 학생 정도로 매도했다고 한다. 사실 옥시덴탈리즘 또한 자국의 문화를 지나치게 경외시함으로써 시작되는데 그렇다면 옥시덴탈리즘은 오리엔탈리즘에서 출발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에서 지금의 20, 30대에게 서양화가 신비로울까, 동양화가 신비로울까를 생각해 보자. 한 예로, [라스트 사무라이]를 보고 생긴 나의 불쾌감을, 잘나가는 일본에 대한 자격지심 정도로 여기며, 신비화된 일본에 대해 전혀 불편함을 못 느끼는 이들이 천지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설사 신비로움을 느끼는 그것이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을 학습한 것이라 해도, 옥시덴탈리즘을 정당화하기는커녕, 옥시덴탈리즘이 오리엔탈리즘보다 나을 것도 없고, 그것에 자유롭지도 못하다는 근거만이 될 뿐이다.
-북극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는 따뜻하고 풍요로운 삶을 약속하며, 에스키모 6명을 뉴욕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에스키모 6명은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서 자고, 먹고, 전시되었다. 2년만에 이들 중 감기 바이러스로 4명이 죽었고, 다행히1명은 고향땅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죽은 4명 중 한명인 키수크의 아들, 미닉은 자연사 박물관 건물 관리인에게 입양되었다. 하지만 키수크의 시체는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되었고, 후에 진실을 알게 된 미닉이 아버지의 유해를 돌려달라 말하지만 거절당한다. 미닉은 고향 땅으로 돌아가지만 에스키모 말을 모르는 미닉은 그곳에서도 이방인일 뿐이었고, 결국 그는 미국으로 돌아온다. 28세에 미닉은 독감으로 생을 마감했고, 그의 아버지 키수크의 유해는 미닉이 죽고 난 한참 뒤인 <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Give Me My Father's Body>이 출간되고, 비난 여론이 거세어지면서 반환되었다. 백인이 아닌 인종들의 삶은 자연사였을 뿐이라는 것, 이것이 바로 타자화다. 또한, 이런 맥락과 유사하게 나는 문학에서 남성 작가의 탐욕스러운 시선에 불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상대를 주체성이 없는 객체로만 취급하는 것, 그 약탈적 시선에 역겨움과 불쾌를 느낀다면, 역설적으로 그 객체가 주체성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키수크도, 미닉도, 여성도, 존재를 부정 당하는 청소부도 불쾌함을 느낀다. 그 시선이 지닌 의미를 분명히 알았고, 때문에 불행했고, 때문에 몸서리쳤다.
-날 영혼도 없고, 주체성도 없는 존재로만 볼 때, 날 아무렇게나 당신들이 원하는 이미지로만 소비할 때, 나는 굴욕감을 갖는다. 더욱이 이 사회에서 당신이 나보다 압도적으로 힘이 강할 때 난 당신들의 놀이에 장난감으로만 존재 당한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동시에 당신들을 조소한다. 당신들은 과연 이 사실을 알까? 아니, 오히려 그런 시선은 존재하지 않으며, 나의 피해 의식이라고 매도하지 않을까? 대체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언제 그런 시선이었는지 꼬치 꼬치 캐물으며 당신들을 납득시키라고 하지는 않을까. 정말 알고 싶다면 말이야.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이해하려고 노력해야지, 이해시키길 요구해서는 안되지 않니? 하지만 이 사회는 그렇게 말을 하지. 그럼 묻겠는데 반신자유주의자들은 자본가를 이해시켜야 하니? 그 몸 하나 하나를 따라가는 집요한 시선이, 아름다움을 말하지만 시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너의 공허한 말들이 불쾌하고, 그것이 당신들의 한계임을 말하는데 하나 하나 친절하게 지도까지 해주길 바라다니 너무 뻔뻔하지 않니? 나는 불행해야만 하는 예술가일 수도 있고, 문화적 객체여야만 하는 여성일 수도 있고, 무작정 소비되는 백수일 수도 있고, 선거철에만 동원되는 젊은이일 수도 있다. -드라마가 사람 망치는 방법은 가지 가지다. 주인공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배알도 없다. 지 인생은 없고, 주인공 일이라면 뭐든 거들고, 주인공의 인생에 더 집중하며, 주인공이 차마 제 입으로 하지 못하는 센 말들을 대신 해준다. 다큐는 좀 다른가? <현대 예술의 키워드 사전>에서 언급됐듯, "보고 싶은, 보여주고 싶은 그곳"과 "장애우"라는 친절하지만 불쾌한 그 시선과 어딘가 닮아있지 않은가.
-<은교>의 스틸컷은 분명히 불쾌하다. 그런데 이런 시선이 별로 낯설지 않다는 건 더욱 불쾌하고 화가 난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공범자가 되고 마는 그 한심함은 또 어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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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선생님, 강의자료는 어디서 받나요? |
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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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잘 듣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자료의 구성 및 설명이 잘되어~ 개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강의가 명쾌하고 전달력에도 호소력이 있어 개인적으로 참 좋습니다.
강의자료를 받으려고 합니다. 어디서 받으면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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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큘럼의 ''전체 강의 자료를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다운로드 항목에서 가능합니다. ^ ^ 아트걸 (12.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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