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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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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음란이라니. |
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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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소개글이 마음에 들어서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미술을 음란함과 연관해서 생각하는 것이 터부시되던 기존의 인식을 뒤엎어 미술은 음란하기 위해 존재했고, 미술은 애초부터 음란하다는 선언. ㅎㅎ 하지만 내용은 퇴폐적이지 않아요. 강사님의 자유분방하지만 체계있는 강의가 치명적으로 매력적인 강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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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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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함과 친구하고 싶다 |
김*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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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여년 전에 이 강의가 인문숲 강좌로 진행되고 있을때, 1강좌 1시간이 무료로 공개되는 날 운좋게 볼수 있었다. 보면 안될것을 훔쳐보는 것 같은 짜릿함에 흥미가 저절로 가면서도 ‘이런 것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나? 왜지?’하는 뭣 모르는 생각도 들었었다. 1년동안,그런 강의는 뭐 별로 도움도 안되고 쓸데도 없다는 생각에 외면하려했지만 결국 듣기로 결정한 나의 이 음란한 마음 한켠엔 흥미로운 강의를 보는 동안 내내 저 잘생긴 선생님께서는 왜 이걸 공부하려 하셨을까,왜 하필 이걸… 이란 생각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데카메론’ 영화의 한장면을 보여주셨던 그 강의에서 내 나름대로의 답을 찾은 것 같다. 누가있으면 절대 안보고, 누가 말해도 못들은척 하며 끊임없이 곁눈질만 하던 나같은 사람은 어느새 수녀님이 외치는 ‘기적이다’라는 그 한 말만 듣고 그 말을 믿으며 살아온 사람은 아닐까 하는 것을. ‘음란함’이란 말이 수녀님의 ‘기적이다’가 되어 얼마나 많은 사실들을 왜곡하고 감추어 왔는지를 말하고 싶어하시는것은 아닐까 하는 것을. 정말로 음란한 것은 자연스러울 수있는 것을 음란하다는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고 말하는 그 누군가의 마음은 아닐까 하는 것을. 모범생으로 대학에 입학한 어느 봄날, ‘인류학 개론’ 시간에 교수님께서 검지와 중지사이에 엄지를 쑥 밀어넣어 뺀 손의 목각( 이게 우리에겐 손으로 하는 욕이지만, 남미의 어느나라에선 행운을 빈다는 뜻이고 집정원에 우뚝 세워지는 장식품이랍니다)을 흔들며 강의실 들어오시던 그 날, 맨앞에 앉은 한 친구에게 물으셨죠. “ 네가 아는 제일 심한 욕을 나한테 해봐” .. 그 친구 그날 자리를 잘못 앉았지ㅠㅠㅠ. 머뭇머뭇 망설이다 거듭되는 재촉에 확신이라곤 전혀 없는 목소리로 그 친구가 대답했죠. “ 씨 ㅂ..새….끼……..' 입막고 키득거리는 몇명들 사이로 흐르는 정적.고개를 획 돌리고 그 친구를 바라보시던 교수님 曰 “ 야, 그게 욕이냐? 사실이지. 나… 씹새끼야. 건강한…. 너희들은…. 아니니…?” 그 어느 봄날 느꼈던 신선함이 다시한번 느껴지는 강의였다. 사실은 욕이 아니듯, 사실은 음란함이 아니다. 누군가가, 어쩌면 우리모두가 그렇게 만들었을 뿐. ‘음란함’이 어느새 친구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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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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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예시! |
김*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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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개설된 강의다보니 뭔가 더 현장감 있는 강의같네요 ㅎ 예시도 많이 들어주셔서 좋은 것 같아요!! 사실, 수업만 듣고 나면 약간 부족한점이 없지않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니 수업 들으시고 나서, 밑에 월간염병님께서 써주신 수업 후기를 같이 읽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이건 기술적인 문제인데요- 다른 강의에 비해서 오디오 음이 좀 작게 나오는 것 같아요 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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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외면해온 미술사의 진실 |
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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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애초부터 음란했다는 도발적인 명제에서 시작하는 강의가 매우 신선했습니다. 미술사를 배울 때 늘 고상하고 순수한 면만 강조되었는데, 이 강의를 듣고 나니 우리가 배운 미술사가 검열된 편집본에 불과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금기, 검열, 욕망이라는 렌즈를 통해 마네의 《올랭피아》가 왜 당대 스캔들이었는지 그 맥락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선정적인 주제가 아니라, 학술적 해체를 통해 미술의 존재 방식을 논하는 지적 탐구여서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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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는 좋으나 일부 내용이 장황함 |
오*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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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의 주제 설정과 강사님의 학술적 접근 방식은 훌륭합니다. 하지만 강의 중간중간에 영화나 문학 작품에 대한 인용이 너무 길어서 미술 작품 분석의 흐름이 잠시 끊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문화 전반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긴 하지만, 미술사라는 본 주제에 대한 집중도가 조금 떨어진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하기가 조금 힘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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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춘화 비교가 하이라이트! |
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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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춘화를 비교 분석하는 6강과 7강이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같은 성적 주제를 다루지만, 서양의 이상화된 누드와 달리 동양 춘화가 성행위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며 각기 다른 문화적 특성을 보여준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특히 일본 우키요에의 과장된 표현과 조선 춘화의 간결함이 각국의 성 관념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명쾌하게 설명해주셔서 통찰력을 얻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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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사고력을 키워주는 강좌 |
김*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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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강한 주제 때문에 선뜻 수강하기 망설여졌지만, 이연식 강사님의 냉정하고 분석적인 태도 덕분에 끝까지 편견 없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우리가 인식하는 '야하다'는 개념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는지, 남성 화가의 시선이 여성의 몸을 어떻게 대상화했는지 페미니즘적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제 도덕관과 미적 규범을 스스로 되돌아보게 만든 강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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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의 역설, '뿅점'을 발견하다 |
박*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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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와 검열의 문화사를 다룬 3강과 4강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남성 성기는 왜 무화과 잎으로 가려졌는지, 음모는 왜 금기였는지 등, 무엇이 가려지고 드러나는가를 통해 당대의 권력과 금기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수강후기에서 본 '뿅점'이라는 단어가 검열이 오히려 호기심을 부추기는 역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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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회화 속의 음란함이라니 |
이*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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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미술은 늘 거룩함의 상징이었는데, 그 속에 숨겨진 음란함과 에로티시즘을 파헤치는 부분이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했습니다. 롯과 딸들의 이야기, 수산나와 장로들 같은 성서 속 이야기들이 당대 화가들에 의해 어떻게 욕망의 캔버스로 재해석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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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 파탈 이미지에 대한 명쾌한 분석 |
한*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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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 파탈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주되었는지 클림트의 《유딧》 등을 통해 분석하는 부분이 좋았습니다. 거세 공포를 자극하는 여성이라는 남성 중심적인 시선이 어떻게 미술사에서 재현되었는지 이해하게 되니, 해당 작품들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마돈나나 마를린 먼로 같은 현대의 아이콘까지 연결한 통찰력도 훌륭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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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라면 꼭 들어야 할 인문학 강의 |
정*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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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야한 그림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성과 문화와 철학의 관계를 탐구하는 심도 있는 인문학이었습니다. 성애와 프라이버시, 현대미술의 음란성에 대한 논의는 오늘날의 문화 현상까지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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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가 풍부해서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
강*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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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베의 《세상의 근원》, 신윤복의 춘화, 그리고 《음란서생》, 《감각의 제국》 등 영화와 소설까지 종횡무진 넘나들며 예시를 들어주셔서 강의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주제를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풀어내니 재미있게 학습할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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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가 필요한 강의, 하지만 추천! |
박*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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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설명처럼 불편함을 느낄 수 있지만, 그 불편함이 왜 생기는지 스스로 질문하며 듣는 과정 자체가 최고의 배움이었습니다. 진정한 자유와 비판적 사고를 위해 금기를 깨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강사님의 메시지가 강렬하게 와닿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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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가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
이*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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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의를 듣기 전 봤던 모든 고전 회화 속 나체들이 이제는 순수함이 아닌 당대의 욕망과 금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누드와 알몸의 경계에 대한 강사님의 설명은 정말 명쾌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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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춘화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가 아쉬움 |
황*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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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 춘화에 대한 내용이 너무 짧게 다루어진 것 같아 아쉽습니다. 신윤복의 그림 외에 조선 성문화의 맥락을 더 깊이 다뤄주셨다면 한중일 비교 부분이 더 풍부했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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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즘과 대중매체의 음란성 |
배*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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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발명과 대중매체가 현대미술의 음란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 부분이 좋았습니다. 이미지가 범람하는 오늘날, 음란함이 어떻게 새로운 형태로 진화했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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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매력에 중독된 강의 |
신*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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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함이라는 주제에 대한 강사님의 자유분방하지만 체계적인 강의 방식이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예술 작품을 금기라는 관점에서 고찰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재미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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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젠더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필수 |
문*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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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시선으로 구성된 미술사를 해체하고, 누드 모델의 역사를 다루는 등 젠더 관점에서의 접근이 매우 유용했습니다. 페미니즘적 질문을 던지는 데 도움이 되는 강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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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의 근원을 탐구하는 시간 |
고*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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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느꼈던 불편함이 사실은 제 안에 뿌리내린 금기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해준 강의였습니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 속에서 진짜 배움이 일어난다는 강사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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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소설과 연결점 |
전*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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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정황과 절정의 묘사라는 맥락에서 연결한 분석이 아주 탁월했습니다. 문학과 미술이 욕망의 재현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다르게 접근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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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진 그림들의 이야기 |
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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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에 숨겨진 작품들과 검열의 역사를 추적하는 부분이 마치 탐정처럼 흥미로웠습니다. 음모나 성기에 대한 당대의 강박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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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함을 품격있게 설명 |
이*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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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쉽거리로만 이야기 되고 애써 외면했던 불편한 내용을 심도 있게 풀어주는 품격있는 강의였습니다. 많은 예시와 적절한 비유로 설명해 주셔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회화와 영화를 두루 섭렵해 가면서 설명해 주는 강의의 튼튼함이 좋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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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함이 치명적 미술인가요 |
이*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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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음란함이 치명적 미술인가요 강의를 들으면서 인간은 성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원초적 본능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수녀든 스님이든 양반이든 귀족이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창을 만들어 주어서 강의내내 즐거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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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강의입니다 |
한*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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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도 재미있고 다루는 작품들도 재미있어서 금방 다 들었어요. 작품은 지루하고 딱딱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니 재미있네요. 잘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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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이란 무엇인가 |
이*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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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음란함이라니 뭔가 안 어울려요 ㅎㅎ 미술에서 음란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궁금해서 강좌를 수강했습니다. 색다르고 재미있는 강의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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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음란함에 대한 사유 |
w**yong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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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생각하고 있지만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는 거시기한 주제에 대해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얻고, 해소될 수 있는 계기를 주는 강의인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주제를 담은 강의가 계속될 수 있어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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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하고 재미있는 강의 |
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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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주제가 일단 신선하고 다루는 예술작품들이 다 야해서^^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술 작품을 고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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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딸과 양생술> |
월**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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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식 선생님의 <치명적 미술 – 음란함에 대한 고찰> 7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금딸과 양생술>
1. 서사가 있는 관계 그 녀석과는 서사가 있는 XX를 했었지. 서사가 있는 XX는 뭔가? 그 너머엔 무엇이 있나? 엿보기라도 한 듯 내 머릿속을 침범해 오는 이 영상들은 뭐지? 하아...... 난 아무 것도 못 들은 거야. 몇 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핑크무비>가 불현듯 떠오르는 건 왜일까. 나의 상상력은 어찌 이리도 빈곤한건가? 가자, 저 너머로. 2. 춘화와 성 문화 <이연식, 음란함에 대한 고찰> 7강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춘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중국 춘화의 특징은 대담하게도 주로 야외 정사가 많다는 것인데 사실은 정원 안에서 하는 것이라고 한다. 춘화의 주인공이 부유한 남성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2명 이상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인공들의 성행위를 돕는 역할들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기묘묘한 체위의 행위들이 나오기 일쑤다. 나름 스펙타클(?)한 그림인지라 임팩트가 있어야 하는데 글쎄올시다. 나로서는 별 감흥이 없다. 그냥 그렇다. 일본의 춘화에서는 "우키요에 춘화"가 제일 많다고 한다. 엿보는 장면이 많이 나오고, 싱크탱크를 탑재한 것 마냥 놀라운 발상들이 나온다고. 그리고 성기에 대한 강한 페티시즘이 특징이라는데 과연 성기에 얼굴이 달려 있거나 굉장히 크게 그려진 모습이었다. 일본에서는 전쟁에 나가는 이들이 여성의 성기를 그린 춘화를 가지고 가기도 했고, 중국에서는 자신들이 학살한 여성들의 성기를 적을 향해 두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여성의 성기를 상서롭지 못한 것으로 보는 시선 때문이었는데 문득 선덕여왕과 여근곡이 떠올랐다. 셋 다 불쾌하긴 마찬가지다. 아, 싫다. 바티칸의 비밀 전시장과 중부 이탈리아의 여러 미술관 지하실에도 갖가지 남근의 수집품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귀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데 어쨌든 서양에서는 아래 그림처럼 남근을 굳이 밖으로 빼 남근 덮개를 따로 제작했다고 하는데 말이지...... 성기 노출증인 걸까. 적어도 이성에 어필하려는 목적이라면 200% 실패라는 건 확신할 수 있다. http://blog.naver.com/ego15/90137536122 (링크를 따라가시면 첨부된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어쨌든 우키요에 춘화를 보면 영화 [사쿠란]이 생각난다. 강렬한 색감, 원색적이지만 호기심을 갖게 하는 요소가 분명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억눌려있다 내지르는 듯한 시이나 링고의 목소리와 금붕어, 선명한 빨강에 압도돼 한참 멍하니 이 영화를 봤었다. 옛날을 다루지만 철저하게 현대식인 이 영화처럼 우키요에 춘화는 중국의 춘화에 비해 분명 "옛날 것"이라는 느낌이 덜하다. 오히려 그냥 이계의 것을 보는 느낌이 든다. 3. 현대의 양생술 중국인의 성애관념은 유교와 도교가 혼합된 형태이나 외부에서 중국적인 성관념으로 보는 것은 도교에서 유래된 것들이다. 도교는 성적 접촉을 통해 신체 에너지를 운용해 건강과 장수를 도모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에 대한 방법으로 양생술과 방중술을 연구했다. 양생술의 기본은 여러 여성과 돌아가며 관계를 가지고, 사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원래 도교의 관념에서는 남녀 모두 성적 수단이 아닌 주체였으나 점차 남성 위주로 왜곡, 강화되었다. 그 결과는 늦은 밤 ABO채널이나 OCN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사방 팔방 성 정보가 범람하는 이 때, 대한민국에 중국식 양생술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그러한 그들의 행위를 "금딸"이라 칭한다. 금딸을 실천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각종 증언이 잇따르는데 웬만한 신앙 간증 저리가라다. 허경영 이름만 불러도 낫는다는 말처럼, 피부가 좋아지고, 이성에게 인기가 많아지며, 혈색이 돌아오고, 자신감이 회복된다는 등 금딸의 세례를 받은 이들의 증언은 실로 놀랍다. 금딸만 하면 초사이어인이라도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긴, 도교의 궁극 목적은 신선이 되는 것이던가? ㅋㅋ 네이버에 검색만 해도 숱한 정보들을 접할 수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해보기 바란다. 나의 오랜 남성에 대한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성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첫 수업이었나. 이연식 선생님이 키스도 성행위의 일부라는 말이 떠올랐다. 금딸인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멘탈 붕괴가 일어나지 않을까? 물론 금딸인들은 "자가사정"만을 금기시하고 있지만 어떤 영역의 일부를 확장시키면 혼란스럽긴 할 것이다. 동일한 논리라면 금딸을 통해 할리퀸에 나오는 "키스만으로 다리를 풀리게 하는" 내공도 얻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약간의 장난기다. 난 몹시 그들을 존중한다. 우리나라 성의식의 새 장을 여는 사람들이다. 정말 응원하고 싶다. 조금은 진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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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혹은 대담> |
월**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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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식 선생님의 <치명적 미술 – 음란함에 대한 고찰> 6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진실 혹은 대담>
나쁜 남자가 되긴 쉬워도 나쁜 여자가 되는 건 어려운 걸까요? "팜므파탈"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하지만 옴므파탈도 실체는 없습니다. "나쁜 남자"와 "못된 남자"의 차이를 남자들이 잘 이해 못 하고 삽질하는 걸 보면(강동원이 하면 나쁜 남자지만 아닌 놈이 하면 막돼먹은 놈인데도 하면 되는 줄 알고;;), 손발이 오그라들고,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여자들이 한다는 것만 봐도 "어찌해 볼 수 없는" 마력의 소유자란 사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기 많은 여자와 인기 많은 남자 정도가 현실적인 건데 뭐, 인기남이 뭐 그렇게 치명적이겠습니까? 예쁜 여자, 예쁜 남자, 잘난 인간들은 많지만 궁금한 남자, 끌리는 여자, 아름다운 사람은 별로 없는 없다는 지인의 말에 통감했습니다. 인기인이라는 것도 더 많은 옵션을 지닌 혹은, 좀 더 규격화된 인간이라 안정감을 느끼게 해서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치명적이지는 않지 않습니까? 하아...... 불가항력적 매력의 파탈들은 죄다 어디로 간 걸까요? <치명적 미술-음란함에 대한 고찰> 5강에 이어 6강에서 팜므파탈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거세 공포를 자극하는"이란 표현에 전구에 불이 들어오더군요. 아하! 영화 <감각의 제국>의 내용을 들으니 더욱 느낌이 오더군요. 아, 정말 팜므파탈이 되기란 쉽지 않겠어. 팜므파탈은 실체가 약하다는 말에 전 클림트의 [유디트]를 떠올렸습니다. 풀린 눈에 내가 "나"가 아닌 듯이 구는 그 표정이 불편한 건 그것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손이 자기 손인 줄도 모르고, 자신을 지칭할 때 "나" 대신 자신의 이름으로 지칭하는 몹쓸 거라도 본 것 마냥, 전 클림트의 [유디트]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그 색채에 일순 빠져들 듯 하면서도 텅 빈 듯한 그 공간을 보고 있노라면 불쾌합니다. 아직도 팜므파탈이라는 게 제어할 수 없는 성적 매력이라기보다 "남성이 원하는 궁극의 성적 매력"이라는 게 좀 더 명확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거세 공포라고 해도 뭐, "복상사로 마무리하고 싶다"정도의 느낌이 아닐까 싶은. 정말 제어할 수 없는 걸로 치자면 마돈나가 아닐까요? 자기 욕망에 충실하고, 아름답고, 매력 있고,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요. 사실 남자가 원하는 통제불가능(엄밀히 말해 '발기를 부르는' 이성을 잃게 하는 매력)의 팜므파탈은 성적 매력만 충만한 이미지의 "마를린 먼로"고, 압도당할 것만 같은 "마돈나"는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면 인류의 진화설은 참으로 믿을 수 없는 학설이란 생각마저 듭니다. 재작년, 세실비튼의 사진전에서의 마를린 먼로는 입을 살짝 벌린 뇌쇄적인 모습의 그녀가 아니라 그냥 아이 같은 모습의 생활 속의 여자였습니다. 아름답고, 수수하고, 그녀에게 더 편해보였습니다. 먼로는 그녀에게 요구되는 팜므파탈을 버틸 수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악녀라든지, 섹스 심벌은 이율배반적으로 그녀를 욕망의 주체가 아니라 철저히 욕망의 대상으로 한정시켜버렸죠. 사실 거세당한 건 그녀 쪽인지도. 커트 코베인과 커트니 러브, 시드와 낸시, 오노요코와 존레논은 또 어떻구요? 신화를 만들기 위해 팜므파탈 제조는 너무도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네요. 그 관계에서 옴므파탈이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는지? 뭐, 그렇습니다. 팜므파탈은 "관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헤어나야 할 하나의 대상에 불과하니까요. 정해진 수순입니다. 근데 좀 따분하네요. David Kaplan의 <Little Red Riding Hood>의 소녀는 그 어떤 시각으로 봐도 팜므파탈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소녀는 늑대가 통제할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이자, 그녀 스스로 그 욕망을 인지하면서 분출하니까요. 보기가 전혀 불쾌하진 않았습니다. 소녀가 불쾌하다구요? 베이글녀, 꿀벅지보다야 양반이죠. 하하. 저에게 불가항력의 존재는 바로 요 아이. 천진난만함에는 당할 수가 없달까요......참, 치명적인 아이입니다. http://blog.naver.com/ego15/90137079431 (링크를 따라가시면 첨부된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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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메두사와 빨간 구두 아가씨> |
월**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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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식 선생님의 <치명적 미술 – 음란함에 대한 고찰> 5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메두사와 빨간 구두 아가씨>
-현대의 종교, 연애 가학적 연애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본격 SM 플레이가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자의적인 SM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죽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SM플레이의 어려움을 토로할 용기 있는 자는 드물 터- 장점이라도 있다. 습관처럼 나쁜 남자 혹은 나쁜 여자를 만나 자신의 모든 것을 휘발시키면서도 그 사람에 헤어나오지 못 하는 사람들. "사랑이라면 이 정도는 아파야지."하는 걸까. 답답하고, 무서운 몰입이다. 감정의 소진, 물질적 손해, 시간적 낭비 따윈 계산하지 않는 그 마음만으로도 순정적인 사랑이라 명명해야 한다는 맹목적인 믿음. 그래, 그건 당사자들에겐 사랑일지도 모른다. 본인들이 사랑이라 명명하겠다는데 아니라고 말할 순 없다. 사랑은 아름답기 그지 없는 거라 말할 만큼 뻔뻔하지도 않고, 완전한 사랑을 꿈꾸지도 않는다. 다만, 정말 그 가학적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정말"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을 하는 걸까? 사랑 받지 못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결과론적인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 사람이 나쁜 남자, 나쁜 여자가 되어버린 것이 본인 탓이라는 이야기는 정말 아니다. 다만, 정말 그 감정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이었을지는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 가학적 감정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을 수도 있고, 그저 강한 감정으로 다른 감정을 누르기 위함일 수도 있고. 헐리웃 영화 이래로 온 인류는 "연애"라는 종교에 빠져있다. 천국에 가봤다는 사람은 없지만 맹목적으로 믿듯 반드시 이 세상에 나의 반쪽, 소울메이트가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들 속에서, 그 행복을 준다는 사랑의 부재로 조금씩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아, 행복인가? -치명적인 종교 http://blog.naver.com/ego15/90136280600 (링크를 따라가시면 첨부된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성 테레사의 열락>, <롯과 딸들>, <수산나와 장로들>, <목욕하는 수산나>, <밧세바>, <음욕의 죄를 지은 수도사들과 여인들...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종교 앞에서 응당 가져야 할 것이라 믿는 거룩함과 숭고함에 합당한가? 아무런 의심도 없이......
-팜므파탈 팜므파탈을 남성이 제어할 수 없는 강렬한 힘을 가진 여성으로 정의한다면 유디트, 살로메, 카르멘 뿐만 아니라 잔다르크, 이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또한 팜므파탈이다. 그 팜므파탈은 다분히 남성중심주의적 시선이 느껴져 불쾌한 부분이 있긴 하다. 남성이 주도권을 갖고 있는 것이 보편적인 것으로 전제해야만 가능한 단어기 때문이다. 뭐, 요즘엔 옴므파탈도 있긴 하지만. 그 팜므파탈의 이중성을 생각할 때면 메두사와 빨간 구두 아가씨가 생각난다. 메두사와 빨간 구두 아가씨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다는 이유 하나로 원치 않는 삶을 살아야 했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탐하면서도 동시에 조신함과 체제에의 순응을 강요하고, 급기야 페르세우스가 해치워대는 모험담 중 하나로 전락해버리는 메두사와 춤을 좋아하고, 빨간 구두를 늘 신고 다닌다는 이유로, 어쩌면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각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들은 자신들의 아름다움은 물론 자신의 욕망까지 영원히 가질 수 없게 된다. 그래서일까. [치명적 미술-음란함에 대한 고찰] 5강 수업에서 본 그림들의 여자들은 유혹적이기만 하기보다 "왜 안돼?"라는 약간의 비웃음이 느껴지는 것이...... 그녀들은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았다.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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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금기를 결정하는가> |
월**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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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식 선생님의 <치명적 미술 - 음란함에 대한 고찰> 4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무엇이 금기를 결정하는가>
- 아무 것도 몰라요 거북이알 아이스크림이 지금도 팔리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거북이알을 먹고 있노라면 일부 아이들은 야한 아이스크림이라며 놀려대곤 했다. 그 때 뭘 알고 놀려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소문을 듣고 놀리고 놀림 받는 식이었다. 그 당시, 우리의 성교육이래 봐야 ", "밤 늦게 돌아다니지 마라.","아무리 약한 남자도 여자보다 세니 조심해라." 정도고, 정자와 난자의 고군분투를 다루는 내용 외에 실질적인 것은 생리대 사용법 정도였다. 3분이면 알아들어먹을 생리대 사용법으로 한 시간 넘게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고생이었겠지만 안 들어도 되는 내용을 들어야 하는 우리도 꽤나 괴로웠다. 어쨌든 그 당시엔 거북이알이 콘돔을 형상화한 것이다, 콘돔을 실제로 썼다 등 각종 괴담이 난무했다.
http://blog.naver.com/ego15/90135677264 (링크를 따라가시면 첨부된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쭈쭈바치고 부드러운 식감이라 즐겨 먹었지만 괴담에 노출될수록, 어쩐지 우리 동네 슈퍼에는 없어져만 갔다. 어쩔 수 없이 난 빠삐코와 서주우유 하드로 갈아타버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거북이알이 콘돔과 유사한 촉감과 모양으로 어린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고 항의도 꽤 많았다고 한다. 난 그냥 애들 사이에 도는 흉흉한 소문인 줄 알았는데. 당최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신체의 일부면 몰라도 어린 아이들이 뭘 알고 먹는다고. 그렇게 치면 세상의 모든 쭈쭈바는 없어져야 할 텐데(아, 죠리퐁도 있었지. 그럼 고구마, 복숭아, 석류, 자몽....... 다 없애라.). 애들이 거북이 알을 먹는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도 없고, 그 아이들의 정서에 엄청난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는 보지 않는데(우린 정말 아무 것도 몰랐어.). 발상 자체가 소아 성애자 같아서 어쩐지 미식거린다. 우웩. 이건 대체 무슨 금기일까?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금기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ㅋㅋㅋ
http://blog.naver.com/ego15/90135677264 (링크를 따라가시면 첨부된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 볼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것 <내니 다이어리>의 애니가 호티와 호티의 친구들과 바에서 만났는데 호티의 친구들이 애니가 "내니"인 것을 알고, 성적 환타지를 발산하며 막말을 하다 애니에게 욕 한 바가지를 먹는 장면이 있다. 얼마 전엔 <지붕뚫고 하이킥>에 나온 신세경이 인기를 끌었고,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에는 메이드 복장의 소녀들이 곧잘 등장한다. 이들의 특징은 일상 생활 속에 있으면서도 "비성적"인 대상이어야 하고, 권력 관계에서 아래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금기도, 금기도, 이렇게 매력적인 금기가 없다. 신세경의 청순하다 못해 청승맞은 역할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글래머스러운 몸매로 연일 인터넷 포털 사이트 상단을 도배했고, 1박 2일의 김대주 작가는 서늘하다는 감상평까지 쏟아냈다. 미국의 포르노에는 "내니"가, 일본의 핑크 무비에는 "메이드"가 등장한다. 현실적이면서 일상을 흔들만한 것이 우리의 금기가 되어 버렸다. [치명적인 미술-음란함에 대한 고찰] 4강은 볼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홍길동도 아닌데 우린 "거기"를 "거기"로 부르고, "그날"을 "그날", "마법"이라고 표현한다. 10대들이 성적 환타지를 충족시키는 복장과 안무를 소화하고, "베이글","꿀벅지" 등 충분히 변태스럽고 그로테스크한 의미의 단어들이 태연하게 입에 오르내리고, 인터넷에 사용되지만 아직도 우리에겐 금기시되는 단어들이 있는 것이다. 2002년 어느 날, 별로 친하지 않은 남자와 <피너츠송>을 봤다. 당시에 우린 "피너츠"가 무슨 말인지 몰랐기 때문에 겁 없이 그걸 봤는데 별로 친하지 않던 우리는 더 친하지 않은 사이가 되었다. 약간의 데미지를 입은 나는 정말 학문적(?) 호기심으로 가까운 외국인 친구에게 "피너츠"외 남성의 성기를 나타내는 단어를 물어봤는데 그 단어가 꽤나 많았다(옆에 있던 얌전했던 일본인 언니는 "오, 마괭. 그만. 그만. 입 닫아."를 외쳤지만. 난 꿋꿋이 물어봤다). 하지만 여성의 그것은 "여성의 성기","그것"외에는 입에 올릴 만한 단어가 마땅치 않았다. 게다가 그 녀석도 조금 당황해 하는 눈치였다(아까는 왜 괜찮았냐? 그럼). 지금은 페니스는 페니스라 나도 말하겠건만 여성의 그것은 언급하기가 쉽지 않다. 여성의 성기가 언어적 금기와 시각적 금기가 만나는 지점이라는 것은 때문에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여성의 성기를 나타내는 단어들이 외설스럽게 들리는 것은 외설스럽게 그것을 대하는 시선 안에서만 접하기 때문이다. 주디 시카고가 <디너 파티>라는 작품을 냈던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39벌의 접시 등을 통해 역사상 훌륭한 여성들의 성기를 형상화한 초대형 작품인데 개인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서 좋아하진 않지만 그것을 만들어낸 동기에는 공감한다. 옛날, 그림 안에서는 여성의 그것을 조개, 꽃, 입술 등으로 표현하곤 했다. 성적 행위는 술을 따르거나 차를 나눠 마시는 것으로 대신하곤 했다. 요즘 서양 회화에서는 여성의 성기를 그리는 게 문제시되진 않는다. 대신 지금은 영화의 경우엔 -포르노나 불법 동영상이 아닌 이상- 그것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기도 하고, 만화책은 다른 사물로 대체하거나 희미하게 표현한다(희미하게 그리는 건지 검열당한 건지 알 순 없지만). 어른들이 말세라고 부르던 옛날도, 또 지금도 언제나 금기는 존재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여성인 내가 "그것"을 "그것"이라 하는 것에 금기를 느끼지 않을 날은 언제 올까? 그것을 깨기 위해 이 글에서 쓰고 싶긴 하지만, 애석하게도 포털 사이트에서는 그 단어가 19금이다. 금기를 깨는 것은 쉽지가 않다. 금기라고 불릴 만한 것은 그런 것이다. 야하다고, 혹은 강도만 센 것이 금기인 것은 아니다.
http://blog.naver.com/ego15/90135677264 (링크를 따라가시면 첨부된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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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뿅점, 검열의 역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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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식 선생님의 <치명적 미술 - 음란함에 대한 고찰> 3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뿅점, 검열의 역설>
-뿅점 아트앤스터디, 이연식 <치명적 미술-음란함에 대한 고찰> 3강 수업에서 내 귀를 맴도는 단어는 호쿠사이도, 키아로스타미도 아닌 "뿅점". 뜻풀이를 듣지 않아도 왠지 알 것만 같은 이 느낌은 어감 때문일라나. 뿅점이라...... 한참 OCN에서 <섹스앤더시티>가 나올 무렵, 성적 호기심이 강했던 그녀는 제목만큼 야한 장면을 기대하며 끝까지 봤으나 의외로 싱거워서 실망했다고 한다. 하긴, 나도 그 드라마를 볼 때 자매님이 변태 취급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요럴 땐 "뿅점이 없었다."란 아주 간결한 표현을 대신 쓰면 좋을 것 같다. 뿅점. 오늘의 수확은 뿅점. 뿅뿅~♪♬♩♪ -검열의 뿅점 대한민국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검열의 황당무계함을 체감하는 순간이 온다. 내 경우, 텔레비전 만화영화를 통해서 이 검열의 꼬장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세일러문>. <세일러문>을 차라리 방송하지 말았으면 싶을 정도였는데 세일러문이 변신할 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알몸에 굳이 희뿌옇게 하는 작태라니. 그걸 보는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뭘 어쩔 거라고 그러는 건지 참으로 한심했다. 그건 좀 둔한 아이들은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 정마 가관인 건 세일러문 시리즈 중에 "쓰리스타즈"가 등장할 때였다. 평소엔 남자들이었다가 변신하면 여자가 되는 센세이션한 캐릭터들이었는데 잘도 한국 TV에 등장했다 싶더니만... 아예 "남장여자"로 설정을 바꿔 버렸던 것이다. 변신복이 비키니였던 쓰리스타즈는 대한민국 안방에선 알 수 없는 복장이 되어버렸다. 가슴가리개(자체 검열)와 핫팬츠 사이를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과감한 터치로 메꿔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강박증 같은 검열로 오히려 "금기 중의 금기"인 레즈비언 분위기를 풍겼으니...... 이로써 [올웨스의 창]의 유리우스(?),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오스칼의 뒤를 잇는 남장여자의 계보를 대한민국에서만 잇게 된다. 창작자도 죽어도 모를 그녀들의 운명도, 그걸 볼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운명도...... 가혹하다, 가혹해. -검열의 역설 http://blog.naver.com/ego15/90134976165 (링크를 따라가시면 첨부된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의학서적을 보고, 성적 충동을 느끼기란 힘들다. 위의 사진과 달리 남녀의 회음부며, 가슴이며, 엉덩이며, 원한다면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든 부위까지 볼 수 있다. 그렇게 적나라하기란 어지간한 등급의 영화도 힘들 정도, 노출 수위의 왕이라면 왕이다. 그런데도 우린 호기심을 갖거나(도서관에만 가면 얼마든지 있는데도, 게다가 인체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그럴 듯한 명분까지 있는데도!) 하진 않는다. 가림으로써, 보이지 말아야 하는 부위를 숨김으로써 그것은 더욱 은밀해지고 궁금한 무엇이 된다. 호쿠사이의 <수박도>에서 얇은 천이 붉은 과육을 살짝 덮음으로써 야시시해진다. 저 사진에서 여자들의 눈이 노골적으로 정면을 보고 있다면 어땠을까. 수영복 사이를 가린 머리칼이 없었다면 더 섹시했을까? 츤데레, 망사스타킹, 베일......이런 것들이 마음을 끄는 이유를 우린 곧잘 모른 척 연기한다. 이런 츤데레들 같으니라고. *.걸음이 느린 당신을 위한 뜻풀이 뿅점; 에로 영화에 기대하는 야한 장면, 그 지점. 즉 클라이막스. 츤데레; 새침부끄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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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랭피아의 나체와 화장 안 한 민낯, 알몸의 경계> |
월**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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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식 선생님의 <치명적 미술> 2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올랭피아의 나체와 화장 안 한 민낯, 알몸의 경계>
1. 이연식 [치명적 미술], "알몸에 대하여"
19세기 중엽, 마네가 그린 [풀밭 위의 점심], [올랭피아]의 나체가 당시 사회의 암묵적 합의와의 충돌이었다면 -여신이 아닌 창녀를 그렸다는 점에서(여신보다 창녀가 더 리얼함에도 불구하고 이성을 부르짖던 부르조아 계급은 이성을 내던져버린 격이었으니 가진 게 많으면 머리가 안 돌아가는걸까.)- 비비크림의 등장은 진화론을 거스르려는 인류의 반격(?)정도라고 해도 좋을까(ㅋㅋ). 미시적인 움직임이지만 거시적인 결과를 낳을지도 모르겠다. 구로다 세이키의 [아침 화장]이 누드라는 사실 자체보다(일본에도 누드는 춘화란 형태로 존재했었으니) 누드를 전시했다는 점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비비크림이 나르시시즘을 발산하는 통로인 미니홈피를 활성화시킨 주범 중 하나다. 언뜻 보면 다르지만 둘 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깨뜨렸다는 점에서는 몹시 닮았다. "화장 안 한 여자가 좋다."는 말은 "화장 안 해도 예쁜 여자가 좋다."는 말을 깨달은 지 이미 백년, 특히나 대한민국 사회에서 민낯은 설 자리가 없다. "쌩얼"과 "민낯"의 어감이 다르듯, 알몸과 누드가 지닌 느낌도 다르다. 민낯과 알몸에 익숙해질, 아니 너그러워질 순간이 올까? 학교 버스나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여자를 질타하는 시선은 그것이 사적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사적 영역에 속할지언정(혹은 사적 영역이니까 더욱) 누드도 보는 마당에 내 얼굴에 내가 화장하는 게 대수냐? 쩍 벌리고 앉아있는 남자도 있는 마당에 무릎을 얌전히 붙이고 아이섀도우 바르는 게 뭔 문제야? 싶겠지만 여자에 대한 신비감을 갖고 싶어하는 자학적 변태들이 존재하는 한, "화장한 여자"에 대한 기대는 계속되어도 "화장하는 여자"에 대한 관대함이란 녀석은 지구 종말이 와도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자매님은 나의 민낯에 대해 엄청난 불신을 가지고, 화장을 강요한다. 가끔 시내에 나갈 때 민낯으로 따라갈라치면 자매님의 눈매는 매서워진다. 그날, 그녀의 전투력 게이지가 지구인을 넘어선다고 판단이 되면 나는 얌전히 화장대 앞에 앉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스케치북에 하나 하나 그려나가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나간다. "손오공을 이기는 베지타는 본 적이 읍다, 본 적이 읍서."나즈막히 읊조리면서. 2. 쌩얼은 좋아해도 민낯은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란 그러하다. 별 수 없다. 그런 것에 반발심이 든다면 풀메이크업을 하는 수 밖에 다른 수가 없다. 아님 민낯을 들이밀던가. 혹시 내 쌩얼을 민낯으로 착한 오해하실까봐 기왕 하는 화장엔 꼭 마스카라를 대동한다. 3. 몰래 보는 게 맛이라던 19금 책은 이제 도서관에도 있는 판. http://blog.naver.com/ego15/90134441595 (링크를 따라가시면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무인 대출기를 이용하는 시간도 아닌, 애매한 대낮에 이 책을 빌려보는 당신께 심심한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근데 차라리 그녀에게 물어보지 그래? 애매한 그는 애먼 곳에서 애매한 답을 얻고 갔을 것이라 난 믿어 의심치 않는다.
4. http://blog.naver.com/ego15/90134441595 (링크를 따라가시면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염병최포토가 막손으로 그린 내 얼굴. 내 왼쪽 눈에만 있는 쌍꺼풀, 큰 코, V라인 따위 갖다 팔아먹은 지 오래인 후덕한 얼굴 다 닮았는데 합쳐 놓으니 어쩜 이리도 안 닮았을까. 얼마 전에 자칭 미술가가 외국의 여러 상업 아티스트들이 활용한 다양한 여자 나체 사진을 올리며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며, 찬미해마지 않던데 더 웃긴 것은 그것을 진보적 무엇이라 믿는 강렬한 믿음이었다. 허구헌날 보는 여성의 나체가 진보적 가치며, 표현의 자유식이나 된다니 휴 헤프너가 페미니스트가 되는 순간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물론, 바니걸들의 헛웃음거리도 안되는. 이미 그건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엄청 안전한, 무척 돈이 되는, 뭐 그런 거면서 왜 탄압받는 척 하나요? 하. 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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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욕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겐 "궁금한 사람"> |
월**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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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식 선생님의 1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금욕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겐 "궁금한 사람">
-19금 책 내 윗세대들에겐 전설의 할리퀸이 있었다. 키스만 해도 다리를 후들거리게 하는 엄청난 내공의 남자가 등장하는데 그 남자는 궁극의 차도남. 다른 로맨스물에 다르다면 본격 센스신이 있다는 거지만 현실과의 괴리는 자그마치 백만광년. 남학생들이 도색 잡지나 비디오 따윌 뺏겼다면 여학생들은 주로 만화책을 압수당하기 일쑤였다. 야한 순정물을 돌려보는 아이들?도 있긴 있었지만 대부분은 BL물. - 언제는 누가 컴퓨터실 5번에 바탕화면으로 깔아놓은 사진을 돌아가며 본 적도 있다. 그 때만큼은 일진이든, 범생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하나- 물론 일명 야오이물은 아이들에 한정된 취향이었지만 만화방에서 당당하게 빌려볼 수 있는 야한 책이기도 하다. 왜 BL물은 수위가 아무리 높아도 대여가 가능했는지...... 만화는 어린 아이들 것이라는 너그러운 편견 아래서 우리의 금단의 시간은 깊어져만 갔다. 나의 첫 BL은 내 의도와는 상관없었다. 당시 드래곤볼의 다음 권을 기다리던 우리는 작가가 죽었다더라, 그래서 제자들이 그렸다더라 하는 각종 소문이 범람하던 차에 조금 어색한 그림체의 드래곤볼 환상곡을 만나게 되었고,아, 이것이 그것인가? 하며 전권을 빌려갔을 뿐이고, 이윽고 신세계를 맛보게 되었다. 피콜로는 오공을, 오공은 트랭크스를...... 어린 나이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발을 디뎌 헤매다가 다 보지도 못한 책들을 반납하고, 한동안 손오공씨를 TV화면에서도 마주치지 못하였다. 몇 년 후, 루비 시리즈를 비롯한 다양한 야오이만화를 찾아 읽게 된다. 무시무시한 페르몬을 휘날리는 제목들에 킥킥대며. -승부 속옷 일본에서는 오늘 밤 뭔가가 벌어질 것 같으면 입는 괜찮은 속옷은 "승부 속옷"이라고 한다는데 한국에서는 정이현의 소설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의 후줄근한 고무줄팬티가 있다.(아, 브리짓존스의 일기에서도 나온다.) 그 목적은 다르지만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같을 수도 있는. -빨간 구두 아가씨 왜 교회에 빨간 구두를 신고 가면 안되는 걸까? 신고 가면 안 되는 빨간 구두를 그녀는 왜 가져야만 했을까? 왜 그녀는 빨간 구두를 신은 채로 다리를 잘려야만 했을까? 왜 그것이 옳은 선택인 건가? 신지 말아야 하기에 더 신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마음껏 신을 수 있었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복숭아 어떤 사물에 대한 첫 기억은 강렬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처음 복숭아를 먹었을 때 그 달콤함에도 반했지만 통통하고 살짝 갈라진 그 틈이 엉덩이와 너무도 비슷하게 예뻤다는 걸 기억한다. 솜털이 까슬거리기도 하지만 사과나 배에 비해 비밀이 있을 것만 같던 복숭아에 난 매료되었다. 어렸을 때 말도 늦고, 사람들이 만지는 것도 싫어하고, 돌아서 앉기 일쑤였던 나는 유난히 방긋방긋 잘도 웃는 첫 딸과 비교되었다. 애가 조금 모자라나 생각이 들기도 했을 터. 하지만 참고 기다린 끝에 조잘조잘대기 시작했던 나는 방언 터지듯 말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 하나는 복숭아였다고 한다. "아빠, 아빠. 먹고 싶다." -뭘? "엉덩이모양. 엉덩이모양." 알고 보니 복숭아를 가리켰던 것. 아버지는 친절하게 그것이 복숭아라는 것임을 알려주셨다고 한다. 하지만 똑똑하지 못 했던 나는 돌아서면 "엉덩이모양, 엉덩이과일"이라 외쳐댔고, 부모님은 내게 끈질기게 "복.숭.아"를 가르쳤고, 급기야 아버지는 훤한 내 이마에 땡꼬를 먹이셨다. 복숭아는 절대 기억 못하면서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던 나였지만 그 뒤에 따라올 늦되는 아이에 대한 사랑의 땡고가 싫어서 구태여 복숭아를 찾지 않고, 줄 때만 먹었다. 지금도 복숭아는 감히 사기가 그런 과일이 되어버렸다. 세월이 흘러 복숭아 정도는 껌이던 시절, 할머니는 내게 봉숭아 물을 들여주셨는데 복숭아와 복숭아가 비슷한 발음임을 자각한 이후론 이상하게도 봉숭아와 복숭아를 구별해 발음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드라마 [울 밑에 선 봉선화]를 보고는 봉숭아물을 들이고 싶을 때면 "봉선화물"이라 했는데 봉숭아물과 봉선화물은 다른 느낌이라 이내 시들해졌다. 복숭아 따위 아무 것도 아닌데 어쩐지 복숭아만 보면 잊고 있던 그 감정들이 쓱 떠오른다. 입 밖에 낼 수도 없던 "엉덩이과일" 때문에. -음란한 그림, 음란한 책에 대한 꿈 <치명적 미술-음란함에 대한 고찰>의 첫 수업에서 음란함에 대해 강의하는 사람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냐는 말씀을 들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금욕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겐 "궁금한 사람"이다. 이미 떡 하니 이렇게 음란함에 대한 고찰을 내미셨기에 보이는 것이 다라고 믿을 뿐. 그 음란함이라는 것은 누군가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였을 때 느끼는 것. 아니, 음란함은 느낀다기보다 판단의 성격이 강한 것도 같다. 개이버에 "음란"을 검색하면 아래의 문구가 뜬다. -이 정보내용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 및 청소년보호법의 규정에 의해 19세 미만의 청소년이 이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난 볼 수가 있지만 별로 보고 싶지가 않다. 19금이란 단어의 마법은 이렇게 쉽게 풀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훔쳐봐야만 음란한 그것들을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 밝고 건전한 이 아트앤스터디 수업에서 제대로 볼 수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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