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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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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앞에서> 1강 후기 |
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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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앞에 문지기가 서 있다. 문지기는 시골 남자에게 ‘지금은 안 되고 나중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시골남자는 법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법 앞에서 세월을 보내게 된다. 시골 남자는 임종이 다가와서야 법의 문이 자기를 위해 열려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짧은 단편을 통해서 카프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법이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나를 위한 것일까. 시골 남자는 법과 어떤 관계를 맺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시도는 실패했다. 법은 (누구에게나)보편타당한 것인가. 아니면 특정한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법은 보편적이지 않은 것일테고 보편타당하다면 특정한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수 없을 것이다. 법은 이렇게 역설적인 무엇이다. 법은 이 두 가지 측면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법은 보편과 특수를 일치시킬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면 문학은 어떨까. 데리다는 카프카의 문학이 법이 정해준 문학을 넘어선다고 보았다. 그의 문학에서 우리는 ‘법’에 다가갈 수 없고 ‘성’에도 다가갈 수 없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고정된 의미나 최종 목적 같은 것은 없다. 그것은 끊임없이 지연될 뿐이다. ‘과정’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끊임없이 욕망한다.
법은 자신의 기원을 은폐한다. 법은 언젠가 분명 폭력적으로 정립되었다. 하지만 법은 자신이 폭력적이라는 것을 은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죄(폭력)에 대해 처벌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법의 기원을 물을 수 없다. 묻도록 허용되지 않는다. 법은 그것을 금지한다. 데리다는 법이 어떠한 본질도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텅 비어 있을 뿐이다. 비진리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텅 빈 것에 우리는 어쩌면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삶이 의미 없다면 어떻게 삶을 유지시킬 수가 있을까. 니체도 얘기했지만 인간은 그것을 견딜 수 없어서 의미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쫓아서 정말 열심히 살아간다. 무의미한 것을 의미화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만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카프카의 작품을 읽기란 쉽지 않다. 그의 문학은 우리의 문법을 파괴하고 관습이나 이데올로기도 부셔버린다. 하지만 그래서 재밌기도 하다. 지금의 우리 세상에 없는 것, 그것을 생각하고 만들어 내는 것이 문학이라면 우리는 카프카를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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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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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시골 의사> 5강 강의 리뷰 |
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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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시골 의사> (양운덕 선생님 5강/ 카프카의 ‘시골의사’ 강의 리뷰)
위독한 환자가 있어 급히 가야했다. 하지만 밖엔 거센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마구간에 말이, 얼어붙은 겨울밤이 힘에 부쳤는지 간밤에 죽어 있었다. 하녀는 말을 빌리러 황급히 마을을 돌아다녔다. 마침 갑자기 어느 낯선 남자가 나타나서는 내게 말을 주었다. 혼자 남겨진 하녀가 불안했지만 난 급히 왕진을 가야했다. 환자의 집에 도착했을 때 소년은 이미 병이 위독했다. 허리에 커다란 상처가 있었고 그 자리엔 벌레들이 우글거렸다. 소년의 가족들은 나만 믿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신이 아닌 이상, 다 죽은 사람을 살려낼 방도는 없었다. 나는 하녀와 소년을 둘 다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나는 무능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의사라면 전지전능한 사람인 줄로 안다. 그 소년만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선생님을 별로 안 믿어요.’ 죽어가는 이 어린 소년만이 사태를 제대로 직감하고 있었다. 의사라고 해도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는 없고 수십 마일 떨어진 이곳에서 하녀를 지켜줄 수도 없다. 인간이란 이렇게 나약한 것인지 모른다. 성공했다고 해서 부와 명예를 얻었다고 해서 오만에 빠질 수 없는 존재다.
카프카는 인간을 살려낼 수 없고 하녀를 구할 수도 없는 의사의 절망과 무능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현실을 바라보는 고통스럽도록 미세한 그의 시선과 간결한 사실적 문체는 삶의 불안과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의 소설은 사실적 세계가 아니면서도 사실적이다. 우리의 현실은 허구로 가득하다. 오늘, 우리는 광고와 이미지의 세계에 살며 실물 경제보다 금융 경제에 의존하면서 살아간다. 이것은 뭔가 부조리 하지 않은가. 하지만 인간은 언어적 동물이며 언어라는 게 이미 현실과 분리되어 있는 것 아닌가. 인간은 어쩌면 이런 한계나 부조리, 부정성 안에서만 살도록 운명지어졌는지 모른다.
‘무능한 의사’ 라는 부조리는 우리 일상의 부조리를 대변한다. 삶은 성공을 향해 달렸지만 부조리하게도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 현대의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상품이 될 수 없는 인간까지도 말이다. 이 얼마나 부조리한 현실인가.
이렇게 현대의 허구적인 현실과 관계들 안에서 지워지는 것은 인간들 사이의 실제적 유대관계나 인간성, 사랑과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현대 사회의 병폐를 카프카는 누구보다 잘 간파하고 있었다.
카프카의 소설을 읽다보면 문법이 파괴된 나머지 내가 시를 읽고 있는 것인지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인지 모를 때가 있다. 그는 현실의 질서를 파괴해 버린다. 우리가 믿고 있었던 인과 관계도, 믿고 있었던 서사 관계도 그의 소설엔 등장하지 않는다. 이유도 없이 주인공들은 소송에 휘말리고 갑자기 벌레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유도 없이 이 세상에 던져졌고 어쩌면 이유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에 진리라는 것은 있기나 한 것일까. 진리라는 것은 허구일 수 있다. 이유 없는 삶을 견딜만하게 하는.
진리가 없고 이 세상이 부조리와 허구로 가득하다고 해서 그 무의미의 허무에 빠지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 허무를 딛고 부정성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죽음과 함께 살아가고 실패와 함께 살아가는 것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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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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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과 우연의 시대 카프카의 의미 |
배*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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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같은 혼돈과 우연의 시대에 그 것을 긍정하며 도달하기도, 알 수도 없는 것에 첫 발걸음을 기분 좋게 떼게 만드는 강의입니다. 그 무엇인가를 찾으려하지만 찾을 수 없는 것에 대해 절망하지 않게 하는 것 이 강의의 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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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미소'를 드디어 보았습니다 |
오*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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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를 읽으면 항상 불안과 소외, 고독 같은 어두운 이미지만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양운덕 교수님 강의를 들으며 카프카의 작품들이 사실은 삶의 부조리를 주제화하는 '놀이'와 '긍정'의 힘을 담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소송'의 첫 장면을 친구들이 웃었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작품을 무한한 해석 가능성의 장으로 보고, 나만의 관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와 닿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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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들으니 책을 안 읽을 수가 없네요 |
김*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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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의 강의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왠지 책을 꼭 읽어야 할 것만 같은 강한 충동을 느끼게 합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이게 뭐야' 싶었던 카프카의 문학 세계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교수님의 "문학은 허무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허무와 친숙해지도록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가장 마음에 남았습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분노하기보다, 허무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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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먹으시네요... 나 참... |
박*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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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내용이 너무 산만하고 깊이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카프카의 텍스트 분석보다 주관적인 해석과 다른 철학자 이야기가 너무 많이 섞여 있어서 혼란스러웠습니다. 유명 강사라고 해서 큰 기대를 했는데 실망이 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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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축조'와 나의 직장 생활 |
최*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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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에서 다룬 '만리장성 축조'의 이야기가 제 직장 생활과 너무 겹쳐 보였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하지만 전체적인 의미는 알 수 없는 업무들. 제가 하는 일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하는 질문이 늘 머릿속을 맴돌았는데, 카프카를 통해 제 삶의 부조리를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우연과 혼돈 속에서도 '삶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얻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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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를 통해 읽는 카프카, 급진적입니다. |
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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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데리다의 카프카 읽기는 정말 급진적이고 흥미로웠습니다. '법 앞에서' 단편을 '의미들이 벌이는 잔치', '해체의 놀이'로 해석하는 과정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법이 자신의 기원을 은폐하듯이, 문학도 고정된 의미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지연된다는 개념이 머릿속을 때렸습니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용기가 필요함을 배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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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을 벌레의 삶으로 읽다니... |
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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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을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쉴새 없이 일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욕망의 투사, 그리고 현대인이 모르는 사이에 벌레처럼 취급되는 현실에 대한 고발로 읽어주신 점이 새로웠습니다. 벌레가 되어 일터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지만, 벌레의 몸뚱이로는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었던 잠자의 절망이 제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비정규직인 제 현실과 겹쳐 보여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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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 속에 이렇게 깊은 철학이! |
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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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을 통해 철학적 문제들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이 강의의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평소 철학 책은 딱딱해서 읽기 어려웠는데, 카프카의 소설을 매개로 하니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호모사케르' 개념을 '소송'과 연결한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카프카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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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전체에 대한 인간의 욕망 |
배*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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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축조'를 통해 '불가능한 전체'를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완성될 수 없는, 끝없이 지연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욕망하고 쫓는 우리의 모습이 카프카 소설 속에 그대로 담겨 있더군요. 이 강의는 절망하지 않고 '첫 발걸음을 기분 좋게 떼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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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의 부조리한 현실 |
이*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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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의사' 단편을 통해 '무능한 의사'의 절망과 일상의 부조리를 간파한 카프카의 시선이 놀라웠습니다.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지기 쉬운 현대인들에게 카프카는 인간의 나약함과 유한성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오늘날의 허구적인 현실과 소비문화 속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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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했지만 완강했습니다. |
양*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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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시간이 너무 길어서(한 회차에 2시간 이상)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특히 단편 하나를 여러 교시에 걸쳐 다루는 방식이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카프카의 작품들을 워낙 꼼꼼하게 해석해 주셔서 끝까지 들었습니다. 강의를 듣고 난 후 카프카의 작품을 다시 읽는 재미가 생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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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를 통해 카프카를 새롭게 읽다니! |
한*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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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8강에서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바빌로니아의 복권'을 통해 우연과 혼돈의 세계에서 카프카를 새롭게 읽어내는 시도가 정말 탁월했습니다. 문학을 통한 '재창조'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양운덕 교수님의 보르헤스 강의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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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왜 체포되었을까, 나와 겹쳐 보이는 질문 |
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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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의 주인공 K가 왜 체포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은 결국 '나는 왜 이 세상에 던져졌는가'라는 질문과 같았습니다. 법, 언어, 화폐 등 나를 대신하는 시스템 속에서 살과 피를 가진 실제 인간인 '나'는 어디에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언어가 세상을 구분 짓지만 세상은 간단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와 연결해 생각해보는 것도 좋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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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벌레인가, 인간인가 |
최*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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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과 '만리장성 축조'를 들으면서 '벌레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기는 한 것일까'라는 질문이 가장 고통스러웠습니다. 아파트 가격이나 비타민 워터에 비타민이 없는 현실의 부조리가 카프카의 소설 속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허무와 불안을 똑바로 마주하라는 카프카의 메시지가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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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으로 나아가는 길의 의미 |
정*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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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7강에서 다룬 '성'은 신, 국가, 혹은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상징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곳으로 나아가는 길은 복잡하고 기이하며, 결국 도달할 수 없는 절망의 공간일지라도, 그 길 위에서 '지칠 줄 모르는 카'처럼 끊임없이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삶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깊이 있는 해석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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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완성 원고와 카프카 |
공*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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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가 자신의 작품을 불태우라고 했던 이야기가 계속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저도 몇 년째 쓰고 있는 미완성 원고가 있는데, 완성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함이 컸습니다. 이 강의를 통해 카프카의 글쓰기가 '투쟁/모험/놀이'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완성 여부보다 쓰는 과정 자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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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최고의 강의 |
한*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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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운덕 선생님의 강좌는, 단순히 강의를 듣는데서 끝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게 만들어주시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카프카를 읽고, 이 수업을 들으면, 이해 불가였던 카프카의 문학세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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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를 마주하기= |
김*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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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운덕 선생님의 강좌는, 단순히 강의를 듣는데서 끝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왠지 책을 꼭 읽어야할 것만 같아서 책을 읽게 만들어주시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카프카를 읽고, 이 수업을 들으면, "이게 뭐야"라고 생각되었던 카프카의 문학세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씀 중에서 "문학은 허무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허무와 친숙해지도록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가장 마음에 남네요. 그리고, 여러모로 이해할 수 없는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저에게 '관료제'나 '허무함'과 같은 것을 다룬 카프카를 읽은, 그리고 선생님의 설명을 들은 이번 여름의 소중한 시간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분노해서 삶을 포기해버리지 않도록 해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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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현 님:)
와! 좋은 수강평 감사합니다 :) 읽는 내내 흐뭇했어요. 강의를 전달해드린 저희로서도 기쁘네요. "허무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허무와 친숙해지도록 하는 것" 저도 마음에 담아가요 :) 관리자 (14.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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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철학 보기 |
전*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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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을 속에 이렇게 깊은 철학이 담겨 있는지 몰랐습니다. 철학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문학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습니다. 카프카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어짐을 느끼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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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거장 카프카 |
양*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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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카프카를 매우 좋아한다. 많은 작품을 읽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계속 공부하고 싶은 작가이기에 이 강의를 듣게 되었다. 선생님의 꼼꼼한 설명이 정말 마음에 들었고 공부에도 도움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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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
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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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먹으시네요...나 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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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미소 1강 후기 |
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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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미소
카프카-를 부르면 연관검색어처럼 떠오르는 불안/부조리/고독 등을 넘어서 그의 미소를 직접 대면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소망이 이 강의를 관통합니다. 배치의 문제, 문학과 음악에서 볼 수 있는 작자의 대체불가능성이 강의 1주차의 주요 문제 제기였습니다. 어떠한 국면도 한 가지 주제에 요약될 수 없는데 그것을 매체를 통해 비껴 갈 수 있을 것이란 바람은 순진하기 짝이 없습니다. 대면하기, 다시 말해 질문을 피하지 않는 일. 그렇기에 용기가 필요한 일. 벌어져 있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기에 믿는 듯이 흘러가는 것이 칸트의 보편법칙이고 아들들의 끔찍한 사후복종이라고 한다면 벌어져 있음을 벌어져 있음으로 전유하는 카프카의 문학과 독자의 권리를 선언한 데리다의 해석은 급진적이고도 급진적입니다. 질문하기. 『제7의봉인』(잉마르 베리만, 1957)의 기사 안토니우스 블로크는 어린 마녀의 화형 앞에서 불현듯 죽음과 대화합니다.
죽음 : 질문이 그칠 새가 없군. 블로크 : 절대로 안 그친다. 죽음 : 하지만 어떤 대답도 못 얻을걸.
카프카의 소설을 읽는 것을 질문 앞에 달아날 곳 없음에 비유합니다. 블로크는 불현듯 찾아오는 죽음과 체스를 두고 대화를 나눕니다. 그가 지연하고자 하는 것은 죽음의 순간, 지연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십자군에까지 출정하게 만든 신의 뜻입니다. 그는 생물학적 시간이 멎음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용맹한 것은 그가 기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죽음을 대면하고도 질문을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출정을 마치고 귀환하는 길 그는 그럼에도 얻지 못한 신의 뜻, 동시에 삶의 공동, 벌어져 있는 허무를 채울 수 있기를 바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희망을 놓치지 못합니다. 그는 광대 가족과 산딸기와 우유를 나눠먹는 이 사소한 순간이 그의 영혼을 충만하게 만듦을 명심하고자 인물입니다. 죽음이 블로크를 찾아온 것은 유한이라는 그의 죄 때문입니다. 비단 블로크만의 죄는 아니겠지요. 사면과는 관계없이, 친절하게도 죽음은 그의 제안에 응합니다. 체스두기라는 지연은 순전히 죽음의 취향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법의 친절함은 변덕처럼 기능하고 블로크와 그의 종자 옌스는 흑사병과 함께 공포와 잔인함이 창궐하는 도시를 가로질러 집에 당도합니다. 평온한 순간에 맞이하는 그들의 죽음, 죄의 완성은 죽음과 일렬로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면서 완료됩니다. 질문을 멈추지 않았기에 고결한 자와 기다림을 멈추지 않았기에 우아했던 여자, 욕망에 따르는 희로애락을 가감 없이 표현했던 자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스스로의 침묵을 깨뜨린 여자 모두 죽음과 예정된 길을 떠납니다. 생과 사의 숙명이 핀에 꽂히듯 질문에 존재를 지정당하고 필연적으로 답을 갈구하는 인물들의 통해 보여줍니다. 이 마지막 순간은 눈 밝은 광대만이 목격하고 그들 가족만이 다시 지금 생에서 또 다른 여정을 떠납니다. 인칭에 꽂히듯 죽음으로 단번에 요약되는 삶은 쓸쓸하기 그지없습니다. 의미가 지연되고 확산하며 생동하는 텍스트의 장, 그것과 같은 삶을 깨달았다고 한다면 비약일까요? 데리다를 통해 카프카를 읽어낸 첫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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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미소 (2강 후기) |
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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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운덕 교수님과《변신》과 《만리장성의 축조》를 읽는 동안 카프카의 글을 잘못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프카가 연 문을 통과해 가장 매력적으로 도착한 작가는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카프카의 문학적 성과를 통해 가장 대중적으로 도착한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생각합니다. 카프카와 하루키가 글을 쓰고 그 글을 발표한 시점의 차이에는 독자의 리듬이 가장 크게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20세기 초 사람들이 생활을 하는 속도와 20세기 말 그리고 21세기 지금의 사람들의 생활 속도 그리고 정보를 받아들이는 속도 말입니다.
2. 겉돌고 맴돌고 헤매기.
3. 《변신》에서 벌레Samsa의 사라짐(인간 죽음의 방식을 갖지 못하고 다시 생과 유한에 대해 재조명한 기회를 갖지 못하고 속절없이 사라짐)은 관계의 난폭한 일면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인식의 체계는 종류를 갖고 대상을 그 안에 분류하기를 원하는데 그러한 정의의 방식을 이탈하는 대상(사람, 사건, 사물, 사회 등)에 대해 우리는 다시 어떻게 인식을 할까. 분류와 정의의 순조로운 과정과 그 속도에서 벗어나는 대상 사이에는 간극이 발생하고, 그 벌어짐을 흔히 감정의 수사가 채우곤 합니다. 벌레Samsa와 그의 가족-이었던-의 대처에서 다시 질문을 합니다. 관계는 이해 불가능함에 대해 어떻게 응하는가? 벌레Samsa가 사라진 후 그들이 여행에서 발견한 ‘희망’이라는 단어는 그 얼마나 얇은 것인가? 여동생의 젊은 육체, 그 짧고도 한계가 분명한 이미지에서 모종의 답변이 숨어 있습니다.
4. 넘어지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 위험합니다.
5. 카프카의 소설들을 읽을 때 자연스레 생활인으로서 그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노동국의 관리로서 민원을 처리하며 그가 접했을 사람들과 그가 일을 하면서 느끼는 정신적인 마모 등. 내가 하는 이 일이 복무하는 질서는 무엇이고 내게 허전함으로 돌아오는 오늘 나의 이 노력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질문을 그는 피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 중 하나가 《만리장성의 축조》가 아닐까요. 만일 전체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무한한 원이 있다면, 개별성이 지워지는 역설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에 파스칼은 신에게로 다시 도피를 하고 브루노는 그 무한함의 역설을 통해 어디서나 중심이 가능하므로,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중심임을 천명하는 패기를 보입니다. 질문에 말미암아 근거가 없고 본질이 없으며 기원 또한 없고 절대적인 목표가 없는 신을 소환하기보다 그 모든 것에 대해, 이 순간 내가 일련의 답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말하는 것이 카프카의 소설임을 배웠습니다. 6. 블로크 : 신앙은 곧 고통이오.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같으니까. 당신들과 이렇게 함께 앉아 있으려니 모든 게 비현실적이고 나와는 상관없는 것 같소. 광대의 아내 : 이젠 그렇게 근엄해 보이시지 않네요. 블로크 :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거요. 이 고요함… 딸기와 우유… 저녁놀에 물든 당신들의 얼굴 수레 안에 잠든 미카엘 류트를 타는 요프 우리들이 나눈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이 기억을 신선한 우유가 철철 넘치는 그릇처럼 내 두 손에 조심스럽게 간직할 것이오. 그리고 이 기억은 나에게 커다란 충만함 그 자체가 될 것이오. - 잉마르 베리만, 《제7의 봉인》, 19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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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카프카와 나 (2강 리뷰) |
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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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프카와 나 >
카프카 2강 리뷰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벌레로 변신했다. 그런데 왜 하필 끔찍한 벌레로 변신한 걸까. 그레고르 잠자는 외판사원이었다. 노부모와 어린 여동생을 부양해야했던 그는 지난 5년간 쉴새 없이 일했다. 어쩌면 그는 쉬고 싶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백화점 점원이나 이마트의 계산원, 아파트의 청소부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그들을 벌레처럼 대하기도 한다. 그레고르 잠자도 어느 날 어쩌면 자신이 아주 초라한 한 마리 벌레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좋아. 정말 아주 벌레가 되어 보자. 그는 이제 벌레가 되어 일터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벌레의 몸뚱이로는 제대로 된 삶을 살 수가 없었다. 식구들도 그를 징그러워했다. 그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상처 나고 먹을 것도 제대로 못 얻어먹었다. 결국 그는 어느 날, 이번에는 죽음으로 변신했다.
카프카는 이 소설에서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자고 일어나 회사 가고 퇴근해서 먹고 자고 일어나 회사 가고. 이런 삶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벌레의 삶이라고 불러도 무방할까. 우리는 사실 대부분 이렇게 살아간다. 별다른 길이 없는 한.
개미처럼 만리장성을 쌓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건 너무 거대한 기획이어서 성은 부분적으로만 축조될 수 있을 뿐이다. 부분 축조인 만큼 성을 일관성 있게 쌓을 수는 없었다. 장성 축조는 북방 민족을 막기 위해서였는데 일관성 없는 성이 방어가 될 수 있을까. 될 수 없다면 사람들은 그 성을 도대체 왜 쌓는 것일까. 게다가 이 나라는 너무나 커서 북방 민족이 여기까지 오지 못한다. ‘그들이 거친 말을 타고 똑바로 우리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다 해도 대지가 너무 광활해서 우리들에게까지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성을 대체 왜 쌓는 것일까. 처자식과 생이별을 하고서 말이다. 이들의 삶을 뭐라 부를까. 카프카의 단편, <변신>에서도 <만리장성 축조>에서도 우리는 인간적인 삶을 발견하지 못한다. 어느 날 아무 의미 없는 한 마리 벌레로 변신한 우리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 또 아무 의미 없이 끝나지 않을 만리장성을 쌓아야 하는 사람들. 그들의 삶을 카프카는 뭐라고 불렀을까. 다시 그 질문을 우리에게 돌려보자. 우리의 삶은 무엇일까. 저들의 삶처럼 의미 없는 것일까. 아니면 벌레보단 나은 삶을 살고 있기는 한 것일까.
88만원 세대, 77만원 세대, 인구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주택보유율은 110프로인데 인구의 절반 이상이 자기 집이 없는 이상한 나라, 에 오래 살다보니 내 삶이 벌레보다 딱히 나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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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왜 체포된 것일까 (3강 리뷰) |
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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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왜 체포된 것일까. 아무 잘못도 없이 어느 날 아침에.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 부조리하다. 그는 체포되었지만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예심판사의 책상에는 법률 책이 아니라 한쌍의 남녀가 홀랑 벗은 그림책이 있다.
심문은 일요일에 있고 정확히 언제 오라는 것도 없다. 소송은 K의 죄에 대한 확실한 답변도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다. 그를 감시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단다. 그들은 그저 감시하라는 명령만 따를 뿐이다. 말이 통할 리가 만무하다. K는 피고가 되어 이런 식으로 다루어지는 데 지쳤다. 아무도 피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피고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무 특성도 없이, 익명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벌레로 취급되어도 좋지 않을까. K는 은행원이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이라는 것도 그렇다. 동료들은 그저 같은 은행원일 뿐 친구라고 할 건 못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인간적인 관계란 이미 단절되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우리는 어째서 인간인 채로 인간이 아닌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는 체포되었지만 체포되지 않았고 그는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니다. 호모사케르처럼.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언어는 나를 대신한다. 나는 어느 학교 몇 학번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나는 아니다. 나를 대신할 뿐이다. 화폐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화폐는 실물을 대신한다. 법은 어떤가. 법은 해라, 하지 말아라 라는 명령만 (외설적으로)되풀이 할 뿐이다.
그 안에 인간은 없다. 살과 피를 가진 실제 인간 말이다. 실물도 없다. 법은 내 개인적인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점점 인간성을 잃고 지쳐 병들어 간다. 카프카는 어쩌면 이런 우리의 현실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 모든 것(언어, 법, 화폐 등)들을 버리고 갈 수 있을까. 포스트모던 식으로? 그럼 우린 다시 동물이 되고 말 것이다.
언어는 낮과 밤을 구분하지만 정오 이후의 낮은 어느 정도의 밤을 포함하고 있다. 언어는 이처럼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지만 나는 그 둘을 다 가지고 있다. 라캉은 ‘나의 욕망이 타자의 욕망’이라고 말한 적 있다. 언어는 이런 식으로 세상을 구분 짓고 재단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간단히 구분되지 않는다. 그것을 파괴하는 일이 시의 업무가 아닐까. 물론 시의 어두운 측면도 있다. 하지만 오늘의 현실을 내파할 수 있는 건 그래도 여전히 시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그저 동물이 아닌 이유는 시를 읽고 음악을 듣고 철학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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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Ⅱ 4강 강의 리뷰 |
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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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Ⅱ
카프카의 세계는 온갖 부조리와 모순, 역설들로 가득하다. K는 영문도 모르고 체포되어 결국 법의 심판 아래 살해당하고 만다. 그의 일상은 낯선 사건 사고들로 가득 차서 생경해 보이고 이성적으로는 납득도 안가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이라면 어쩔 것인가. 우리는 현실이 질서 정연하고 아무런 모순도 없으며 매우 합리적이라고 믿고 살아가지만 서울에 아파트 값을 보면 전혀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 있는 집값일까. 오천만원 짜리 손목 시계로 있단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허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이러한 허구이다. 이 얼마나 낯설고 부조리한 현실일까.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여러 가지 대출을 받아서까지 아파트를 산다. 가격이 얼마든.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게을러.
사람들은 아파트 대출을 갚으면서 일생을 의미 있게 살아간다고 믿는다. 그리고 곧 죽는다. 이보다 더 허무하고 부조리한 건 어디 있을까. 부조리는 카프카의 소설 속에나 있는 것은 아니다.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은 허무하고 불안하다. 어쩌면 인간은 삶의 허무를 견디지 못하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허무를 절대적으로 척결하지는 못한다. 공허함을 채워보려고 열심히 백화점에서 쇼핑도 해보지만. 판검사, 의사, 교수가 되어도 인간은 죽음 앞에 무력하고 허무한 존재다. 빌 게이츠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카프카는 그 공허 앞에 대면하라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자로 잰 듯, 계획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 하지만 일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것을 회피하지 말고 똑바로 직시하라는 것이 카프카의 메시지가 아닐까.
현실이 늘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주택 보급률은 110프로인데 집이 없는 사람들이 인구의 절반 이상이다. 많이 가진 자는 혼자서 1600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열심히 일을 하면 집을 살 수 있겠지. 천만에. 현실은 이렇게 부조리하다. 아침 뉴스를 보니 시중에서 판다는 비타민 워터에는 비타민이 전혀 들어 있지 않다고 한다. 이것 또한 얼마나 부조리한 현실인가.
K는 변호사의 대변을 거절하기로 한다. 남이 나를 대신하는 것도 부조리하다. 우리는 항상 나를 대신하는 무엇을 필요로 한다. 학교에서는 교사가 나의 학업을, 법원에서는 변호사가 나의 소송을, 은행에서는 펀드 매니저가 내 자산을 대신 관리 해 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체는 사라져 버린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무슨 학교에 다니고 자동차가 있지만 그것들이 나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카프카처럼 자기를 찾아 모험을 떠나 보자. 분열되어 있는 자기든 우울한 자기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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