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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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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기대 이상인 강의 |
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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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운덕 선생님을 이 사이트에서 처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문학과 철학에 대한 강의를 몇 개 들었는데요, 물론 내용이 쉽지는 않지만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최근에 아감벤에 관한 여러 담론들이 있는 것 같은데, 선생님의 강의가 저에게는 가장 신뢰가 갑니다. 즐겁네요. 배운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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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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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미소 |
황*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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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의 바른 가르침은 꽃 보다 아름다우십니다. "
不立文字 敎外別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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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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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케르와 생명 정치 |
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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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의 새로운 사고’에 대한 강의를 듣고...
서양 철학사에서 니체는 새로운 사고의 출발점이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절대적 지위를 지켜왔던 ‘신’의 권위를 무자비하게 추락시켰다. 니체의 출현으로 인류는 ‘신중심의 사고’에서 ‘인간중심의 사고’로 전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감벤은 니체의 연장선상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틀을 제시하는 철학자라고 볼 수 있다. 아감벤은 현재 유럽 지성계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아주 생소하고 낯선 철학자였다. 아감벤은 푸꼬의 생명관리 권력에 대한 담론과 신비주의 철학자 벤야민의 문제의식을 토대로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를 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푸꼬에 따르면 국가/권력은 생명체를 위하여 존재해야 하는데 부조리하게도 그 생명체들은 국가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관리 당하고 지배당하며 감시 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감벤은 푸꼬가 던진 생명관리 권력에 대해서 ‘호모 사케르’를 중심으로 인간의 권리가 어떻게 억압당하는가를 사유하게 한다. '호모 사케르'는 예외 상태’에 놓인 희생당하는 인간을 의미하는데, 아우슈비츠 수용자들, 731부대 실험용 인간들, 독일에서 희생당한 유태인 등은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호모 사케르’를 통해서 정치구조와 자연 생명의 기원을 밝히고자 한다. 그들의 문제가 정상적인 상태에 있는 우리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문제를 제기한다.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를 외면하기보다는 그들을 통해 현재의 부조리함,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점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호모 사케르는 단지 예외적인 사태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북한 탈북자, 또는 우리나라에 유입된 외국인, 고아나 과부 등 사회에서 외면당하는 사람들의 권리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아감벤은 예외 공간인 수용소에서 출발하여 권리 주체인 시민들이 ‘잠재적인’ 희생자임을 밝히고 생명정치에 포함되는 자연 생명이 근대 정치 공간에 숨겨진 기초임을 드러낸다. 혹시 나도 국가에게 가끔은 '호모 사케르'로 희생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철학 입문 단계라 철학 사전 지식이 풍부하지 않은 나에게는 철학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는 당 강의가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8주 동안 아감벤의 철학에 대해 배우고 나면 지금보다 더 철학에 대해 깊은 애정과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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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케르, 우리 안의 예외 상태를 조명하다 |
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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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운덕 교수님의 이 강좌는 조르조 아감벤의 핵심 개념인 '호모 사케르'를 통해 근대 정치 공간에 숨겨진 '생명 정치'의 기초를 치밀하게 파헤칩니다. 호모 사케르가 단순히 아우슈비츠 수감자 같은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법적 권리를 박탈당하고 단순 생명체(조에)로 전락할 수 있는 '잠재적인 희생자'로서 우리 시민들의 또 다른 모습임을 명확히 합니다(1, 3강). 특히 비정규직 근로자나 복지 혜택 거부와 같은 한국 사회의 타자 문제를 예외 상태의 틀로 조명하는 시도가 매우 시의적절하고 강력했습니다. 푸코와 벤야민의 사유를 이어받아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법과 주권의 폭력성을 비판적으로 숙고하게 만든 명강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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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증언, 아우슈비츠와 광주의 부끄러움 |
정*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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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에서 다룬 아우슈비츠와 광주를 통한 '증언의 불가능성'과 '부끄러움'에 대한 사유가 가장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무젤만처럼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놓인 희생당하는 인간들의 침묵의 증언과, 죄를 짓지 않은 자들이 겪는 자기 촉발적 부끄러움을 통해 인간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아감벤의 윤리적 질문이 매우 날카로웠습니다(12번 수강평 참고).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에서 해고된 사람처럼, 권리를 박탈당하는 또 다른 형태의 호모 사케르의 문제를 인식하게 해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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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폭력성, 새로운 사고를 촉구하다 |
박*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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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의 '폭력 비판'과 카를 슈미트의 '주권 이론'을 대립시키며 법의 정립과 보존에 내재된 폭력성을 해체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이 탁월했습니다(2, 3강). 카프카의 「법 앞에」를 통해 법이 우리 다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기득권층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장치일 수 있다는 통찰을 얻었고(15번 수강평 참고), 주권 권력이 예외 상태에서 무제한의 권력을 행사하며 독재자처럼 작동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아감벤은 예외 상태가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고 강조하며, 새로운 사고를 촉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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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없는 수단, 삶을 놀이처럼 |
이*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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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에서 아감벤이 던지는 질문, '목적 없는 수단'으로서의 순수한 폭력과 법에 대한 논의가 신선했습니다. 순수한 폭력을 목적에서 분리된 행위로 해석하고, 목적 없는 삶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면 어떻겠냐는 질문(13번 수강평 참고)은 삶에 대한 새로운 존재론적 실험입니다. 세속화 비판과 새로운 생활 형식에 대한 논의는 자본이나 물질이 권리를 누리는 끔찍한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주체가 되는 다른 정치학의 가능성을 모색하게 해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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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내용은 좋으나, 강의록이 너무 부실해요. (불만족) |
김*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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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운덕 교수님의 꼼꼼하고 일목요연한 강의 내용은 훌륭합니다. 아감벤의 사상에 가까워진 느낌이고, 어려운 내용들을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강의록이 드문드문 있고 잘 정리되어 있지 않아서 (4, 10, 11번 수강평 참고) 온라인으로 듣는 입장에서는 머릿속으로 정리가 되지 않아 매우 힘들었습니다. 교재를 사면 된다고 할지 모르지만, 기존 강좌들과 달리 프린트물도 없이 강의만 듣고 있자니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습니다. 내용의 깊이와 별개로 수강 편의성은 진심으로 비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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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성과 비잠재성, 바틀비의 'I would prefer not to' |
박*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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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강에서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통해 잠재성과 비잠재성(impotenza)을 함께 사고하는 아감벤의 새로운 사고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라는 순수한 비 잠재성의 사고가 창조/탈창조의 영역에 걸쳐있는 우발성의 존재론적 실험임을 해석하는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하지 않는' 잠재력을 통해 언어와 진리의 가능 조건으로서의 미숙함(infanzia)을 논하는 5강과 연결되어 주체의 자유로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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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함과 자유로움, 언어적 경험의 조건 |
윤*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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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에서 '미숙함(infanzia)'을 언어와 진리의 가능 조건으로 제시하며 비잠재성의 틀로 자유를 논하는 아감벤의 사유가 도전적이었습니다. 경험적 주체와 선험적 주체의 논의를 넘어서, 언어적 경험과 미성숙함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방식이 신선합니다. 우리는 미숙함의 문제틀 속에서 비로소 우발성의 자유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억압적인 현실 속에서 희망의 단초를 찾게 해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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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의 체스판, 새로운 개념으로 움직이다 |
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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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의 '순수한 언어'와 '순수한 폭력'에 대한 논의는 아감벤이 벤야민의 체스판 위에서 새로운 개념으로 말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13번 수강평 참고). 언어가 소통의 수단이 아닌 스스로 말함으로써 충분한 것일 수 있는지, 법이 목적 없는 수단성을 가질 때 폭력으로부터 해방되어 놀이처럼 다뤄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우리의 사고를 근본적으로 뒤흔듭니다.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어주는 철학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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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이 되었습니다. 꼼꼼한 설명에 감사해요. |
배*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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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운덕 선생님 강의를 세 개째 듣고 있는 팬입니다. 대학 때 너무 어려워서 잘 모르겠던 아감벤을 교수님의 자세하고 꼼꼼한 설명 방식 덕분에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6, 7번 수강평 참고). 푸코의 생명관리 권력과 벤야민의 문제의식을 토대로 호모 사케르를 조명하는 과정이 신뢰가 갔습니다. 배운다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강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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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앞에서, 외면당하는 사람들의 권리 |
이*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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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법 앞에' 비유처럼, 우리는 강제로 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 법 앞에서 기다리는 시골 남자와 같을 수 있습니다(15번 수강평 참고). 호모 사케르를 북한 탈북자, 외국인, 고아 등 사회에서 외면당하는 사람들의 권리 문제로 확장하여 생각하게 하는 점이 좋았습니다(3번 수강평 참고). 아감벤은 예외 상태를 통해 정상 상태의 부조리함을 비춰보게 하는 가장 확실한 장치를 제시해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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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배경이 부족해 어려웠어요. (불만족) |
정*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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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입문 단계라 사전 지식이 풍부하지 않은 저에게는 강의가 철학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푸코와 벤야민의 이론을 토대로 아감벤의 사유를 전개하는데, 이 배경 지식이 부족하니 강의를 따라가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8주 동안 배우고 나면 더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완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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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자기 촉발의 문제 |
황*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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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능동적인 선택의 문제가 아닌 수동적인 자기촉발의 문제로 사유하는 아감벤의 관점(6강, 12번 수강평)이 인상 깊었습니다. 죄를 지은 자들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죄 없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끼는 아이러니를 통해 인간의 본질에 접근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부끄러움이 자신의 본질에 접근하는 길일 수 있다는 통찰을 얻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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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 철학에 대한 신뢰를 주다 |
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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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감벤에 관한 여러 담론들 중에서 양운덕 선생님의 강의가 저에게는 가장 신뢰가 갑니다. 호모 사케르 3부작을 미리 읽고 강의를 들으니 어려웠던 내용들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교수님 덕분에 아감벤의 사상에 더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다음에 또 다른 강의를 듣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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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의 해체론적 해석 |
송*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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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에서 벤야민의 폭력 비판을 데리다의 해체론적 해석을 통해 심화하는 부분이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더해주었습니다. 법의 폭력성과 법과 정의의 간극을 다루는 과정에서, 해체론이 어떻게 폭력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134분에 달하는 긴 강의였지만, 내용이 워낙 풍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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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연장선상에서 아감벤을 보다 |
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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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생명관리 권력에 대한 담론과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를 연결하여 새로운 사고의 틀을 제시받은 강의입니다. 생명정치에 포함되는 자연 생명이 근대 정치 공간에 숨겨진 기초임을 드러내는 아감벤의 사유가 니체의 연장선상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를 권유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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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
소*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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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좀 심한것 같습니다. 강의록도 빠져있는 부분이 있어서.. 근데 강의록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강의 목표로 제시한 핵심개념들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서,, 이게 지금 내가 뭘 듣는지 모르겠더군요. 진심으로 비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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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솔직한 강좌평에 대한 아쉬움 |
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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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엔스터디...좀 더 솔직한 강좌평이 아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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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운덕선생님 감사해요ㅠㅠ |
배*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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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운덕선생님 강좌만 벌써 세개째예요 ㅋㅋ 팬 될듯.ㅋㅋㅋㅋ 대학 다닐 때 아감벤에 대한 수업을 들은적이 있는데 그 때 너무 어려워서.. 발표를 했음에도 아직 아감벤에 대해서 잘 모르겠었거든요. 사실 양운덕선생님이 좋아서 강의를 들었는데 역시 좋아요. 감사해요 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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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의 새로운 사고 |
유*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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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운덕 선생님의 팬이에요. 양운덕 선생님의 설명 방식을 좋아하거든요. 자세하고 꼼꼼해서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시기도 하고.. 덕분에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강의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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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의 새로운 사고 |
금*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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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를 가지고 대학 때 발표를 한적이 있었는데 그 때 공부하면서 아감벤을 접하게 되었어요. 이 사이트 여기저기 보다가 아감벤을 보고 그 때 생각이 나서 강의를 듣고 있어요. 공부가 된다는 느낌이고.. 다음에 또 듣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잘 들을게요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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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운덕 교수님의 꼼꼼한 강의! |
m**kook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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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사케르 3부작을 비롯한 아감벤 철학을 꼼꼼하게 강의해주신는 교수님 덕분에 아감벤의 사상에 조금은 더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호모 사케르 3부작을 먼저 읽고, 교수님 강의를 들은 후에, 다시 한 번 책을 보니 어려웠던 내용들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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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 듣기에는 강의록이 잘 정리되지 않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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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가까이 아트앤 스터디에서 인터넷 강의를 들었는데요. 이 강좌만큼 강의록이 드문 드문 있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ㅠㅠ 교재를 사면 되지 않아? 라고 반문하시겠지만 글쎄요. 기존에는 교재가 없어도 강의 듣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는데 이번 강좌는 좀 힘드네요. 오프라인에서는 프린트물을 나눠 주시고 해서 선생님이 읽어 나가시는데 온라인에서는 프린트물도 없이 선생님 말씀만 듣고 있어야 하니 머릿속으로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온라인으로 듣는 학생들도 배려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강의 내용은 선생님께서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주시는데 강의록 부분에서 듣는 학생 입장에서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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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강의로는 좀...(강의록이 잘 정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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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가까이 아트앤 스터디에서 인터넷 강의를 들었는데요. 이 강좌만큼 강의록이 드문 드문 있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ㅠㅠ 교재를 사면 되지 않아? 라고 반문하시겠지만 글쎄요. 기존에는 교재가 없어도 강의 듣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는데 이번 강좌는 좀 힘드네요. 오프라인에서는 프린트물을 나눠 주시고 해서 선생님이 읽어 나가시는데 온라인에서는 프린트물도 없이 선생님 말씀만 듣고 있어야 하니 머릿속으로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온라인으로 듣는 학생들도 배려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강의 내용은 선생님께서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주시는데 강의록 부분에서 듣는 학생 입장에서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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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말할 수 없는 자리에 존재 한다 |
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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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는 자신에게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인간을 동물로 만들었고 또한 시체를 생산해내는 공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과 비인간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인간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권리를 누릴 자격을 지니고 있는 반면 비인간은 자신의 권리를 누릴 자격을 갖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일명 무젤만이라고 불리는 그들은 살아있지만 걸어 다니는 시체에 불과 했다. 그들이 다시 정상 상태로 되돌아왔다 할지라도 영원히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인간이 되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남은 것을 오히려 부끄러워한다. 죽어간 사람들 대신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아감벤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 아우슈비츠를 관리하는 나치 관리들은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오히려 비상사태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 죄를 지은 자들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죄 없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오히려 부끄러워한다. 아감벤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를 사유하고자 하였다. 아감벤은 “부끄러움은 능동적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수동적인 자기촉발의 문제다.”라고 말하였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사람은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문제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의 본질에 접근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무젤만들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예외적인 상태로 취급하기 보다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정상 상태에 놓여있다고 할지라도 폭력이 아닌 또 다른 방법으로 권리를 박탈당하고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는 인간의 권리가 생존의 문제였지만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명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성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에서 해고된 사람이라면 자신의 권리를 누릴 수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이 인간의 권리를 박탈하는 지위까지 누리고 있다. 인간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자본이나 물질이 오히려 권리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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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아감벤의 체스판 |
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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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은 <폭력비판론>에서 법 바깥에 법 정립적 폭력과 법 보존적 폭력이 아닌 다른 종류의 폭력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였다. 벤야민은 법 바깥에 존재하는 예외 상태의 폭력을 ‘순수한’ 폭력 또는 ‘신적인’ 폭력이라고 명명하였다. 아감벤은 벤야민이 말한 ‘순수한 폭력’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다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감벤은 ‘순수한 폭력’이 무엇인가를 드러내기 위해서 ‘순수한 언어’라는 용어를 차용해서 설명하고 있다. 만약 언어가 소통을 위한 수단이라면 언어는 지시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게 된다. 벤야민은 “지시하지도 않고, 소통하지도 않는 언어는 없는가?”라고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 아감벤은 “언어는 전달을 위한 수단인가? 아니면 언어 스스로 말함으로써 충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아감벤의 질문은 ‘순수한 폭력’이 어떤 것과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정상상태의 법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에 반해 아감벤은 예외 상태에서의 법은 목적이 없는 수단성을 지닌다고 하였다. 아감벤은 ‘순수한 폭력’은 목적에서 분리되어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아감벤은 예수가 ‘사랑하라’는 메시지로 기존의 법을 멈추게 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연 것처럼, 벤야민의 ‘순수한 폭력’은 정상 상태에서의 법이 멈추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예외 상태의 법은 법의 폭력으로부터 해방되어 있기에 어떻게 관계 맺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벤야민은 이런 상태의 법을 삶이라고 말하고자 했다. 아감벤은 체스판 위에서 ‘순수한 폭력’이라는 말을 새로운 개념으로 움직인 것처럼 보인다. 아감벤의 해석에 따르면 법이 해방된 상태에서 법을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새로운 견해를 내놓았다고 볼 수 있다. 아감벤의 해석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는 문이 될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아감벤은 ‘순수한 폭력’처럼 목적이 없는 삶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면 어떻겠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감벤은 우리 삶이 ‘순수한 폭력’과 같이 목적이 없다면 삶을 놀이처럼 사는 삶이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가 아닐까? 우리는 지금 아감벤이 던진 질문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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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
슈미트의 주권 이론 |
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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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2012. 4. 19 강의)
제목: 슈미트의 주권 이론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신체와 소유물에 대한 권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각 개인이 자신의 신체와 소유물에 대한 권리. 즉 자연권을 혼자 힘으로 보호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사회 및 국가를 통해서 보장받기를 원하게 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사회계약론’이 성립되었다. ‘사회계약설’은 사회 성립의 근거가 되는 구성원이 사회 및 국가와 평등한 자격으로 합의한 계약이다.
사회계약론의 핵심은 법이다. 그런데 법이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폭력이라는 수단을 사용하게 된다. 사회가 정상 상태일 때에는 법은 규범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비상사태와 같은 예외 상태일 때에는 법 밖에서 법의 내용이 결정된다.
벤야민의 폭력론과 슈미트의 주권론은 둘 다 혼돈 상태를 전제로 한다. 벤야민은 예외 상태에서 법 밖에 여러 종류의 폭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증하려고 하였고, 슈미트는 예외 상태에서 어떻게 주권이 행사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슈미트는 <정치신학>에서 예외 상태에서 주권권력은 주권자에 의해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말한다.
정상 상태에서는 법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에 주권자는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지만 예외 상태에서는 주권자는 무제한의 권력을 부여하고 있다. 예외 상태에서는 현행법이 정지되고 주권자에 의해서 모든 것이 결정되어진다. 그런 점에서 주권자는 독재자와 같은 권력을 행사한다.
이와 같이 벤야민의 폭력론과 슈미트의 주권 이론을 종합해보면 법 밖에서 오히려 주권 독재가 행사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감벤이 벤야민과 슈미트의 이론을 도입해서 예외 상태에서의 법을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예외 상태에서 오히려 폭력과 주권의 문제를 확실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예외 상태는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치 빛과 어둠이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빛과 어둠은 서로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장치인 것처럼 예외 상태는 정상 상태를 비춰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장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외 상태의 문제가 우리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관심을 가질 때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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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카프카의 법 앞에…… |
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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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법 앞에……
카프카의 ‘법 앞에’라는 글에서 시골 남자는 ‘법’(공간으로 표현)앞에서 문지기에게 가로막혀 오랜 시간 문 앞에서 기다린다. 기다리다가 나이가 들어 죽기 직전 마지막에 누군가 시골 남자에게 ‘이 문은 당신을 향한 문이다’라고 말한다. 무슨 의미 일까? 왜 시골 남자는 강제로라도 문을 통과하지 못했을까? 그 법이라는 개념(공간)은 누가 만들었을까? 라는 의문과 함께 2강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는 개인과 개인 간의 폭력 내지 국가와 개인 간의 폭력 등 다양한 폭력이 존재하고 있다. 아감벤은 벤야민과 데리다의 해석을 통해서 폭력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법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점에서 보편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데, 법이 실제로 실행되는 현실에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할 수 없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그런 문제점을 파헤치기 위해서 벤야민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는 법에 폭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파헤치고 있다.
벤야민은 법을 정립할 때에나 법을 보존할 때에도 폭력과 관계한다고 보고 있다. 법을 크게 분류하면 자연법과 실정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자연법은 법의 이념을 추구하고, 실정법은 법의 이념을 실천하는 범주를 말한다. 자연법에서는 목적을 중심으로 삼기 때문에 폭력과 같은 정당하지 않는 수단을 문제로 삼지 않게 된다는 맹점이 있다. 실정법에서는 수단이 정당하면 목적까지도 정당화 하려는 맹점을 지니고 있다.
국가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공권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정당한 것인가? 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부를 축척한 사람을 성공한 사람으로 보게 되는데 그러한 성공은 정당한 것인가 하는 문제들을 제기하는 것이 벤야민적 사고다. 만약 교사가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러한 폭력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아감벤은 우리에게 비판적으로 생각해 보라고 촉구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생명의 권리를 많은 부분에서 박탈당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찾으려는 생각조차 없었던 것에 대해서 아감벤은 주권의 권리를 찾으려면 새로운 사고를 하라고 촉구하는 듯 하다.
법이라는 것이 우리 다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기득권층의 권리(가끔은 폭력으로 대변됨)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말이 진실일 수도 있겠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부조리함에 대응하거나 현재의 틀을 비판함에도 법과 폭력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다. 법에 의해 결정되고 처벌받아지니까 말이다. 과연 그러한 법을 지키기 위해서 쓰여진 폭력은 정당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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