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희 (실학박물관 학예연구사) |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 학위를, 동대학원 박사 학위를 수료했다. 현재는 조선시대 과학사 및 여성사를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 <이재 황윤석의 과학사상>, <조선후기 시헌력의 도입과 그 영향>, <조선후기 시헌력 도입의 정치적 배경> 외 다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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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서 |
| 『한국사 다이제스트 100』, 『조선의 섹슈얼리티: 조선의 욕망을 말하다』, 『고려왕조사 이야기』, 『조선시대 우주관과 역법의 이해』 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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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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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유효한.. 성과 권력의 관계 |
오*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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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분처럼.. 제목에 이끌려서 구입했다. 섹슈얼리티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고 지금 내가 사는 시대의 가부장적인 성문화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성과 권력의 관계는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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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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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성문화전통과 다양한 풍습에 대한 이해 |
이*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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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제목에 호기심이 끌려 신청하여 이제 완강. 재미를 조금 기대했지만, 기대했던 것 보다는 강의는 다소 밋밋했지만, 우리의 성문화 뿐만아니라 결혼제도등 다양한 주제를 유교의 역사성과 관련하여 다루어, 그간 무심히 지냈던 부분들의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참조할 수 있는 저자의 교재가 있어 깊이를 더 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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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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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섹슈얼리티 |
유*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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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면서도 어렵네요. 역사 중에 조선에 대해서는 그래도 익숙한 편이라 흥미롭게 잘 들었습니다. 단순히 작품에 대한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역사까지 살펴볼 수 있어서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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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권력의 관계 |
홍*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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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철학적이고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는데..남자와 여자의 존재 자체가 구분되기까지도 그렇게 많은 사상과 역사가 있는지 몰랐어요. 이를 바탕으로 조선시대의 성과 권력, 사회상까지 배울 수 있는 좋은 강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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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섹슈얼리티 1강 |
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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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강 전통사회 여성과 남성 1교시 남성 중심 성문화의 기원 ◎ 플라톤의 ‘향연’에 언급된 아리스토파네스 이야기 인간은 원래 남녀 양성체였지만 제우스 신이 인간을 둘로 분리시켰다. 이런 이유로 남녀는 예전처럼 하나가 되려고 서로 다른 반쪽을 추구하게 되었다. (제 3의 성: 동성애도 설명 가능)
◆ ‘性’의 다양한 의미 남녀의 구분 및 영문의 sex와 gender를 모두 性으로 번역함 * sex의 의미: 생물학적 남녀의 구분, 분리하다는 뜻의 라틴어 동사 secare에서 유래됨 * gender의 의미: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남녀의 구분(제 3의 성을 표현할 수 있음) * sexuality의 의미: 개인의 성격, 감정, 행동뿐만 아니라 성적인 존재, 성별 등을 나타내주는 포괄적 의미로 성행동과 관련된 심리적, 문화적 요소까지 포함
◆ 동양에서의 ‘性’의 의미 섹스와 젠더 모두 性으로 번역되며 마음(心)과 몸(生)을 동시에 표현, 즉, 성은 전체적인 인간 그 자체를 뜻하는 것이지 성행동이나 성적 쾌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 섹스에 대한 의미는 색(色)이라는 단어가 더 적격임 * 섹슈얼리티는 성욕이나 성애로 번역됨
◆ 남성 중심 성문화의 역사적 추이(구석기시대~청동기시대) 원시시대에는 남녀의 성차별이 거의 없었으나 생산력이 증대되는 청동기 시대 이후부터 성차별적 요소(남성에게 존재하는 성문화와 여성에게 존재하는 성문화의 차이)가 등장한다. * 구석기시대: 남성은 사냥, 여성은 채집 등 생산 활동에서 성별이 분업되어 상호 보완적임 * 신석기시대: 정착생활이 시작되고 여성이 농경을 담당하며 여성의 역할이 증대대기 시작 (모계 사회를 이룸, 땅의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비너스상 등의 여성상이 발견 등) * 청동기시대: 금속제의 발달로 생산력이 증대되며 정복 전쟁이 발발되기 시작하며 신분계급 및 사유재산이 형성되기 시작함(모계 사회에서 부계 사회로 변화하며 남녀 사이가 지배와 종속 관계로 변화됨)
◆ 남성 중심 성문화의 역사적 추이(고대 그리스‧ 로마~19세기 산업혁명 이후) 20세기 초반 까지만해도 여성은 성에 대해 수동적이고 관심 없는 존재, 수동적이며 무언가 결핍한 존재로 여겨졌다. 또한 미국은 남북 전쟁이후 급격한 도시화 속에서 사회 성풍속이 문란해지자 모든 우편물을 확인하여 성적인 내용이 담기면 전부 외설로 금지하는 법령인 콤스탁 금지법이 생겼다. 이혼에 대한 기사도 금지하던 이 법은 1960년 이후에야 법이 없어졌다. * 고대 그리스‧로마시대: 아리스토텔레스가 ‘여성은 남성으로 도려다가 만 잘못된 존재’라고 말하는 등 여성은 결핍되고 불구적인 존재라 차별이 당연하다는 인식의 존재함 * 중세: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성규범이 결혼과 많이 관련되어졌다. 특히 여성을 원죄를 갖게 한 이브 즉, 유혹자로 인식하고 여성이 성적인 존재로 판명되면 마녀 사냥 * 빅토리아 왕조시대 이후: 기독교 윤리가 최고조인 시기인 19세기 여성은 성욕이 없는 존재로 규정되면서 정숙한 여성과 그렇지 못한 여성으로 이분화 됨. 여성은 결혼 생활 내에서만, 남성은 어느 상황에서나 성을 추구할 수 있는 이중 기준이 부각됨.
◆ 근대의 성 연구 킨제이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여성도 성욕이 있음, 여성을 성적인 존재라고 언급했다. * 여성의 성해방의 대표적 예로 피임기구의 사용이 있다. 미국은 1963년부터 기혼여성이 피임기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1972년이 되어서야 미혼여성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남성과 여성의 성욕차이 남자는 수많은 정자를 생산하여 수많은 여성을 임신 시킬 수 있고, 여성은 임신과 양육을 책임지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자기에게 충분히 투자해줄 상대를 고름 * 여성은 자기가 상대하는 수를 제한하면서 종족 보존을 위한 결정권을 행사함
2교시 성문화의 변화 ◆ 가부장제의 성립과 호주제도 가부장제는 가장의 가족성원에 대한 지배를 지지하는 체제로 남성에 의한 여성억압체제라고도 할 수 있다.
◆ 중국의 가부장제 가족제도 칠거지악이 법률적으로 인정한다. 중국의 성인식과 유교가 합쳐져 조선시대에 유입됨.
◆ 조선시대 가장의 개념 한국에서 가장이 법적 제도로서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은 유교를 바탕으로 가족단체를 지도이념으로 추구했던 조선시대로 가장은 가족단체의 통솔자로서 최연장자 남자가 원칙임 * 경국대전 성립 전에는 가장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음(경국대전은 대명률이라는 중국의 법을 따른 것으로 중국의 남성 중심 문화가 그대로 유입됨)
◆ 유교적 여성관의 확산 내외법이 실행되어 여자는 외출규제, 사찰방문 금지, 외출 시 얼굴을 가리거나 가마를 타게 하는 등 여자에 대한 생활규제가 강화되며 조선 후기에는 정조, 열녀를 국가적 차원으로 홍보‧교육함
◆ 조선시대가부장적 가족질서의 확립 17세기 이후 가장권의 계승이나 재산의 상속, 제사권의 계승이 적장자에게 집중되면서 여성은 배제되어가며 가부장적 질서가 확립되었다. 특히 처첩과 적서를 구분하면서 국가적으로 재산 상속 및 시험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적서를 차별하면서 여성의 신분과 아들 출산의 중요성이 유교적 혈통 관념으로 자리 잡았다.
◆ 사법상 규정된 가장의 권력과 지위 처가 친정으로부터 받은 재산을 가장이 자의로 재산권을 행사 할 수 없다(일제시대에서는 가장이 자의로 재산권 행사 가능함)는 것 때문에 여성의 법적 지위가 보장되었다는 시각도 있으나 칠거지악 등 형법상으로 여성의 권리가 극단적으로 제한되었다.
◆ 戶主制度의 성립과 기능 조선시대 호적은 호구의 조사 성격이었으나 일제시대로 넘어가며 일본이 조선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며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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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섹슈얼리티 2강 |
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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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강 결혼제도와 성문화 1교시 처가살이에서 시집살이로 ◆ 조선시대 결혼제도 유교적 결혼관의 확산되면서 독신이 금지되었고 가계계승의 질서를 강조하는 종법(宗法)이 새로운 가족 질서의 원리로 받아들여지며 법적으로 본처만을 인정하는 일부일처제 사회였다. * 반드시 결혼해야 하는 시대로 불효 중에 후손이 없는 일이 가장 큰 불효로 여겨짐. * 노총각, 노처녀들은 환과고독과 함께 구제대상
◆ 본처만을 인정한 일부일처제 실제로는 다처가 인정된 사회였으나 종법에 의해 처첩, 적자, 서자, 얼자가 구분되었다. * 남자들은 본처 외에도 첩을 둘 수 있었던 반면, 여자들은 일부종사를 강요 받는 등 남녀에게 다른 결혼 문화가 적용되었음 * 태종 13년, 처가 있는데 또 다시 처를 맞이하는 ‘유처취처’가 정식으로 금지되었음
◆ 전통적인 결혼 풍속 남귀여가 혼속은 고구려의 데릴사위제와 같이 신랑이 일정기간 신부의 집에서 거주하는 형태의 결혼 풍속이다. * 그때 머무르는 신혼방을 ‘서옥’이라고 불렀는데 그래서 ‘서방’이라는 말이 나옴
◆ 유교식 혼례의 확산 유교식 중국 혼례인 ‘친영’에서 비롯되어 시집가는 혼인 풍속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친영은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신부를 데리고 온 후, 신랑집에서 혼례를 치르는 것으로 남자집 중신의 결혼풍속이다. * 그동안 남자집에서 부담했던 혼수를 여자집에서 부담하기 시작함 * 남귀여가 혼속과 친영이 절충된 ‘반친영(혼인 후 1년 정도 있다가 시집감)’이 오랜기간 결혼 풍속으로 자리잡음
◆ 중매결혼과 선보기 가문과 신분에 따른 중매결혼으로 혼사가 이루어졌으며 주혼자 없이 결혼이 이루어졌을 경우 결혼의 무효화는 물론이고 화간이라하여 간통으로 처벌함 * 남녀가 서로 만나지도 않고 결혼하게 되기 때문에 사주 궁합이 일반화됨
◆ 혼례 절차 조선시대 혼례는 중국식 유교식 혼례 절차를 본따 ‘육례’를 바탕으로 함 * 육례란 결혼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준행해야 할 여섯 가지 의식과 절차로 납채, 문명, 납길, 납징, 청기, 친영임
2교시 일부일처와 일부다처 ◆ 결혼 풍속의 변화 고려말 주자학 도입과 함께 자손의 번창을 위해 양반을 대상으로 하여 근친혼, 동성동본의 결혼을 엄격히 규제되고 고려말 원나라 공녀를 고려 여성으로 조공함으로써 공녀로 끌려가지 않게 하기 위해 조혼 풍속이 성행함 * 유교가 통치 이념으로 정착되기 시작한 고려 말부터 수절이 강조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조선시대는 과부들의 재가가 금지됨 * 중류 이하 서민들, 즉 하류 사회에서는 보쌈(과부 업어가기)이 성행함과 매매혼이 성행함
◆ 축첩제도 조선시대 국가는 축첩제도를 공인함. ‘성인인 공자도 첩을 거느렸다’고 하여 첩 두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음 * 조선시대의 축첩제도는 첩이 적처가 될 수 없다는 엄격한 규정과 함께 첩의 존재를 공식화 하였고 처첩제를 바탕으로 한 결혼제도는 남자들의 자유로운 성생활을 인정한 불평등한 결혼제도임 * 첩의 유래: 고구려가 소국인 옥저로부터 미녀들을 상납 받아 이들을 비첩으로 삼았고, 신라의 진골들도 축첩을 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고려시대 6품관 이상은 모두 첩을 두었고 절의 중까지도 첩을 둘 수 있었다. * 1899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단체인 ‘찬양회’와 ‘여우회’가 축첩 반대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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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조선의 섹슈얼리티 4강 |
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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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강 매춘과 섹슈얼리티 1교시 허락된 매춘과 금지된 매춘 ◎ 풍속의 역사를 쓴 에두아르트 푹스 매춘은 사유재산제를 기반으로 하는 일부일처제와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다.
◆ 매춘은 필요악인가? 매춘은 결혼제도의 발달과 함께 시작된 인류 성문화의 하나로 여성들이 결혼을 아주 가치 있다고 생각할수록 매춘의 발생률이 증가한다 * 조선시대는 매춘 행위가 법적으로 금지되었으나 실제로는 기녀와 첩과 같은 양성적인 매춘이 제도권 안으로 흡수되어 있었음
◆ 매춘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중국측 문헌 ‘북사’에서 유녀(정해진 남편이 없는 노는 여자들)가 기록됨. 전통시대에서 매춘은 전쟁 등에 의해 남편을 잃고 홀로된 여성들의 경제적 수단이었음 * 동양 3국 중 매춘이 가장 번성한 곳은 중국으로 매춘전용지역까지 존재했음
◆ 허락된 매춘 – 기녀 삼국시대 정복전쟁 과정에서 포로로 잡힌 여성들이 남성들의 즐거움을 위한 계층으로 전락한 것이 가장 일반적인 케이스 * 김유신의 일화로 미루어볼 때 이미 삼국시대에 기녀가 존재했다고 추정 가능함
◆ 조선시대의 매춘 조선시대에는 기녀를 국가 기관인 장학원에서 매년 150명~300명씩 공식적으로 선발했고 이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 기녀를 제외한 양인 여성들의 매춘을 일절 금지했고 조선시대 남성들은 합법적 성매매가 가능했다. ◆ 조선 말 기녀의 구분 조선시대는 성에 보수적이지만 기녀가 가장 세분화 되어있다. - 일패: 잔치에 동원되는 가인(현대의 연예인) - 이패: 일반 기녀들 - 삼패: 가장 낮은 계급으로 몰래 매춘을 하기도 함 * 기녀는 궁궐에서 가무를 하는 가인이었으나 지방관청소속의 기녀들은 수청을 들기도 함
2교시 우리 역사 속 섹슈얼리티 ◆ 성교육과 성생활 지금의 성교육과 달리 조선 시대의 성교육은 임신을 하기 위한 성교육이었으며 태교뿐 아니라 건강의 장수의 비결로서 보급되었다. * 조선시대에는 갑자생이면 갑자일, 그믐, 정월 초하루 등에 남녀가 합방하면 수명이 손상되고 임신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기피했다.
◆ 여성복의 변화 여성에 대한 성인식이 극대화 되었을 때 의복은 오히려 야해지는 경향이 있음 * 여성복에 있어서 저고리의 길이가 파격적으로 짧아지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영정조시대였다. * 여성의 의상이 섹슈얼해질수록 남성 종속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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