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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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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시키지 않는 이정우 선생님의 명강의 |
박*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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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선생님의 일본 사상사의 지도리들 너무 재밌고 유익한 강좌였습니다.^^ 일본의 역사와 사상에 대해 알고 나니까 막연하게 생각했던 일본이란 나라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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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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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잘 듣고 있습니다 |
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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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이제 1강을 들었습니다만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강의입니다. 참! 1강 강의중에 나오는 신황정통기의 집필자의 이름은 키타바타케 치카후사라고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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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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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까지 |
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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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까지> 역시 이정우 선생님이다. 농담까지 놓쳐서는 안된다는. 오늘, 아트앤스터디에서 이정우 선생님의 <일본사상사> 강의가 있었다. 인류가 정치적으로 집권과 분권의 역사를 갖는다면 일본도 예외일 수 없다. 일본에서는 나라 시대(710~794)를 전후로 중앙집권화가 추구되었다. 천황중심주의 이데올로기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 이 시기 일본 문화는 초월적인 것, 보편적인 것을 중시하는 서양과 달리 구체적인 것, 신체, 존재의 내재적 변화 등을 중시했다. 신체나 감각에 대한 중시는 지금 우리도 (억압적)이성, 합리성에 맞서 추구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현대인은 문명, 제도, 법이라는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문명에 의해 소외된 인간성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억압으로부터 벗어난 신체적, 감각적 인간에 대한 지향은 인간을 다시 동물화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정신분석에 의하면, 인간이 이런 상징 제도(억압)에서 벗어났을 때 정신병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억압을 필요로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논쟁거리겠지만. 다시 수업으로, 또 이 시기에는 ‘악’을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원죄로 여기지 않고 ‘더러움’으로 보았다. 더러움이란 ‘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과거에는 에프 학점을 지울 수 없었지만 요즘 세대들은 지우고 성적표를 다시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 얼굴도 고칠 수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논리가 반드시 좋은 것인지는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또 이 시기 일본인들은 윤리보다 미학을 중시했다. 오늘날 우리도 점점 윤리를 중시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도덕적인 가치가 아직 유효한가. 아니면 ‘돈’만 된다면 조금 도덕적이지 않더라도 괜찮은가. 이게 신자유주의 아닌가. 모든 것을 ‘이익’이라는 경제 논리로 생각하는 것 말이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을 무능하다고 하겠지만 회사를 다니느니 돈 조금 없이 살더라도 책을 보면서 사는 삶을 택하겠다. 굶어 죽더라도 회사는 다니지 않겠다고 했지만 요즘 같아선 이러다 정말 굶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엔 아르바이트 구직 중이다. 정말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은 없는 것일까. 우리 99프로가 힘을 모으면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일본은 나라 시대를 거쳐 헤이안 시대(794~1192), 그리고 막부 시대(1192)로 이어진다. 막부 시대에는 사무라이 세력이 대두하여 천황, 귀족, 승려와 마찰을 빚기도 한다. 사무라이는 위계와 신분 질서를 강조했고 덕분에 상부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했다. 그들에게 그 명령이 무엇인지, 정당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유럽에서는 유대인 대학살이 이런 식으로 실행된 것 같다. 명령에 따라 유대인을 죽인 것일 뿐이라는 논리 말이다. 칸트식으로 의무에 따르면 선한 것인가. 이것도 생각해 볼 문제다. 이정우 선생님 수업 방식인 것 같다. 계속 생각하게 뇌를 깨우는 수업. 뇌에 포도당이 필요한 수업. 다시, 이후 에도 시대(1603~1868)에는 주자학이 우세했다. 이 시기에는 國學이 왕성하게 연구되었고 민족주의, 국수주의가 나타났다. 또 천황을 제외하고 만민이 평등하다는 사상(일군만민)은 메이지 유신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메이지 시대(1868~1911)는 주로 부르주아 세력이 장악했는데 근대화의 움직임과 동시에 왕정복고를 주장하면서 이중성을 띠게 된다. 결국 일본은 근대화에 맞선 파시즘의 광기로 패망하기에 이른다. tip 어휘력^^ - 파시즘: 고등학생 조카가 파시즘이 뭐냐 해서 살짝 당황하며 ‘나치’ 몰라! 하고 되려 큰 소리 쳤던 기억이 난다. 반성하며, 외우자. 反자본주의, 反시민사회, 反자유주의, 국가주의, 군대주의, 민족주의로 대중동원. 다음 시간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엄마가 연속극 기다리는 심정이 이런 걸까 싶다.
- 참고 문헌 일본사상 이야기 40 / 나가오 다케시 / 박규태 옮김 / 예문서원 2002.05.15 일본정신의 풍경 / 박규태 / 한길사 200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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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교수님의 통찰로 일본 사상사의 지도리를 잡다 |
박*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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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교수님의 방대한 지식과 통찰력 덕분에 일본 사상사의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여섯 가지 국면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이 언어 구조가 같고 사상사를 나란히 겪어왔다는 비교철학적 관점의 출발이 매우 신선했습니다.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일본을 신도, 불교, 유교, 근대성이라는 큰 틀로 정리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교수님의 다음 '한일 비교철학사' 강의가 벌써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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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다 기타로, 고뇌를 넘어 환희에로의 사유 |
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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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 교토학파와 니시다 기타로 강의는 압권이었습니다. 니시다가 겪었던 개인적인 비애(가족의 죽음 등)가 어떻게 그의 철학적 동기인 '비애의식'과 '순수 경험'으로 이어졌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의 '장소의 논리'가 유심론을 극복하려는 시도였으나, 자아/주체 중심 사유의 윤리적 한계를 지적하신 교수님의 비판적 시각도 깊이 생각해 볼 문제였습니다. 동양철학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 넓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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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 정신의 변천사를 통해 정체성을 고민하다 |
박*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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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무사도란 무엇인가를 들으며 시대에 따라 사무라이의 정체성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은혜와 충성 -> 자립적 성장 -> 평화 시대의 죽음 안고 살기)를 이해했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저 역시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이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환경과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개인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계기가 된 유익한 강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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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강의에서 일본의 제국주의적 성격의 뿌리를 엿보다 |
이*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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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일본의 유교와 탈주자학 강의가 가장 불편하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아라이 하쿠세키가 "정신적으로 우월한 일본이 서양 병기를 손에 넣어 세계를 재패할 수 있다"고 주장한 대목에서 일본 제국주의 사상의 맹아를 엿보았습니다. 동도서기론의 원형인 '동양은 도덕, 서양은 기술'의 주장도 흥미로웠습니다. 강의를 통해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 사상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깊은 우려를 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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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정우 교수님, 농담까지 놓쳐선 안 됩니다 |
신*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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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교수님의 강의는 정보의 밀도뿐만 아니라, 논쟁거리와 질문을 던져주는 방식이 정말 탁월합니다. 철학적 사유를 스스로 개진하게 만드는 '뇌를 깨우는 수업'입니다. 강의 중 '인간은 억압을 필요로 하는 것 같기도 하다'는 논쟁거리를 던져주셨을 때, 혼자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매 강의가 기대되고 흥미진진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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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내용 누락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 필요합니다 |
손*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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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내용 자체는 좋았지만, 7강에 대한 녹화 내용이 누락되었다는 수강평을 보고 확인해보니 실제로 그런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총 6강 구성인데, 수강평에 7강 내용이 언급되는 등 강의 구성의 오류가 있는 것 같아 혼란스럽습니다. 수강생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내용의 질과는 별개로 서비스에 불만족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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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프로의 불교, 서민화의 길을 걷다 |
오*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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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 일본의 불교 강의를 들으며 불교가 귀족들의 호국불교에서 벗어나 가마쿠라 시대에 서민화의 길을 걸었다는 흐름을 이해했습니다. 잇펜의 염불에 춤을 더하거나, 신란의 악인정기설 등 서민 대중에게 다가간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언제나 서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강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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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은 근대와 중세가 착종된 체제 |
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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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 메이지 유신에 대한 분석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양학 도입과 평등 사상 등 근대적 측면과 국학 및 존왕사상 등 중세적 측면이 기이하게 뒤섞인 체제였다는 교수님의 설명에 공감합니다. 화폐경제 사상이 어떻게 사물을 양화/수치화하고 사람까지도 그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해설도 깊이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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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오류가 있어 아쉬웠습니다 |
조*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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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강의 중에 신황정통기(神皇正統記)의 집필자 이름이 키타바타케 치카후사(北?親房)인데, 교수님께서 발음이나 표기를 다르게 하신 부분이 있었습니다. 워낙 방대한 지식을 다루시다 보니 생긴 작은 오류겠지만, 일본 사상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용어의 정확성이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다음 강의에서는 이 부분을 참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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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깨는 계기 |
이*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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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일본에 대해 감정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이 강의를 듣고 일본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국 사상사와 나란히 비교하며 일본의 사상적 기반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절감했습니다. 이정우 교수님 덕분에 일본에 대한 이성적인 대응 방식을 고민하게 된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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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시대의 미학과 윤리, 지금 우리 사회와 겹치다 |
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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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신도를 다루면서 일본인들이 과거에 윤리보다 미학을 중시하고, '악'을 '더러움'(씻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는 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는 '돈만 된다면 도덕적이지 않아도 괜찮은가'라는 신자유주의적 사고와 겹쳐 보여 현재의 우리 사회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돈 조금 없이 책을 보며 사는 삶을 고민하는 저에게 큰 질문을 던져주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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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 유교, 법적 평등과 경제적 불평등 |
박*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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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근대의 태동기 일본 유교 강의에서 양명학이 법과 제도의 평등 사상에 토대가 되었으나, 결국 마르크스의 지적처럼 '법적 평등은 초래했지만 경제적 불평등은 눈감아 왔다'는 근대 사회의 모순을 일본 사상을 통해 엿보았습니다. 인간이 법 앞에서 소외된다는 설명도 깊이 와닿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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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평화 시기의 사무라이, 새로운 윤리의 발견 |
윤*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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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에도 막부 시대의 사무라이들이 '항상 죽음을 옆에 두고 사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했다는 담론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정체성을 변화시켜야 하는 개인의 모습을 보는 듯했습니다. 저 역시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직하며 삶을 재정비하던 시기에 이 강의를 듣고 위안을 얻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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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상사의 핵심적인 부분만 깔끔하게 정리 |
강*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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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일본 사상사 중에서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여섯 가지 국면을 뽑아 핵심을 논한다는 교수님의 의도대로, 전체 지도를 그리기에 앞서 '지도리들'처럼 중요한 표시들을 해놓는 알찬 작업이었습니다. 일본에 대해 아는 게 전무했는데, 이 강의로 대강의 윤곽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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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다 기타로와 사르트르의 비교가 흥미로웠습니다 |
이*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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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에서 니시다 기타로의 '동서에 치우침 없는 독창적인 사유'와 사르트르의 철학을 비교해주신 부분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유럽을 따라가지도, 동양을 고집하지도 않는 니시다의 '대등'한 사유 방식에서 일본 사상의 독자적인 진화를 엿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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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훑다. |
윤*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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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한 무지로 많이 답답했는데, 이정우 선생님의 강의로 대강은 훝어 본 느낌이다.일본을 알아가려는 노력에 방향을 설정해 주신 강의!!일본 사상 이야기라는 책과 함께 읽고 들어서 더욱 알차게 소화해낸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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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었습니다. |
이*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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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잘 들었습니다. 정말 한국 사람들은 일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이성적보다는 감정적으로 일본을 바라봅니다.
돌이켜보니 일본에 대해 아는 게 전무한 듯 하네요.. 일본에 대한 좀 더 알아가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앞으로 일본 문학과 사상에 대한 강의가 개설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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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정우 선생님 |
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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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선생님의 일본 사상사의 지도리들 재밌고 유익한 강좌였습니다.^^ 일본의 역사와 사상에 대해 알고 나니 막연하게 생각했던 일본이란 나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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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강의를 들었습니다. |
이*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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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아요. 가끔 일본이 이해되지 않기도 했는데, 이 강의를 들으니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네요. 깊이 있고 폭 넓은 강의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좋은 강의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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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정우 선생님 |
전*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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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정우 선생님이라는 생각이.ㅎㅎㅎ 저는 이정우 선생님의 팬이어서 책도 읽고 강의도 듣고 한답니다. 좋은 강의 완전 감사해요 이정우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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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한 지식을 쌓는 강의 |
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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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상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일본 사상을 다룬 이정우 선생님의 강의가 있어서 듣게 되었어요. 이정우 선생님은 워낙 유명하시니까 믿고 들었어요.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나름대로 공부를 하곤 하는데 사상을 공부한 것은 첨이네요. 재미있었습니다.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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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다 철학 |
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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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선생님의 <일본 사상사의 지도리들> 6강 후기입니다.
<니시다 철학> '근대'라고 할 때 적어도 이 네 가지는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국민국가, 자본주의, 과학기술, 그리고 민주주의. 일본에서 근대(경험주의, 과학주의, 진보, 실증주의, 공리주의, 계몽주의 등으로 표상되는)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들에게 서양은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극복의 대상이었다. 니시다 기타로(교토학파)는 유럽을 따라다니는 것도 아니고 동양을 고집하는 것도 아닌, 유럽과 동북아를 '대등'하게 놓았다. 니시다는 “철학의 동기는 비애의식(悲哀意識)이다”라고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다. 니시다는 그의 삶에서 많은 죽음들을 목격했다. 여린 소년 시절에 각별히 사랑하던 누나의 죽음을 경험했고, 후에는 그의 삶의 대들보였던 어머니의 죽음은 물론 세 명의 자녀(장남과 차녀 오녀)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으니(여기에 처와 사녀는 밤낮 침상에 누워 지내는 병자였다). 니시다의 철학은 첫 번째 주저인 『선(善)의 연구』에서 전개된 ‘순수 경험’에서 출발한다. 순수 경험이란 “조금도 사려분별을 섞지 않은 참된 경험 그대로의 상태”를 말한다. 두 번째 주저라 할 『자각에 있어서의 직관과 반성』에서는 그의 일생의 테마인 ‘자각’의 문제가 전면에 드러난다. 니시다 철학의 기본 주제는 그의 삶 그대로 “고뇌를 넘어 환희에로”이다. 어떻게 삶에 엄습해 들어오는 각종의 고뇌를 털어내고 환한 빛의 차원으로 나아갈 것인가, 여기에 니시다 사유의 기본 문제가 있다. 그러나 제3의 주저로 일컬어지는 『작용하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에서는 그 유명한 ‘장소의 논리’를 전개함으로써 그의 자각론이 지나치게 유심론적으로 주관주의적으로 흐르는 것을 극복하고자 했다. 이때의 지각이야말로 ‘절대무의 자각’인 것이다. 삶의 고뇌를 넘어서 참자아를 찾아가려는 니시다 사유는 일정 정도 헤겔의 사유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정우 선생님은 이러한 니시다의 철학에 대해 살짝 비판적이셨는데 그가 말한 '절대무'라는 것에 동의하기 힘들다고 하셨다. 니시다 철학은 주체/자아의 빛을 추구하는 사유였기에, '타자'로 향하는 시선보다는 자아로 향하는 시선에 초점에 맞추어지고 그래서 필연적으로 윤리적 한계를 띤다. 훗날 그는 태평양전쟁에 적극 저항하지 않음으로써 시대가 지운 의무에 충실하지 못했으며, 동북아의 다른 국가들보다는 일본중심주의에 머물렀다. 주체/자아 중심적인 그의 사유에서는 ‘타자의 사유’가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다음 학기에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일본을 다루어 볼 예정이라고 말씀하셨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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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메이지 유신> |
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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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선생님의 <일본 사상사의 지도리들> 5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메이지 유신> 메이지 유신은 근대와 중세가 기이하게 착종된 체제였다. 근대 양학을 도입하고 평등사상을 내세우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존왕사상을 중시했던 것이다. 부르주아적 왕정복고라고 할까. 아마 세대간의 갈등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진 세력들은 근대화를 주장했지만 여전히 국학과 존왕사상을 중시하는 세력이 있었다. 이 시기 사무라이들이 중상주의(무역 중시)를 주장하면서 이전에는 천시되었던(전통사회는 이익보다 '예'를 중시했다) 상인의 역할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아담 스미스는 중상주의를 비판했는데 그는 '한 나라의 부'(국부)를 강조했다. 무역을 중시하게 되면서 바다를 장악해야 했고 이것은 발달된 해군력과 조선업을 요구했다. 대포와 같은 무기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과학 기술이 필요했고 양학(동도서기론, 화혼양재론 등을 이론적 배경으로)이 이 시기 도입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중상주의에는 화폐경제 사상이 바탕이 되는데 화폐란 기이한 물건이 아닐 수 없다. 일단 화폐로 축적이 가능하다. 다른 물건은 축적이 불가능하다 썩거나 마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계가 있지만 수에는 한계가 없다. 또 커피 한잔과 시집 한 권은 전혀 다른 두 사물이지만 예를 들어 만원이라는 동일한 화폐로 거래될 수 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제 사물은 사용가치가 아니라 교환 가치만을 갖게 된다. 사물을 양화하고 수치화하면서 문제는, 이제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화폐의 나쁜 예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폐 없이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을까. 물물교환이나 전통 사회의 품앗이 같은 것을 통해서 사회를 유지할 수 있을까. 생각해봐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이처럼 근대화를 향한 경제 정치 군사적 배경이 한편에 있었다면 아직 여전히 국학(게이츄, 가모노 마부치 등)과 존왕사상(미토가쿠, 요시다 쇼인 등)을 중시하는 수구 세력들이 남아 있었다. 이정우 선생님 강의가 이제 막바지다. 이웃나라 일본의 역사적, 사상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던 강의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도 공부하기 싫던 메이지 유신! 아무래도 학교 교육의 문제가 아닐까 하고 남 탓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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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태동기에 일본 유교> |
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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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일본 사상사의 지도리들> 4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근대의 태동기에 일본 유교>
일본에서는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 1561~1619)가 주자학을 도입했다. 후에 주자학은 양명학, 고학, 실학으로 변용, 발전한다. 양명학은 평등주의 사상을 중시했다. 이러한 사상은 아마 근대로 가는 길에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는 “먼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지켜 줄 만한 제도를 만들고 법을 정비함으로써, 군주의 정치가 그 법에 따라 행해지도록 해야만 한다.”고 해서 법과 제도를 중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너무 이른 것일까. 인간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근대의 사상이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정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인간은 법 앞에서 주체적,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놓이게 된다. 인간은 법 앞에서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노동에서만 소외되어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이렇게 근대 사회를 규정한다. ‘근대는 법적 평등을 초래했지만 동시에 경제적 불평등은 눈감아 왔다’
이러한 양명학의 상부 구조적(법이나 제도의 이념, 사상 등을 중시하는) 태도를 비판하고 고학이 등장한다. 야마가 소코가 주요 인물인데 그는 현학적(玄學的) 성격의 주자학을 비판했다. 오규 소라이(荻生徂來, 1666~1728) 도한 초월적인 것을 거부하고 실증주의적 사상을 전개했다. 이러한 사상은 실학에 영향을 미친다.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 1657~17225)는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현상은 理(리)에 합당하지 않으므로 애당초 있을 수 없다. 그것을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착각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정신적으로 우월한 일본이 서양의 뛰어난 병기를 손에 넣게 된다면 세계를 재패하는 일류국이 될 수 있다.” 고도 말했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성격이 이때부터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사쿠마 쇼잔(佐久間象山, 1811~1864)과 요코이 쇼난(橫井小楠, 1809~1869)이 하쿠세키를 이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양은 도덕, 서양은 기술.”(동도서기)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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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한 오만과 편견> |
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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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선생님의 <일본 사상사의 지도리들> 3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일본에 대한 오만과 편견>
가마쿠라 막부 시기에만 해도 사무라이와 주군의 관계는 은혜와 충성의 유대 관계(정서적인)였다. 그러다가 이 관계가 무로마치 막부에 와서 사무라이는 주군에 예속되어 있기 보다는 실력 중심의 자립적, 독립적으로 성장 한다. 자본주의의 태동과 관련 있을까. 그 후에는 에도 막부의(1603~1868) 긴 평화 시기를 맞이한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사무라이의 정체성이다. 평화 시기에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재미있는 한두 가지 담론이 있다. 하나는 항상 ‘죽음’을 옆에 두고 사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루 하루를 충실히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윤리의 발견쯤 될 것 같다(예를 들어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금욕하고 축적하라면서 자본주의를 부추겼다. 이 윤리는 이전 시대에는 부도덕 한 것이었다. 아마 그 기원은 아담 스미스에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18세기만 해도 상업 활동은 불신하고 역겨운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스미스의 경제 신학은 상업과 산업을 격상시키고 찬양했다. 새로운 윤리의 탄생이었다). 또 하나는 그들이 유교적 도덕을 몸에 익히는 것인데 이것은 일종의 선비 정신으로 평화 시대에 맞추어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했다고 해야 할까. 웃지 못할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시대마다 하나의 사회 문화 정치적 조건들은 변화하고 따라서 그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변화한다. 과거에 연예인은 광대로 취급되었지만 요즘엔 모두가 슈퍼스타를 꿈꾸고 있다. 한 개인의 정체성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개인은 변화한다.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으로 규정짓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일 듯싶다. 그러잖아도 요즘에 정체성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어떤 사람에게 일관되고 고정된 하나의 정체성이란 것이 있을까. 그런 것으로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폭력이 아닐까. 시험 성적으로 꼴찌가 언제나 꼴찌인 것은 아니다. 그는 무한히 변할 수 있고, 또 이미 그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선 언제나 1등이었을지 모른다. 사무라이 계급이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자기를 변화 시키듯이 한 개인도 성장하면서 자기를 변화시켜 간다. 오늘 아트앤스터디에서 이정우 선생님의 세 번째 강의가 있었다. 이 강의를 들으면서 일본에 대해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내 자신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식민지의 경험 때문일까. 나서부터 우리는 일본에 대해 마음의 거리를 두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그들의 사상과 역사를 통해 우리의 역사와 중첩되거나 반복되는 것은 없는지 살펴 보는 것도 이 수업을 듣는 재미 중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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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프로의 일본 불교> |
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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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선생님의 <일본 사상사의 지도리들> 2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99프로의 일본 불교> 나의 놀이터, 아트앤스터디에서 이정우 선생님의 일본사상사 두 번째 강의가 있었다. 나라(奈良) 시대(710~794)에 이르기까지도 일본 불교는 귀족들의 호국불교였을 뿐이라고 한다. 요즘엔 1프로가 아니라 99프로가 대세인 듯하다. 과거에도, 역시, 가마쿠라 시대(1192~1333)에 이르면 서민 대중이 역사의 표면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일본의 불교 역시 이런 대세에 맞추어 서민화의 길을 걷게 된다. 언제나 서민이 중요하다. http://blog.naver.com/ahxkvjavm/10130333821 (링크를 따라가시면 첨부된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기업은 어렵다고 구조조정하고 사람들을 비정규직으로 몰아가지만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 없는 서민들은 소비를 할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생산 과잉으로 상품은 팔리지 않아서, 불황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 유치원생도 알만한 아주 쉬운 논리 아닌가. 은행이 위기일 때 국민의 세금으로 은행을 구제할 것이 아니라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을 은행에 물어야 할 것이다. 수도세, 전기세, 도시가스 요금을 일방적으로 올리지 말고 어디에서 펑크가 났는지 먼저, 올려야 하는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나를 포함 내 주변에 게으른 사람들은 없다. 모두가 근로자이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터에 나간다. 그들이 왜 일할수록 궁핍해지는지 설명해야 한다. 게을러서라고만 말할텐가. 노동해서 부를 축적한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수백억을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노동의 댓가일까. 서민들은 궁금한 것이 많다. 99프로가 대답을 원한다. 하지만, 이때 조심해야 하는 건 서민이 귀족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기존의 질서를 해체하지 못한다. 똑같이 자리만 바꾸는 거니까. 나를 포함해서 서민은, 1프로가 되려고 하기보다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문제는, 제거하고 그 자리를 어떻게 할까. 비워두어야 할까. 누군가 말했듯이 모두가 독재자가 되어야 할까. 그렇게 되면 다시 우리는 강력한 힘을 필요로 하게 되지 않을까. 이런 질문들은 쉽진 않은 것 같다. 정신분석, 사회분석 기타 등등. 동원되어야 할 것도 많고. 머리가 나빠서 슬픈 짐승이 혼자 고민하기엔 역부족이다. 같이 고민할 1인이 필요하다. 서민적 특징을 갖는 가마쿠라 불교의 첫 번째 흐름은 정토종(淨土宗: 대승불교의 일파)이다. 잇펜(一遍, 1239~1289)은 염불에 춤까지 더해 더욱 서민적인 불교를 추구했다. 두 번째 흐름은 선종(禪宗: 화엄종, 법상종 등 교학敎學을 중시하는 교종敎宗에 대하여, 직관적인 종교체험으로서 선禪을 중시)이다. 도겐(道元, 1200~1253)은 철저한 자력(타력이 아니라) 깨달음을 강조했고, 여성평등을 외치기도 했다. 가마쿠라 불교의 세 번째 흐름으로서 일련종(日蓮宗: 일본 불교 종파의 하나이다. 우주의 통일적 진리를 현실에서 구현할 것을 강조)이 있다. 이렇게 일본에서 불교는 초기 귀족들의 불교에서 벗어나 서민화의 길을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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