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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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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기쁨 |
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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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꼭 논어를 읽어 보고 싶었습니다. 인생의 장애물들과 고민들을 공자의 가르침 아래 다시 한 번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저 혼자 논어를 읽기가 말이죠. 그런데 이 강좌를 발견함으로 드디어 논어를 읽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배움의 기쁨이 여느 때와 달랐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깊은 가르침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것들을 이제 어떤 식으로 제 것으로 만드냐는 제 몫이겠지만요. 선생님의 차분하고 품위있는 강의를 통해서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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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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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而不同, 同而不和 |
이*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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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잘 들었습니다. 직장 생활하면서 상급자가 되어보니 밑에 직원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선생님께서 和而不同, 同而不和 뜻풀이 듣고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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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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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의 얼굴을 보다 |
정*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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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훈 선생님은 논어를 주제별로 재구성해서 뽑아읽기를 구성했습니다.
그러나 논어를 순서대로 읽는 것보다 더 논어의 얼굴을 더 날 대면해주도록 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중간중간 논어를 기초로 한 삶의 지혜나 통찰도 강의를 지루하지 않고 맛깔스럽게 듣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원문에 충실한 논어 강독으로 논어로 논어를 해석하는 느낌입니다.
논어의 핵심 사상은 인이지만, 한선생님은 논어가 예에 대한 논의가 빈번하다는 문제의식으로 흥미를 돋웁니다. 실제로 논어에는 예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많이 등장합니다.
또 한가지 기억나는 것은 한선생님은 한자 한자한자가 만들어진 유래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계신데, 자구의 해석과 문맥의 해석을 잘 연결한다는 인상도 받습니다.
한 강좌를 다 들었을때, 두 가지 마음을 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듣고 싶은 마음과 다시 듣고싶지 않은 마음, 본 강좌는 전자에 속하며, 논어에 대해 공부해보길 잘했다는 확신을 갖게 합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논어에 대한 대중적 책들보다 원문에 충실한 풀이와 논어로 논어를 해석하는 깊이 그럼에도불구하고 지루하지 않는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이 어우러진 유익한 강좌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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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상 님:) 이런 놀라운 강의평이라니! 강의를 제공해드리는 저희로서도 뿌듯하고 감사한 일이에요. 자주 적어주세요 :) 아트걸 (15.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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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울 게 많은 강의 |
김*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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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울 게 많은 강의였습니다. 논어에 대한 대학교 수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통로를 통해 강의도 듣고 독서도 해오며 논어에 대한 관심을 항상 가져왔는데도 전호근 교수님 강의에서 또 새롭게 배우는게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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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공자를 만나다. |
김*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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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논어와 공자란 교과서에서 활자로만 알았던 화석일 뿐이었는데 논어속의 공자를 살아숨쉬는 이 시대의 스승으로 깨어나게 해주신 한재훈교수님께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어디에서도 들어볼 수 없는 논어강독이었습니다. 글자의 단순한 해석외에 역사적 배경과 그 당시 문화,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간 공자의 인류애 가득한 마음과 성격까지 이렇게 조목조목 친절하게 설명해주신 강의는 처음 들어봅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위기지학'을 실천하도록 정진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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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강독 |
두*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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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배우고 싶었던 논어. 덕분에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갓이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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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훈 선생님 강의 잘 들었습니다. |
강*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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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강의 잘 들었습니다. 덕분에 논어를 공부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살아가면서 큰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강의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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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공부 |
김*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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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말씀이 설득력있어요. 선생님이 전해주신 군자의 말씀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앞으로는 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기로..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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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옥을 가진 자 |
j**gi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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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에게 물었습니다. ' 만약 아름다운 옥을 가지고 있다면 궤속에 묻어 두시겠습니까 아니면 파시겠습니까?'하니 공자왈 '팔아야지, 팔아야지, 그러나 나는 비싼가격을 기다리는 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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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지혜의 정수를 뽑아 놓은 강의 |
이*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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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처음 접했어요. 논어 하면 좋은 글과 말씀인 건 알겠는데 왠지 모르게 어렵고 다가가기 쉽지 않았거든요. 근데 막상 접해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재밌었습니다. 삶에 방향이 되는, 가슴 깊이 새길 만한 가르침도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강의 제목처럼 논어의 핵심과 요체만 뽑아서 알려주신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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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강의입니다. |
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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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앤스터디에서 이제까지 10개가 넘는 강의를 들었는데 그 중 가장 쉽고 명료하고 깊이있는 강의 중 하나입니다. 앞으로 이 분을 통해 동양의 고전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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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이 너무도 잘 어울려요 |
노*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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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품에 다시 들어간 것처럼 너무도 오랜만에 논어에 빠졌습니다. 익숙하지만 새롭고 어렵지만 쉽게 찬찬히 강의해주신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불유불구'를 마음에 되새기며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습니다. 즐거운 연말연시되시고 건강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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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2강 후기 |
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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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강 : 공자(孔子)의 문제의식, ‘예(禮)’
*공자는 인(仁)에 주목해 유학 사상을 발전시켰다. *유학의 창시배경에는 인과 함께 예(禮)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으므로 공부한다.
○ ①공자(孔子)께서 자하(子夏)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②군자(君子)스러운 유(儒)가 되어야 하며, 소인(小人)스러운 유(儒)가 되지 말아야 한다.”(󰡔논어󰡕「옹야」)
①논어에서 자(子) 또는 공자(孔子) 모두 공자(공 선생님)를 가리키는 말. 어느날 갑자기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이 각자 다르게 기록한 것을 합하여 공유한 것이 논어이기 때문에 공자를 지칭하는 표현이 조금 다름. 논어는 기록으로 남길만큼 공자의 삶이 중요한 의미를 지녔음을 방증. ②학자들에 따르면 공자 이전에도 예 전문가인 유자들이 많았는데 이들도 군자같은 사람과 소인 같은 사람으로 나뉘어졌던 것으로 추측. 소인의 유(儒)대신 군자의 유(儒)가 옳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 유학의 창시자인 공자는 군자스러운 예 전문가(유자)가 되기를 권고. 공자의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천하(天下)에 도(道)가 있으면 ①예악(禮樂)과 정벌(征伐)이 천자(天子)로부터 나오고, 천하(天下)에 도(道)가 없으면 예악(禮樂)과 정벌(征伐)이 제후(諸侯)로부터 나온다. 제후로부터 나오면 ②10세(世) 안에 잃지 않는 경우가 드물 것이요, 대부(大夫)로부터 나오면 5세(世) 안에 잃지 않는 경우가 드물 것이며, 배신(陪臣)이 국명(國命)을 잡으면 3세(世) 안에 잃지 않는 경우가 드물 것이다.”(󰡔논어󰡕「계씨」)
①동양정치의 문화, 제도, 풍속등을 포괄하는 개념 예(禮)는 다시 예(禮)와 악(樂)으로 구분된다. ②10 세대
=>공자는 무도와 유도를 판가름하는 기준을 천하를 다스리는 힘, 즉 예악과 정벌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보고 판단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천자에게 예약과 정벌이 있다면 유도한 세상, 국가를 다스리는 제후에게 있으면 무도한 세상, 제후 아래 관직인 대부나 배신에게 있으면 무도함이 극으로 치닫은 세상으로 간주. 공자가 봉건질서를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 공자가 예를 중시한 이유 - 옥과 같은 것을 신에게 바치며 제사를 지낸 것이 예(禮)의 원형. 천자는 하늘의 힘(제사)을 빌어 세상을 통치. - 허나 하-은-주로 이어지는 중국 역사를 거치며 통치자들은 “덕(德)이 있는 사람에게 천명이 옮겨온다”며 새 국가를 정당화한다. 즉 제사만 잘 지낸다고 천명이 오는 것이 아니라 천심이 곧 민심임을 깨달음. - 이를 통해 예(禮)의 개념에 덕(德, 어떻게 백성들을 다스릴 것인가)이 더해져 그 의미 범주가 확장됨. 신에 대한 행위가 인간 간의 행위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된 것. 공자가 살던 주나라 당시에는 예, 덕 이 아니라 힘의 논리가 천하를 지배하던 세상이었으므로 공자는 지도층들이 예를 다시 깨달아야 세상이 좋아질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 선생님의 해석으로는 “예악을 위해 설명하는 것이 인(仁)이다.”
○공자(孔子)께서 ①계씨(季氏)를 두고 말씀하셨다. “②팔일(八)佾을 제 집 뜰에서 춤추게 하였으니, ④[이를 ③차마 할 수 있다면 무엇인들 차마 못하겠는가?]”(󰡔논어󰡕「팔일」)
① 노나라의 대부 ② 가로 세로 여덟 명 총 64명이 대열을 이뤄 추는 춤으로 천자만이 행할 수 있음. 대부에 불과한 계씨가 천자의 춤을 추었음을 알 수 있다. ③차마~하다=불인(不忍)은 유학의 중요한 개념. 이 구절에 인(忍)은 칼날(刃)과 마음(心)이 더해진 글자. 즉 마음에서 어떤 감정이 올라올 때 칼로 내리찍듯이 통제함을 의미. 긍정적인 감정을 잘라버릴 때 잔인(殘忍)이라 한다. ex) 적군을 죽이던 군인이 아이들을 마주해 갈등 ④
=> 1. 대부는 사일무까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예법이나 계씨는 형식 속에 담긴 의미를 무시. 아흔아홉칸 집처럼 신화와 임금에 구분을 두는 것이 전통사회의 관념. 2. 계씨도 망설임이 있었을 텐데 ‘차마 해버렸다’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ex) 천원 짜리를 훔친 아이가 혼나야 하는 이유
○①삼가(三家)가 제 집 제사에서 ②「옹(雍)」 󰡔詩經󰡕「周頌」의 「雝」편을 가리킴. 을 부르며 철상을 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제사를 돕는 이는 제후(諸侯)들이요, 천하(天子)께서는 경건하시다’라는 시편을 어찌하여 삼가(三家)의 당(堂)에서 취하는가?”(󰡔논어󰡕「팔일」)
① 노나라 맹손, 숙손, 계손 씨를 일컬음 ② 천자가 제사를 지내면 제후들이 돕는 아름다운 관계를 노래한 시. 이를 대부들이 불렀다면 노래의 가사와 맞지 않았을 것
=> 내용은 없고 형식만 따라하는(=본질이 붕괴되어 가는) 모습을 개탄. 즉 힘이 세상이 움직이는 모습을 개탄한 것
○임방(林放)이 예(禮)의 근본에 대해 묻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①위대하다 물음이여! 예(禮)란 ②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박해야 하며, 상(喪)이란 세련되기보다는 차라리 슬퍼야 한다.”(󰡔논어󰡕「팔일」)
① 당시 사람들은 예의 근본보다는 형식에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질문이 “위대하다”고 표현 ② 여기서 사치=형식 이라면 검박하고 슬퍼야 하는 것은 예의 본질
=>예의 본질은 마음이므로 형식에 치우치다 보면 본질은 흐려지기 십상
○계씨(季氏)가 ①태산(泰山)에 여(旅)제사를 지내자, 공자(孔子)께서 ②염유(冉有)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능히 구제할 수 없겠느냐?” (염유가) 대답했다. “할 수 없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호라! ③어찌 태산이 임방(林放)만 못하겠느냐?”(󰡔논어󰡕「팔일」)
① 이곳에서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것은 제후 뿐이나 계씨가 멋대로 제사를 지냄 ② 공자의 제자로 계씨 밑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음 ③ 임방은 앞서 예의 본질을 물었던 제자. 태산 산신이 예의 본질에 어긋날 제사를 받겠느냐는 의미.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는 의(義)를 바탕으로 삼고, 예(禮)로 이를 이행한다.”(󰡔논어󰡕「위령공」) => 형식화된 예 이전에 의를 강조
* 예(禮)는 본질적 측면의 의(義)와 형식적 측면의 의(儀) 두가지로 표기 가능한데 공자는 본질적 측면의 의(義)를 중시했다.
○군자는 의로움에 훤하고, 소인은 이로움에 훤하다. (󰡔논어󰡕「이인」) => 즉 군자는 이익에 어둡고 소인은 의에 어둡다. 여기서 의(義)와 이(利)는 반대개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이로움(利)에 의거해 행동하면 원망이 많을 것이다.”(󰡔논어󰡕「이인」) => 이(利)의 문제는 자기중심적. 내가 이로운만큼 상대방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관계가 어그러지기 쉽다.
○“이로움(利)을 보거든 의로움(義)을 생각하라.”(󰡔논어󰡕「헌문」) “얻을 것(得)을 보거든 의로움(義)을 생각하라.”(󰡔논어󰡕「계씨」)
=> 이득을 보면 의로운 것인지 생각할 것. 이(利)의 반대는 해(害)가 아니고 의(義)이다. 이와 해는 모두 사적영역인 반면 의는 공적 영역이기 때문. 사적 측면보다 공적 측면을 생각하는 것이 인(仁)이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는 천하(天下)에서 꼭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 없고, 꼭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없으며, 의(義)와 함께할 뿐이다.”(󰡔논어󰡕「이인」)
=> 본질을 살리는 것이 예다. 맹자에는 “남녀가 손으로 물건을 주고받지 않는 것이 예지요?” 하고 묻자 맹자가 “네”라고 답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하지만 자신의 형수가 물에 빠진 상황이라면 어떨까. 이는 두 개의 원칙이 충돌하는 상황. 예는 형식이라 언제나 보편적으로 적용될 순 없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예(禮)에 대해 말들 하지만, 그것이 ①옥(玉)이나 비단(帛)을 이름이겠는가? ②악(樂)에 대해 말들 하지만, 그것이 종(鐘)이나 북(鼓)를 이름이겠는가?”(󰡔논어󰡕「양화」)
① 예를 표현하는 수단. 즉 형식 ② 종이나 북을 잘 친다고 음악이라 할 수 있겠는가?
=>예악의 본질을 강조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①마(麻)로 면(冕)을 만드는 것이 예(禮)이지만, 오늘날에는 실(純)로 만들고 있다. ②검박하기 때문에 나는 여러 사람들이 하는 방식을 따르겠다. 冕은 원래 30升의 麻布로 제작되었는데,(󰡔論語注疏󰡕:【注】孔曰, “冕, 緇布冠也, 古者績麻三十升布, 以爲之.”) 이때 升은 80올[縷]을 가리킨다.(󰡔儀禮󰡕「喪服」: “冠六升, 外畢.”【鄭玄注】“布八十縷爲升.”) 그렇다면 원래의 禮대로 하자면 2,400올로 짠 麻布로 冕을 제작해야 한다. 그러나 孔子 당시에는 이를 麻가 아닌 純(=絲)으로 제작하고 있었다. ③당하(堂下)에서 절하는 것이 예(禮)이지만, 오늘날에는 당상(堂上)에서 절을 한다. 거만하기 때문에 비록 여러 사람들이 하는 방식에 위배되더라도 나는 당하에서 하겠다.”(󰡔논어󰡕「자한」)
① 삼베로 관복, 예복을 만듦 ② 검박하다면 예를 수정할 수도 있다는 의미. 1승이 80가닥이므로 30승은 2400올. 가닥이 많을수록 만들기가 더 어려웠을 것 ③ 임금이 당상에 서있으면 신하들은 당하에서 절을 하는 것이 예이나, 신하들이 거만해졌음을 알 수 있다
=> 공자는 예를 시행할 때 충분한 이유가 있는지 따져본 후 자신의 주관과 원칙을 보이며 힘의 논리를 경계했다.
○안연(顔淵)이 인(仁)에 대해 물었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①자기를 이기고 예(禮)를 회복한다면 인(仁)하다 할 것이다. 어느 날 자기를 이기고 예(禮)를 회복한다면 ②천하(天下)가 인(仁)으로 돌아갈 것이다. 인(仁)을 하는 것이 자기에게 말미암지 남에게 말미암겠느냐?” 안연이 말했다. “그 세목을 여쭙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논어󰡕「안연」)
① 극기복례(克己復禮)에 대한 설명 대대(對待) : 서로 맞서면서도 필요로 하는 관계. 주(晝)↔야(夜), 양(陽)↔음(陰), 남(男)↔녀(女) 등. 나(己)와 너(人)도 마찬가지. 나만 생각하는 관념을 깨고 공을 지향하는 것이 극기이다. 공자는 특히 지배층이 스스로 극기복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② 선생님께서는 이 부분을 예(禮)에 초점을 맞춰 해석. 벼슬도 하지 않았던 안연이 이런 질문을 했을 리 없다는 관점도 있으나 공자는 제자들을 통해 세상을 바로잡고 싶어 했으므로 충분히 가능하다.
○안연(顔淵)이 나라를 경영하는 것에 대해 묻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①하(夏)나라의 시(時)를 시행하고, ②은(殷)나라의 수레(輅)를 타고, 주(周)나라의 면류관(冕)을 쓰고, 악(樂)은 소무(韶舞: 순임금의 음악)를 사용하라.”(󰡔논어󰡕「위령공」)
① 하나라의 시간. 음력 열두 달을 십이간지에 배당해 11월이 자, 12월이 축, 1월이 인에 해당 ② 소박하고 화려하지 않았던 것이 특징
=>옛 것이라도 합리적이면 취하려는 공자의 모습.
* 공자는 인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모두 다른 답을 줬다. 공자는 인이 개념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적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묻는 이의 성향, 공부의 단계 등이 모두 다르므로 똑같은 답은 의미가 없고 그 보다는 완벽한 형태로 실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 부분에서 인(仁)에 대해 물은 안연은 공자가 가장 높게 산 제자이기에 이 대답은 인에 대한 가장 높은 차원의 답이었을 것이다.
○안연(顔淵)이 말했다. “①순(舜)임금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함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와 같을 것이다.”(󰡔맹자󰡕「등문공상」)
①고대 중국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부모까지 감화시킨 대효를 보였으며 가장 훌륭한 신하이자 왕, 남편이다.
=> 안연의 롤모델이 순임금임을 알 수 있다. 순임금이 만든 세상을 자신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과 같은 것.
○자로(子路)가 군자(君子)에 대해 물었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공경함(敬)으로 자기를 닦는다.” (자로가)말했다. “이와 같을 뿐입니까?” (공자께서)말씀하셨다. “자기를 닦아 타인을 편안하게 한다.” (자로가)말했다. “이와 같을 뿐입니까?” (공자께서)말씀하셨다. “자기를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 자기를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요(堯)·순(舜)께서도 부족하다고 여기셨다.”(󰡔논어󰡕「헌문」) => 수업중 생략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심하도다, 나의 쇠약해짐이여! 오래로다, 내 더 이상 꿈에 ①주공(周公)을 뵙지 못함이여!”
① 주나라 무왕의 동생으로, 무왕이 개국 3년 만에 죽고 동쪽에서 반란들이 일어나자 어린 성왕을 대신해 일하며 반란을 진압하고 덕치를 베풀었다. 예(禮)에 덕(德)을 더한 장본인으로, 그 전보다 의미가 넓어진 이 예를 가리켜 주례라 부르기도 한다.
=> 공자는 주공이 만든 주례의 정신을 구현하고 주공과 같은 사람이 되어 세상을 바로잡고 싶어 했다. 후에 공자는 자신의 시대를 바로잡겠다는 꿈 대신 후대를 위해 저술과 교육을 시작했다.
○세상이 쇠하고 도(道)가 미약해지자, 사특한 말과 포악한 짓들이 일어났다. ①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그 아비를 죽이는 일들이 벌어지자, 공자(孔子)께서 두려워하시어 󰡔춘추(春秋)󰡕를 지으셨다. ②󰡔춘추󰡕는 천자(天子)의 일이다. 그래서 공자는 “나를 알아주는 것도 󰡔춘추󰡕때문일 것이고, 나를 죄주는 것도 󰡔춘추󰡕때문일 것이다”고 하셨다. … ③공자께서 󰡔춘추󰡕를 완성하시자,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두려움에 떨었다.(󰡔맹자󰡕「등문공하」)
① 주례를 잃고 각자의 역할이 무너진 세상 ② 주공이 천자가 아니었으나 세상을 바꿨고, 공자는 그런 주공을 닮고자 했다. 천자가 몇 백년간 이어져온 잘못을 바로잡지 못했으므로 ③공자는 지난 일을 끄집어 내 재평가하고 기록하면서 ‘잘못된 일이 역사에 길이 남는다’는 인식을 만들었다. 이런 개념을 처음 남긴 것이 공자.
=> 노나라의 역사서 춘추는 당시 중국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일들을 기록하고 평가한 내용을 담았다. 공자는 예를 기준으로 그 내용을 선택했다. 따라서 춘추는 역사서이나 그 안에 담긴 예(禮)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춘추(春秋)󰡕는 예의(禮義))의 대종(大宗)이다.”(󰡔사기󰡕「태사공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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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논어 1강 후기 |
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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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 동양 최고의 고전. 공자의 제자들이 그의 말씀과 삶을 기록한 책.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음.
*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가르쳤는지를 먼저 알아본다.
1-1. 논어 팔일 ①자공이 ②곡삭에서 양을 희생으로 바치는 것을 없앴으면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야, 너는 그 양이 아까우냐, 나는 그 예가 아깝구나.”
①자공 : 공자의 제자. 이름은 사. ②곡삭 : 과거 봉건시대에 중국은 천자 아래 제후들이 각각 영토를 나눠 다스렸다. 당시 제후들은 매달 초하루에 사당에 가서 월력(달력)을 배포하고 조상신들에게 제사를 올리고 양을 제물로 바쳤는데 이를 곡삭이라 함. 농사를 짓던 당시 백성들에게 월력 반포는 매우 중요한 일.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에는 제후들이 백성보다 전쟁에 신경을 쓰던 시기. 때문에 곡삭 역시 신하를 시키는 일이 잦았음. 이를 두고 자공이 “양을 바치는 것도 의미가 없어졌다’고 지적한 것. 이처럼 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자공에게 공자는 ‘예’의 중요성을 대답속에 함축했다. 비록 지금은 곡삭이 소홀히 되고 있으나 해오던대로 계속 양을 바치면 후대의 임금들이 이 의식을 궁금해하고 임금의 참다운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지금 행하지 않더라도 후대에 전해줄 수 있다는 것.
=> 고전의 의미. 지금 당장 실용적이지 않아 버려질 수도 있으나 그 안에 담긴 지혜는 충분한 의미를 가진다.
1-2. 사기 공자세가 공자는 노나라의 창평향 추읍에서 태어났다. 그의 선조는 송나라 사람으로 공방숙이라고 한다. 방숙이 백하를 낳았고, 백하가 숙량흘을 낳았다. ①흘이 안씨의 딸과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는데, ②니구에 기도하여 공자를 얻었다. 노나라 양공 22년에 공자가 태어났다. 태어났을 때 머리의 정수리 가운데가 움푹하였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구라고 했다. ③자는 중니이고 성은 공씨이다.
① 공자의 아버지 흘은 칠십이 넘은 나이에 스무살 가량 된 처자 안씨 딸과 결혼. 이들이 ‘야합했다’는 표현은 정식으로 혼례를 치룬 것이 아님을 의미. 가난한 안씨 집안은 이미 가정을 가지고 있던 숙량흘에게 딸을 보냄. ② 공자의 이름(구)의 유래. ③ 자는 성인이 되어 이름을 마구 부를 수 없어 지어주는 이름. 공자의 자에 들어간 ‘니’는 형제가 여럿일 때 둘째만 사용할 수 있는 글자이기 때문에 공자에게 형이 있음을 의미. 친형은 없으나 숙량흘의 본댁에 형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 ※ 이외에도 공자가 태어난 지 얼마 안되 아버지가 죽고 이삼십년 후에야 아버지 묘소를 알았다고 전해지는데, 이로써 공자가 본댁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어렵게 컸음을 짐작할 수 있음.
2-1. 논어 팔일 공자께서 ①태묘에 들어가셔서 매사를 물으시자, 어떤 사람이 말했다. “②누가 추땅 사람의 아들더러 ③예를 안다고 말했는가? ④태묘에 들어와서는 매사를 묻는데 말이다.” 공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예다.”
① 노나라 시조를 모신 가장 큰 종묘. ② 공자의 출신지역을 알려주는 동시에 그를 폄하하는 말. ③ 공자가 예를 잘 알고 있었다는 의미. ④ 공자가 하나부터 열까지 예에 대해 물었음을 알 수 있음.
=> 공자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수가 있을까 거듭 확인하는 것이 예라고 말하고 있다.
2-2. 사기 공자세가 공자는 가난하고 천했다. 그는 장성해 일찍이 ①계손씨의 창고 관리자가 되었다. 그의 저울질은 공평하였다. 공자가 일찍 목장의 말단관리인 ②사직니가 되었는데 가축들이 번식하였다.
① 지금으로 따지면 계손씨 창고의 회계관리자. ② 가축담당 관리인.
=>공자가 힘들게 자라며 창고지기, 가축관리 등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일을 잘 했음을 알 수 있다.
3-1. 논어 자한 태재가 자공에게 물었다. “공자는 성자이신가? 어쩌면 그리도 능한 것이 많으신가?”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은 진실로 하늘이 풀어놓으신 성인이실 것이요, 또 능한 것이 많으시다.” 공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①“태재가 나를 아는구나. 내 젊었을 적에 미천했기 때문에 비천한 일에 능함이 많으니, 군자는 능한 것이 많은가? 많지 않다.”
① 공자는 안해본 일이 없기 때문에 비천한 일에도 능하지만, 군자는 능한 것이 많지 않으므로 자신이 군자가 아닐 수 있다 말하는 것. 스스로 천했던 과거를 인정.
=> 태재와 자공의 차이. 태재 : 능한 게 많은 사람이 성인이다 (성=능) 자공 : (공자는) 성인인데다가 능한 것도 많다 (성+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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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백가쟁명, 제자백가의 시대)는 사상의 황금기. 이는 역설적으로 당시 세상이 힘들고 어지러웠음을 뜻한다. 사상가들은 시대의 문제를 짚고 치료하는 사람들이므로 수많은 사상들이 난립했던 것.
* 공자가 유학을 만든 이유?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기 위해. 공자는 지배층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해 임금을 통해 새 정치를 열어 자신의 정치사상을 구현하기 위해 여러나라를 떠돌아다녔다. 지도층들이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고 제자들도 훌륭한 지도층을 배출하려 애쓴 것은 사실이나 지배층을 옹호한 학문은 아니다.
3-2. 사기 공자세가 공자가 정나라에 갔을 때 제자들과 서로 잃어버리게 되어, 공자 홀로 외성 동문에 서 있었다. 정나라 사람 가운데 누군가 자공에게 말했다. “동문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이마는 ①요 임금을 닮았고, 목은 ②고요와 비슷하며, 어깨는 ③자산과 비슷하다. 그러나 허리 아래는 ④우임금에 세 치 못미친다. 몸시 지친 것이 마치 상갓집 개와 같다.” 자공이 이 사실을 공자에게 알렸다. 공자는 기뻐하여 웃으며 말했다. “외모는 꼭 그렇지 않지만 ‘상갓집 개’라고 말한 것은 맞구나 정말 맞구나.”
① 태평성대를 이뤘다고 전해지는 임금. ② 요순임금을 도왔던 신하. ③ 정나라의 유명한 재상. ④ 하나라의 시조.
=> 공자가 자신의 사상을 실험하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것은 상갓집 개로 보일 만큼 고생스러웠으며 개인적인 이익 추구는 아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4. 논어 위령공 위나라 영공이 공자에게 ①진법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②조두(제기)에 관한 일은 일찍이 들어보았지만, 군대에 관한 일은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③그리고 이튿날 마침내 떠나셨다. 진나라에 계셨을 때 양식이 떨어지니, 종자들이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였다. ④자로가 성난 얼굴로 뵙고 말했다. “군자도 궁할 때가 있습니까?” 그러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야말로 진실로 궁하며, 소인은 궁하면 넘치느니라.”
① 전쟁에서 병사들을 배치하는 법. ② 마을 음식을 올리는 것. 즉 제사 지내는 방식. ③ 전쟁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공자에게 위나라 영공이 전쟁에 관해 묻자 떠난 것. ④ 공자의 초기 제자로 그의 젊은 날을 함께 했으며 스승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유일한 인물.
=>세상은 의를 따지지 않고 이익을 생각하지만 군자는 의를 앞세워 지킬 것을 지키다 보니 궁하게 된다. 소인은 궁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선을 지키지 못함. 공자가 여러나라를 떠돈 것이 개인적 이익추구가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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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에 등장하는 은자들은 세상과 한걸음 떨어져 살며 어지러운 시대가 지나가버리기를 바라는 자들이었다. 공자는 이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세상을 개선하고자 나섰으나 은자들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 은자들은 “니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를 취했고, 공자는 이를 아파했다.
5. 논어 미자 초나라 ①광인인 접여가 공자 앞을 지나며 노래하였다. “②봉이여, 봉이여! 어찌 덕이 쇠하였는가? ③지나간 것은 간할 수 없거니와 오는 것은 오히려 따를 수 있으니, 그만둘지어다. 그만둘지어다. ④오늘날 정사에 종사하는 자들은 위험하다.” 공자께서 수레에서 내려 더불어 말하려고 하셨는데, 빨리 걸어 피하므로 함께 말씀하시지 못하였다.
① 거짓 미치광이임을 알 수 있음. ② 성인 탄생의 징표로 공자를 말함. ③ 덕이 쇠한 당시 세상. ④ 정사에 참여하려는 공자를 말리려 듬.
6. 논어 헌문 공자께서 위나라에서 ①경을 연주하고 계실 때, 삼태기를 메고 공자의 문 앞을 지나가던 사람이 말했다. “마음을 두고 있구나, 경을 연주함이여!” 이윽고 말하였다. “비루하구나 강경함이여! 자기를 알아주는 이가 없거든 그만두면 될 것을. ②물이 깊으면 옷 입은 채로 걷고, 물이 얕으면 옷을 걷고 건너면 되거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③“과감하구나, 그리하면 어려울 일이 없겠구나.”
① 돌로 만든 악기 ② 알아주는 이가 없음에도 뜻을 펼치려 노력하는 공자의 태도를 비판. 난세를 물에 비유. ③ 부모가 자식을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공자는 이 세상을 쉽게 포기할 수 없음. 세상에 대한 공자의 생각을 드러낸 대목.
7. 논어 미자 ①장저와 걸닉이 함께 밭은 갈고 있었다. 공자께서 그곳을 지나다가 그들에게 나루터를 물어보라고 자로를 보냈다. 장저가 말했다. “수레를 잡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 자로가 말했다. “공구라고 합니다.” (장저)말했다. “노나라 공구인가?” (자로)말했다. “맞습니다.” (장저)말했다. ②“그는 나루터를 알고 있을 텐데.” 걸닉에게 묻자, 걸닉이 말했다. “그대는 누군가?” (자로)말했다. “③중유라고 합니다.” (걸닉)말했다. “④도도하구 말구, 천하가 다 이러한데, 뉘라서 그것을 바꾸겠는가? 그리고 ⑤사람을 피해 다니는 선비를 따르느니, 세상을 피해 사는 선비를 따르는 것이 어떠한가?” 라고 하고는 ⑥일손을 그치지 않았다. 자로가 돌아와 고하자, 공자께서 멍하니 계시다가 말씀하셨다. ⑦“새나 짐승과 함께 무리 지어 살 수 없으니, 내가 이 사람들의 무리와 함께하지 않는다면 누구와 함께하리?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내가 바꾸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① 은자. ② 세상일을 다 아는 공자임으로 나루터도 알고 있어야 하는게 아니냐며 비꼰 말. ③ 자로의 이름. ④ 장강의 거대한 흐름을 ‘도도하다’고 일컬음. 시대의 흐름은 누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님. ⑤ 임금을 찾아 떠돌아다닐 것이 아니라 자신들처럼 사는 것이 나으니 정신 차리라는 의미. ⑥ 결국 나루터를 알려주지 않은 셈. ⑦ 인간은 마땅히 인간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데 힘든 세상 사람들을 외면하고 짐승들과 사는 것은 옳지 않다. 바로 위에서 배운 논어 헌문 마지막 대목과도 상통하는 대목.
8. 논어 미자 자로가 따라가다가 뒤에 처지게 되었다. 지팡이로 대바구니를 멘 어른을 만나자 자로가 물었다. “어르신은 우리 ①부자를 보았습니까?” 어른이 말했다. ②“사지를 부지런히 하지 않고 오곡을 분별하지 못하는데, 누구를 부자라고 하는가?”하고, 지팡이를 꽂아놓고 김을 매었다. 자로가 손을 마주잡고 서 있으니, 자로를 머물러 자기 집에서 묵게 하였다.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먹이고는, 그의 두 아들더러 뵙게 하였다. 이튿날 자로는 길을 나섰다. 공자를 뵙고 아뢰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은자로구나” 하시고, 자로로 하여금 돌아가 만나보게 하시었으나, 도착해보니 떠나가고 없었다. 자로가 말하였다. “벼슬하지 않는 것은 의가 없으니, ③장유의 예절을 폐할 수 없거늘 군신의 의를 어떻게 폐할 수 있겠는가? 자기 몸을 깨끗하게 하고자 하여 대륜을 어지럽히는 짓이다. 군자가 벼슬하는 것은 그 의를 행하는 것이니, ④도가 행하여지지 못할 것은 이미 알고 계시다.”
① 선생님. 즉 공자를 가리킴. ② 공자를 생산적인 일에는 어둡고 임금을 잘 만나 살려는 사람으로 비하. ③ 자로에게 하는 것으로 보아 장유의 예절을 갖추는 은자가 군신의 의는 지키지 않음. ④ 공자는 자신의 시도로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을 알고 있지만, 그 것이 인간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음.
=> 은자들은 공자를 세상물정 모르는 허황된 이로 보았다. 하지만 공자는 자신과 가는 길을 다르지만 어지러운 세상에 속해 있는 사람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9. 논어 자한 공자께서 광땅에서 경계심을 품고 계셨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①문왕이 이미 별세하셨으니, ②문이 이 몸에 있지 않겠는가? ③하늘이 장차 이 문을 없애려 하셨다면 뒤에 죽는 사람(내 자신)이 이 문에 참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늘이 이 문을 없애려 하지 않으신 것이라면, 광땅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① 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아버지 ② 유학을 지칭하는 말로, 문왕부터 공자까지 내려오는 전통을 일컫음.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표현이기도 함. ③ 사문(유학)을 계속 이어갈 것이 아니었다면 애당초 그것을 알게 하지도 않았을 것. 즉 하늘이 공자에게 유학을 알리라고 소명을 준 것.
=> 위기에 처한 공자가 자탄하는 대목. 자신의 길을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0. 논어 자한 공자께서 ①구이에 살고 싶다고 하시자, 혹자가 말했다. “누추한데, 어떻게 하시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②군자가 거주한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① 아홉 개로 나뉘어있던 동이족을 일컬음 ② 君子居之. 이 부분은 [군자가 가서 산다면/ 그 곳은 군자가 살고 있는데] 두 가지로 해석 가능.
=> 당시 구이가 수준 높은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었고, 공자가 당시 중국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1. 논어 자한 ①자공이 말했다. “여기에 아름다운 ②옥이 있다면, 이것을 궤 속에 감춰두고 보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좋은 값을 구하여 파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그러나 나는 좋은 값을 기다리는 자이다.”
① 공자에게 소중한 답을 많이 이끌어낸 제자. ② 귀한 재능
=> 누구나 세상을 위해 재능을 써야 하지만 잘못 쓰이게 해선 안 된다. 공자는 재능을 알아줄 이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처럼 공자는 자신이 구현하고픈 철학과 가치를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고 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 쉽게 타협하지 않으려 했다. 이는 ‘중용’에 대한 고민으로 유학의 성격과도 맞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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