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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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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비트 비긴즈(비로소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
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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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비트 비긴즈(비로소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가슴 뛰는' 사진읽기란 강의 소개에 끌려 사진 강의를 신청했으나 제 가슴은 뛸 줄을 몰랐어요. 사진가들은 사진 본연의 힘을 자각하면서 가슴이 뛰었다고 하는데 제게는 남의 집 이야기였죠. 그런데 5번째 강의에서 비로소 조금씩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정주하 선생님이 로버트 프랭크와 만나 '소주'를 마신 얘기를 해주실 때는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습니다.
정주하 선생님은 늦깎이 사진과 대학생이 된 뒤 교수님이 보여준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집 'The Americans'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그가 현대 사진의 문을 연 사진가로 추앙받는 이유는 그의 사진은 (이전과는 달리) 사진가가 카메라 파인더를 뚫고 대상에 다가가는듯한 주관적인 사진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의 사진이 사진에 감정을 담을 수 있다는 어떤 본보기가 된 셈이죠.
정주하 선생님은 1991년 지인의 소개로 우상인 로버트 프랭크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프랭크에게서 천재 예술가의 포스보다는 푸근한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았다고 해요. 함께 소주를 먹었는데 술이 굉장히 세더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로버트 프랭크에게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며 간단한 코멘트를 받은 일화도 털어놓으셨습니다. 로버트 프랭크는 자신과 비슷한 작업에 대해서는 안 좋게 평하고 그렇지 않은 사진들에는 좋게 평했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로버트 프랭크를 전시에 초대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너무 늦은 것 같다"며 회한에 젖은 표정을 언뜻 스치셨습니다.
선생님은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을 보여주기 전에 자신이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만큼은 모두 언어화 시킬 수 있다고 확언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사진을 언어 밖의 세계라고 말하며 언어화시키는 것에 대해 반감을 표하는 사람도 있지만 언어 밖의 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언어화의 필요성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집의 표지는 바뀌어도 사진집 내부 순서는 바뀌지 않는다며 사진집을 만들 때 사진을 싣는 순서도 중요했음을 강조했습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집은 한 편의 영화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찍은 영상을 잘 편집해 한 편의 영화를 만들 듯 그가 잘라낸 삶의 조각들은 하나의 흐름을 형성해 한 편의 영화처럼 관객의 뇌리에 남겠죠. 이렇게 생각하니 그의 사진집을 실제로 보고싶다는 욕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오자마자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 접속해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집을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언젠가 '구매하기'를 클릭해 일주일간의 기다림 끝에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집을 손에 쥐게 될 날을 두근두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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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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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의 전부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긴 |
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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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하는 아마추어 사진가다."
위 명제는 참일까요, 거짓일까요? 정주하 선생님의 분류기준에 따르면 정주하 선생님은 아마추어 사진가입니다. 정주하 선생님은 흔히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할 때 '사진의 질' 혹은 전문성의 유무(혹은 사진전공 여부)로 오해하기 쉽지만 그 분류기준은 '사진으로 먹고 사느냐, 아니냐'로 봐야 할 것이라고 단언하셨습니다. 이 기준에 따라 자신은 사진보다는 강의를 하면서(백제예술대학 교수) 먹고 살기 때문에 '아마추어 사진가'라고요.
선생님은 스스로 아마추어의 자리로 '내려'가신 게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아마추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자들을 '쫓아내기 위해' 손수 아마추어의 자리로 가셨습니다. 그러면서 자칭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 일침을 놓습니다. "네 사진에 철학이 있어? 없으면 그냥 취미사진가라고 해"
물론 위의 질문은 그의 설명을 지나치게 단순화 한 것이지만 선생님의 말 속에 담긴 뼈의 강도는 저보다 더 셌습니다. 물론 저는 그의 분류기준 중 취미생활자에도 들지 못하겠지만 그런 저조차도 민망해질 정도로요.
선생님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은 '돈'이지 사진의 '질'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기준에서 프로 사진가에 자신의 사진관을 운영하며 돈을 버는 사람이 포함된다는 점에서 프로라는 말이 사진의 질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확해 보입니다. 그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사진의 질이 아닌 만큼 아마추어 사진가라는 말 뒤에 자신을 숨기지 말고 사진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진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이것이겠죠.
그럼 사진의 질에 대한 인정은 누구로부터 받아야 하는 걸까요? 선생님은 '주류 사진계'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진가로서 누군가의 '호출'을 받을 정도의 실력이 있어야 한다고. 돈을 주면 누구나 빌릴 수 있는 공간이 아닌 초청 받아야만 전시할 수 있는 뮤지엄에서도 전시를 하면서 나름대로 이름을 펼쳐야 한다고요.
프로와 아마추어에 대한 내용은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언급하신 거였는데 이날 수업의 전부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프로, 아마추어, 취미생활자 등의 구분은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도대체 예술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예술가의 자격을 얻는 것일까'라는 의문에 닿았죠. 그런데 누가 처음부터 나는 예술가가 되겠다는 생각부터 할까요? 정주하 선생님도 처음에는 사진밖에 할 게 없어서 매달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혹은 좋아서 했는데(취미 생활자) 욕심이 나고 그러다보니 예술가가 되거나 혹은 예술가에 가까워진 거겠죠.
처음에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마치 '취미 생활자'들을 폄하하거나 그들을 배척하는 듯한 말로 들려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말을 되새겨보니 취미 생활자들에게 같이 가자는 '손짓'으로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오해가 아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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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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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시간을 갖게 해주신 정주하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민*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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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뜨는 파이프를 그리고 파이프가 아니라는 텍스트를 적었습니다. 사실 그림 속의 파이프는 파이프의 모양을 ‘그려 놓은’ 것일 뿐 실제 파이프는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파이프’라는 물체를 본 적이 없어 그 형상이 우리의 뇌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면 우리는 과연 이 그림을 파이프라고 인식할 수 있었을까요?
이렇듯 우리는 그림을 보며 ‘형태 자체’를 인지한다기 보다는 망막에 맺힌 상을 머리 속에서 ‘해석’함으로써 이해게 됩니다.
우리말 ‘視覺(시각)’ 이라는 단어 또한 ‘볼 시’에 ‘깨달을 각’이라는 글자를 써서 보이는 바를 깨달아 이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실재의 포착: 사진의 탄생에서 현재까지’의 두 번째 강의에서는 과연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라는 주제를 통해 ‘보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그림과 사진은 무엇을 전달하려 하는가?
여기서 퀴즈 하나! 원시시대 동굴 벽화를 처음 그린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그린다’ 라는 것은 결국 ‘그리움’을 형상화 한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화가는 바로 ‘사냥을 했던’사람일 것이다. 실제 사냥을 하는 사람은 바빠서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었을 것이므로 사냥을 하다가 불구가 된 ‘앉은뱅이’가 사냥을 하던 당시의 쾌감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벽에 사냥을 묘사한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이렇듯 초기의 예술은 자신이 ‘그리워’하는 것 ‘보고 싶은 것’에 대한 애정을 담아 시작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림은 권력에 종속되어 화가는 ‘귀족’ 소위 ‘patron’들의 후원을 받아 종교적인 상상, 혹은 초상화를 양산해 내는 역할에 머물렀습니다. 화가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이 ‘묘사하고 싶은’ 장면을 자율의지에 따라 그리기 보다는 그저 의뢰를 받아 수동적으로 생활을 위한 그림을 그려왔을 따름인 것입니다.
하지만 ‘리얼리즘’이 태동하며 그림은 더 이상 의뢰 받은 이상향이 아닌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대상을 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화가들은 자신이 담고 싶은, 스스로의 ‘시각’을 반영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이죠. 즉 말 그대로 ‘1인칭 시점’의 그림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구스타프 쿠르베 입니다. 그의 작품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에서 쿠르베는 자신을 중심인물로 묘사하고, 그의 후원자를 부차적인 인물로 나타냄으로써 화가로서의 자부심을 표현합니다. 이처럼 자신이 ‘그리길 원하는’, 그러나 ‘실제 존재하는 대상’을 담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죠.
‘나는 천사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릴 수 없다’ 라는 그의 말은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합니다.
이후 발명된 사진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처음 실제와 똑 같은 ‘형상’을 만들어 낸다는 신기함에인기를 끌었던 사진은 이후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신이 보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보게 하기 위한 수단이 됩니다.
그 대표적인 시도가 다양한 Frame을 가진 사진이 생겨난 것입니다. 사진가들은 4x5, 6x6등 다양한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며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프레임을 선택하여 사진을 찍습니다. 이는 사진기의 도입으로 인해 ‘시’와 ‘각’ 뿐만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틀’인 프레임 또한 우리의 ‘보는 문제’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판단을 전제로 합니다.
* 왜 보는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가
잰슨은 그의 저서에서 ‘생각하지 않고, 고민하거나 학습하지 않고 미술품을 바로 이해할 수는 없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미술품을 이해하고, 작가의 시선에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각’에 대한 문제,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틀’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고 학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과 함께 아트앤 스터디의 실재의 포착: 사진의탄생에서 현재까지 두 번째 강좌가 끝났습니다. 유익한 시간을 갖게 해주신 '정주하 교수님' 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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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다. |
이*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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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를 하고 나이 60이 다 되서야 사진을 시작했다. 사진기를 켜는 법부터 시작하고 기초강의를 듣고 동우회 사람들과 출사를 나가 사진을 찍는 일이 즐겁다. 우연히 듣게 된 정주하 교수님의 강의는 사진을 시작하는 나와 남편에게 사진에 대한 새로운 세계로 관점을 제시해 주셨다고 생각한다. 교수님의 다양한 강의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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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프랭크와의 일화를 듣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
오*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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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소개 문구처럼 '가슴 뛰는 사진 읽기'를 기대하며 수강했는데, 처음에는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5강에서 정주하 선생님이 로버트 프랭크와 만나 소주를 마신 일화를 들려주셨을 때, 비로소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프랭크의 사진이 이전과 달리 사진가의 주관적인 시선을 담아내며 현대 사진의 문을 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프랭크의 사진집 『The Americans』의 순서가 영화처럼 하나의 흐름을 형성한다는 설명을 듣고는 당장 사진집을 구매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 바로 온라인 서점에 접속했습니다. 이제 그의 사진집을 보며 사진을 언어화하려는 노력을 해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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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역사를 통해 주체적 시각을 고민하다 |
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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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탄생 배경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훑어주신 덕분에 단순히 사진 기술을 넘어 미디어 시대의 주체성 문제를 깊이 있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온 세계를 '나'를 중심으로 보았던 서구 인식 체계가 사진기를 통해 '내가 보이고 있기도 하다'는 쌍방적 태도로의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교수님의 통찰이 인상적입니다. 온갖 이미지에 설득되고 세뇌되는 시각적 소비자가 아닌, 주체적인 시각을 되찾는 근본주의적 태도가 필요하다는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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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와 아마추어'의 정의에 충격받았습니다 |
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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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에서 다룬 '프로와 아마추어 작가'에 대한 정의가 정말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선생님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이 '돈', 즉 '사진으로 먹고 사느냐 아니냐'에 있다고 단언하셨는데, 스스로를 '아마추어 사진가'라고 칭하시면서 '네 사진에 철학이 있느냐'고 일침을 놓는 모습에서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취미 생활자들을 폄하하는 듯 들려 마음이 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사진의 질을 높이자는 따뜻한 손짓으로 느껴졌습니다. 예술가의 자격과 사진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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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가 없는 점이 정말 아쉽습니다 |
이*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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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전문적이어서 교재(강의록)가 없는 점이 너무 아쉽습니다. 수업 내용을 텍스트로 옮기며 복습하고 싶은데, 매번 다시 듣기가 부담스럽습니다. 다른 강좌들은 강의록이 제공되던데, 이 강좌는 왜 없는지 궁금합니다. 내용의 깊이와 질은 최고이지만, 학습 효율성 면에서 큰 단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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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세상이 보인다'는 말이 와닿네요 |
박*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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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의 '보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특히 좋았습니다. 우리말 '시각(視覺)'의 의미처럼, 보이는 것을 깨달아 이해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시시대 동굴 벽화를 그린 사람은 사냥을 그리워하는 '앉은뱅이'일 것이라는 비유나, '예술 작품은 딱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결론이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단순히 좋은 카메라에만 집착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이제부터라도 사진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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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탄생 비화에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
정*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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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사진 발명가를 다게르로만 알고 있었는데, 니옙스의 공로가 있었음에도 다게르가 단독 등재된 역사적 사실에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다게레오타입이 사실은 '니게레오타입'이라고 불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교수님의 뼈 있는 농담이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8시간이나 걸리던 초창기 사진 기술을 보며, 상을 잡아두고 싶은 인간의 강력한 욕망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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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테크닉을 넘어선 강의 |
강*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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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진을 막 시작한 초보자인데, 이 강의가 사진 공부의 시작은 사진의 역사를 아는 것부터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단순히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이 아니라, 사진을 '어떻게 소비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수업이라 매우 만족합니다. 이 강의를 통해 책 몇 권 분량의 지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으로서의 사진과 예술로서의 사진을 구분해 주신 내용도 인상 깊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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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스트 스티글리츠에 매료되다 |
유*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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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에서 다룬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사진에 매료되었습니다. '사실적 재현'이야말로 사진의 힘이라고 믿고, 눈보라 속에서 3시간 동안 추위에 떨며 한 장의 사진을 얻었다는 일화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연출된 공간이 아닌 일상의 대상을 가감 없이 담으려 했던 그의 리얼리즘이 무엇인지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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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중대 자퇴생(?)의 믿음직한 강의 |
배*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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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하 선생님의 독특한 이력(27살 중앙대 입학, 3학년 중퇴 후 독일 유학)을 듣고 겉모습만큼이나 자유분방하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규직 교수로 15년간 강의를 하고 계시다는 점에서 강의에 대한 믿음이 갔습니다. 배우는 저희와 눈높이를 맞추려 노력하시고 '자발적 무모함'을 강조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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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사진 케이스에 시선이 머물다 |
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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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께서 독일 유학 시절 수집하셨다는 다게레오타입, 틴타입의 실제 사진을 보여주셨을 때, 사진 자체보다 낡은 사진 케이스가 더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사진에 대한 태도와 가치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다만, 아무리 뜯어봐도 큰 감흥은 없어서 제가 아직 사진을 이해하는 수준이 낮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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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다'는 '그리워하다'의 다른 말 |
이*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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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예술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다'는 '그리워하다'의 다른 말이라는 해석과 함께, 동굴 벽화를 그린 최초의 화가는 사냥을 그리워하던 '하반신 불구자'일 것이라는 교수님의 해석이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는 사진 역시 삼류 화가들의 사실적 묘사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되었을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져 사고를 확장시켜 주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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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진의 가능성을 고민하다 |
최*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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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의 '한국 사진이란 존재 하는가 혹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가 가장 흥미롭고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서구의 사진사를 훑어본 후, 우리가 반추해야 할 '한국적 사진의 가능성'을 점검하는 시간을 갖게 해주셔서 좋았습니다. 사진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정체성에 대한 고민까지 하게 해준 귀한 강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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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진이란 무엇인가? |
박*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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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에서 '좋은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어주셔서 좋았습니다. 사진의 본질적인 의미와 관람자의 순수성에 대한 논의를 통해, 사진을 단순히 시각적으로만 소비하는 태도를 벗어나 사유하는 행위로 전환하게 해주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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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예술사와 사진의 관계 정립 |
정*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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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탄생 시점의 19세기 회화의 흐름(리얼리즘)과 사진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립해 주신 덕분에 사진을 예술사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구스타프 쿠르베의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를 통해 화가의 '1인칭 시점'과 자부심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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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독서의 계기가 되다 |
이*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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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내용 전반에 걸쳐 작가들의 다양한 사진 작품을 감상하고 분석하는 시간이 많아서 시각적인 만족감이 높았습니다. 오랜 유학 경험을 통해 엄선된 작품들을 분석하는 교수님의 안목을 믿고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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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군가의 욕망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박*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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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교육 사이트) 아트앤스터디에서 온라인 강의만 듣다가 처음으로 오프라인 강의를 듣게 됐다. 정주하의 '실재의 포착 : 사진의 탄생에서 현재까지'라는 사진수업. 홍상수의 영화 '옥희의 영화'에서 남진구(이선균 분)가 말했듯 전 국민이 사진작가인 시대, 사진강의도 덩달아 넘쳐난다. 그런 강의들은 대개 사진을 찍는 방법에 관한 수업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넘쳐나는 사진을 어떻게 소비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수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 발견한 이 수업. 혹 이 강의가 혹 내가 원하는 강의가 아닐까. '가슴뛰는 사진 읽기'라는 대목에서 덜컥 신청했다.
정주하 선생님은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선생님'은 상대를 높이는 말인 동시에 책임 지우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자발적 무모함'이라는 단어로 수강생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수업을 강조했다.
사진의 역사를 짚어 나가기 전에 선생님의 역사가 소개됐다. 백제예대 사진과에서 예술사, 사진학 개론을 강의하는 정주하 선생님은 시간강사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당당히 정규직 교수로 15년 간 강의 중이다. 특이한 것은 27살에 중앙대 사진과에 입학하셨다는 것. 그 전까지는 무슨 일을 하셨을까가 너무 궁금해졌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다음 뒤풀이에서 기회를 노려봐야겠다. 그의 방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3학년 1학기 끄트머리에 학교를 중퇴한 뒤 독일 쾰른의 3,000명 뽑아 3명 내보내는 대학에서 철학을 배우고 8년 뒤 한국에 돌아왔다. 겉모습만큼이나 자유분방(?)하심이 분명해보였다.
강의는 1830년대 프랑스에서는 사진의 탄생을 시작으로 180년 정도되는 역사를 훑게된다. 사진의 역사만이 아니라 미술사와 사진의 연관성, 물질로의 사진(최근의 디지털 이미지와 함께), 예술로서의 사진과 사진으로서의 사진, 사실과 사실 아닌 것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상황에서 설치 사진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등 다양한 주제가 다뤄질 예정이라 기대를 모았다.
"이것만 배우면 사진을 잘 볼 수 있게 되는 건가요?"
누군가의 질문에 선생님은 자신의 일화를 공개했다.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때 누군가가 음악을 들어보라고 권해줬단다. 그 말에 이런 저런 음악을 들어보긴 했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느낌은 없었다고. 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잘 듣는거야?'라고 물었더니 '많이 들어보면 돼'라는 답이 돌아왔단다. 선생님의 대답도 결국 "사진집을 많이 봐라"였다. 사진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진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말씀도. 결국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강의는 좋은 안내자가 될 수는 있겠지.
오늘은 최초의 사진 발명가에 관한 흥미로운 얘기가 진행됐다. 문제적 두 인물은 바로 다게르와 니옙스. 최초로 사진을 발명한 사람하면 다게르를 언급한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니옙스의 발명이 있었다. 니옙스는 셔터를 연구한 아마추어 발명가였다. 그는 지금의 아스팔트의 원료가 상을 잡아둘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해 이를 이용해 불완전한 사진을 발명했다. 이후 니옙스는 다게르에게 공동연구를 제안하게 됐고 다게르는 다 된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는 행운을 누리게 됐다. 물론 다게르가 기술을 더 발전시킨 것은 맞다. 그러나 니옙스의 공로가 큼에도 니옙스가 세상을 뜬 뒤 다게르가 니옙스의 아들과 합의해 최초의 사진 발명가로 단독 등재됐다는 대목에서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그리하여 최초의 필름은 다게르의 이름을 딴, 다게레오타입이라고 불린다. 선생님은 원래는 '니게레오타입'이라고 불려야하는 것 아닌가 한다며 '역시 2세를 잘 둬야한다'는 조금은 이상한(?) 결론을 내리셨다. 이후 틴타입이라는 조금 더 간편한 형태의 사진이 발명됐고 현재는 디지털사진이 대세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에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무려 8시간이 소요돼야 했다는 사실이다. 사람을 찍을라치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경우 머리를 고정시킬 수 있는 의자가 개발됐다고 한다. 당시의 사진의 등장은 달나라 여행보다 더한 충격이었을 거라고 한다.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거울밖에 없었는데 사진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면 뭔가 낯선 기분도 느껴지고 했으리라. 나도 가끔 사진을 보면 스스로가 낯설어지곤 한다. 마치 마이크로 녹음된 내 목소리를 처음 들을 때처럼...
선생님은 컴퓨터를 통해 최초의 사진을 보여주신 뒤 독일 유학시절 수집한 다게레오타입, 틴타입의 사진을 보여주셨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낡은 사진케이스가 눈길을 끌었다. 돌려보라고 주신 덕에 좀 오래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뜯어봐도 이상하리만치 큰 감흥은 없었다. 그래도 다게레오타입만큼은 탐났다. 탐나는 이유가 사진때문인지 케이스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ps. 사진이 발명되기까지는 8시간동안 사진을 찍는 한이 있어도 상을 잡아두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는 사실. 그 누군가의 욕망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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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다.’ 는 그리워하다의 다른 말이다. |
정*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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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의 예술작품으로 추정되는 알타미라 동굴벽화나 라스코 동물벽화를 그린 인류 역사상 최초의 화가는 누구일까?
‘그리다.’ 는 그리워하다의 다른 말이다. 다시말해, 그림은 그리움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그리워하는 대상을 그란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동물을 사냥하는 그 장면을 가장 그리워할 수 있었을까? 아마 자신이 사냥하던 그 모습을 너무나도 그리워 하며 동굴에 갇힌 왕년의 사냥꾼일 것이다. 그는 어쩌면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실의에 빠진 노인일수도 있고, 혹은 더 그럴 듯 하게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하반신 불구자일지도 모른다. 그는 더 이상 들판에서 야생동물과 대치하는 사냥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이제는 그때를 그리워 하며 상상 속에서 사냥을 하고 그 장면을 벽에 그려낸다.
1800년대 알려지기로는 다게르와 니옙스에 의해 발명된 사진 기술 – 그 이면에는 헨리 폭스 탈보트의 먼저 공표되지 않은 사진이 있었지만 - 은, 존 허셜이 1840년에 발명한 정착액 첨가 공정에 의해 현재의 인화기술에 근접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사진의 발명을 가장 반긴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려내야할 대상을 사실적으로 잘 그려내는 화가가 되기를 너무나도 그리워하는 사람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다시 말해 삼류화가들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은 우리가 그저 보는 것을 그대로 그려내주는 기계인 걸까?
공근혜갤러리와 전속계약을 맺은, 흑백사진예술의 거장 마이클 케나가 찍은 월천리 솔섬이다. 강원도 삼척에 있다는 이 작은 섬. 어촌 마을의 한 작은 섬에 불과했던 이 곳은 마이클 케나의 사진 한장으로 세계적 명소가 될 수 있었다.
패션포토그래퍼 권영호는 인터뷰 기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담아내고자 하는 장면을 1000번 상상하고, 단 한번 셔터를 누른다.’ 그는 자신의 개인전을 `비욘드 더 신(Beyond the scene)`, 보이는 것 뒤에 숨겨진 내면이라 이름 붙였다.
결국 우리가 보는 것 혹은 우리가 그리는 것은 결국 우리가 아는 혹은 우리가 생각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것이다.
과거의 예술가들은 데몬 혹은 지니라고 불리는 영혼이 자기 안에 들어와 예술 작품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현재의 예술가들에게 데몬과 지니가 내몸속에 들어와 작품을 만들어주고 도망쳐 버리는 일은 로또 1등의 행운보다 만나보기 어려운 기회가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백지상태에서 문득 떠오른 영감으로 예술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요즘 대중매체에 몇번 소개된 전시회에 가면 어린 아이들이 너무 많다. 엄마손에 이끌려온 아이들, 혹은 어린이집이나 미술학원에서 단체 견학을 온 아이들인 듯 보인다. 걔중 몇몇 아이들은 진지하게 스케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아이들을 데려오는 어른들의 흔한 변명이 될 수 있는 ‘아무것도 모르고 순수한 마음으로 예술작품을 접한 아이들이 영감을 얻어 창의적이 되고 나중에 예술가가 될거야’ 라는 생각. 하지만 예술작품이라는 것은 예술가들이 1000번 상상하고 한번 그려낸, 역사적인 맥락과 작가 개인의 배경이 고스란히 담긴, 사전 지식이나 이해하려는 노력없이 그냥 보기만해서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사실 아무런 지식없이 미술관에 와서 작품과 작품사이를 거니는 사람들의 마음 속은 어떨까?
결코 저렴하다고 볼 수 없는 입장권 가격을 치뤘기 때문에 모든 작품을 다 보고, 오디오 해설을 듣고 아 그건 그렇구나 하고 있을까? 혹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몇몇의 작품 뒤에 줄을 서서 피곤해져 있을까? 아니면 같이 온 사람이 혹시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거 같아 음 좋네요를 연발하고 있는 것일까?
단언컨데, 예술 작품은 딱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리고 이 세상 역시 그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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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이제 시작하신 분들까지도 추천드립니다. |
t**hyen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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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공부의 시작은 사진의 역사를 아는 것부터 시작하는게 좋은데, 사진을 시작하는 분은 이 강의를 통해서 거의 책 몇권 분량을 정주하 교수님을 통해서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사진으로써의 사진과 예술로써의 사진을 구분해주신 내용이 인상깊었습니다.
현대사진에서 중요한 몇몇 유명작가의 작품들을 조금씩 볼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네요.
추천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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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찍는것으로부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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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찍는것으로부터 벗어나 좀더 나아가고픈 마음입니다 '시각' 이란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요. 이 강의를 보기전에는 단순히 화질이 좋은 카메라에 목숨(?) 걸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란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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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하 선생님의 강의란.. |
배*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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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하 선생님은 참 겸손하신 분 같습니다. 일생을 사진으로 채우셨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는 입장인 저희와 눈높이를 맞추려 노력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우신 분 같습니다. 중대를 자퇴 하셨다고 들었는데 어찌 됐든 선배님의 강의라 더욱 믿음직스러운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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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교재 |
이*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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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좌는 왜 교재가 없나요 수업내용 전체를 텍스트로 옮기는 작업 안하시나요 다른 수업들은 그렇게 하던데 이 강좌는 그렇게 안하는 이유는 뭔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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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회원님. 본 강좌는 따로 강의록을 필요로하지 않습니다.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artboy (1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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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그리다'는 그리워하다의 다른 말 |
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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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의 예술작품으로 추정되는 알타미라 동굴벽화나 라스코 동물벽화를 그린 인류 역사상 최초의 화가는 누구일까?
‘그리다.’ 는 그리워하다의 다른 말이다. 다시말해, 그림은 그리움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그리워하는 대상을 그란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동물을 사냥하는 그 장면을 가장 그리워할 수 있었을까? 아마 자신이 사냥하던 그 모습을 너무나도 그리워 하며 동굴에 갇힌 왕년의 사냥꾼일 것이다. 그는 어쩌면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실의에 빠진 노인일수도 있고, 혹은 더 그럴 듯 하게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하반신 불구자일지도 모른다. 그는 더 이상 들판에서 야생동물과 대치하는 사냥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이제는 그때를 그리워 하며 상상 속에서 사냥을 하고 그 장면을 벽에 그려낸다.
1800년대 알려지기로는 다게르와 니옙스에 의해 발명된 사진 기술 – 그 이면에는 헨리 폭스 탈보트의 먼저 공표되지 않은 사진이 있었지만 - 은, 존 허셜이 1840년에 발명한 정착액 첨가 공정에 의해 현재의 인화기술에 근접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사진의 발명을 가장 반긴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려내야할 대상을 사실적으로 잘 그려내는 화가가 되기를 너무나도 그리워하는 사람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다시 말해 삼류화가들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은 우리가 그저 보는 것을 그대로 그려내주는 기계인 걸까?
공근혜갤러리와 전속계약을 맺은, 흑백사진예술의 거장 마이클 케나가 찍은 월천리 솔섬이다. 강원도 삼척에 있다는 이 작은 섬. 어촌 마을의 한 작은 섬에 불과했던 이 곳은 마이클 케나의 사진 한장으로 세계적 명소가 될 수 있었다.
패션포토그래퍼 권영호는 인터뷰 기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담아내고자 하는 장면을 1000번 상상하고, 단 한번 셔터를 누른다.’ 그는 자신의 개인전을 `비욘드 더 신(Beyond the scene)`, 보이는 것 뒤에 숨겨진 내면이라 이름 붙였다.
결국 우리가 보는 것 혹은 우리가 그리는 것은 결국 우리가 아는 혹은 우리가 생각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것이다.
과거의 예술가들은 데몬 혹은 지니라고 불리는 영혼이 자기 안에 들어와 예술 작품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현재의 예술가들에게 데몬과 지니가 내몸속에 들어와 작품을 만들어주고 도망쳐 버리는 일은 로또 1등의 행운보다 만나보기 어려운 기회가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백지상태에서 문득 떠오른 영감으로 예술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요즘 대중매체에 몇번 소개된 전시회에 가면 어린 아이들이 너무 많다. 엄마손에 이끌려온 아이들, 혹은 어린이집이나 미술학원에서 단체 견학을 온 아이들인 듯 보인다. 걔중 몇몇 아이들은 진지하게 스케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아이들을 데려오는 어른들의 흔한 변명이 될 수 있는 ‘아무것도 모르고 순수한 마음으로 예술작품을 접한 아이들이 영감을 얻어 창의적이 되고 나중에 예술가가 될거야’ 라는 생각. 하지만 예술작품이라는 것은 예술가들이 1000번 상상하고 한번 그려낸, 역사적인 맥락과 작가 개인의 배경이 고스란히 담긴, 사전 지식이나 이해하려는 노력없이 그냥 보기만해서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사실 아무런 지식없이 미술관에 와서 작품과 작품사이를 거니는 사람들의 마음 속은 어떨까?
결코 저렴하다고 볼 수 없는 입장권 가격을 치뤘기 때문에 모든 작품을 다 보고, 오디오 해설을 듣고 아 그건 그렇구나 하고 있을까? 혹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몇몇의 작품 뒤에 줄을 서서 피곤해져 있을까? 아니면 같이 온 사람이 혹시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거 같아 음 좋네요를 연발하고 있는 것일까?
단언컨데, 예술 작품은 딱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리고 이 세상 역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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