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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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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선생님의 재치있고, 쏙쏙 들어오는 강의 |
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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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뵙고 싶었고, 듣고 싶었던 이현우 선생님의 강의! 이현우 선생님은 화면에서보다 훨씬 키가 크시고, 화면에서 뵈던 것처럼 유머러스하시더군요! :)
루카치는 <변혁기 러시아 리얼리즘>에서 "러시아 문학은 오직 1917년의 시점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현우선생님께서 이 말에 감동을 받으셨다고 했는데,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저 또한 루카치의 이 말이 참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
러시아문학은 다른 나라 문화와 다릅니다.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이지요. 근대 러시아 문학사의 전개과정을 바라보고자 할 때, 1917년의 사회주의 혁명은 분명한 준거적 시점이면서 무게중심이 되어줍니다. 곧, 혁명에 얼마나 기여했느냐로 다시 평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1989년 동구권 붕괴에 이은 1991년 소비에트 러시아의 해체는 1917년이란 시점이 갖는 초월적 기의로서 지위에 의문을 제시합니다. 1917년의 시점이 평가적 시점이라면, 1991년의 시점은 재평가적 시점이 됩니다.
이제부터 8주간 1917년부터 1991년까지의 러시아 작가 중, 로쟈 이현우 선생님의 선택을 받은 7명을 만나볼 예정입니다. 너무너무 기대가 되지요! :)
중간 쉬는 시간에, 커피와 과자도 준비해주시는 인문숲의 센스와 관심! :) 이현우 선생님의 재치있고, 쏙쏙 들어오는 강의, 다음주도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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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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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맘으로 고리끼의 '어머니'의 첫장을 넘겨본다 |
조*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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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은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고골 만이 전부 인줄 만 알고 있었다. 이들의 작품을 하나하나씩 읽어가며 '그래 역시 고전은 러시아 문하이지' 하며 자뻑독서에 빠져 있었다. 헌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20세기 작가들은 전부 빼먹은 것이 아닌가. 오호라 통재라.
그리하야, 필명 '로쟈'로 더 유명한 이현우 교수의 '20세기 러시아 문학으로의 여정'이라는 인문숲 강좌를 찾아가게 되었다. 이유는 딱 하나. 읽을 만한 작품이 무엇이 있을지 위시 리스트를 만들고 이 중에 단 한권이라도 읽어보자는 맘에서 였다.
오호, 나보코프의 '롤리타'가 우선 눈에 들어온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로 유명한 바로 그 작품 아닌가. 이 중에서 읽어본 책은 딱 한권 [우리들[ 이다. [멋진 신세계]의 원조격인 sf 디스토피아 소설의 고전이라 올초에 섭렵했었다. 나머지 작품들도 제목은 익숙하지만 거의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미지의 광산에 박혀 있는 원석과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푸짐한 상차림으로 벌써부터 포만감에 배를 두드리고 있다. "매일같이 마을로부터 떨어져 있는 노동자촌의, 열기와 기름 냄새로 절어 있는 대기 속에서 공장 사이렌이 떨리는 듯한 소리로 울려 퍼지면, 그 소리를 따라 회색빛 작은 집들로부터 아직 잠에서 덜 깬 몸으로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침울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마치 질겁한 곤충처럼 거리로 뛰쳐나온다"
설레는 맘으로 고리끼의 [어머니] 첫장을 넘겨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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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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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부터 로쟈 이현우샘의 글을 찾아 읽곤 했다 |
김*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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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부터 로쟈 이현우샘의 글을 찾아 읽곤 했다. 한겨레 21에서 처음 그의 글을 알고, 인터넷에 '로쟈의 저공비행'을 검색해 블로그를 찾아내 즐겨찾기 해두었다. 틈틈이 그의 블로그에 가서 글을 읽었다. 감탄하고 동경하고 때로는 질투하면서.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그가 써둔 블로그 대문 글이다. '이런 곳이 다 있군요. '나의 서재'라지만 제가 만든 것 아닙니다. 저는 적응하려고 애쓸 따름입니다'라는 짧은 문장이, 손님을 처음 맞는 그 자리에 있기는 너무 어색하고 슬퍼보여서 이상했었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어쩐지 나까지 묵직해져서 좋았다. 텍스트에 대한 엄격함이 나를 신성하게 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고, 그의 꼬독꼬독한 문장과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내 허리도 곧추세워지는 것 같았다.
한달 전 교보에 갔다가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샀다. 신간 '책을 읽을 자유'는 출판사에서 회사에 보내준 걸 운 좋게 겟.
글자로만 그를 만나며 흠모해왔는데 아트앤스터디 인문숲에서, 10월부터 로쟈샘의 러시아문학 강의를 진행한다고 해서 듣게 됐다. 10월부터 두 달간 매주 월요일 7:30분에 홍대서 진행한다.
이제 막 수습을 뗀 주간지 신입기자로 마감에 허덕이고 있는 스케줄이지만 ‘어머나 이건 꼭 들어야 해’라며 신청해버렸다. 일단 일은 저지르고 봐야 제맛… -_-
아트앤스터디는 정갈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었다. 10월 4일엔 오리엔테이션으로 20세기 러시아문학사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앞으로 이 러시아 문학들을 매주 월요일마다 하나씩 알게 된다. 실제로 뵌 로쟈샘은 유머러스했지만 어쩐지 전체적으로 묵직했다. 목소리도 인상도.
러시아문학도 러시아 작가도 전혀 모르지만, '어쩐지 꼭 알아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이 항상 있었다. 대학 때 노어노문과 교수님 중에 괴짜로 소문난 분이 있었는데, 친구가 그 분 수업을 듣고 나더니 러시아 문학을 예찬했었다. 그이 말만 듣고서도 굉장히 낭만적인 것이로구나 싶었다.
이제 러시아 대표문학을 로쟈샘의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국문학에만 한정돼있던 나의 시야가 넓어질 것이라서 기대된다. 노…농땡이 피우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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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에 관심이 생겼어요 |
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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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선생님 덕분에 19세기에 이어 20세기 강좌까지 수강하였네요. 마찬가지로 좋은 강의고 제작된지 오래되어 화질이 떨어지지만 여전히 유효한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수강을 추천합니다. 다루는 작품들이 생소하고 두꺼운 작품들이 많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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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쟉님 목소리가 참 좋다 |
정*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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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부터 듣고 싶었는데 드디어 신청했다. 블로그 글로만 보다가 실제 강의를 들으니 목소리가 생각보다 부드럽고 차분하다. 고리키 어머니 읽는 부분에서 약간 감정이입 되는 느낌? 근데 솔직히 말하면 4강까지 들었는데 아직 플라토노프가 잘 이해 안 간다. 다시 들어야 할 것 같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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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강의 듣고 바로 신청 |
송*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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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슈킨에서 체호프까지 강의 완강하고 이번 20세기 강의도 바로 등록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강의다. 특히 1강에서 1917년과 1991년 두 시점으로 러시아 문학을 보는 관점이 신선했다. 문학장 이론을 브르디외로 설명하는 부분도 좋았고. 자먀친의 우리들은 이미 읽었던 터라 3강이 더 재밌게 들렸다. 나보코프 롤리타 부분이 제일 기대된다. 강의록도 잘 정리되어 있어서 복습하기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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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때려치우고 싶을 때 듣는 강의 |
김*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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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회사 다니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런가. 플라토노프의 코틀로반 이야기 들으면서 묘하게 위로받았다. 사회주의 건설 현장에서 구덩이만 파는 사람들 이야기가 지금 내 모습 같았다. 뭔가를 위해 일하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고, 언젠가 완성될 거라고 믿지만 실은 확신이 없는 그런 느낌. 로쟈 선생님이 "플라토노프의 슬픔"에 대해 말씀하실 때 가슴이 먹먹했다. 이런 강의 들으러 월요일 저녁마다 홍대까지 가는 게 힘들긴 한데, 그래도 일주일 중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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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 강의 듣고 롤리타 다시 읽었다 |
이*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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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나보코프 부분 정말 좋았다. 사실 롤리타를 옛날에 한 번 읽긴 했는데 그냥 '야한 소설'로만 생각하고 덮었었다. 근데 로쟈 선생님이 망명 작가로서 나보코프의 설움,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향수를 롤리타라는 소녀에 투영했다는 해석을 들으니까 완전히 다른 소설이 되더라. "유머 누아르"라는 표현도 인상적이었고. 강의 듣고 바로 서점 가서 롤리타 다시 샀다. 이번엔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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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수업보다 훨씬 낫다 |
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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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러시아문학사 수업 듣는 중인데 솔직히 교수님이 그냥 교과서 읽어주시는 수준이다. 이 강의는 작품 하나하나를 깊이 있게 다루고 역사적 맥락까지 설명해주니까 훨씬 이해가 잘 된다. 특히 문학장 이론으로 1920년대 소비에트 문학을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학교 시험 준비할 때도 이 강의 내용이 많이 도움됐다. 유료 강의지만 값어치 충분히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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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 커피가 꿀맛 |
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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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숲 처음 가봤는데 공간이 아담하고 좋더라. 쉬는 시간에 커피 마시면서 다른 수강생들이랑 잠깐 이야기 나누는 것도 재밌었다. 다들 진지하게 듣는 분위기라 나도 집중하게 됨. 강의는 솔직히 좀 어렵다. 특히 자먀친 부분에서 철학 용어들 나올 때 멘붕. 그래도 선생님이 중간중간 농담도 해주시고 실제 작품 구절 읽어주실 때는 이해가 잘 됐다. 완강 목표로 열심히 듣는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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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코프 거장과 마르가리타 최고 |
윤*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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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 불가코프 편이 제일 재밌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라는 소설이 이렇게 복잡하고 재미있을 줄 몰랐다. 악마가 모스크바에 나타나는 설정부터가 흥미롭고, 빌라도와 예수 이야기가 중첩되는 구조도 신기했다. 로쟈 선생님이 "소비에트 풍자문학"이라고 설명하셨는데, 스탈린 시대를 그렇게 풍자했다는 게 대단하다. 강의 듣고 바로 책 주문했다. 두꺼워서 좀 걱정되긴 하지만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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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소화 중 |
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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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완강했다. 근데 솔직히 아직 다 이해한 것 같진 않다. 특히 루카치, 바흐친 이런 이론가들 이야기 나올 때는 머리가 복잡했다. 그래도 러시아 문학에 대한 시야가 확실히 넓어진 건 사실이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만 알았던 내가 고리키, 플라토노프, 솔제니친까지 알게 됐으니. 온라인으로 다시 한 번 들어야겠다. 두 번째 들으면 더 이해가 잘 될 거라고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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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블로그 애독자입니다 |
한*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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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저공비행 블로그를 몇 년째 보고 있는 팬이다. 드디어 오프라인 강의를 듣게 돼서 너무 기뻤다. 실제로 뵌 선생님은 블로그 글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하셨다. 강의 내용은 블로그 글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깊이가 있었다. 특히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 부분에서 "시인이 쓴 산문"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도 로쟈 선생님 강의 계속 듣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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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병 치료제 |
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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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저녁이 이렇게 기다려진 건 처음이다.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다가도 저녁에 강의 들으러 가는 생각하면 버틸 만하다. 홍대까지 가는 게 좀 멀긴 한데 그래도 가치 있다. 솔제니친 수용소 이야기 들으면서 내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었다 ㅋㅋ 그나저나 강의실 난방이 좀 약한 것 같던데 다음엔 따뜻하게 입고 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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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포기할뻔 |
임*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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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4강쯤에 포기하고 싶었다.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철학책 읽는 것처럼 머리 아팠다. 그래도 친구가 끝까지 들어보라고 해서 계속 들었는데 6강 불가코프부터는 좀 재밌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반에 포기 안 한 게 잘한 일인 것 같다. 나보코프 강의는 정말 재밌었고. 근데 이 강의는 확실히 입문용은 아니다. 러시아 문학 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듣기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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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테르나크에 대한 새로운 시각 |
서*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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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 파스테르나크 강의가 특히 인상 깊었다. 닥터 지바고를 영화로만 봤었는데 로맨스 영화로만 생각했다. 근데 강의 들으니까 "소비에트 햄릿"이라는 해석이 너무 절묘하다.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내적 망명자로서의 삶. 이런 걸 생각하면서 보니까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더라. 책도 읽어봐야겠다. 영화와는 또 다를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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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록 정말 유용 |
배*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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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들으면서 필기하는 게 힘들었는데 강의록이 있어서 정말 도움 됐다. 나중에 복습할 때도 강의록 보면서 기억 되살릴 수 있었다. 내용이 워낙 방대해서 한 번 듣고 다 기억하기는 불가능하다. 중요한 작가 이름이나 작품명, 이론가들 이름 같은 것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나중에 책 읽을 때도 참고하기 좋았다. 혹시 강의 듣기 고민하는 분들 있으면 강의록 때문에라도 들으라고 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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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듣기 딱 좋은 강의 |
오*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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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부터 시작했는데 날씨도 쌀쌀해지고 낙엽 떨어지는 계절에 러시아 문학 듣는 게 참 잘 어울렸다. 강의 듣고 집에 가는 길에 차가운 바람 맞으면서 걷는데 플라토노프나 솔제니친 생각이 자꾸 났다. 러시아 문학 특유의 우울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가을이랑 딱 맞는 것 같다. 내년 봄에는 프랑스 문학이나 들어볼까 생각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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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 |
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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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자체는 좋은데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첫째, 8주가 너무 짧다. 다루는 작가가 7명인데 한 작가당 한 주씩이라 좀 빨리 지나가는 느낌. 둘째, 질의응답 시간이 부족했다. 궁금한 게 많았는데 시간 관계상 못 물어본 것들이 많다. 셋째, 작품 원문을 더 많이 읽어주셨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만족스러운 강의였다. 다음에 또 다른 주제로 강의 열리면 신청할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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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이현우 선생님의 재치있고, 쏙쏙 들어오는 강의 |
신*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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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뵙고 싶었고, 듣고 싶었던 이현우 선생님의 강의! 이현우 선생님은 화면에서보다 훨씬 키가 크시고, 화면에서 뵈던 것처럼 유머러스하시더군요! :)))
루카치는 <변혁기 러시아 리얼리즘>에서 "러시아 문학은 오직 1917년의 시점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현우선생님께서 이 말에 감동을 받으셨다고 했는데,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저 또한 루카치의 이 말이 참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
러시아문학은 다른 나라 문화와 다릅니다.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이지요. 근대 러시아 문학사의 전개과정을 바라보고자 할 때, 1917년의 사회주의 혁명은 분명한 준거적 시점이면서 무게중심이 되어줍니다. 곧, 혁명에 얼마나 기여했느냐로 다시 평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1989년 동구권 붕괴에 이은 1991년 소비에트 러시아의 해체는 1917년이란 시점이 갖는 초월적 기의로서 지위에 의문을 제시합니다. 1917년의 시점이 평가적 시점이라면, 1991년의 시점은 재평가적 시점이 됩니다.
이제부터 8주간 1917년부터 1991년까지의 러시아 작가 중, 로쟈 이현우 선생님의 선택을 받은 7명을 만나볼 예정입니다. 너무너무 기대가 되지요! :)
러시아의 체호프 연구자 수히흐 교수가 <20세기의 책 20권: 러시아의 정전(2004)>에서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작가들 20명을 꼽습니다.
1)안톤 체홉
2)막심 고리키
3)안드레이 벨르이
4)예브게니 자먀찐
5)이삭 바벨
6)알렉산드르 파제예프
7)안드레이 플라토노프
8)미하일 조센코
9)블라지미르 나보코프
10)미하일 숄로호프
11)미하일 불가코프
12)이반 부닌
13)알렉산드르 트바르도프스키
14)보리스 파스테르나크
15)알렉산드르 솔제니친
16)바를람 샬라모프
17)안드레이 비토프
18)바실리 슉쉰
19)발렌친 라스푸친
20)유리 트리포노프
와! 모르는 작가들이 이렇게나 많다니..ㅠㅠ
그래도.. 7명이라도 확실하게 아는 게 더 좋겠죠?ㅎ
강의 열심히 들을께요.ㅋ
전체적인 개괄을 잡아주신 첫 주였습니다! 버스를 잘못 타서... 조금 늦긴 했지만^^ (그래서 리뷰 내용이 설렁하지만..ㅠ) 다음 주에는 늦지 않을께요!ㅎ 다음 주부터 만나게 될 7명의 작가가 너무 기대가 됩니다!
중간 쉬는 시간에, 커피와 과자도 준비해주시는 인문숲의 센스와 관심! :) 이현우 선생님의 재치있고, 쏙쏙 들어오는 강의, 다음주도 기대합니다!
와! 다음주는 고리키~
앞으로 매주 월요일이 기다려 질 것 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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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문득 삼나무에 내린 눈송이들이 보고 싶을 때, |
김*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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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문득 삼나무에 내린 눈송이들이 보고 싶을 때, 눈의 무게에 눌린 나무들이 툭툭 가지들을 놓아버리는 소리를 듣고 싶은 적은 없는지, 혹은 삼나무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디흰 호흡과 첫키스처럼 숨 막히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지, 늦은 저녁 허방을 짚듯 어둠을 디디며 돌아오다가 극지의 바람이 그리워졌다. 조국을 잃고 떠돌던 망국의 젊은 아나키스트들에게 뼛속까지 들어와 정신의 일침을 깨우던, 그래서 내게 놓인 순정한 정서가 보이지 않는 혼탁함의 청산을 러시아의 차가운 바람에 기대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순간의 선택이 좌우하는 시간들이 있는 것이니, 어쩌면 지금의 나는 과거에 헌신하는 명제로 현재의 답을 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신의 기대임, 혹은 구도를 찾는다는 것은 나의 목마름에 나 자신이 스스로 정진할 근거도 있다는 것이다. 월요일 인문숲으로 향하는 나의 나들이는 나의 뼈에 구멍을 내고 나를 더 가볍게 할 지도 모르겠다. 그 골다공증을 러시아인문의 영양가로 채워 나는 좀 더 정신이 무거운 인간으로 거듭날 것인지, 혹은 시조새의 골격을 갖고 북쪽 하늘로 향하는 새가 될른지,
러시아문학사 이해의 두 시점;1917년과 1991년
어느 시점이라는 것은 문학의 해석에 있어서 혹은 흐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제공한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1917년과 1991년이라는 특이한 두 시점을 갖는데 그것은 러시아가 처한 정치역사적 소용돌이와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 1917년 사회주의 혁명은 아주 분명한 준거적 시점이면서 문학작품에 대한 정의가 정치적으로 수렴되고 발산되는 무게 중심이 된다. 그것은 러시아 문학사란 구조의 중심이자 ‘초월적 기의’이다. 하지만 동구권 붕괴에 이은 1991년 소비에트 러시아의 해체는 1917년이란 시점이 갖는 초월적 기의로서 지위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므로 ‘러시아 문학은 오직 1917의 시점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고한 루카치의 정의는 1991년을 겪어온 지금은 수정되어야 할 명제이다. 그러나 두 가지 시점에서 서술되는 러시아 문학사는 단일한 시점 혹은 단일한 가치체계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분열적인 것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의 분열증은 징후적이며 긍정적이다. 두 가지 상반된 가치체계의 작용/억압을 증거한다는 점에서 징후적이며, 그러한 두 가지 시점의 대립/모순/길항은 새로운 의미생산의 기제로 작용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러시아 문학에서 이러한 징후성/긍정성을 가장 분명하고도 풍부하게 드러낸 시기는 1920년대이다. 공산당중앙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1)문학에 있어서의 주도권은 노동계급에 복속되어야 한다. 2)당은 문학의 영역에서 다양한 그룹과 조류의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해야 한다는 모순적인 두 가지 요구 속에 문학의 다양성과 입체성은 한시적일 수 밖에 없었다. 1920년대는 한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 준비되던 과도기였고 이행기였다.
체계이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모든 체계는 <질서A(코스모스)-무질서<(카오스)-질서B(코스모스)..>의 순환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체계를 유지하고 진화해 나간다. 이 점은 사회체계와 그 하위체계인 문학예술체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이를 조금 변형해 보면 <질서A(코스모스)-파국(카오스)-이행(카오스모스)-질서B(코스모스)..>의 과정을 통해서 진화한다. 어떤 질서가 파국을 맞는 것은 준비 없이도 가능하지만, 새로운 질서는 반드시 일정한 과도적 준비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 도식을 1917년 러시아 혁명에도 적용해 1917년은 낡은 전제권력이 파국을 맞은 해이기도 하지만 국가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내전에 휩싸였다가 내전이 종식되는 1921년까지, 레닌 사후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스탈린이 본격적인 농업집산화와 중공업화를 통해서 사회주의 국가건설에 나서는 1929년 이전을 체계진화론의 관점에서 이행기 문학이며 이를 달리 카오스모스적 문학이라 부를 수 있다.
문학적 카오스모스의 두 유형
1920년대의 문학은 두 시인의 죽음으로 열리고 닫힌다. 1921년은 내전이 종식된 해이면서 동시에 혁명의 모호한 예언자였던 A. 블록(1880-1921)이 죽은 해 이고, 1920년은 ‘혁명의 목청’을 자임했던 V. 마야코프스키(1893-1930)가 권총자살한 해 이다. 블록은 자신의 시를 통해서 한 시대의 종말을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대한 예감을 노래한 전형적인 카오스모스의 시인이다. 트로츠키에 의하면 “블록의 불안스러운 혼돈 상태는 주로 두 가지 방향, 즉 신비적인 것과 혁명적인 것으로 끌렸다. 그러나 어느 방향으로도 끝까지 나가지 못했다.” 즉 블록은 낡은 시대와 새로운 시대의 경계에서 단호하게 걸어가는 (야만적이면서 동시에 신성한) 역사의 움직임은 포착하지만, 그것을 의미화하지는 못한다. 시대와 불화하면 우유부단한 부능력이 곧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을까? 인식론적 은유에 도달하지 못하는 시인에게 죽음은 그다지 먼 거리에 있지 않을 것이다.
블록이 낡은 질서로 부터 찢겨져 나간 조각(몽타주)들을 이어붙이는 데 다소 소극적이었다면 마야코프스키는 보다 적극적으로 그 일에 나선다. 마야코프스키의 인터내셔날리즘이 실현되지 못한 것은 그것이 불가능한 기획이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우리’라고 말하지만, 그 ‘우리’는 마야코프스키의 ‘나 자신’과 자주 불협화음을 빚는다. 그는 시인으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자아 중심적 성향을 보여준다. 그에게서 ‘우리’라는 공적인 요구와 ‘나’의 사적인 욕망이 어떻게 충돌하는가는 그의 문학적 유언이라 불리는 작품 <목청을 다하여>에서도 드러난다. 요컨대 마야코프스키 자신은 로맨스 시도 충분히 쓸 능력이 있고, 그게 여러모로 자신에겐 도움이 되지만, 그런 개인적인 이해타산을 이겨내고 진저리나는 선전 선동시를 써왔다는 것이다. 여기에 시인 마야코프스키의 자기분열이 있다.
1920년대 소비에트 문학장의 구조
사회학자 피에르 브르디외가 정의한 바에 따르면 장(Champ)이란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자신만의 법칙을 가지고 있는 소세계를 지칭한다. 이 소세계는 대세계처럼 사회적 법칙에 종속되어 있어 대세계의 제약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강한 부분적 자율성을 보유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문학장에서 이런 자본은 문학적 인정과 경제적 이익이지만,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의 문학장에서는 제도적 인정(타율성)과 미학적 인정(자율성)이 될 것이다. 이 때의 규칙은 문학의 정치적 타율성/종속성을 주장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문학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미학적 이데올로기의 관계로 표시될 수 있다.
정치적 인정
S1(문학은 타율적이다)
non-S2(문학은 자율적이지 않다)
미학적 인정
S2(문학은 자율적이다)
non-S1(문학은 타율적이지 않다)
1920년대 소비에트 문학이라는 특수한 문학장에서 디들 네 항목은 보다 구체적인 명칭을 부여받을 수 있다. 즉S1은 목적문학 혹은 이념문학(SR)을, S2는 망명문학을, non-S2는 동반자 문학을, 끝으로 non-S1은 생-문학 혹은 부조리문학(카니발리즘)을 뜻하게 된다. 이념문학은 정치현실에의 복무를 주장하는 문학이다. (“정치적으로 옳은 것이 문학적으로도 옳다”)때문에 그것은 자기 이념의 정당성에 대해 확신하는 단의성의 신화를 구축하고자한다.(루카치의 문학론) 이와 모순/적대 관계에 놓이는 것이 모든 의미의 분산 혹은 해체를 조장하는 불온한 문학으로서의 생-문학이다. (“문학적으로 옳은 것이 정치적으로도 옳다”). 생- 문학에서 삶과 문학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부조리 문학의 넌센스와 카니발리즘의 다의성의 근거는 바로 이념이 아닌 삶이고 삶의 육체성이다.(바흐친의 문학론) 하루스는 소비에트 부조리 문학의 대표작가로서 삶 자체가 문학이었다. 그는 자기 생을 소진해서 쓰는 문학으로 삶과 문학을 구분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자기 생을 거덜냄으로서 문학을 마감하게 된다. 망명문학은 정치와 분리된 문학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문학이다.(형식주의 문학론). 나브코프의 경우 작품과 작가는 별개이며 인공적으로 다른 세계라고 주장한다. “시는 시일 뿐”이라는 독립적인 생각이 망명 문학의 태도이다. 이 분리주의 미학은 부르주아 미학 이데올로기의 근간이기도 한데, 그것은 정치와 문학뿐만 아니라 삶과 문학 또한 분리/구별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생-문학과 차이가 난다.(“문학은 문학이고 정치는 정치다”). 러시아의 경우 푸슈킨을 꼽을 수 있다. ‘러시아적이기 보다 르네상스적인(베르자예프)푸슈킨은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 최초의 망명작가이며, 러시아 국민문학의 형성과 문학장의 발생을 푸쉬킨의 문학적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인다. 끝으로, 트로츠키가 이름붙인 동반자문학은 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참여(앙가주망)문학을 뜻한다. 이 계열의 문학은 문학의 상대적 자율성을 고집한다는 점에서 망명문학을 닮지만, 적극적인 정치적 발언과 참여를 옹호한다는 점에서 망명문학의 분리주의 노선과 모순/적대되며 이념문학과 나란하다(“문학은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때문에 발언은 하되 형식은 갖추라는 주문을 받는다.
1920년대 소비에트 문학장의 이러한 입체적 위상공간은 1930년대 본격적인 스탈린주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문학적 숙청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축소/평면화된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의 문학은 다른 자보주의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인정>의 축이 <경제적 이익>의 축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양상을 보인다.
에필로그
인문 숲의 나무들을 두 겹의 시선으로 보자면 시간적 관점과 주제적 관점! 첫강의라서 그런지 나도 낯설고 다른 나무들의 낯섬에도 다가가기 어려웠다. 그리고 러시아가 갖는 시대적 무게 때문일까. 각자 생각의 숲을 돌아 나가는 바람소리는 엄숙하달만큼 조용하고 진지했다. 종종 선생님의 입담이 웃음을 몰아와 러시아문학사란 주제가 가진 무거움을 씻어주었다. 정통하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상대방에게 쉽게 전달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열심히 필기를 하고 누군가는 눈을 맞추며 열심히 듣는다. 아마 오늘 인문 숲에 온 나무들은 보다 큰 귀를 키우고 좀 더 푸르러졌을 것이다. 역사와 함께 문학사를 개괄하는 것, 쉽지 않지만 입문에 앞서 꼭 한번은 훓어야 할 과제이다.
아메리칸 커피를 뽑는데 잘 나오지 않는다. 버튼을 누르는데 오래된 증기 기관차처럼 칙칙거린다. 그래도 이 숲에 나무 한 그루 심은 느낌이다. 러시아의 작가들과 과거를 복원하면서 다음 주에도 만남에 설렘을 갖는다. 아마도 도서관에도 들러야 할 것이다. 다음 주엔 안톤 체홉의 문학적 유언과도 같은 작품<벚꽃동산>으로 간다. 객관적 관찰자였지만 ‘아름다움’의 예찬자였던 체호프, 제정 러시아의 몰락은 예견했지만 새로운 시대에 관한 희망이나 긍정의 안목은 갖고 있지 않았음을 <벚꽃동산>으로 읽을 수 있다. 어찌보면 한 사람의 문학인으로서의 자세가 한 시대의 무게와 맞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러시아의 문학적 카오스모스의 시대를 개괄하면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시대와도 너무나 닮아 있지 않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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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에 빠졌습니다. |
이*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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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부터 20세기 작가까지 . 로쟈 이현우 선생님을 통해 본 러시아 문학은 정말 새롭고 즐거웠습니다. 이 강좌들을 계기로 작가마다 대표작을 한 편 씩 읽어보고 있습니다. 1년 동안 19세기 작가들 작품을 읽었고 올해는 20세기 작가들 작품 차례입니다. 문학극대주의자라고 자신을 설명하는 로쟈님.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문학이 이 만큼 큰 범주의 학문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또한 그것은 러시아 문학이기에 가능했겠지요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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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에 한번 빠지면 빠져나오기 힘들다던데, 그 첫걸음을 로쟈샘과 함께 하다니! 축하(?)드려요! 유익한 강의 되셨기를 바라며..^^ 아트걸 (15.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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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플라토노프, 그 쓸쓸함의 매력에 빠지다 |
김*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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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토노프, 그 쓸쓸함의 매력에 빠지다.
(역시나)이름만 겨우 알고 있던 '안드레이 플라토노프'를 만날 수 있었던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역시나)지난 번 자먀친 강의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온라인으로 "다시보기"를 해야 할 강의다. 플라토노프에 푹 빠져버릴 수 있는 둘도 없을 기회다.
플라토노프의 <코틀로반>은 그의 생전에는 발표되지 않았다고 한다. 87년에 러시아 잡지 "신세계"라는 잡지에 처음 소개가 된다. 러시아에서는 그의 결정판이 2000년에 확정되어 출간된다. 그러나 국내에 소개 된 번역본은 이 확정본을 원문으로 하지는 않았다고. 그나마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것이 확정본에 가깝다고 한다.
<포투단 강>(1937)과 <암소>(1938), <코틀로반> 이 세 작품을 만났다.
이상주의적인 사회주의자였던 플라토노프의 <코틀로반>은 비공식문학이었다. 중도적이었던 당시 현실사회주의에게는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먀찐의 <우리들>이나 파스테르나크의 <닥터지바고> 역시 비공식문학이었지만 이들은 플라토노프와는 반대인 회의적인 반혁명적인 쪽이었다. 플라토노프는 투철한 사회주의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도적 현실 사회주의보다 더 왼쪽에 있었다는 이유로 당시 비공식문학으로 되었다는 얘기다.
플라토노프가 슬픔이나 연민으로 작품을 가득 채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되는 가운데, 사회주의적인 토대가 우선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 '이행기'라는 시점에는 사회주의적인 토대가 없다. 사회주의적 정신, 사회주의적 영혼에 대해서 아직 알 수 없는 시대다. 슬픔.
플라토노프는 사회주의로 가야 한다는 것에는 찬성이다, 하지만 아직 건설되지 않은 사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 그 멜랑콜리다. 사회주의는 미래의 몫이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무지도 가난과 배고픔만큼이나 사람의 마음을 괴롭혔다.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심각한 것인지 아니면 무의미한 것인지 알아야 했다." <포투단 강>에 나오는 구절이다. 플라토노프의 고민이 묻어나오는 구절이었다.
플라토노프의 주인공들은 생에 대한 의구심과 진리에 대한 갈망으로 괴로워한다.
<코틀로반>에서 등장하는 꼬마 '나스챠'가 바로 이행기 이후의 도래할 사회주의의 미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플라토노프의 작가적 분신인 보셰프를 비롯한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나스챠는 희망이고, 사랑하고 아끼는 소녀였다. 보셰프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구덩이를 판다. 앞으로 건설 될 공동주택에 살게 될 사람들을 위해. 공동주택은 앞으로 도래할 사회주의를 말하고 있었고, 나스챠는 거기에 살게 될 세대, 미래의 희망이었다. 그런데 결국 나스챠는 작품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행기 시대에, 도래할 희망과 이상사회를 기다리면서도, 이행기이기 때문에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슬플 수 밖에 없는 인생을 살았던 플라토노프의 삶이 여실히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작품. 그저 구덩이만 팔 뿐이었던 삶..
온 몸으로, 전 작품으로 시대를 이야기한 플라토노프. 정말 매력적인 작가가 아닐 수 없었다.
이현우 선생님은 얼마나 행복하실까? 이런 작가를 '이미' 알고 있고, 게다가 '잘' 알고 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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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러시아 문단의 외로운 햄릿을 기리며 홀로 포도주 한 잔 기울여 본다 |
김*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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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이 눈이 쌓여있던 광활한 평원 위에 흐르던 <닥터 지바고>의 영화 음악이 귓가에 아직도 생생하게 맴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는 젊은 날 책으로도 읽었었고 영화로도 보았었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건 라라와 닥터 지바고의 거역하기 힘들었던 러브스토리였다. 불륜이 가미된 일종의 멜로 치정극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강의를 듣고 보니 이 소설은 역사 속에 놓인 인간의 삶과 그 의미에 관한 것이었다.
파스테르나크의 문학적 출발이 시인이었다는 것도 로쟈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어쩐지 <닥터 지바고>의 문장들이 너무나도 시적이더라니...
축복받은 엘리트 예술가 가정에서 태어난 파르테르나크의 문장은 미학적으로 뛰어났으면서도 대중에게 크게 어필하였다.더구나 노벨문학상까지 받았으니 작가로서 여한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업학교 출신 플라토노프나 프롤레타리아 출신인 고리키와 마찬가지로 그의 죽음은 쓸쓸했다.
찬란히 빛났지만 쓸쓸하게 되는 것....
광기의 역사 속에선 내적인 방랑자로 살다가야 것이 어쩌면 모든 예술가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생전 금서였던 그의 작품이 그의 사후 미국에서 영화화되었고 소련에서도 TV영화로도 제작되었다니 인생은 짧지만 예술가가 남긴 흔적은 죽음을 뛰어넘을 만큼 긴 것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깊은 가을 밤, 산다는 것이 들판을 지나듯 되지 않았던 러시아 문단의 외로운 햄릿을 기리며 홀로 포도주 한 잔 기울여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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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문득 삼나무에 내린 눈송이들이 보고 싶을 때 |
박*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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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삼나무에 내린 눈송이들이 보고 싶을 때, 눈의 무게에 눌린 나무들이 툭툭 가지들을 놓아버리는 소리를 듣고 싶은 적은 없는지, 혹은 삼나무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디흰 호흡과 첫키스처럼 숨 막히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지, 늦은 저녁 허방을 짚듯 어둠을 디디며 돌아오다가 극지의 바람이 그리워졌다. 조국을 잃고 떠돌던 망국의 젊은 아나키스트들에게 뼛속까지 들어와 정신의 일침을 깨우던, 그래서 내게 놓인 순정한 정서가 보이지 않는 혼탁함의 청산을 러시아의 차가운 바람에 기대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순간의 선택이 좌우하는 시간들이 있는 것이니, 어쩌면 지금의 나는 과거에 헌신하는 명제로 현재의 답을 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신의 기대임, 혹은 구도를 찾는다는 것은 나의 목마름에 나 자신이 스스로 정진할 근거도 있다는 것이다. 월요일 인문숲으로 향하는 나의 나들이는 나의 뼈에 구멍을 내고 나를 더 가볍게 할 지도 모르겠다. 그 골다공증을 러시아인문의 영양가로 채워 나는 좀 더 정신이 무거운 인간으로 거듭날 것인지, 혹은 시조새의 골격을 갖고 북쪽 하늘로 향하는 새가 될른지,
인문 숲의 나무들을 두 겹의 시선으로 보자면 시간적 관점과 주제적 관점! 첫강의라서 그런지 나도 낯설고 다른 나무들의 낯섬에도 다가가기 어려웠다. 그리고 러시아가 갖는 시대적 무게 때문일까. 각자 생각의 숲을 돌아 나가는 바람소리는 엄숙하달만큼 조용하고 진지했다. 종종 선생님의 입담이 웃음을 몰아와 러시아문학사란 주제가 가진 무거움을 씻어주었다. 정통하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상대방에게 쉽게 전달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열심히 필기를 하고 누군가는 눈을 맞추며 열심히 듣는다. 아마 오늘 인문 숲에 온 나무들은 보다 큰 귀를 키우고 좀 더 푸르러졌을 것이다. 역사와 함께 문학사를 개괄하는 것, 쉽지 않지만 입문에 앞서 꼭 한번은 훓어야 할 과제이다.
아메리칸 커피를 뽑는데 잘 나오지 않는다. 버튼을 누르는데 오래된 증기 기관차처럼 칙칙거린다. 그래도 이 숲에 나무 한 그루 심은 느낌이다. 러시아의 작가들과 과거를 복원하면서 다음 주에도 만남에 설렘을 갖는다. 아마도 도서관에도 들러야 할 것이다. 다음 주엔 안톤 체홉의 문학적 유언과도 같은 작품<벚꽃동산>으로 간다. 객관적 관찰자였지만 ‘아름다움’의 예찬자였던 체호프, 제정 러시아의 몰락은 예견했지만 새로운 시대에 관한 희망이나 긍정의 안목은 갖고 있지 않았음을 <벚꽃동산>으로 읽을 수 있다. 어찌보면 한 사람의 문학인으로서의 자세가 한 시대의 무게와 맞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러시아의 문학적 카오스모스의 시대를 개괄하면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시대와도 너무나 닮아 있지 않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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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러시아문학 후속탄이군요! |
박*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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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같이 알찬 1월 강좌 잘 들었습니다. 반응이 뜨겁더니 후속탄이 나왔군요. 특히 제가 좋아하는 나보코프가 커리에 있어서 기대 만발입니다.
추웠던 1월에 들었고, 가을이 깊어지는 10월에 또 듣게 되네요. 역시 러시아답습니다, 뭔가. ㅎㅎㅎ 강의실에서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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