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리뷰> |
경화된 인식의 틀을 깨고 여린 속살에 예민하게 반응하라 |
김효정 |
|
|
|
우수
|
재밌어요 |
오*영 |
|
|
|
페미니즘에 대한 유쾌하고 통쾌한 강의! 주요 개념을 문화에 직접 적용하고 분석하니 흥미롭구요 선생님 강의방식도 상당히 이해하기 쉽게 다가와요. 이 강의 강의평 없는게 신기하고 안타깝네요. 그런데 페미니즘의에 대해 조금 더 깊이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런 강좌도 올려주세요. |
|
|
|
|
|
|
우수
|
선생님 팬입니다 |
박*영 |
|
|
|
대중문화아나토미부터 수강했는데 선생님의 지적인 모습에 반했답니다. 여성이라는 젠더로 살아가면서 느꼈던 것들에 대해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페미니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고, 여성이라는 젠더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길잡이를 얻은 느낌이랄까요. 편견을 가지고 있던 분들이라면 들어볼만 할 것 같네요. 무거운 주제일 수도 있는데 어렵지 않고 편안하게 들었어요. 양효실 선생님 강의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
|
|
|
|
|
|
우수
|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
김*연 |
|
|
|
유쾌한 양효실 선생님, 이렇게 뵙게 되어 기쁩니다. ^^ 내용도 유익했고 무엇보다 선생님의 놀라운 말빨에 감탄하며 듣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전달하실 수 있는 능력이 존경스러워요. 앞으로 더 좋은 이야기 해주시길 기대해봅니다.
|
|
|
|
|
|
|
4 |
넘 멋짐 |
김*영 |
|
|
|
평소에 웹에 글 같은 거 쓰지 않는 편이지만, 강좌가 너무 재밌어서 한 마디 씁니다. 주요 이론의 핵심을 전달하는 것도 그렇지만, 지식을 자신의 삶과 연관시켜 사고하고 강의하는 선생님의 방식이 넘 멋져요. |
|
|
|
|
|
|
5 |
새로운 시대는 언제 도래하는가 |
솔* |
|
|
|
강의 들으며 올해 본 두 편의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는 캐롤이라는 작품이었고 하나는 데니쉬걸 둘다 젠더영화라고 봐야겠지요 두 작품은 다 젠더무비이며 페미니즘에 대한 고찰이 깊은데 동시에 상업성을 가지고 있어서 큰 논란 없이 그럭저럭 흥행한 것 같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화두를 던진다는 건 참 용감한 일이지요. 젠더의 경계를 넘으려면 여성이 여성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여성성을 뛰어넘어야한다는 총평 남기고 싶었습니다. 양효실 선생님 좋은 강의 고맙습니다. 팬입니다. |
|
|
|
|
|
|
6 |
근간의 화두는... |
박*우 |
|
|
|
여성혐오와 이에 따른 페미니즘의 재부각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느 정도 연관있는 주제의 강좌라 제겐 유익했던거 같습니다..
|
|
|
|
|
|
|
7 |
계몽이란 이런 것^^ |
이*교 |
|
|
|
여성주의에 대한 몽매했던 내가 이 강의를 3번 들어나서야 서구 여성주의가 무엇인지 그동안의 흐름은 어떠했는지 알게 해준 정말 값진 시간이었다. 백인 여성 중심의 페미니즘, 여성의 가치를 중시하는 여성적 글쓰기, 여성없는 여성주의, 주디스 버틀러의 젠데이론까지....
부탁을 드리자면 주디스 버틀러 중심으로 원전 강독 강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감사합니다 |
|
|
|
|
|
|
8 |
많이 배우고 갑니다. |
이*미 |
|
|
|
페미니즘 미술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는데... 그 미술사를 전반적으로 알 수 있는 지식을 주시는 것은 물론이고 고민할 거리를 던져주셔서 매 강의를 초집중하며 들었습니다.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면서 했던 내 고민들을 이 강의에서 매번 다시 꺼내게 되었어요. 조금은 더 단단해진 느낌입니다.^^ 다른 기회로 선생님 강의 또 만났으면 좋겠네요.^^ |
|
|
|
|
|
|
9 |
새로운 시대의 페미니즘 |
김*관 |
|
|
|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왠지 모를 부담감이 있었는데 이 강의를 듣고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어렵지만 재미있는 강의입니다. |
|
|
|
|
|
|
10 |
페미니즘이란 단순히 '여성'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
김*현 |
|
|
|
페미니즘은 단순히 '여성'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억압받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윤리적 태도를 가지도록 끊임없는 성찰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강좌입니다. 그 억압받는 사람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도 될 수 있는거겠지요.
선생님 역시 '공부하는 지식인'으로서의 특권을 지니지 않으려고 한다는, 그리고 여성으로써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이 지니는 생각의 갈등들을 솔직하게 말해주시는 모습도 감동적이었습니다. |
|
|
|
 |
김서현 님:)
양효실 선생님의 젠더 강의는 언제 들어도 좋은 것 같아요. 선생님의 허례허식 없는 소탈한 모습이 강의 도중에도 언뜻언뜻 보이거든요. 젠더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주디스버틀러 책도 추천해드려요. :) 관리자 (14.9.11) |
|
|
|
|
|
|
|
11 |
군 입대를 앞 두고 들은 강의 |
이*현 |
|
|
|
우울과 조롱이 가진 힘이라는 것이 앞으로의 제 삶 혹은 글쓰기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 좋습니다. 학교에서 일반교양으로 선생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신입생이어서 무슨 말인지 이해 못했는데, 2년 동안 공부를 하고 선생님 수업이 생각이 나서(학교에서 듣기에는 너무 두려워서) 이렇게 수강했는데, 그때는 몰랐던 게 (두번 배워서 그런가?) 지금은 잘 이해가 됐어요. 옐리넥과 스피박의 이론은 특히 감명 깊었습니다. 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평점 5점! |
|
|
|
 |
이승현 님:)
군 입대를 앞두고 계시군요! 끊임없는 공부와 열정이 부럽기도 하네요. 우울과 조롱, 그리고 질투와 멸망.. 삶을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지요. 기형도 시인은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도 하였고요. ㅎㅎ admin (14.7.11) |
|
|
|
|
|
|
|
12 |
와우 |
이*림 |
|
|
|
선생님의 강의는 어떤 구원과 절망의 느낌을 모두 가져다주는 희한한 것입니다. 몇년 전 어느 대학교에서, 한 학기 내내 크고 작은 충격을 받아가며, 웃기고 울리는 당신의 수업을 마음으로 아끼며 들었던 때... 오랜만에 여기서 다시 뵙게 되어 기쁘네요. 잘 지내시는지요?
1강을 듣다가 또 약간 절망적이 된 저는 담배를 피우러 밖에 나갔습니다. 어떤 무력감, 무력해져감을 다시 쿡 찌른 당신. 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도 하다가. 이런 저런 생각 끝에는 또 이상하게, 어떤 새로운 힘을 느끼게 되니까. 그게 참 신기하고 신이 나서, 평을 씁니다. 편지를 쓰고 싶은데...
당신의 사유와 언어의 그 어떤 사랑스러운, 치열함은 누군가에게 영감이 될 만합니다. 공부가 적은 저는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래서 다시 더 자세히 듣다가는 이 선생님은, 참 아름다운 엘리트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영화, 음악, 그림, 시와 소설보다도 강렬하며 왠지 모르게 예술적입니다. 그것은 곧 당신을 그렇게 추측하게 만들고. 저는 오늘 질투가 났습니다.
섹시한 당신. 잘 지내고 계시기를요!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강의에 자빠지게 되는 날이 왔으면. |
|
|
|
 |
이혜림 님:) 와, 제목만큼 ''와우''한 수강평 감사합니다.
젠더강의는 역시 양효실 쌤! 섹시한 당신이라니요. 참으로 옳습니다. admin (14.7.1) |
|
|
|
|
|
|
|
13 |
미학을 넘어선 |
오*영 |
|
|
|
포르노, 강간, 외설, 연인, 폭력, 사랑, 접속 등 생각나는 키워드는 많고 다양합니다. 예술가를 위한 포스트 페미니즘 미학의 강좌는 현대 철학의 많은 부분이 섞여 녹아 있지만 그것이 결코 혼란스럽지 않게 명쾌한 강의입니다. |
|
|
|
 |
오진영 님:) 강의평 감사합니다. 키워드로 듣는 강의 즐거우셨나요. 젠더 강의는 양효실 선생님 강의가 압도적이죠. ㅎㅎ오늘도 즐거운 인문학 시간 되세요. !
admin (14.6.5) |
|
|
|
|
|
|
|
14 |
선생님 강의 감사합니다 |
김*배 |
|
|
|
선생님의 팬이어서 들은 강의입니다. 선생님 강의만 세번째로 들어요. 선생님의 지적이고 우아한 모습 정말 멋지십니다. 좋은 강의 감사드려요!^^ |
|
|
|
|
|
|
15 |
유익한 강의였습니다. |
w**yong78 |
|
|
|
언어의 세계 속에서 살면서 한 번도 그것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이번 강의를 통해 언어가 가진 의미전달의 기능이 아닌 그 속에 외내재되어 있는 권력이나 폭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유익한 강의였던 것 같습니다. |
|
|
|
|
|
|
16 |
젠다 여성주의 |
허*미 |
|
|
|
그리고 여성없는 여성주의까지 들으면서 여성이란 무엇인가보다도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성주의도 또 하나의 불평등을 만든다는 것 참 흥미있는 시간이었고 듣고 또 들었습니다 린다누크의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냐는 것에서부터 여성주의가 불평등에서 벗어아려했다는 것 등등 듣고 싶었던 강의였습니다
|
|
|
|
|
|
|
17 |
강의 말미에 다 쓸데 없는 이야기죠 |
* |
|
|
|
하시던 그 말이 이 여성주의 즉 주변인으로서 몸으로서의 여성주의를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성주의가 가질 수 있는 언어의 영토라곤 사막 같은 공간 장소라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여성 여성주의 여성없는 여성주의 사회적 성으로서의 젠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강의였습니다 잭슨 플록의 액션 패인팅에 대응하는 구보타의 퍼포먼스가 떠오릅니다. 여성 모성 외디푸스 라깡 정신분석 우리가 될 수 없는 너가 나다는 점 그 모든 것을 대포하는 다 쓸데 없는 이야기죠라는 말 강의 잘 들었습니다. |
|
|
|
|
|
|
18 |
여성주의 |
권*주 |
|
|
|
여성없는 여성주의, 도착이 없는 글쓰기 , 여성주의는 타고난것일까? 자본주의처럼 숨어있는 어떤 이념들이 생산한 것인가. 반남성주의 혹은 반인간주의로서의 무슨 이즘인가. 인간이란 말의 반대편에 여성이라는 말, 누가 만들었을가? |
|
|
|
|
|
|
19 |
그날 나는 행복했다? 그날 나는 잔인했다! |
나**비행 |
|
|
|
여성이 항상 남성들의 성적인 대상이 되는 문제는 페미니즘에서 가장 지긋지긋하고도 중요한 문제다. 사실 남성이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여성도 남성을 성적대상으로 본다. 하지만 문제는 여성이 성적 특성을 가진 존재이기 전에 인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자주 잊혀 진다는 거다. 성적인 활동과 관계없는 때와 장소에서도 늘, 언제나, 여성은 ‘그런 존재’가 돼버린다. 아직도 여성은 “우리도 인간이다”라는 말을 외쳐야 할까? 지겹지만 그런 거 같다.
모두의 정신분열
반대로 여성이 남성을 성적대상으로 보는 때와 장소는 굉장히 협소하다. 가부장적 질서에서 여성은 자신의 성욕을 강력하고 또 교묘하게 억압받아 왔다. 억눌려 있다. 여기에서 남성과 여성 모두의 정신분열이 시작된다. 남성은 여성을 성적으로 바라보고 싶어 하지만, 자신의 성욕을 내세우는 여성은 두려워한다. 성적인 여성을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다. 변태적 상황이다. 자신이 여성을 성적으로 ‘바라보고’ 직접 ‘획득’하고 싶은 것이지, 여성에게 자신이 ‘획득’ 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 마음 상태는 ‘성욕’이라기보다는 ‘권력욕’에 가깝다.
성 문제나 섹스는 사실 부정적인 이미지일 필요가 없다. 섹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결국 또 여성의 성적 쾌락을 방해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굉장히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남성이 ‘권력욕’뿐만 아니라, 실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상태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힘을 가졌고, 사회경제적 자본을 가졌다. 여성이 그 권력욕에 비위를 맞춰야만 하는 취약한 입장이 되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쩌면 당연하다. 많이 가진 사람과 적게 가진 사람 사이에는 늘 폭력이 발생한다.
스스로 ‘대상화’하기
미셸 푸코는 사회의 거대한 권력 장치가 개인의 내면 그 자체가 돼버렸다고 이야기 했다. 자본주의 체제의 욕망이 한 사람의 개인적 욕망이 돼버리듯, 권력을 가져왔던 남성의 욕망 체계를 여성 스스로 발동하고 재생산한다. ‘체제의 내면화’다. 여성이 자기 자신을 대상화하게 되고, 자신이 ‘더 잘’ 대상화되기를 스스로 욕망하게 된다는 것. 그래서 여성은 자신이 대상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때도 많다. 이것이 ‘대상화’의 문제를 다룰 때에 가장 어렵고 섬세한 문제다.
능력 있는 남성의 ‘구제’로 여성이 행복해진다는 뻔한 신데렐라 드라마가 2011년에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 집안일과 내조를 잘하는 순종적이고 지혜로운 여성성을 가졌다는 칭찬에 기뻐하는 것,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슬로건 등, 수많은 ‘예시’가 모든 공간을 매우고 있다.
까다로운 주체?
이런 이유로 푸코 같은 후기구조주의나 정신분석학에서는 대상화된 ‘타자’를 ‘주체’로 불러오는 일에 회의적이었다. “정말 주체화가 가능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다. 여성이 타자화된 상황을 인식한 후에 “여기 여성이 있다”고 그 존재를 수면 밖으로 드러내고, “우리는 여성이다”라고 긍정적 이미지로 여성을 ‘주체화’했던 당시 페미니즘이,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의 반발을 산 것도 주체화의 ‘곤란함’ 때문이었다. 체제의 억압을 완전히 읽어내고 그것을 제 몸에서 털어내는 주체란 가능한가? 오히려 주체화에 대한 ‘환상’이 그것을 어렵게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서구 백인 엘리트 여성주의의 ‘동일한 주체화’는 여성주의 안에서의 압도적 권력을 만들어냈고, 또 다시 그들과는 ‘다른’ 여성들을 타자화했다. 여성들의 공통분모는 분명히 있겠지만, 인종과 계급에 따라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범위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 탓이다. 한국에서라면 중산층 엘리트 여성들의 권력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 학벌과 경제력, 문화자본, 세대의 차이는 여성들의 상이한 경험을 갖게 만든다. 몇 년 전 실행된 ‘성매매특별법’이 여성과 여성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남성이 여성을 성녀(아내)와 창녀로 구분해 모순적 욕망을 투영한다면, 당시 엘리트 여성들은 자신과 ‘다른’ 여성들을 주체성이 결여된 피해자들로 ‘대상화’했다.
그날 나는 행복했다? 그날 나는 잔인했다!
‘대상화’의 폭력성이란 모든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문제다. 양효실 선생님은 이 ‘대상화’의 문제를 처절할 만큼 끝까지 끌고 간다. 그는 “대상화는 남성 가부장제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남성이 여성을 대상화하고, 여성이 스스로를 대상화하고(물론 여성도 남성을 대상화한다), 엄마는 딸을, 딸은 엄마를, 친구는 친구를 대상화한다. 이것은 우리가 나도 모르게 저지르는 수많은 폭력들에 대한 이야기다.
한 사람을 그 사람으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게 충분히 노력하지 않고, 우리의 욕망을 채워줄 대상으로 그를 축소하거나, 왜곡한다. 좋은 엄마, 좋은 아빠, 좋은 딸, 좋은 여자. ‘좋은’ 그리고 ‘~다운’ 또 ‘나의 누구’라는 식으로. 이것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그 사람의 보고 싶은 부분만을 보며 내 편의에 끼워 맞추고 싶어 하나. 애써 피하고 싶은 무서운 이야기다.
양효실 선생님은 대상화에는 “환상”이 개입해있다고 본다. “그날 나는 행복했다”라는 이야기는 사실 “그날 나는 잔인했다”라고 번역해야 한다는 거다. 내가 ‘무려’ 행복함을 느끼기 위해서 상대방은 얼마나 억압을 느껴야 했을까를 생각하는 태도다. 이런 무시무시한 이야기에 “모든 관계를 너무 적대적 관계로 계산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문이 일수도 있지만, 그의 생각은 “우가 얼마나 못났는가를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에서 “실천적 전략”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 환상 안에서의 행복이 아니라, 환상을 배제하고 또 배제한 바쁜 영혼(?)의 행복을 추구하자는 거다.
바쁘게 환상을 깨나가기
여성이 스스로를 대상화하게 되는 강력하고 교묘한 이데올로기의 굴레에서 벗어하는 방법( 벗어날 수 있을까? 양효실 선생님은 어렵다고 본다) 혹은 ‘멀어지는’ 방법을 성생님은 “구조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면 구성되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주체적’이라는 ‘환상’을 깨고, 또 깨는 ‘바쁜 방법’만이 유효하다는 이야기다. 사진작가 신디셔먼이 스스로 상투적으로 연출된 구성 속에 들어감으로써, 그리고 누구나 예상, 추측, 요구하는 여성의 모습을 ‘연기’함으로써, “나 연기하고 있다”고 드러냄으로써, 여성이 갇혀 있는 상자를 멀리서 볼 수 있게 했듯이 말이다. 셀카 보다, 셀카 찍는 자신의 모습을 한번 찍어 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
|
|
|
|
|
|
|
20 |
김언희의 [한 잎의 구멍]은 낭만적이진 않지만 분명한 "시"였다 |
월**병 |
|
|
|
- 지하철 여성전용칸. 고작 생각한다는 게 전용칸인가 싶다. 성추행이 벌어지면 고된 업무에 지친 우리의 경찰은 이럴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지하철 여성전용칸에 안 타고 왜 거기에 탔냐고. 사실 거기에 타면 마음은 편할 것 같다. 하지만 온전한 세계?로부터의 분리를 당해버린 듯한, 이 더러운 기분은 어찌할 수가 없다. 근본적인 해결은 하지 않고 대충 대충 해버리는 어느 집단에 의해 우린 결국 잠정적 가해자로 분리되는 억울함과 잠정적 피해자로서의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사실 언제나 세계로부터 분리되고, 배제당하고 있는 것은 언제나 같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다,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님을 알고는 있다. 이 세상은 왜 늘 피해자, 약자를 보호랍시고, 격리할 생각부터 하는 것인가. 세상은 사실 근본적인 것은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다. 저 깊숙이까지 도려내려 하다 보면 어느 새 그것에 휘휘 감겨 버린 것들이 자신들의 젖줄을 잃지 않으려 지랄 발광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자신의 목을 점점 조르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 오규원의 [한 잎의 여자]를 보니 엊그제 마신 술이 도로 쏠릴 지경이었다. 아저씨들이 한잔 걸치고 부르는 [거울도 안 보는 여자]나 [한 잎의 여자]나 그 속에는 여자가 없고, 청승이 뚝 뚝 떨어지는 낭창 낭창한 긴 머리의 인형 하나만이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남정네들을 어루만져 줄 뿐이었다. 영화 [나쁜 남자]가 예술인 척 할 때의 역겨움을 그대로 다시 느끼며, 그 안의 여자지만 인간은 아닌 존재들이 놀랍지 않은 날 놀라워 하면서. 김언희의 [한 잎의 구멍]은 낭만적이진 않지만 분명한 "시"였다. 난 분노했지만 치유되진 않았으니까.
- 오를랑은 굉장한 사람이다. <생 올랑의 환생>이란 프로젝트로 자신의 몸에 9회의 성형수술을 하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한 것인데 아무래도 난 범인이라 그 내용보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부분에 대한 것은 우리 세대라면 굳이 여자가 아니라도, 신체적인 미에 대한 욕망은 그 어떤 욕망보다 강렬할 것이기에 대부분 동감할 것이다- 더구나 엄청난 육체적 고통을 참아내면서 했다는 것에 속물적인 감탄사를 내뱉고 마는 것이다, 굉장한데 하며. 연예 뉴스로 단편적 쾌락에만 길들여진 머리와 가슴을 억지로 깨워가며 그녀의 작업 자체에 몰두하려고 노력해보지만 쉽진 않았다.
"나는 그리스 신화의 여러 여신들의 모습을 섞음으로써 나의 자화상을 구축했다. 이 여신들은 그들의 규범화한 아름다움으로 인해 선택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로 인해 선택되었다. 다이아나는 그녀의 적극적이고 도전적이며 남성에게 굴복하지 않는 정신으로 인해, 유로파는 새로운 땅과 미지의 앞날을 개척하는 정신으로 인해, 모나리자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그녀의 애매한 성적 정체성으로인해, 비너스는 그녀의 다산성과 창의성으로 인해, 그리고 싸이키는 사랑에의 필요와 영적인 아름다움으로 인해 선택되었다. 이 여신들이 역사 속에서 나타내는 내용은 나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15개국 지역으로 위성을 통해 생방송한 7번째 수술 퍼포먼스는 경외심보다는 불편함을 준다. 텍스트로 전달되는 그녀의 굉장한 작업과 달리 비인간적이고, 징그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이 현대 사회의 그 어떤 것보다 징그러운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솔직하기까지 하다! 미소지으며, "여자라서 햄볶아요"를 자랑스레 꺼내는 꼬라지보다는.
- 하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쌈닭"으로서 살아왔기에 내가 그나마 나은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삶에서 살아온 나기에 조금 편한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결국 그조차도 남성의 세상에서 투영된 자신의 모습을 기준점으로 해 새로운 상을 그려낸 것이 아닌가. 난 온전한 여자보다 인간으로서 행복하길 바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에 반한다면, 그 내용이 어떠한 진실과 목적을 가졌든, 경외심을 가져올지언정 동경을 부르진 않을 것이다. 난 속물이다. 그래서 행복을 포기할 수 없다. 다만, 오해의 여지가 있는 것은 이상적인 미를 위한답시고 어디까지가 한계인지를 모르고 끝없이 내달리는 이들이 내세우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난 사실 내가 말하는 이 행복이 사회의 세뇌인지, 나의 자연적인 본능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다. 모르지만 아무리 밑바닥까지 까발려 생각해봐도 난 사랑받고 싶다. 그리고 거울 속의 내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에 쾌감을 느낀다. 그것을 거스르는 것은 지독한 금욕주의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해도 누구도 듣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옳다는 이유만으로는 사람들을 끌지 못한다. 난 인간으로서 행복하기 위해 여성학을 지지한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
|
|
|
|
|
|
21 |
우린 "현명한 남자가 좋아요"란 말을 하지 않는다 |
월**병 |
|
|
|
1. 클림트의 약먹은 듯한 여자의 눈빛이 언제나 불쾌한 것은 아니다. 가끔은 나도 모르게, 너무나 익숙한 그 그림과 황금빛에 넋을 잃곤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죽이는 모습조차 섹시하고, 몽롱한 그 눈빛과 자태를 보면, 그것이 살의인지 욕정인지 모르겠다. 그녀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녀 자신은 인식하지 못 하는 듯 하다. 암컷 사마귀가 교미 후 본능대로 수컷을 잡아먹는 것처럼, 그 어떤 이성의 제어도 받지 아니하고, 해치운 듯한 느낌.
2. 홍대에서 활동 중인 2인조 밴드의 남자 멤버가 말했다. "다들 애인 없으시죠?" 우리의 무응답에 "여기 분들은 다들 페미니스트일 것 같아요, 하하." 젠장. 뭔소릴 지껄이는건가? 참 편하게 떠드시는 것 같다고 돌려 말하니 "어? 페미니스트가 나쁜 말인가요? 좋은 말인데?"하며 얼버무린다. 페미니스트같다는 말, 칭찬은 아니지 싶어 어퍼컷 한방을 웃으며 날려줬지만 찝찝했다. 왜 난 "네, 근데 어쩌라고요?"라고 하지 못한 걸까. 왜 우리는 뒤에서 그의 무신경한 말과 매력적이지 못한 그의 모습을 씹기만 했을까.
3. 똑똑함은 결코 이성적 매력이 될 수 없다. 아니라고? 남자들이 말하는 지성미의 지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여자 아나운서, 여교사, 스튜어디스...... "현명한 여자가 좋아요."란 말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 현명함이란 정치적 성향,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아니다. 시댁과 얼마나 스무스하게 여우?처럼 하는가? 살림을 얼마나 알뜰히 사는가? 애를 잘키우는가? 어찌되었든, 내조를 잘하는가? 두루두루(?) 편한 분위기는 만드는가?에 따라 현명함은 판단되어 진다. 우린 "현명한 남자가 좋아요."란 말을 하지 않는다.
3. 언젠가 화장을 하고 갔더니, 그 자리에 있던 별로 친하지 않은 남자 사람이 내게 다가와 "너 눈 찢었어?"라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더니 이때까지 얼굴에 칼 안대고 뭐했냐고 너 참 뻔뻔하다며 지딴엔 꽤나 재치있다는 듯 꺽꺽 대더니 사라졌다.
4. 홍대에서 활동하는 여자 가수는 비슷하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불면 날아갈듯, 살랑살랑한 분위기에, 몸만 자란 듯한 소녀 취향의 그녀들. 노래를 목청껏 부르는 건 삼시 새끼를 다 먹지 않은 자기들에겐 힘겹다는 듯, 성대 다이어트라도 한 듯한 가냘픈 목소리. 팬시형 가수. 그렇게 홍대의 여가수들은 소비된다. 차라리 가터벨트라도 차고 나와 소리라도 질러 줘!
5. 늘 말하지만 자기계발서가 싫다. 특히 뻔한 결론의 이야기들. 예를 들어, 자신이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해진다 라든지, 진정한 자신을 찾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든지, 마음만 먹으면 천하도 가질 수 있다든지...... 그런 측면에서 긍정적 여성주의 또한 뷁! 이 모든 것이 자유 민주주의 나라 미국에서 시작된 것이 참 운명적이기도 하다. 어물쩡 넘어가려하면서 은근히 어른스러운 척 하는 긍정적 여성주의보다 게릴라걸즈 쪽이 더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
읽고나면 마음이 꽤 편해지는 부분(?)도 있다. "80살이 넘어서야 당신의 경력이 알려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천재라 불리는 당황스러움을 겪지 않아도 된다. 배우자가 당신을 갈아치우고 젊은 여인을 얻을 때 일할 시간을 더 얻는다, 예술가로서의 경력과 어머니 사이에서 선택할 기회가 있다......"
이걸 읽는 난 놀부에게 걸린 제비된 기분이다. 일부러 내 다리 분질러놓고 아이고 불쌍해라 억지 곡을 하며, 칭칭 동여매주는 그 손을 보는! 참, 그때 놀부가 어떻게 됐더라? 하하.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