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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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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램의 용기 |
임*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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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작가님 강좌를 듣고 1그램의 용기가 생겼습니다. 원래 시나리오작가가 꿈이었는데 소설도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어려운 이론서 사서 눈 빠지게 공부해왔는데 김형수 작가님 강의들으며 후회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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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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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통해 바라보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강의인 것 같습니다. |
유*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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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1강 수강했습니다. 삶에 빗대어 설명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제가 어렸을 적에 문학에 대해 생각해 보게된 경험이 있었는 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 정말 좋았습니다. 강의평은.. 밑에 작성하신 전영석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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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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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도 서정과 울림이 깊은 강의, 저녁나절 홀로 들으세요. |
전*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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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을 수강하고 몇 자 씁니다. 이것은 마치 눈 덮힌 산골 오두막에서, 오랜 사색과 경험을 통해 체득한 통찰이 담긴 예화들을 들려주는 한 견자의 음성을 듣는 듯한 강의로군요. 잔잔한 흐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문학적 견해들, 잘 짜여진 기승전결의 내용, 마지막에 딸칵, 하고 맺음말이자 동시에 이후 강의의 시발점이 될 언어 - "문학관"이라는 주제를 제시하는 세련된 강의스킬까지....... 한 마디로 매우 서정적인 강의, 깊은 울림을 주는 강의였습니다. 특히 산골짝 멀리 어둠에 휩싸인 마을 입구에서 홀로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는 가로등의 존재론에 이르러서는 '서정'과 '울림'이 동시에 제 몸으로 전해 와 오래 여운이 남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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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예술이다. |
이*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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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어린시절과 과거의 모습들이 너무나 촌스럽고 부끄러운 기억속에 남아 있었는데 그것이 예술의 모티브가 되고 문학의 꺼리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필요없는 인생의 순간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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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 4강 강의 노트 및 리뷰 |
오*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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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강 문학에도 ‘방법’이 있는가 (참고 텍스트) ◎ 밀란 쿤데라《소설의 기술》, 파블로 네루다<시>, 김성동《길》, 박경리《토지》 ◎ 김소월<초혼>, 이용악<낡은 집>, 장그르니에Jean Grenier《LesÏles》(1933)
1교시 삶 속에서 생겨나는 장르들 이야기는 한차례 퍼져나가 오래 기억되지만, 시와 노래는 쉽게 기억되지 않아 두고두고 반복해서 불려야 하는 숙명이 있다. 1. 장르에 대한 작가들의 견해 1) 밀란 쿤데라 - 《소설의 기술》에서 “아니다, 그렇지 않다!”의 정신을 소설의 본질이라고 한다. 그는 인간 성격의 새로운 측면이 새롭게 드러나는 것이 새로운 소설이라고 한다. 즉 “인간 성격의 새로운 측면을 발굴하지 않은 작품은 부도덕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부도덕한 작품이란 그저 복제된 작품이라는 뜻이다. - 《소설의 기술》에서 시는 “저 뒤쪽 어디에”라고 설명한다. 어떤 경험은 관성에 의해 새롭지 않은 것으로 된다. 2) 파블로 네루다 <시>는 시의 “저 뒤쪽 어디에”라는 부분을 잘 나타낸다. 3) 김성동 《길》에서 “산문이 발걸음이라면 운문은 춤이다.”라는 비유가 나온다. 걸음은 정확성이 핵심이다. 소설 문제는 자연스럽고 안정되게 흘러야 오래갈 수 있고, 상황과 상황의 발전을 감당할 수 있다. 그에 비추어 우리는 뜻을 전달하려고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흥이 표출되어서 춘다. 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 된다. 이동의 필요 때문에 춤 동작을 하게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은 시 문법을 이해하는데 꽤 중요한 단서가 된다. 2. 서정과 서사의 장르 서사적 장르와 서정적 장르 모두 운문과 산문이 있다. 1) 서사적 장르는 소설이 중심이다. 영화에서도 서정적 방식이 있는데, 이란 영화 <가베Gabbeh>(1996)가 그런 경우다. 이야기 얽음새가 존재하는 것을 서사 양식이라고 하는데, 서사적 장르인데 시인 경우도 있다. 이것이 ‘서사시’이다. 예를 들어 박경리의 《토지》를 ‘대서사시’라고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는 말 중심이었고, 말 속에는 서사문학이건 서정문학이건 운율이 담겨 있었다. 이것이 운문인데, 이 운문이 문자시대에 이르러 점점 노래와 이야기로 분화되기 시작했다. 대하 서사가 운문으로 펼쳐졌던 시대에는 소설이라는 표현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2) 서정적 장르는 ‘서정시’다. 서정시는 세 가지 소장르로 나뉜다. 첫째, 김소월의 <초혼> 시처럼 70년대까지 만가형식을 가진다. 둘째, 이용악의 <낡은 집>과 같은 이야기풍인데 80년대 늘어났다. 셋째, 90년대를 넘으면서 김수영 형식과 비슷한 진술형의 시이다. 산문에서도 서정적 장르가 있다. 장그르니에의 《섬》이 그런 예다. 3. 장르는 시대에 따라 생성, 발전, 소멸한다. 시대별 차이 때문에 고유 미학의 단절이 생긴다. 우리나라는 장르전통이 취약하다. 80년대 이미 장르의 실험은 많았다. 장르는 사회적 약속이므로 개인의 발표로 통하는 것은 아니다. 장르는 혼자 만들어가는 게 아니고 묘목처럼 계속 자라는 것이다. 문학은 창조자와 사용자 사이에 함께 산다. 이러한 것들이 양식과 갈래를 만든다.
2교시 문학의 역사적 변화와 조류 문학의 역사적 변화와 조류 : (문예사조 = 창작 방법) 논쟁 1. ‘문예 사조’는 근대 이후 ‘창작 방법’이라고 불리며 ‘사조’는 ‘방법’으로 이동해 왔다. ‘방법’은 ‘세계관’과 대칭되는 면이 있다. 철학 용어 중에 ‘변증법적 유물론’은 “세계관은 유물론적이고, 사유의 방법은 변증법적이다.”라는 말이다. 이것이 세계관과 방법을 지칭하는 말이다. 리얼리스트는 “방법은 방법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리얼리즘을 포함한다.”고 한다. 이에 반대되는 주장을 예로 들자면 황지우 시인의 모더니즘 방식이 있다.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세계관은 같다고 할 수 있다. 2. 고전주의는 틀이 있다. 연극의 시간, 장소, 행동의 삼위일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상업자본가들이 발생할 무렵 고전주의가 중요한 예술 방법으로 등장했다. 연극 중심이었던 이때는 희극은 예술로 치지 않고, 비극을 예술의 본령으로 생각했다. 또한, 하층민 보다는 근엄한 영웅상을 중시하였다. 고전주의는 그러한 몰개성 때문에 붕괴하였다. 3. 낭만주의는 감정, 주정을 반영하게 되었다. ‘상상력’이 장점이다. 반면 ‘감정의 과잉’은 단점이었다. 낭만주의는 미래지향적이거나 과거지향적이다. 현실에 대한 불만을 일부 가지고 있다. 대체로 체험된 사실 중심이 아니고, 증폭된 감정의 위탁에 있다. 4. 리얼리즘은 세부의 진실성이 있어야 한다. 세부는 내가 체험한 세계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간혹 현실 속에는 비현실적인 진실이 많이 있다. 그러한 것은 객관세계의 진실에 파탄을 가져온다. 그러기에 전형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실’과 ‘전형’은 리얼리즘의 요건이자 큰 특징이다. 5. 모더니즘은 광범위해서 공통된 특징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도 두 가지 특징을 말하자면 첫째, ’세련미’를 중시하고 도회적 내면을 중시했다. 둘째, ’신파를 적대시’한다. 6. 근대 작가들에 의해서 고전주의, 낭만주의 방법이 다 시도되기도 했다. 가장 크게 갈등하며 주류를 점한 것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갈등이었다. 예술의 핵심은 실감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것을 확보하는 방법은 리얼리티와 모더니티를 동시에 획득하는 것이다. 7. 근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형식이 출현한다. 마르케스의 출현으로 알 수 있는 반리얼리즘적인 요소들, 마술적 리얼리즘도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형식이다. 이것은 리얼리즘에서 심화한 의미에서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논의하기도 했다. 이처럼 90년대 이후 경계가 희미해졌다. 윤리적 문제만 남게 되었다. 8. 양식은 다시 변화를 겪고 있다. 서사는 형상이 없다. 서사 전달 즉 형상화 시키기 위해 ‘서술, 묘사, 대사’를 모두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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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 3강 강의 노트 및 리뷰 |
오*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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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강 노래와 이야기 (참고 텍스트) ◎ 정민《한시미학 산책》, 박경리《토지》, 홍명희《임꺽정》
1교시 문학과 다른 언어 ‘문학은 문자로, 시각예술은 시각 언어로, 음악은 청각 언어로, 춤은 동작으로, 영화는 영상 언어로’ 이같이 형상화해가는 도구의 차이가 있다. 표현영역과 영향의 차이도 있다. 예술의 언어가 서로 충돌되지 않을까, 유능한 언어들이 등장하면서 낡은 언어가 차츰 퇴화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게 된다. 1. 문학의 위기 20세기가 끝나갈 때 뉴미디어의 출현과 함께 문학의 위기가 있었다. 문명 언어가 진화하면서 말과 문자는 점점 없어져 가고, 영상으로 대체될 것을 염려했다. 그러나 디지털 문명 꼭대기에 ‘문자’가 앉아 있다. 문자는 유용하고 능력 있는 언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2. 매체 간 차이 : 문학, 만화, 영화 비교 1) 수용의 측면에서 공정과정 : 문학> 만화> 영화 -영화 : 만들어진 영상을 일정한 속도로 본다. -만화 : 만들어진 영상을 자기의 속도로 돌릴 수 있다. 그러나 자기의 장면이 아니다. -문학 : 문자기호뿐 자신이 만든 영상을 자신의 속도로 돌린다. 이러한 공정 때문에 사람들이 문학을 멀리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2) 영화나 만화는 받아들이기 쉽지만, 스쳐 지나가기도 쉽다. 영상의 흐름은 인간의 능력에 비해 속도가 빠르므로 문학의 필요성을 얘기해볼 수 있다. 3) 거대시스템의 필요 : 문학< 만화 < 영화 4) 창조의 차이에서는 더 크다. 최근 영화나 만화에서 가져온 문학, 문학, 만화에서 가져온 영화도 많다. 4) 표현영역의 차이도 있다. 3. 문자 언어의 지위 : 언어의 재료 차이가 거기에 담을 내용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1) 파블로프의 주장 인간의 사유는 언어를 매개로 해서 발달한다. 문자 행위는 인간이 하는 행위 중에서 가장 진지한 것이므로 그만한 신뢰도를 갖게 된다. 현재까지 실존의 문제를 많이 싣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행위가 문자 행위이다. 그러기에 맹인도 점자판을 습득해서 사상가의 길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다. 2) 영상미디어 매체가 문학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현대 첨단문명이 증명하고 있다. 여전히 문자는 인터넷 문화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4. 형상, 형상화, 형상적 사유 1) 형상이란 바깥으로 드러난 모양이다. 노약자 우선석과, 경로석은 개념어로 형상이 없다. 그러나 ‘나는 젊었거늘 서서간들 어떠리’는 형상이 있다. 형상에는 ‘주인공’이 있다. 2) 형상이 아닌 것을 형상이게 하는 것을 형상화라고 한다. 《한시미학 산책》에는 ‘보이지 않고 보이기, 말하지 않고 말하기, 그리지 않고 그리기’ 같은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을 세 글자로 바꾸면 ‘형상화’가 된다. 3) 형상적 사유 박경리《토지》, 홍명희《임꺽정》에서 인간의 이야기를 형상화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접하는 사람들은 ‘형상적 사유’가 진행되고 있다.
2교시 문학의 장르 강의 발원지는 하늘이 아니라 땅에 있다. 예술의 형식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시작된다. 서사적 장르든 서정적 장르든 인간의 삶 속에서 서사적, 서정적 감동의 형태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원형을 근거로 나뉘게 되어 있다. 즉 삶을 관찰하는 형식이 바로 서정적 방식이냐 서사적 방식이냐를 가른다. 우선 그 두 성격을 다 가지고 있는 극적 양식부터 소개하며 크게 세 가지 형태를 소개한다. 1. 극적 양식 극문학은 상연을 전제로 한 문학이다. (예:희곡, 시나리오) 그러나 연극, 드라마, 영화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문자에 의한 문학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 다른 매개의 수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다른 예술 매개의 밑그림으로서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극적 양식에 의한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과 공간, 사건과 장소가 한정되어 있다. 현실원칙에 오류가 있다해도 제한된 조건 속에서 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2. 서정적 양식 1) 서정 : ‘객관적 세계에 의하여 환기된 주관적인 감정’이다. 이 서정이 모든 창조의 원동력이다. 2) 서정의 크기는 시적 감동의 크기이다. 서정을 위주로 한 것을 서정시라고 한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서정이 없이 시를 쓰면 말놀이에 불과하다. 감동이 오지 않는다. 서정 그 자체를 예술로 삼고 있다. 3) 서정적 문학의 본질은 객관적 세계에 의하여 환기되는 감정이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서정이 메마른 시대는 창조성이 사라진 시대라 할 수 있다. 4) 삶 속에서의 서정 : 공사판에서 일하시는 인부,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의 노래, 아프리카 주민의 몸에는 서정(시)이 있다고 할 수 있다. 5) 서정적 방식은 감정 표출을 통해 극도화되어 드러난다. 허수경의 말을 빌리면, “모든 악기는 자신의 불우를 다해서 운다.”고 하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우의 크기만큼 서정적 환기력이 존재한다. 6) 러시아 평론가 벨린스키(Belinskii)는 “예술 중 예술이 문학이고, 문학 중 문학이 서정시다.”라고 하였다. 3. 서사적 양식 1) 서사 : 인간의 체험 속에서 신성해진 이야기가 서사다. 단일한 상황, 장면 하나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 서사다. 사람과 고기는 사흘을 함께 지내면 냄새가 난다고 한다. 이 냄새가 바로 서사다. 2) 서사적 방식이란 끝없이 변화 발전하는 상황을 연결했을 때에만 통하는 전달 방식을 의미한다. 3) 서사의 핵심은 우여곡절이다. 그러한 이야기의 얽음새가 중요하다. 4. 위와 같이 서정적 양식과 서사적 양식은 “현실 속에 감동이 존재하는 형태다.” 이 두 가지로 시와 소설의 장르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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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 2강 노트 및 리뷰 |
오*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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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강 ‘언어’라는 생물에 대하여 (참고 텍스트) ◎ 김수영<푸른 하늘을>, 미카엘 일리인《인간은 어떻게 해서 거인(巨人)이 되었는가》(1946) ◎ 이영진<하루살이>, 아리스토텔레스《시학》, 유인호《한국경제의 허와 실》, 고은<부활>
1교시 문학은 인간학이다 1. 문학은 어떻게 인간학인가 1) 일리인은 《인간은 어떻게 해서 거인(巨人)이 되었는가》에서 사람이라고 하는 동물을 ‘거인’이라고 표현한다. 어떻게 거인의 역사로 살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이 인류의 역사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넓게 생각해 내용상으로 김수영의 <푸른 하늘을>과 비슷하다. 모든 존재가 자기 세계에 갇혀 사는데, 그 세계를 신체적, 정신적 한계로 넓히는 유일한 존재로서 ‘사람’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거인(巨人)’이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유한성을 깨뜨리는 핵심은 무엇인가? ‘도구’이다. 물질적 도구, 정신적 도구로 구분할 수 있다. 2) 인식의 도구(정신적 도구)는 3가지 차원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진위판단을 위한 ‘진’, 선과 악을 구별하는 ‘선’, 미와 추를 구별하는 ‘미’가 있다. 3) 언어의 형태도 3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과학의 개념 언어, 종교의 주술 언어, 예술의 형상 언어이다. 그 외 쾌와 불쾌의 척도를 가르는 미적 인식이 있는데, 이것을 예술의 언어가 다루고 있다. 4) 예술, 문학은 인식의 도구 중 하나이다. 형상 언어를 사용하는 예술적 사유를 미적 인식이라고 한다. 미적 인식은 심미안으로 존재한다. 미적 인식은 살아있는 삶 속에서 인간의 쾌와 불쾌에 작용하는 요소들을 민감하게 포착하는 인식의 능력을 말한다. 쾌와 불쾌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는 과학의 언어와 종교의 언어가 감당하지 못한다. 여기에 ‘예술과 문학’이 설 자리가 생긴다. 인간 하나하나가 만물의 척도이다. 체험이 다르므로 신성의 크기가 다 다르다. 그래서 문학을 인간학이라고 부른다. 2. 문학에서의 성격은 ‘인간형’이다. 문학이 인간학이기 때문에 문학에서의 성격은 ‘인간형’이다. 성격을 창조하기 때문에 창작이다. 예를 들어, 삼국지의 ‘조조, 유비, 손권’의 인간형이 있다. 인간학은 살아있는 인간을 그려야 한다. 그러므로 삼국지의 인간형은 고전으로서 다하고, 문학에서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인간형이 필요하다.
2교시 살아 있는 언어와 냉장시킨 언어 1. 문학의 언어는 살아있는 언어이다. 냉장언어가 아니다. 활어와 냉동어가 분명히 다르듯이 살아있는 이야기를 냉동어로 이야기하지 못한다. 여기에 개념어와 형상어의 차이가 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개념어로 펼쳐지고 있다. 반면 제자백가 중 《장자(莊子)》의 붕새 이야기는 형상어로 펼쳐지고 있다. 서양은 개념 언어가 발달하여 과학이 융성했다. 동양은 형상 언어가 발달하였다. 2) 유인호의 《한국경제의 허와 실》은 통계, 수치, 보편적 지식으로 증거제시를 한다. 지식을 주기 위함이고, 설득을 목표로 한다. 개별적이거나 특수한 것은 취급하지 않는다. 이것이 개념어이다. 반면, 김용택의 <섬진강> 연작시는 형상어로 현실을 포착하고 있다. 감정과 개별성을 다루고 있다. 감동을 목표로 하며, 그러므로 감흥을 일으킨다. 3) 현재의 사시, 고시 등 시험방식 즉, 세계를 이해하는 지식을 개념적 인식으로 측정한다. 그러나 과거 조선 시대의 시험방식을 보면 형상적 인식으로 측정한다. 시를 쓰는 방법으로 출제되는데 이러한 방식은 하나의 정답이 아닌 덕을 측정할 수도 있다. 2. 고은의 <부활>은 샤먼적 시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단어들은 주술 언어라고 할 수 있다. 3. 예술의 형상 언어에는 눈빛, 소리, 동작도 있다. 각각 시각 예술, 청각 예술, 문자 예술 등이다. 문학과 여타 예술과의 차이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조금 더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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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 1강 강의 노트 및 리뷰 |
오*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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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강 문학, 인간으로 들어가는 문 (참고 텍스트) ◎ 알렉산드르 푸시킨(Aleksandr Seraggvitch Pushkin, 1799~1837),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 <초원의 빛> ◎ 김학준<러시아 혁명사>, 조세희<난장이가 쏘아 올린 장은 공>, 김춘수<꽃>, 톨스토이<인생>
● 1강은 김형수 선생님의 삶을 통한 전개로 강의노트에서는 주어를 제외하고 작성하였습니다.
1교시 1. 문학과의 만남 1) 말보다는 ‘글’을 친숙하게 배우게 된 환경에서 문학관심의 동기가 되었다. 예를 들어 집에서 운영하는 음식점의 메뉴판에서 글을 접했다.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윌리엄 워즈워드의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 질수록 / 당신의 사랑하는 마음 희미해진다면”이라는 이발소에서 보이던 글귀들로 인해 문학이라는 막연한 꿈을 갖게 되었다. 여기서 세속과 벗어나 있는 어떤 것을 최초로 ‘문학’이라고 생각했다. 2) ‘최초의 그 자리’ 문학에 반응이 일어난다. 관심을 갖게 된다. 관심 속에서 어떤 유형의 활동이 시작된다. 관심이 심화된다. 그 때 떠나온 자리에 영원히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다. 문학 수업을 통해 가장 도달해야할 자리가 그 자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2. 문학의 과정 1) 유미주의 어릴 적 글자가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다는 놀라운 경험이 있었는데, 그것이 문학의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글쓰기’를 선택했다. 글쓰기는 자아 의지를 실현하는 데 중요한 것으로 포착되었다. 표현본능, 유희본능에 의한 미적 표출의 한 형태였다. 2) 계몽주의 김학준의 <러시아 혁명사> 앞장에 쓰여 있었던 “참다운 지식인이라면 정치 밖에 서 있을 수 없다.”라는 말을 5·18을 겪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공동체에 맞닥뜨리는 재앙은 공동체 모두의 것인데,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고, 글을 쓰기 어려웠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 “베토벤을 들으며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이웃이 겪는 직접적인 고통과 슬픔 앞에서 느끼지 못함”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러한 과정에서 고상한 척하고, 오락보다 나을 게 없는 없다고 생각되는 ‘문학’에 대해 회의가 컸다. 루쉰(魯迅, 1881~1936)은 의과 공부를 위해 일본에 갔다가 겪은 사건을 통해 인간의 문제는 신체의 문제가 아니라고 느껴 문학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루쉰 때문에 1984년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문학의 실용적 가치, 효용적 가치, 문학의 세계 기여도를 생각하였다. 문학이 무엇을 창조해내는지 확신하여 작업을 밀고 나갔다. 3) 명명(命名)하는 행위로서의 문학 신념과 근면성이 회의와 성찰을 잡아먹는다는 것을 40세 생일 때 깨달았다. 옳다고 생각되는 것의 과도한 확신은 존재의 진실에는 아주 위험하다. 김춘수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처럼 문학이란, 세계에 대한 명명(命名)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존재를 이해받는 것이다. 세상에 72억의 사람이 있다면 72억의 숙원이 있다. 작가는 우주 뒤쪽에 꼬깃꼬깃하게 감춰져 있는 것을 소명하는 것이다.
2교시 작가수업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1.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까? 톨스토이의 <인생> 중에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나온다. 물레방아의 움직임은 물레방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의 흐름’에 있다. 논리적 맥락으로 찾은 정답이 언제나 정답일 수 없다는 이야기다. 문학의 경우도 문학적 자아가 눈뜨지 않으면 수많은 지식을 가지고도 소용이 없다. 2. 문학교육의 오류 1) 학교 교육 학교 교육은 지나치게 분석하여, 가르치려 하기보다 평가하려 한다. 평가하기 위해 불필요하게 깊어진 영역은 쓸데없는 지식을 만들어낸다. 문학의 자리보다 심화한 자리로 끌고 간다. 2) 사사 교육 학교공부로 문학적 자아가 성장하지 않기 때문에 사사교육을 한다. 여기엔 미신숭배가 있다. “문학에 미쳐라”, “가정을 버려라”, “꿈을 포기하라”, “무조건 많이 써라”, “상상한 것만 써라”, “본대로 느낀 대로 사실대로만 써라”, “주제 의식만 이야기하라”는 일방적인 교육이 된다. 이것이 사사교육의 오류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총동원해서 쓴다. 어느 한 곳에 치우쳐서 쓰는 것은 문학의 길을 가로막는 미신 숭배라 할 수 있다. 3) 자수성가 혼자 책 읽고, 혼자 쓰기 때문에 주목받으려는 조급함이 있다. 문학에는 읽고,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사적 결여가 문제를 만들 수 있다. 주목받으려는 조급함은 동시대 사람과 통하려는 것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훌륭한 작품은 뒷세대와 통한다. 예술의 본질은 ‘세계를 향한 고독한 외침’이다. 내 삶의 중심에서 뿜어나오는 것이다. 3. 문학수업을 어떻게 할까? 1) 3분야의 공부 : 순수이론, 문학사, 비평 2) 갖춰야 할 3가지 : 세계관, 창작방법, 창작조건 3) 작가는 문학관, 창작관, 작가관이 적립이 되고, ‘나’라는 존재가 같이 어우러져서 총체적으로 축적되어야 한다. 문학적 삶 속에서 이 문제들이 동시에 계속되고 있어야 한다. 문학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로움과 고독’을 견디는 힘을 얻는 것이다. 그러면 작가로서 준비가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에게 관측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빛이 한 곳으로 몰려든다면 우주는 파괴된다. 그렇듯 자기가 놓여있는 자리에서 자기 세계를 비출 줄 알고, 홀로 서 있는 가로등의 정신이 습득되는 순간이 모든 습작을 마치고 작가로서 출발하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예 창작의 원론은 ‘문학관, 창작관, 작가관’을 습득하는 것이다. 이번 강의는 ‘문학관’을 습득하는 과정으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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