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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문화가 있는 풍경 / 책과 화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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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플래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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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이 불과 한 주일 남짓밖에 안 남았지만, 눈을 씻고 보아도 선거용 거리 현수막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98년 선거법이 개정될 때 제67조 현수막에 관한 조항이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어쨌든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시각 공해'에 지나지 않는
'물건'이 없어졌으니까. 선거가 끝난 이튿날, 거리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를 보는 기분이라니!
화려하지만 공허하기 짝이 없는 '말 잔치'의 결론은 언제나 씁쓸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최근 '플래카드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이 논쟁은 4·13 총선 정국과는 아무런
관련은 없다. 최근 적잖은 궁금증을 자아낸 <선영아 사랑해>라는 플래카드의 '순수성'
여부를 둘러싸고 네티즌 사이에서 찬반 논쟁이 뜨겁다. 지난 3월 25일 밤, 종로·강남역·신촌
등을 비롯해 서울 시내 곳곳에 일제히 나붙은 <선영아 사랑해>라는 여섯 자가 적힌 플래카드는
모 여성인터넷 업체가 회사를 홍보하기 위해 내건 티저 광고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처음 밝힌 '오마이뉴스'의 홍성식 기자는 "한 순수한 청년의 사랑 고백인 줄
알았으나, 인터넷 사이트의 광고 전략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 못내 허탈했다"고 밝혔다.
그는 즉각 <선영아, 사랑을 팔지 마라, 다신 너를 만나지 않겠다>라는 내용을 적은 반박
플래카드 50여 개를 만들어 같은 자리에 내걸었다.
필자도 이 <선영아 사랑해> 플래카드를 보는 순간, 홍 기자의 말처럼 "오아시스의 순정이
존재하는구나!"라는 감탄사가 절로 났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어느 신세대 작가의 소설
제목처럼 우리는 지금 '사랑의 종말' 시대를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한 번쯤 자문자답할 일이다.
그러나 필자는 사랑에 대한 홍 기자의 '순수한' 감정과 의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사이트 주소(www.ohmynews.co.kr)를 나란히 적은 것은 백번을 양보하더라도
또 다른 '선정주의'의 극치였다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의 순수한 마음을 듬뿍
담아 그냥 담담히 적기만 했으면 오죽 좋았을까? 아예 풋사랑의 고백처럼….
홍 기자와 '오마이뉴스'는 네티즌들의 필자와 비슷한 견해를 털어놓은 '따끔한' 비판에
겸허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오마이뉴스가 진보적이라고 믿는 나로서는 진보,
우리 안에 있는 또 다른 슬픔을 느꼈다"(월간 『말』 노정환 기자), "오마이뉴스 너무
자만하는 것 같은데!"(go!go!) 등등.
어쨌든 필자는 이 논란이 아주 무의미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사랑'의 순수성에 대한 기억을
더듬게 되는 기회가 되었으니 말이다. 김광석의 노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였던가.
"하얗게 밝아오는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그랬다. 내 마음의 플래카드는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였다. <200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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