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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문화가 있는 풍경 / 문화 탐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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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구기가
김지하의 『오적』을 베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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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의 작가 응구기 와 씨옹오(Ngugi Wa Thing'o)가 김지하의 시를 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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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적이 실린 사상계 1970년 5월호 그림. '70.4.지하'라는 서명이 있으나, 이
컷은 판화가 오윤이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초로 지난 1996년 「포스트 콜로니얼 미학의 양가성」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석호(37·외대 영어과 강사) 씨는 "그럴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는 이색 주장을
펼쳤다. 물론 '표절'이라고 해서 김지하의 시를 그대로 가져다 베꼈다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응구기는 지난 1960년대 중반 이후 서구의 제1세계에 맞서 치누아 아체베와 함께 제3세계
문학론을 줄기차게 주창한 세계적인 작가이다. 무엇보다 지난 1980년대에 프란츠 파농의
『자기의 땅에서 유배받은 자들』과 함께 국내에 소개된 『핏빛 꽃잎』(1977년)은 한국의
민중문학 진영에 적지 않은 자양분을 준 바 있었다.
이씨의 주장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3백만부 이상이 팔려나간 응구기의 소설 『십자가 위의
악마』(1982년)라는 작품이 김지하의 담시 『오적五賊』에서 거의 전적으로 창작의 착상을
얻었다는 것이다. 과연, 이씨의 주장을 믿어도 될까? 이씨는 이른바 '표절'의 근거를
자신이 지난해 번역 출간한 응구기의 『탈식민주의와 아프리카 문학』(인간사랑) 183쪽에
기대고 있다.
"한국의 시인 김지하가 쓴 『오적』과 『비어』를
읽은 적이 있다. 김지하 시인이 한국의 신식민주의적 현실을 그려내기 위해 구전(口傳)의
형식과 이미지를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구비 전통에서 효과적인
무기 중의 하나는 풍자이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깨달았다. 제국주의라는 국외자 악마에게 자신의 정신은 물론 국가의
혼까지 팔아버린 인간의 이야기를 쓰자고. 악마적인 것을 사모하는 악마의 이야기를 쓰자고.
인민을 겁탈하는 도둑놈의 이야기를 써보자고.
그것이 내가 『십자가 위의 악마』를 기쿠유어로 쓰게 된 동기이다."
실제 『십자가 위의 악마』는 악마 및 도둑놈들의 피로연에 초대장을 받은 여섯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데, 가장 악랄한 방법으로 민중을 착취한 7명의 영악한 도둑놈과 강도를 공개
경쟁을 통해 "누가 더 악마적인가?"를 과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구절은 김지하의 『오적』과 그 미적 형식과 내용에서 흡사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여러분, 제 구상을 잘 생각해 보세요! 부자라면
누구나 두 개의 입과 두 개의 배와 두 개의 생식기와 두 개의 심장을, 다시 말해 두
개의 생명을 가질 수 있다는 이 황홀한 구상을 말입니다. 돈만 있으면 이제 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죽음은 가난한 놈들에게나 물려줍시다. 하하하! '자, 제가 제일이지요.
제게 왕관을 주십시오. 저만한 적임자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석호 씨는 "응구기가 김지하의 담시(譚詩) 『오적』『비어』 영역본을 토대로 소설적 확장이라는
형식적 변형과 내용적 연관성을 동시에 담아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예의 김지하의
시가 지난 1970년대 김지하 시인의 석방운동 차원에서 영역되었을 때, 강연차 일본에
온 적이 있었던 응구기가 김지하 시의 영역본을 구해 읽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또 "아마도 이른바 응구기의 '표절' 혐의는 1970∼1980년대 케냐와 한국의
정치적 상황의 동질성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1980년대 초반 케냐의
군사정권의 탄압으로 영국으로 망명한 응구기 와 씨옹오가 1970년대 한국의 '신화'로
우뚝 선 김지하 시인의 작품을 보며 상황적 친화성을 가졌을 법하다는 추론인 셈이다. <1999년
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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