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문화가 있는 풍경 / 문화 탐험 << 이전  08  다음 >>
우리 안의 분단 망령들
- 벽초 홍명희와 조운 시인


어느 평론가는 "근대시의 유산(遺産)을 모두 읽는데 겨우 3주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장탄식을 토했다. 자신의 모국어를 잃은 채 강요된 '타자의 시간'을 살아야 했던 저 일제 식민지 시절의 궁핍한 문화를 이 말처럼 잘 드러낸 표현이 또 있을까.

하지만 3주도 채 걸리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저 빛나는 1987년 6월 항쟁의 전리품으로 얻었던 <월북 문인 제4차 해금조처>가 없었더라면, 예의 평론가의 푸념은 어느 게으른 책상물림의 객쩍은 소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월북 문인의 경우 책도 없었지만, 설령 어찌 구했다 하더라도 마음껏 읽을 수조차 없었다.

가령, 전두환 정권 초기에 일어난 이른바 <오송회>(五松會) 사건은 독재 권력이 자행한 웃지 못할 소극(笑劇)의 극치였다. 오장환의 「병든 서울」과 이용악의 「전라도 가시내」 등의 '불온'하기 짝이 없는 시를 읽었다는 혐의로 수명의 현직 교사들이 구속되지 않았던가. 심지어 '국민 시인'의 반열에 오른 「향수」의 시인 정지용조차 금서 목록에 올랐을 정도니까 말해 무엇하랴.

어쨌든 6월 항쟁 이후 월북 문인들의 작품은 해금되었다. 카프(KAPF)의 맹장 임화를 비롯해 홍명희·이기영·이태준 등의 소설가와 함께 '북한 애국가'를 작사한 박세영 · <전위파> 시인들의 작품을 대낮에 보게 된 일은 늦었지만 잘된 일이었다.

▼ 홍명희
그러나 분단 50년의 망령은 여전히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미완의 대하소설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1880∼1968)와 시조시인 조운(曺雲 1900∼?)의 경우는 단적인 사례가 된다. 벽초의 경우 2년 전 충북 괴산에 문학비가 건립되었다. 그러나 괴산 재향군인회 등 지역 보훈 단체들의 반발로 인해 자진 철거와 비문 수정 과정을 거쳐 지난 7일에야 비로소 비문 재부착식을 가졌다.

옛 비문과 수정 비문 문구에서 분단의 '골'을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다. '민족해방운동의 큰 봉우리' '평생 민족의 자주 독립과 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는 문구가 삭제되었으며, 보훈 단체 역시 '전범(戰犯)'이라는 표현을 고집는대신 '1950년 북한 부수상 재임시 6.25라는 민족 상잔이 있었다'고 표현했다. 어쨌든 합의 과정을 통해 "사랑과 화해의 정신으로 분단체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는 협상 대표단의 후일담은 일말의 위안은 주지만 뭔가 허탈한 심정은 어찌할 수 없다.

◀ 2000년 가을 조운 시비 제막식 장면. 제막식은 우여곡절 끝에 열렸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지난 9월 2일 시비 제막식을 가졌지만, 이 사건은 6월 15일 <남북 공동합의문> 발표 이후에도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는 '이념의 망령'에 아연할 따름이다. <남북 작가회담> 개최와 <통일문학전집> 발간 그리고 <하나의 문학사를 위한 토론>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월북했다는 이유로 정당한 문학적 업적마저 무시하는 우리 안의 냉전적 '정서'를 걷어내는 일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닌 듯하다. <2000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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