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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문화가 있는 풍경 / 문화 탐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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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밥그릇만한 풍요를 위하여
- 황지우 「거룩한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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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식사
황지우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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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1998년)
* 황지우(黃芝雨) 약력: 시인 · 미술평론가
1952년 전남 해남 출생. 서울대 미학과 졸업. 1980년 「沿革」으로 중앙일보 신춘문예
입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주요 시집으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나는 너다』, 『게 눈 속의 연꽃』,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등이 있음.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 수상.
[이 한편의 시]
황지우의 「거룩한 식사」
지난 늦가을에 젊은 작가 김한수의 소설집을 읽은 적이 있다. 『그대, 기차타는 등 뒤에
남아』(문학동네)라는 다소 낭만적인 취향이 물씬 풍기는 제목이었는데, 작가 특유의 성장의
비애와 새로운 희망을 향한 서사 지향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작품집이었다.
이 작품집은 문단 출세작 「성장」(1988) 이후 작가 김한수가 여전히 '가난의 모티브'를
글쓰기의 동력으로 삼아 문학적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집의 표제작 「그대, 기차타는 등 뒤에 남아」를 보며 도저한 가난의 상황
앞에서 한없이 막막한 기분에 흠뻑 젖어야 했다.
한 시골 소년이 있었다. 이 소년은 늘 배가 고팠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소년은
평소처럼 가마솥을 열었다. 그런데, 이 무슨 조화람! 솥단지 안에 밥이 하나 가득 있지
않은가? 허기를 심하게 앓았던 소년은 솥단지를 끌어안은 채 밥을 퍼넣기 시작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소년은 마침내 그 많던 솥단지 안의 밥을 '모조리' 먹고 말았다.
이 비슷한 삽화는 최근 몇몇 작가의 작품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나타나고 있다. 가령,
'90년대의 별종(別種)' 한창훈의 「우리가 산다는 것은」이라든가, 공선옥의 소설집 『내
생의 알리바이』에 수록된 「어미」「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 등은 그 사례가 될 수
있을 듯하다.
그랬다. 가혹하기 짝이 없었던 춘궁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이 시대의 성장의 속도에
취해 잠시 잊었을 뿐이다. 한때 우리는 '보릿고개'를 넘어섰다는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남이든 북이든 심한 열병과도 같은 춘궁기 알러지를 앓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서울역과 종로 탑골공원의 낯익은 풍경은 이미 우리 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이 되지 않았던가.
북한의 사정은 남한보다 훨씬 더 심각한 지경이다. KBS <일요스페셜>에 방영된 '꽃제비'
소년들의 모습을 보며 나야말로 '범죄자'가 아닌가 하는 자괴감을 가진 바 있었다.
황지우의 「거룩한 식사」는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의 소중함을 연민의 눈길로 포착한 작품이다. 정치적
무기력과 의욕 상실을 몹시 '앓으며' 90년대의 허무와 절망의 시대를 견뎠던 황지우 시인은
최근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를 상자했다. 『게 눈 속의 연꽃』
이후 무려 8년만의 일이었다.
시인은 "그 동안 잘 놀았다. 얼마나 괴로웠을 것인가?"라는 말로 시집을 내는 소감을
밝혔다. 이 말에서 뼈아픈 후회의 심정을 읽는 일은 어렵지 않다. "슬프다//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모두 폐허다"(「뼈아픈 후회」). 자기가 딛고 있는 자리가 폐허이고, 시적
화자 또한 "가련한 空氣族들"(「살찐 소파에 대한 日記」)로서 어느 순간 "아름다운 廢人"(표제작)이
되고 말았다는 자책을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안'에서 '밖'을 향하여 시선을 보낸다. 물론 이
자아 '밖'을 향한 시선에서 강한 현실 밀착의 욕망을 읽기란 곤란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인성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알지만 쉽게 건너갈 수 없는, 어떤 비의적 거리가
가로놓여 있는 바깥"이기 때문이다. 황지우의 이 시는 이 시집의 주류적 경향과는 사뭇
다른 작품에 속하는 셈이다.
그러나, 어쨌든, 황지우 특유의 냉소가 걷혀진 이 시를 보며 나는 종로 탑골공원 뒤편을
한번 더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오늘도 점심 무렵, 거기에서 급식을 얻어 "혼자 밥 먹는
자들"의 "풀어진 뒷머리"를 아프게 보게 되기 때문이다. <199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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