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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에서 순수한 정열의 빛까지
<불>의 스텍트럼과 예술


동경과 거대한 공포가 교차하는 불의 이미지와 문양에서 예술가들은 창작의 영감을 얻곤 하였다. 불은 정열, 재생과 정화, 생명의 씨앗, 순결 또는 신앙의 증명, 징벌 또는 신의 권능, 하늘의 계시 등 다양한 이미지로 변주되어 오늘날까지 예술 작품에 구현되고 있다.

저 유년 시절 불은 동경과 공포 자체였다. 바로 '혼불' 때문이었다. 사전에는 안 나와 있는 '혼불'은 '정신의 불' '목숨의 불'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최명희의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대하장편 『魂불』은 작가의 투신(投身)의 열정이 빛나는 작품이다. 작가가 꼬박 17년을 부여잡고 쓴 『魂불』은 원고지 1만2천여장, 전5부 10권으로 완간한 작품으로 우리 말의 보고와 풍속사 박물관으로 기록된다.

1930년대 전북 남원 지방 매안 李씨 가문의 며느리 3대를 줄기로 양반과 상민의 삶과 함께 관혼상제 등 풍속사를 방대한 고증을 통해 묘사함으로써 작가의 뜨거운 예술혼을 아낌없이 불살라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작가는 이 작품 집필 과정에서 얻은 암과 투병하다 98년 12월 11일에 끝내 「쓰러지는 빛」(1980년 데뷔작)이 되고 말았다. 운명의 깊은 빛깔들을 복원하기 위해 스스로의 혼불을 한 점 남김없이 소진했던 작가는 다른 세상으로 유명을 달리하였던 것이다.

왼쪽 사진에서부터
1. 이청준, 2. 김동인, 3. 나도향, 4 신상옥 감독의 영화 <벙어리 삼룡이>, 5. 주요한의 <불놀이>, 6.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불은 공포 자체가 되기도 한다. 이청준의 「전짓불 앞의 傍白」은 6.25의 경험 속의 '공포의 전짓불'이 된다. 앞에 선 사람의 정체를 감춘 채 전짓불은 일방적으로 "너는 누구 편이냐"고 운명을 판가름할 대답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불빛은 거대한 공포 자체가 아닐까.

불은 정열의 빛이다. 김동인의 단편 「광염 소나타」의 주인공 백성수는 아비규환의 화재 장면을 대하고 천부의 광폭성과 야성이 눈을 뜨게 된다. 그리하여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리는 대로 작곡을 할 수 있게 된다.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 역시 주인 아씨를 향한 삼룡이의 광기에 찬 정열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주요한의 시 「불놀이」(1919)는 화자가 4월 초파일의 대동강 불놀이를 보며 "강렬한 정열에 살고 싶다"고 끝을 맺는다. 선우 휘의 「불꽃」에서는 자기 변신의 열정을 상징한다. 주인공 고현이 할아버지의 세계에서 아버지의 세계로의 전환을 통해 비로소 자기를 발견하고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찾게 된다. 현진건의 「불」은 15살 순이의 내면 깊숙이 억눌려 있는 감정의 응어리가 불(방화)로 깨끗이 씻어나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성에 눈뜨지 못한 순이가 남편과의 성 생활에 혐오와 공포에 못이겨 '원수의 방(침실)'에 불을 지르고 한없이 즐거워하는 장면에서 복수와 자유를 지향하는 뜨거운 정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김동리의 「바위」(1936)는 문둥이 아줌마의 토막에 훨훨 타오르는 불길의 이미지로 채색되어 절망적인 상황을 극적으로 연소(燃燒)한다. "감아도 불, 떠도 불, 불, 불, 불……."

프랑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은 빛과 어둠의 미학을 영상적으로 보여준 소중한 사례에 속한다. 빛을 점점 잃어가는 여자와 불을 내뿜는 차력사 남자간의 사랑은 강한 질감이 전해지는 한폭의 아름다운 음화(陰畵)였다. 무엇보다 반 고흐의 작품은 이글거리는 태양의 이미지가 겹쳐 있어 강렬한 정열의 빛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였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 ▶

불은 순수한 영혼의 정화의 이미지로 드러나곤 한다. 괴테의 명저 『파우스트』에서 불의 이미지는 인간 영혼을 구원하는 열쇠가 된다. "사랑의 불길이여, 밝은 쪽으로 향해라!"(11801∼11802행)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마지막 작품 <희생Sacrifice>과 <향수Nostalgia>는 불 이미
지를 통해 인류의 미래에 대한 묵시록적 비전을 앵글에 담았다.

◀ ◀ 영화 <향수>, ◀ 희생

세계 멸망을 앞두고 한 인간(알렉산더)이 자기 희생의 결단을 통해 집에 불을 지른다든가, 로마 광장에서 자기 몸을 불사르는 광신자의 모습은 '시적 믿음'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 없는 존재론적 기투로서 심도 있는 이해를 요구한다.

1970년 11월 13일 자기 희생의 결단으로 자신의 몸을 불사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역시 예의 존재론적 결단과 맥을 함께하고 있다.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은 1991년 5월 정국에서 숨진 젊은 넋들을 위무하고 민족 화해와 통일의 비원을 담아 교향시곡 <화염 속의 천사Engel im Flammen>(1994)를 작곡하여 자신의 양심을 오선지에 기록한 바 있었다.
▶ 동백림 사건으로 구속 당시의 윤이상, ▶▶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안데르센의 명작 「성냥팔이 소녀」는 이미 빛을 잃어버린 세상을 향한 소녀의 간절한 사랑과 소망의 빛을 보여준 작품으로 필자의 무의식 저편에 내장되어 있다. 김승옥의 「1964년 겨울」에서는 아내의 시체를 팔아 받은 돈 사천 원을 사내가 화재 현장에 던지고 만다. 물신화로 치달은 현대 사회의 불모성을 극적으로 묘파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필자는 임철우의 한없이 따뜻한 작품 「사평역」에서 존재의 위안을 받는다. 작은 시골 간이역 대합실에 놓인 톱밥 난로가 빚은 작은 동심원은 먹빛 어둠과 순백의 눈송이들과 어울려 눈물겹도록 기막힌 아름다움을 맛보게 된다. "아아, 저건 꿈일 것이다. 아름답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으므로 아름다운 것." 정녕 불은 그러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1999년> ●

◀ 사평역의 배경이 된 전남 나주시 남평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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