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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문화가 있는 풍경 / 문화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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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의 사회적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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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기념식이 넘쳐나고 있다.
이른바 10년 단위로 묶여지는 기념식만 헤아려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4·19혁명 30주년, 베트남 전쟁 종전 25주년(4월 30일), 5.18 광주 민중항쟁 20주년, 6.25 전쟁 50주년, 전태일 사후 30주년 등속이 그러하다.
어쩌면 우리는 이러한 '기념의 이벤트'를 통해 망각의 풍화 작용에 맞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념의 제의를 통해 세월이 흘러도 기억해야 할 역사의 진실을 만나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경우 기념식은 서양의 축제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각종 기념식의 기원이 대체로 '근대의 그늘'에서 형성되었던 탓이다.
위에 나열한 기념식 가운데 전쟁 또는 민권 항쟁과 관련되지 않은 기념식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러나 과연 우리는 역사적 사건을 제대로 기념하고 있는가.
정작 기억해야 할 '기념'의 정신은 실종된 채, 의례적인 '기념식'의 외형만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가치관의 전도 현상은 어느 순간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가령, 5.18 광주 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젊은 유력 인사들의 추문(醜聞)은 "왜?"라는 질문을 좀처럼 던지려 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준 사례였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경우 '기억의 내전'은 망각 충동이 압도적으로 승리의 축가를 부르고 있다.
미완의 혁명으로 기록된 4·19 혁명의 정신은 헌법 전문에 남았지만, 4·19 세대의 주역들이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정치 군인과 '야합'하는 순간 이미 실종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국인의 피와 야만이 함께 스며 있는 베트남 전쟁의 경우 기념의 사회적 차원을 재삼 생각하게 만든다.
지난 해 <한겨레21>이 폭로한 한국군의 양민 학살 문제에 관한 한, 우리 정부는 어떠한 '사죄의 말'도 하지 않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방한한 베트남 작가 바오 닌(B'ao Ninh)은
"만약 당신이 단 하루만이라도 전쟁에 참전했다면 그 '슬픈 경험'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광주 5.18의 경우, 어느 시인의
통렬한 지적처럼 자칫 '항쟁의 문화산업화'의 추세를 따르고 있지는
않은지 심각하게 자문할 때이다.
6.25 전쟁의 경우에도 <아아, 잊으
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식의 맹목적인 대결 의식으로 무장해 기억을
강요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우리는 별로 유쾌하지 못한 역사적 기념에는 특히 인색하다.
그런데도 <뉴 밀레니엄> 기념식에는 엄청난 국가 예산을 탕진했다.
그것도 모자라 표절시비와 시공가능성 논란을 빚고있는 새천년기념
조형물 당선작을 발표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부끄러운'
역사의 기념에서 우리는 반면교사의 진실을 만날 수 있으리라 본다.
차라리 나는 국치일(國恥日) 90주년을 범국민적인 기념의 자리로 맞는 일은 어떨지 제안하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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