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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문화가 있는 풍경 / 문화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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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분단의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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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평론가는 "근대시의 유산(遺産)을 모두 읽는데 겨우 3주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탄식을 토로한 적이 있다.
자신의 모국어를 잃은 채 강요된 '타자의 시간'을 살아야 했던 저
식민지 시절의 문화적 궁핍함을 앞의 말처럼 잘 드러낸 표현이 또 있을까.
하지만 지난 1988년 7월 정부당국의 <월북문인 제4차 해금 조처> 이전에는 과연 어땠을까?
정신 바짝 차리고 근대시의 유산을 읽는데 3주까지 허비할 필요가 없었으라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실제 그랬다.
저 빛나는 1987년의 6월항쟁의 승리가 없었더라면 상당한 시일 동안
우리는 납북 또는 월북 문인의 '불온'한 작품들을 대낮에 볼 수 없었 으리라.
'향수'의 시인 정지용이 그러했고,
'전라도 가시내'의 시인 이용악이 그러했고, '모닥불'의
시인 백석이 그러했을 터였다.
어디 그뿐인가.
카프(KAPF)의 맹장 시인 임화를 비롯해, 홍명희·이기영·이태준 등의 굵직한 획을 그은 소설가와 유진오·김상훈 등의 <전위파> 시인들의 뜨거운 작품들과의 만남을 먼 훗날의 일로 미루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6월항쟁의 '전리품'으로 출간된 조운(曺雲 1900∼?) 시조집은 필자를 비롯한 뭇 문청(文靑)들의 교과서였다.
대표작 「석류」와 「古梅」 등의 작품에서 조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민족주의자의 '격렬한 서정'을 음미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梅花 늙은 등걸 / 성글고 거친 가지
꽃도 드문드문 / 여기 하나 / 저기 둘씩
허울 다 털어버리고 남을 것만 남은 듯." (「古梅」 전문)
시조라는 형식을 통해 강렬한 민족 현실의 적극적 수용을 모색한 조운 시인의 시적 업취 앞에서
필자는 '시조'에 대한 그릇된 오해와 편견을 걷어낼 수 있었다.
과연 '현대시조의 교과서'로 추앙받을 만한 시조계의 거목(巨木)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 무슨 해괴한 문명 파괴적 '작태'인가.
지난 21일 밤, 조운 시인이 1949년 월북했다는 이유로 특정 기관에 의해 기습적으로 자행된 시비(詩碑) 훼손 사건은 시대착오적 '야만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 사태는 작가의 인신을 구속하는 일 못잖은 사자(死者)의 명예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지역민을 비롯한 문인들의 소박한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사실은 차라리 지엽적이다.
지난 6월 15일 역사적인 <남북 공동선언문> 발표 이후 특정 신문을 비롯한 보수 세력들의 준동에도 불구, 점차 고조되고 있는 남북 화해와 교류·협력 분위기에 또 다시 '이념의 망령'을 씌우려는 헛된 시도 앞에서 할 말을 잊을 따름이다.
문인들이 크게 '분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특히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문인들이 최근 북한 동포를 위해 <내복 10만벌 보내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으며, 앞으로 전개될 <남북작가회담>을 통해 <통일문학전집> 발간과 <하나의 문학사를 위한 토론>을 추진하려는 시점에서 불거진 '냉전적 망동'에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문인들의 정당한 요구대로 시비 훼손의 배후 세력으로 지목된 특정 기관의 성의 있는 후속 조처를 바라마지 않는다.
조운 시인은 「구룡폭포」라는 작품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사람이 몇 生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劫이나 轉化해야 금강에 물이 되나 !
금강에 물이 되나 !"
과연 '이념의 망령'은 "몇 生이나 닦아야" 사라질 것이며,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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