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문화가 있는 풍경 / 문화 탐험 << 이전  13  다음 >>
제발, 울리지 좀 마시라

지난 8·15 남북 이산가족 교차 방문보다 더 '잔인한 드라마'가 또 있었을까.
남과 북으로 흩어졌던 가족들이 50년 만에 만나는 장면을 TV를 통해 지켜보며 눈시울이 절로
붉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눈물샘이 터진 것일까. 기막히고 질긴 '핏줄'의 서사에
울고, 누구는 죽고 누구는 만나는 엇갈리는 희비극에 울고, 불과 며칠만에 다시 기약 없는 생이별을
해야 하는 그들의 사연에 울었다.

그러다 나는 속으로 또 울어야 했다. 나의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에 때이르게 이승의 끈을 놓아버린
아버지와 셋째 형에 대한 애증의 감정에 젖어야 했다. 3박4일 동안 나의 마음은 몹시 착잡했다. 대체
누가 지난 50년의 세월 동안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로 하여금 천추의 한(恨)을 품고 살도록 만들었다는 말인가. 언제까지 '서울도 평양도 울었다' '한반도가 울었다'는
식의 저널리즘의 수사를 지면에서 보아야 하는지 막막할 따름이다.

6·25 전쟁이 끝난 직후 어느 시인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남긴 설움을 묵연히 노래했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김수영 「거미」 제3연, 1954.10.5)라고.

'철늦은 거미' 같이 존재도 없이 살아야 하는 존재였던 남과 북의 숱한 이산가족들의 비원은 어쩌면
너무나 소박하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남은 식구(食口)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밥상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눈물은 너무나 익숙해진 우리의 일상 풍경이었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설움'에 입을 맞추며 눈물샘이 '마르고 닳도록'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가. 자기의 땅을 떠난 목적은 조금씩 달랐겠지만 유민(流民) 신세로 전락한 채, 한 많은 세월을 보냈던 도저한 슬픔을 안고 있다. 그런 탓에 대하소설 『토지』와 『아리랑』이 보여주는 세계는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다.

남과 북의 이산가족의 재결합은 당장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이산가족상봉이 자칫 거대한 '눈물의 이벤트'로 그치지 않도록 하려면, 눈물에 대한 '면역과정'
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이산가족간의 만남뿐 아니라 남과 북의 각계 각층에서 서로의 의제를 가지고 상시적인 교류와 협력을 가져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물론 남북 문인의 상징적인 만남이 없지는 않았다. 이번에 북측 상봉단으로 서울에 왔던 오영재 시인과 1991년 당시 판문점 작가회담의 남측 대표의 일원이었던 고은 시인이 만나 즉석에서 남북 합작시를 쓴 일이 그것이다.

그러나 상징은 상징일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감격과 회한이 겹쳐진 분단 체제의
산물로서의 '눈물'이 아니다. '통일 시대'의 일상적 삶에서 겪는 애증일지도 모른다.

남과 북의 위정자들이여, 제발 좀 우리를 울리지 마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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