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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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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일은 네가, 나의 일은 내가, 우리의 일은 우리가! |
이*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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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 않고 편안한 강의입니다. 철학하기가 무엇인지 잘 배웠습니다. 허경 선생님의 다른 강의도 들어보려고 합니다.
마지막 수업에서 가장 인상에 남은 말은, 너의 일은 네가 결정하고, 나의 일은 내가 결정하고, 우리의 일은 우리가 결정한다. 여러 관계에 모두 다 적용가능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일단 가정의 민주주의를 위해 적용해 보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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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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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을 공부하고 있었는지 가르쳐 줌! 귀중한 강의입니다. |
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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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 절대라는 개념이 무의식중에 본질이지 않냐고 무비판적으로 받아서 생각해던 것을 그런 구조를 만든 사람이 따로 있었다는 것, 플라톤이 지배한 프레임이였다는 말은 이제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제시대가 있었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일본적이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학문의 명칭부터 그렇다는 것은 최초로 서양학문을 번역한 그들의 의도나 개념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에 하는지 출발점을 새롭게 변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강의를 들었으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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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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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다... 그리고 아쉽다!! |
심*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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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일로 허경샘의 강의를 2번 밖에 못듣고 강좌가 끝나버렸네요.
아쉽습니다. 특히 마지막 뒤풀이는 꼬옥 참석하고 싶었는데. 비가 오고 허리도 힘들고 ㅠ
허샘의 강의는 일상 삶과 엮어서 그리고 풀어서 얘기한다는게 듣기가 좋고 마음이 확 갑니다. 어떤 강사님들은 마치 딱딱하고 지루한 철학교과서를 읽듯이 얘기해서 졸립고 흥미도 떨어지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아 참 좋았습니다. '시작하는 철학과 윤리학'에서 조금 공부의 재미를 맛 본 것 같은데요 이어지는 다음 단계 강좌가 있으면 또 아트앤스터디로 달려가고 싶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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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지식 암기가 아니라 '태도'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
박*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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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당연히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이름과 사상을 외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허경 교수님 강의를 듣고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태도, 즉 사유의 훈련 자체가 철학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말을 다 믿지 마라'는 교수님의 역설적인 조언처럼, 이제는 남의 생각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저만의 판단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강의를 들은 후부터 출근길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휴대폰을 보는 모습이나 회사 회의에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상사의 말에도 습관적으로 '이것은 대체 누가 정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꽤 재미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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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학 성적은 좋았지만 윤리를 몰랐던 나에게. |
이*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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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윤리 교과서는 달달 외워서 좋은 성적을 받았지만, 정작 윤리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이 강의는 바칼로레아 시험 문제('착하게 살면 바보가 되는가?')를 통해 윤리학의 실제적 의미를 탐구하게 해주었고, 도덕과 윤리학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강의에서 말했던 것처럼, 보편적 도덕을 비판 없이 따르는 도덕주의자가 되지 않고, 기존 도덕에 대해 질문하는 비도덕주의자가 되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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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하지 않고 술술 넘어가는 철학 강의입니다. |
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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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철학 책을 읽으려 시도하다가 번번이 포기했는데, 이 강의는 일상의 언어로 복잡한 개념을 풀어주어서 좋았습니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통해 '당연함'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설명해주신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듣는 내내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강의 자료인 강의록에 밑줄을 긋고 제 생각을 적어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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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성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있었네요. |
정*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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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철학, 진리의 정치사' 강의가 제게는 충격이었습니다. 마라톤 유래를 통해 서양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보편이라는 것이 사실은 누군가의 해석이자 권력의 산물일 수 있다는 통찰은 이제껏 제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모든 지식 체계를 흔들었습니다. 플라톤이 만든 보편/절대라는 프레임에 갇혀있었다는 수강생의 후기가 남의 얘기 같지 않았습니다. 이제 공부의 출발점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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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내용 쉽게 설명하는 내공이 느껴집니다. |
강*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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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12시간 가까이 되는데, 허경 교수님의 위트와 유머 덕분에 편안하게 들었습니다. 특히 철학의 인식론, 존재론, 형이상학, 형이하학 같은 난해한 개념들을 김용옥의 『논술과 철학강의 2』를 기반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해주셔서 큰 그림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만, 내용이 깊이가 있다 보니 몰아서 듣기보다는 교수님이 권하신 대로 일주일 정도 충분히 소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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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길어요. |
한*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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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강의당 두 시간에 육박하는 분량은 좀 부담스럽습니다. 퇴근하고 들으려니 피곤해서 자꾸 딴생각을 하게 되네요. 강의 내용은 좋지만, 1교시당 분량을 좀 더 짧게 끊어서 집중도를 높여주시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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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이해의 불가능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
이*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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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는가?' 편은 니체와 레비나스의 관점에서 이해의 폭력성과 타자의 타자성에 대해 다루는데, 관계에 지쳐있던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소통과 이해의 첫 조건이라는 역설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남을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나의 한계를 먼저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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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처음 시작하는'은 빼야 할 것 같습니다. |
김*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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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입문 강의라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푸코, 들뢰즈, 레비나스 같은 현대 철학자들의 개념까지 심도 있게 다루어서 당황했습니다. 철학에 대한 기초 입문을 원하는 사람보다는, 철학사에 대한 기본 이해가 있는 분들에게 더 적합한 강의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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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울어대는 감동적인 강의였습니다. |
오*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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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후기에서 '침묵은 마음이 움직이는 소리'라는 표현을 읽고 공감했습니다. 교수님의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으려고 생각하는 순간, 강의실에 흐르던 침묵의 진동을 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지식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의 현악기가 울리는 듯한 경험이었습니다. 어려운 강의를 이끌어주신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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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각주로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
박*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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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우리 삶의 각주가 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철학이라는 교수님의 말이 명쾌했습니다. 칸트나 플라톤을 내 삶을 살기 위해 공부한다는 관점의 전환이 핵심이었습니다. 강의를 듣기 전에는 철학의 노예였다면, 이제는 철학을 도구로 사용하는 자유인이 된 기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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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메시지가 삶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
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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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에서 정리해주신 '너의 일은 네가, 나의 일은 내가, 우리의 일은 우리가 결정한다'는 메시지가 제 결혼 생활과 직장 내 관계에 바로 적용 가능한 윤리적 원칙이 되었습니다. 이 강의 덕분에 가정 내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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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공부의 출발점을 잡았습니다. |
윤*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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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려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대학 새내기에게 이 강의는 체계적인 틀을 제공해주었습니다. 인식론과 존재론 같은 철학의 핵심을 잡을 수 있게 되어, 앞으로 다른 인문학 강좌를 듣는데 큰 기반이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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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철학 편견을 깬 강의. |
고*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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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에서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철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을 푸는 것으로 시작한 것이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철학이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 진리가 아니라, 지금-여기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철학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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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위한 철학이 아니었습니다. |
이*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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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처음 시작'하기에 좋았고, 무엇보다 '도덕에 대해 철학하라'는 마지막 가르침처럼, 실제적인 삶의 문제에 철학적 사유를 적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지식이 아닌 실제적 힘을 얻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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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의 내용과 깊이에는 매우 만족합니다. |
신*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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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 교수님의 미셸 푸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서양철학사 전반에 대한 넓은 지식이 어우러진 명강의였습니다. 특히 일제 시대를 거치며 우리가 사용하는 학문 용어 자체가 일본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지적 정체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른 강의도 계속 수강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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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위한 철학하기. |
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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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만 생각하던 철학에 대해 쉽고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좋은 강의입니다.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던 철학에 대한 개념에서 부터 출발하여 어떻게, 왜 철학을 해야하는지 다양한 예를 통해 설명해주시네요.
칸트와 플라톤 같은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는 게 아니라, 내 삶을 살기 위해 이들을 공부한다는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상한 것이 강의를 듣고 나니, 힘이 난다고 해야 맞는건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내가 힘든것이 나때문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생각도 들더군요.ㅎ 여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강의였어요.
이렇게 어려운 강의를 쉽게 설명해주시는 허경선생님의 내공도 대단하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강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속해서 다른 강의도 올라왔으면 좋겠는데.. 전공자를 위한 강의만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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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 제5강 리뷰입니다~ |
마**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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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말에 대한 글의 우위를 이야기하지만
이번 강의는 글로 전할 수 없는 말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강의였습니다.
말은 화살이었고
그 화살들은 날아와 청중 각자의 가슴에 꽂혔습니다.
강의실을 몸소 방문하신 분들과
여기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무언가 삶에
변화를 원했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한편 우리는 이런 생각도 합니다.
나는 정말 변할 수 있을까? 내 삶이 변화할 수 있을까?
작지만 그런 희망으로 우리는 철학에 대해 생각하고
강의도 찾아듣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번번이, 앎은 채워지지만 변화는 내게 요원하다는 생각만이 남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변화의 소리, 철옹성 같던 마음이 움직이는 진동은
침묵으로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강의 중간중간
강의실에는 침묵만이 있었습니다.
그 침묵은 마음이 움직이는 소리였던 것 같습니다.
각자의 마음에 꽂힌 화살이 울어대는 윙윙거리는 진동
오래전 영국의 어떤 철학자는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는 하나씩 현악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사이의 공감(sympathy)이란
타인의 마음속에서 어떤 현이 울릴 때
내 마음속에서도 같은 주파수를 가진 현이 따라 우는 떨림이라고 했었죠.
이번 강의는 리뷰로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그런 떨림이 있는 강의였습니다.
따라서 이번엔
리뷰는 없으며
직접 확인해보시길 권유 드립니다.
녹화된 동영상이지만
그것을 통해
그런 마음의 움직임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감동적인 강의와 그런 떨림을 주신
허경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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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 제4강 리뷰입니다~ |
마**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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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하는 철학과 윤리학
강의자 : 허경 교수님
리뷰어 : 마르세이유
참고문헌 : 논술과 철학 강의(통나무 김용옥 2006)
제 4강 윤리학의 개념지도, 정의와 영역들
“하인만큼 주인을 잘 아는 이는 없다”
니체의 이 말은 하인들, 노예들의 습성을 정확히 들춰내는 명언이다.
하인들은 주인의 행동 하나하나를 살핀다.
그에게 예측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인의 명령에 언제나 준비된 자세로 따를 태세가 되어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노예는 갈수록 영특해진다.
주인의 마음을 읽어야하고 주인이 원하는 것을 해낼 각오와 신념이 있어야하니까
물론 자신이 바라는 바가 아닐지라도 주인이 원하는 것이라면
주인의 작은 행동거지에서, 또 작은 손놀림에서 주인의 의중을 알아차려야만 한다.
그래서 하인, 노예는 자신의 내면에 내재화시키는지도 모른다. 주인을 자신의 마음속에.......
옳고 그름의 판단은 이미 주인이 모두 정해준다.
노예는 그것에 충실히 따르기만 하면 된다.
주인은 이미 자신이 정한 기준에 따라 명령하고 노예는 아무런 판단 없이 따른다.
그것으로 노예로서의 소임은 완수되는 것이다.
노예에게 주인의 명령이 옳고 그르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인은 가끔 선심으로 자신의 창고를 열고
불쌍한 이웃들에게 곡식을 나눠주라고 노예에게 명령한다. 노예는 따른다.
주인은 가끔 노예 스스로 노예 자신의 아들을 죽이라고도 명령한다. 노예는 따른다.
왜냐면? 그는 바로 주인이니까.
주인의 덕은 명령이고, 노예의 덕은 비판 없는 순종이니까.
여기서 주인이라는 말을 다음의 새로운 단어로 바꿔볼 수 있겠다.
기존의 도덕..........
또 노예라는 말 대신 다음의 단어로 바꿔볼 수도 있겠다.
(비판 없이 기존의 도덕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도덕주의자........
언제 정해졌는지, 누가 정했는지도 모르는 규범이 어느새
보이지 않는 명령으로, 규율로, 또 관습으로 변해서는 공동체의 공기 중에 떠돈다. 유령처럼.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늘 그 공기를 마시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독되어버렸다.
어찌 보면 기존의 도덕은 보이지 않는 주인의 음성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기존의 도덕을 아무런 생각이나 비판 없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노예는 되려 ‘도덕주의자’라고 불린다.
그는 시대가 요구하는 규범을 성실히 수행하는 자다!
그는 주인이 집을 비운 후에도 주인의 뜻을 가슴 속에 품고
그것을 이뤄내려는 충실한 노예다.
또 주인이 죽고 나면 새로운 주인을 찾아나서는 영원한 노예이기도 하다.
가끔은 죽은 주인의 음성이 노예의 가슴에 여운으로 남아 말을 하는데
그것을 흔히 양심의 가책, 죄의식이라고도 한다.
지금껏 우리 모두는 이런 노예였는지도 모른다.
니체는 노예들, 그러니까 우리 모두에게
비도덕주의자가 되라고 말한다.
여기서 비도덕주의자란 모든 도덕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아무런 기준 없이, 네 하고 싶은 대로 아무렇게나 살아가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니체가 말한 비도덕주의자란 기존의 도덕에 대해 비판의 칼을 들이댈 수 있는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도덕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태도를 스스로 정하는 자야말로
진정한 비도덕주의자자일 것이다.
“남들이 모두 옳다고 하니까 당연히 옳은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해보고 옳다고 여겨진다면 그렇게 행동하라.“
이것이 비도덕주의자의 덕이 아닐까. 물론 결과적으로는 같은 결론에 도달할지라도, 판단 이전에 자신의 가치기준이 있었느냐 여부는 매우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아이러니한 말이 되겠지만, 이런 의미에서
도덕주의자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선 가장 비도덕적이며
비도덕주의자야말로 가장 도덕적이다.)
이런 난해한 이야기를 정리하며 허경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다.
“도덕이란 그 사회와 문화가 선택한 가치를 우리가 서서히 습득한 결과입니다. ‘왜!’라는 질문도 없이..........
지금까지 우리에겐 역할만 있었고, ‘왜‘는 없었습니다. 따르는 ’나‘는 있었지만 묻는 ’나‘는 없었습니다.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던 도덕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해보는 것, 이것이 바로 도덕철학이며 곧 윤리학입니다.
모든 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해갑니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예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것들을 현실화시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기이식, 인간복제, 생태계 문제 등등........ 이런 과정은 우리의 기존 인간관, 윤리관 역시 늘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함을 잘 말해줍니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의 주어진 가치관이 이제 더 이상 지금처럼 무비판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시금석이자, 축복입니다.
철학의 ‘과학 및 윤리’에의 적용이란 바로 주어진 전제의 안팎에서 생각한다는 철학함, 철학행위의 적용입니다. 아마도 바로 이런 깨달음이 철학이 ‘과학과 윤리의 만남’에 기여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일 것입니다.“
허경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을 하시며 강의를 끝내셨다.
“도덕에 대해 철학하라!”
이 말은 비도덕주의자가 되라는 니체의 말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첫 시간은 주로 이전 시간에 다 하지 못한 내용의 보충이 있었습니다. 실체 개념과 철학의 분과와 영역에 대한 소개와 설명이 있었습니다. 이제 큰 두 개의 단원 중 하나가 정리되고 남은 하나 윤리학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죠. 강의를 통해 늘 새로운 배움을 얻게 됩니다. 또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어렴풋한 지식이 새롭게 수정되어감도 느낍니다. 리뷰어의 능력부족으로 정리가 미진하고, 허경 선생님께서 말하려던 핵심에 다가가지 못한 리뷰가 아닐까 염려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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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 제3강 리뷰입니다~ |
마**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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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하는 철학과 윤리학
강의자 : 허경 교수님
리뷰어 : 마르세이유
참고문헌 : 논술과 철학 강의(통나무 김용옥 2006)
제 3강 철학, 진리의 정치사
아주 오래전
고대 동방은 화려하고 장엄한 문화를 꽃피우고 있었고
그런 동방 전역을 통일한 페르시아는
좁은 바다너머 한줌도 되지 않는
척박한 땅덩어리에 불과한 그리스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만약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대결을 21세기 도박사들이 보았다면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리스에게 판돈을 걸진 않았을 것이다
전력의 차는 수십 배....... 그리스의 일방적 열세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제우스의 도움이었는지 마라톤평원에서 그리스는 극적인 승리를 거둔다.
승전보를 한시라도 빨리 아테네에 전하기 위해
한명의 그리스 병사가 마라톤평원에서 아테네까지 쉬지 않고 달려갔고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헐떡이는 숨으로 승전을 알린 후 숨을 거두었다
그로부터 2500년 이상이 더 흐른 후
그 병사의 질주는 근대 올림픽에서 마라톤이라는 경기로 부활되었다.
어찌 보면 근대 올림픽의 부활은
제국주의 열강으로 성장한 유럽이
세계지도의 많은 부분을 그들 국기의 색깔로 덧칠하고 난 뒤
그 지도를 바라보며 느꼈을 자부심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자랑스러움은
오래전 페르시아로 대표되던 동방에게
최초의 결정적인 카운터펀치를 날리며 승리를 거둔
그들 조상들의 마라톤 승전을 떠올리게 한 것인지도.......
그럼 여기서 한 번 생각해보자.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비교!
우리가 고대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무엇일까?
아마도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민주주의, 제우스, 아폴론 등등
고귀한 철학과 세련된 정치체제,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신화의 신들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번엔 페르시아를 한번 생각해보자.
페르시아 고양이, 양탄자, 삼천궁녀처럼 왕의 후원에 넘치는 후궁들과 궁녀들.....
뭐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지 않을까?
고상한 그리스의 단상과 비교해보자면 수준이 떨어지고
어찌 보면 천박한 느낌마저 들지 않나..........
또 이런 상상을 한번 더 해보자
만약 그 전투에서 페르시아가 승리했다면?
인류를 이끌어갈 그리스의 사상과 문화, 예술, 인간으로서의 고귀한 품격 등등
이 모든 것은 그날로 자취를 감춰버렸을 것이고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열등한 정신적 성장에 그치지 않았을까 걱정되지는 않나?
우리는 누구의 강요도 없었지만 은연중
그리스의 승리를 다행으로 여기고, 페르시아의 자만을 비웃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스의 승리에 의해 인류문명의 화려함은 다행히도 보존될 수 있었다는 안도감
이런 우리는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의 분전을 응원하고,
영화 알렉산더에서는 무식한 페르시아전사를 도륙하는 마케도니아 군단에 환호한다.
이에 대해 허경 선생님은 이런 해석을 내놓으셨다
“왜 이런 생각들이 가능해졌을까요?
그것은 오늘날의 세계란 것이 그리스를 요람으로 성장한 유럽을 위시한 서구 문명이 구성한 세계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한국의 근대화란 것도 서양화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요.
물론 이런 서구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 혹은 무조건적인 비판을 전적으로 수용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말하려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피지배자들은 대체로 지배자들의 담론을 스스로 내재화시키고 내면화시킨다는 엄청난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진리라 여겨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끝내 자율적으로 따릅니다. 마치 영원하고 불변하는 진리인양 말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역사적 우연, 시대적 상황, 지역적 특수성은 어느새 잊히고, 지배자의 담론은 시대를 뛰어넘는 진리라 여겨집니다.
(................. )
따라서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모든 단어 중 처음부터 보통명사였던 명사는 없습니다. 모든 보통명사는 고유명사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역사적으로 곧 정치적으로 구성된 것입니다. 전혀 예외 없이.........
어찌 보면 권력은 해석하는 권력입니다. 그리고 그런 해석의 궁극적 틀은 ‘보편성’이라 불리는 것들이죠. 어떤 특정 시대, 특정 공간의 관점을 보편적인 관점과 해석으로 격상시키는 권력!
끝내 권력이 낳은 해석은 보편성이라는 울타리를 치게 만들고, 그 울타리 밖에 소외된 모든 것들에게 ‘비정상’ ‘당연하지 않은 것’ ‘이상한 것’ 등등의 이름표를 붙이는지도 모릅니다.
또 울타리 밖의 것들이 울타리 안에 대해 대항하는 것을 ‘섭리’에 대한 반항으로 단죄합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 정한 보편성을 완벽한 진리라 여기며, 거기에 순응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익히 들어와서 익숙해져버린 것에 너무 익숙해졌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을 무언가에 넣어두었다가, 다음에 그것을 보게 되면 이미 넣어둔 것만을 꺼내 보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이미 누군가 정해준 해석과 관점의 내면적 반복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이, 실은 권력이 만든 해석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그래서 그 보편성이라 불리는 것이, 모두의 보편이 아니라 단지 누군가의 보편일 수 있음을 의심해보는 태도. 이것이 철학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허경 선생님은 ‘철학의 첫 질문이자 마지막 질문’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며 강의를 마치셨다.
“이것은 대체 누가 정한 것인가!”
- 두 시간의 강의 중, 두 번째 시간은 서양철학사 전반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철학사에 등장하는 무수한 개념들, 터미놀로지! 그 복잡한 내용이 단 한 번의 설명으로 큰 그림이 잡히는 강의였습니다. 실체, 실재, 본질, 현상, 형상, 질료, 보편, 선험, 후험 등등의 어려운 단어들이 잘 짜여진 그림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또 서양철학사 2000년 이상을 지배했던 플라톤주의에 의해 괄시받던 현상과 감각을 위시한 이성의 반대편에 섰던 단어들의 부활까지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개인적으로도 앞으로의 제 철학수업에 유용한 총탄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리뷰어의 능력부족으로 요약이 미진하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핵심에 다가서지 못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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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 제1강 리뷰입니다~ |
마**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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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하는 철학과 윤리학
강의자 : 허경 교수님
리뷰어 : 마르세이유
참고문헌 : 논술과 철학강의 (통나무, 김용옥 2006)
제 1강 철학에 대한 오해들
철학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를까?
일단 너무 광범위한 철학 자체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철학자 하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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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우리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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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플라톤,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샤르트르, 푸코, 들뢰즈 등등 서양사람, 그것도 서양여자가 아닌 서양남자, 게다가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동시대인이 아닌 오래전 살다가 이미 죽은 서양남자!
(왜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 한나 아렌트, 도올 김용옥을 떠올리는 사람은 가뭄에 콩나듯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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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지 않은가! 어떻게 우리는 철학자에 대해 저런 고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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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닐까?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접했을 때
우리는 누군가의 기준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또 거기서 생겨난 하나의 선입견이 철학에 대한 우리의 굳건한 이미지를 만든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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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일제 식민지시대 전 기간을 통해, 일본학계가 철학을 바라보던 시선을 우리는 아무런 비판도 없이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는가! 이것이 이후 철학에 대한 우리의 관점과 선입견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또 그것이 오늘날까지 계속 유지되어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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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런 시선이 모두 부정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여기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철학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하는 결과 자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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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을 접했을 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우리의 태도일 것이다. 경험을 미리 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높은 안목을 가지고 있으리라 예상되는 누군가의 견해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이 아닐까. 놀랍게도 거기에는 우리 스스로의 판단은 거의 들어가 있지 않다. 우리가 가진 이미지 속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자신의 판단만은 함량미달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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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번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이 향후 어떻게 변모할지, 얼마나 성장하게 될지를 말해주는 그 사람만의 깊이는 그 사람의 태도에 달려있다. 즉 잘 알지 못하는 것, 익숙하지 않은 것, 낯선 것을 접했을 때 그 사람이 갖게 되는 태도야말로 그 사람의 가능성의 전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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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공부란 우리가 배우는 것, 다시 말해 배우는 내용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배우는 내용과 거기에 대해 우리가 갖는 반응과의 관계야말로 진짜 공부가 아닐까.
즉 외부에서 들어온 내용과 그것에 대한 우리의 판단 사이에서 그 둘에게 대화를 시키는 것, 그것이 진정한 공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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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도 마찬가지다.
이미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기준,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항상 누구나 옳다고 여기는 진리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은 어쩌면 진정한 철학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철학은 너무도 당연해서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해 그 근거와 이유를 묻는 사고과정이다. 모두가 옳다고 하기에 옳은 것이 아니라, 내가 옳다고 여길 수 있기에 옳은 것, 그런 나 자신만의 판단을 연습해가는 과정이 진정한 철학수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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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도(공간)도 달력(시간)도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라고 이야기했던 푸코의 말은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무게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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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얻은 늙은 선사 앞에서 제자가 질문하는 다음의 선문답 장면은 우리에게 좀 더 생각할 여지를 준다.
“스승님! 진정한 진리란 과연 무엇입니까!”
“네가 오줌이 많이 마려운가보구나! 그런데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대신 눠줄 수는 없지 않겠느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제자는 스승의 저 말씀을 통해 그가 그렇게 원하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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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강좌에서 우리는 모두 오줌 마려운 저 제자인지도 모른다.
허경 교수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시며 첫 강의를 마치셨다.
“내 말을 다 믿지 마세요. 저는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알려줄 수도 없고, 실은 불가능합니다. 제가 하려는 것은 내용 자체가 아니라 단지 여러분이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과 판단을 향한 길 위에서 함께 그런 연습을 하기 위한 조금의 도움이 되고자 할뿐입니다.”
이 말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 한 구절을 떠오르게 했다.
“나의 제자가 되지 마라. 오히려 나를 버려라. 나를 버릴 때에만 나는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항상 제자로 남는 제자는 스승에게 제대로 보답한 것이 아니다. 스승은 ‘제 2의 자신’이 되길 바라는 제자보다는 스스로 생각하는 제자를 바란다는 니체의 말.........
철학의 내용을 머릿속에 일방적으로 이식시키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태도와 방법을 생각해보자는 허경 교수님의 말씀 역시 니체의 저 말과 일맥상통하리라.
- 이글은 허경 교수님의 첫 강의를 리뷰어 나름대로 정리해본 것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제외하고는 화자를 허경 교수님으로 가정하고 써본 것입니다. 리뷰어의 능력부족으로 곡해한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밝혀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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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 제2강 리뷰입니다~ |
마**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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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하는 철학과 윤리학
강의자 : 허경 교수님 리뷰어 : 마르세이유 참고문헌 : 논술과 철학 강의(통나무 김용옥 2006)
제2강 철학(함)이란 무엇인가?
아주 오래전 방주를 다 완성한 노아에게는 한 가지 말 못할 고민이 생겼다. 그것은 동물들이 제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까하는 단순한 고민이 아니었다. 그의 가장 큰 고민은 혹시라도 같은 종의 동물이 한 쌍씩이 아니라 여러 쌍이 동시에 도착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하는 결정의 문제였다. 방주의 제한된 공간 때문에 모두를 태울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살고 싶어 먼 길을 돌아온 양들(sheep)이 다섯 쌍씩이나 동시에 도착한 것이다. 이제 노아는 결정해야만 했다. 어떤 쌍을 태우고, 어떤 쌍은 사지에 남겨두느냐. ↓ 이때 노아의 결정에는 노아가 가진 ‘양’에 대한 가치관이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노아가 생각하는 가장 양다운 양, 가장 바람직한 양을 선택해야했고, 나머지 양들은 배제해야만 했으니까. ↓ 노아의 등 뒤에 있는 방주는 그에게 선택의 거대한 권한을 준 것이다. 양들의 생사여탈권은 이제 노아의 가치관과, 그의 짧은 손짓에 달렸다. 어찌 보면 권한, 또는 권력이란 이렇게 선택이라는 미명하에 무언가를 배제하는 막강한 힘이 아닐까? ↓ 여기서 재밌는 상상을 한번 해보자. 만약 당시에 대부분의 양들이 오늘날처럼 하얀색의 털이 아니라 검은색 털을 가졌고, 또 노아가 살던 시절에 가장 유행하던 옷감의 컬러가 하얀색이었다는 상상 말이다. 그리고 그 다섯 쌍의 양들 중 4쌍은 당시로서는 극히 일반적인 검은색 털의 양이었고 단 한 쌍만이 특이하게도 알비노 증후군 때문인지 하얀색 털을 가진 희귀한 양이었다고 상상해보자. ↓ 고심 끝에 노아는 희귀한 양 한 쌍을 방주에 태웠다. 하얀색 양을! 더 상품 가치가 있는 하얀색 털이 그의 결정을 좌우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홍수가 끝난 후 방주 덕분에 무사히 살아남은 한 쌍의 양들은 이제 무한번식을 시작했고 오늘날 우리가 보게 되는 가장 정상적이고, 가장 당연하고, 가장 일반적인 모든 양들의 조상이 되었다. 그지없이 순결한 백색의 양들! ↓
인간의 역사란 어찌 보면 연속된 흐름이라기보다는 고대, 중세, 르네상스, 고전시대, 근대로 나뉘어 분절된 불연속적 흐름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불연속점들마다, 각각의 홍수(시대적 변화)와, 저마다 다른 방주(권력)와, 또 그 시대의 권력자인 모두 다른 각각의 노아들(가치관의 입법자)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무언가를 배제하고 무언가를 선택했다. ↓ 그런 누군가의 선택과 배제는 다음 불연속점이 올 때까지 한 시대를 지배하는 ‘양’(그 시대의 선택적 인식)을 만들어냈다. ↓ 그리고 그 시대 속에서, 그 공간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 모두는,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선택하고 배제한 가치관에 파묻혀, 그것이 우리시대에 한정된 부분적인 인식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가치관을 언제 어디서나 통용되는 만고불변의 진리라고만 믿게 되었다, 마치 오래전 더 압도적이었던 검은 양들의 존재는 모두 잊혀져버리고, 하얀 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은, 역사상 가능했던 무수한 당연한 것들을 모두 제치고 왕좌에 오른, 단하나의 선택된 당연함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란 마치 노아의 선택처럼 배제의 과정이기도 했다. 의자 뺏기 놀이처럼 ‘당연함’이라고 쓰인 의자 하나를 향해 무수한 당연함이 달려갔고, 그 중 단 하나의 당연함이 그 의자를 차지하는 순간, 모든 경쟁자들, 그러니까 다른 모든 당연함은 ‘당연하지 않음’이 되어버렸다. 여기서 ‘당연함’ ‘당연하지 않음’이라는 단어 대신 ‘정상’ ‘비정상‘이라는 단어를 대입해도 마찬가지 의미가 될 것이다. ↓ 그 속에서 어느덧 우리는 그 시대가 말하는 ‘당연함’을 기본전제로 깔고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다시 말해 그 시대의 당연함은 우리 사고의 대전제가 돼버린 셈이다. ↓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철학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런 대전제, 그러니까 누구나 당연하다고 여겨서 의심의 여지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고 여겨지는 당연함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즉 대전제에 대한 탐구야말로 철학의 시작이다. ↓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대전제는, 한낱 그 시대가 만들어내고 구성해낸, 그래서 그 시대에만 통용되는 편협한 시각일 수 있다는 생각........... 이것이 철학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주어진 전제들의 안팎에서 합리적으로 그 근거와 이유를 짚어가며 생각하는 태도가 철학인지도 모른다, 어떤 시대에 국한된 인식이 그 시대가 만든 인식의 결과물, 즉 하나의 생산품(product)이라면, 진정한 철학이란 마치 높은 곳에서 인형의 집을 들여다보듯이 모든 시대의 불연속점들의 한계를 벗어나 좀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보며 생각해보려는 과정자체다. 이것은 무언가 주어진 틀의 밖으로 발을 한 걸음 내딛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닐까? ↓ 다시 말해 철학은 누군가 만들어낸 결과인 생산품(product)을 소비하는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관점과 개념과 해석을 생산해내는(produce) 과정일 것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부분적이며 편협한 시대가 선사한 색안경을 벗어던지는 용기이기도 하다. 처음 선글라스를 던져버릴 때 우리 눈에 가해질 강렬할 햇빛의 통증도 어느 순간 가장 밝은 인식의 빛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철학함에 있어 그것을 바란다. ↓ 그리고 이런 철학함의 과정은, 대전제를 당연히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대전제가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실은 누군가가 만들어낸 우연의 결과라는 사실! 그리고 그런 우연의 구성물을 지금껏 우리는 필연으로 여기며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끝내 스스로 그것을 내면화했었다는 사실. ↓ 다시 말해 대전제에 대한 탐구는 누군가가 말해주는 기준에서 벗어나 나 스스로의 기준을 갖는 진정한 철학함의 출발과 같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불변하는 진리에 대한 추구가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에 대한 고찰로부터 시작된다, ↓ 허경 선생님은 강의를 끝내며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우리 대부분의 생각은 자신을 노예로 만드는 생각인지도 모릅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내 생각이라고 여기던 것이, 실은 그 기원이 잊혔을 뿐 남들의 생각과 기준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누군가 만들어낸 생각의 결과물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노예가 되지 않을 창조의 과정입니다. 다시 말해 모든 철학은 철학함이며, 철학함은 우리가 철학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 우리 삶의 각주가 되게 만드는 것이며, 그럴 때에만 철학은 빛을 발합니다.”
-이상으로 허경 교수님의 제 2강을 리뷰어 나름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리뷰어의 능력부족으로 곡해한 내용이나 미진한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
-뒷풀이-
생각의 틀을 바꾸게 한 허경 교수님의 멋진 강의가 끝난 후 수강자 분들 모두가 참석한 뒷풀이가 있었습니다. 간단한 음료와 맥주에 다양한 이야기가 곁들어진 정겨운 2차였습니다. 강의 시간에 다 말 못한 이야기와 현실적 문제들에 대한 허경 교수님의 남다른 통찰이 빛나는 자리였습니다. 또 다양한 분야에서 현실을 접하는 다양한 차이를 가진 분들이 터놓고 이야기하는 의미 있는 모임이었습니다. 서로 상이하지만 그 밑을 흐르는 공감으로 이어진 자리였습니다. 한 시대를 같이 호흡하는 철학자가 있고, 또 그분과 이렇게 같은 자리에서 이야기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은 제 개인적으로도 잊지 못할 경험이었습니다. 교수님과 수강자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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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첫 강의~ |
김*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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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허경 선생님 첫 강의~ 역시 기대했던 만큼 멋진 강의였습니다
처음 강의라 선생님이나 학생이나 좀 서먹할 수도 있었지만 허경 선생님은 특유의 위트와 유머로 긴장을 풀어주시면서 추운날 난로를 켜둔 작은 방안에 모여 옹기종기 듣는 이야기 같은 아늑한 느낌을 자아내셨습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자상한 은사의 음성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강의 분위기는 최고였구요.
기억 나는 말씀 1. 잘 모르던 것, 낯선 것을 접했을 때 그 사람의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2.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도 시간도 없는 '철학 그자체'가 아니라 지도와 달력을 잃지 않은 철학이다. 즉 현실에 발붙인 철학이다.
다음 강의도 벌써 기대됩니다! 열정적인 강의를 해주신 선생님과 경청하시던 학생분들 모두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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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강좌보기의 오류 - |
윤*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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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보기의 오류 문제 : 강좌목차에서는 분명 1교시에서 4교시까지 있는데, 정작 강의보기에서는 1,2교시만 볼 수 있습니다. 편성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꼭 확인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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