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재 한국영화와 과거 친일행위의 연관성 문제

친일적 영화 행위가 한국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그 결과로 현재 어떤 부정적인 현상이 온존해 있는가? 친일행위에 대한 비판이 과거 응징적 성격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면, 앞의 질문은 영화계 친일행위를 연구하는데 언제나 선행되어야 할 질문이다. 사실 현재 한국영화의 문제점은 친일행위의 문제보다는 상업예술주의 이데올로기와 그 세력 확장이 일차적인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이는 친일적 영화 행위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거나 그것으로 인한 영향이 전혀 없었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60여년에 이르는 동안 한국사회의 지각변동에 의해 친일적 영화 흐름이 영화계에서는 그 맥을 상실하게 되었고, 다른 영화환경적 요소(할리우드식 운영, 문화산업의 확대, 한국인의 의식 변화 등)가 더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1) 따라서 친일행위의 성격을 규명하는 문제는 이러한 현실적 변화와 직접적으로 결부된 매듭을 찾고 푸는 실천적 행위와 연관될 때 더 의미를 가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

2. 영화계 친일행위의 전말

영화계의 친일행위는 비교적 늦게 나타났다. 1938년 서광제의 〈군용열차〉조차 반(半)친일영화로 볼 수 있으며, 1940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 역시 일제의 직간접적인 탄압 아래 이루어진 측면이 강하다. 이 사실은 당시 영화인들이 대중적 차원에서는 지명도가 높았을지 모르지만 사회적 영향력에서는 그 영향력이 극히 미약했거나, 아예 처음부터 식민지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영화가 서구 열강의 한반도 침탈과 함께 들어온 문물이며, 지극히 진보적인 매체인 동시에 지극히 보수적인 매체라는 사실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구 소련에서 볼세비키 혁명을 대중적으로 전파할 때 영화가 했던 역할과, 할리우드 영화가 미 제국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다민족간의 통합을 꾀한 체제지향적인 산물이라는 것을 상기하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식민지 한국에서 영화는, 카프 영화인 등 일부 영화인들에게는 진보적 매체였을 것이고, 대다수 영화인들과 관객들에게는 보수적인 매체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식민지 말기로 접어들었을 때 영화가 보수적인 매체로 강제되거나 영화인들이 자발적으로 친일을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1) 소극적인 조직적 대응

하지만 이런 현상은 저절로 생성된 것이 아니라 일제의 제도적, 강압적 행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탄압의 표면적인 형태는 검열과 조직이었다. 1926년에 제정되고 1928년에 개정된 「활동사진 필림 검열규칙」을 1934년에 더욱 강화하여 「활동사진 취체규칙」을 시행했는데, 1940년에 들어와서는 그것들을 집대성하고 조선을 자신들의 침략전쟁의 도가니로 완벽하게 몰아넣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서 「조선영화령」을 공포, 실시했다. 일제는 이 법령을 공포하기 1년 전부터 각종 매체를 통해 이를 예고했으며, 내선일체와 식민지 침략전쟁에 부응하는 영화제작에 비협조적인 영화인들의 정지작업에 나섰다. 이것이 바로 관제 조선영화인협회의 발족이었다. 당시 작품제작과 관련해 각 영화사에 소속되어 있던 영화인들을 하나의 울타리 안으로 묶어서 통제가능하게 만들고 이에 불응할 경우 어떠한 제재라도 취하겠다는 것이 조선영화인협회의 조직 목적이었다.2)
1939년 8월 16일에 발족한 조선영화인협회의 구성원은 『동아일보』에 의하면 이사 이창용, 서광제, 안석영, 안종화, 이명우, 감사 김성균, 평의원 방한준 등으로 되어 있고, 다른 기록에는 회장 안종화, 상무 이사 안석영, 이사 이규환, 서월영, 이명우, 상무위원 김택윤, 평의원 서광제, 최인규, 양세웅, 김한, 이필우, 김정혁 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941년 2월 개선된 임원진은 이사장 안종화, 이사 안석영, 왕평, 이명우, 양세웅, 김일해 등으로 되어 있다. 목적은 일본 영화의 일익으로써 조선 영화예술의 향상 발달을 도모하여 조선 문화에 기여할 것을 목적으로 하며 아울러 내선일체의 실을 나타내기를 기함이라고 표명되어 있는데, 이는 1936년부터 이루어진 영화계에 대한 압박3) 등에 대해 일면 순종하면서도 바뀐 정국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조직적으로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사가 1938년에 조선총독부가 충정로에 세운 부민관에서4) 최초의 영화제를 연 것도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2) 무위로 그친 조직적 대응

조선영화인협회는 조직 후 일본영화인연맹에 가입했으며, 영화인들의 자격을 심사하는 영화인 기능심사위원회을 설치하고, 영화인 등록 의무규정을 만들고 기능증을 발행하거나, 영화 강습회 개최, 중일전쟁 전선에 보내는 위문품 모금 등의 일을 하였다.5) 이 기능심사위원회는 1940년에 일본과 만주의 영화령을 본떠서 만든 「조선영화령」 제8조 2항 3호의 규정에 의거하여 영화인들의 자격을 심사하는, 한마디로 주구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이 일은 안종화, 이규환, 안석영, 김한, 서월영, 양세웅 등 조선영화인협회의 임원들이 거의 맡았다. 이 단체의 중차대한 역할을 본다면 이들은 일제가 가장 신뢰했던 인물들이며, 조선영화인들의 생사권을 쥐고 있었던 권력자들이었다. 또 조선영화인협회의 주요 임원 가운데에는 제작자들도 있었는데 이들 중 일부는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를 차렸다. 이는 일제의 강요에 의해 1941년 조선 영화사들과 일본 영화사들이 통합된 것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자산 평가에 대해 일제에 저항하기도 했지만 결국 일제가 원했던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로 순항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조선영화인협회는 해산되었고 이 협회의 임원 등은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의 직원으로 편재되었다. 즉 일제의 탄압에 수동적으로 저항하는 동시에 적극적으로는 변화된 정국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또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 위에 황도문화협회 소속 영화기획심의회를 설치하여 영화 제작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총괄하여 감시했다. 이후 이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는 국책 선전과 교육 계발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굴욕적인 설립 취의서를 제출하고 임원의 임명권을 총독부에게 넘겨주면서까지 설립된 조선영화배급협회에 흡수되고 만다.

3) 개별적 대응 혹은 처세

이처럼 조직적 차원에서 일제의 강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려고 했던 친일적 영화인들의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대신 개별적으로 영화 제작역량이 입증되었던 부류들은 작품 제작으로 자신들의 활로를 모색하게 되는데 그것은 대략 다음과 같다. 1938년 서광제의 〈군용열차〉 이후 대동아 전쟁에 지원병으로 참가한 한 친구가 도피한 친구를 설득하여 전선에 데려간다는 내용의 〈지원병〉(안석영, 1940), 같은 류의 작품에 속하는 〈승리의 뜰〉(방한준, 1940), 〈이제 나도 가련다〉(박기채, 1941) 등이 있고, 이 외에도 〈우러르라 창공〉(김영화, 1943), 초등학생들까지 전쟁에 동원하고자 했던 〈태양의 아들들〉(최인규, 1944), 내선일체를 권장한 〈사랑과 맹세〉(최인규, 1945), 본격적인 전쟁영화이며 조선 청년들을 전쟁터로 몰아넣는데 일조한 〈조선해협〉(박기채, 1943), 〈병정님〉(방한준, 1944), 〈가미가제 특공대〉(최인규, 1945) 등이 있다. 1940년부터 1945년 사이 제작된 영화 26편 중 친일영화로 분류하기 모호한 영화 8편을 뺀 나머지 18편은 안석영 2편, 최인규 5편, 방한준 4편, 신경균 3편, 박기채 2편 등 주로 신진 영화인들이 작품을 감독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외국 유학을 갔다왔거나 당시 영화계의 중추적인 신인들이었다.

4) 해방 후의 행적

이상에서 본 대로 주도적인 친일 영화인들은 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당시 영화계의 주도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당시 영화인들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보다 엄밀한 진단을 위해 몇몇 주도적인 이들의 행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안종화 : 1920년대 중반부터 조선 영화계의 주도적인 인물이었으며 감독, 배우 등을 했다. 일제 말기 조선영화인협회가 생기기 이전부터 일본의 국책영화단체인 제일영화협단과 같은 어용단체를 모방하여 국책영화의 촉진에 기여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조선영화협단을 조직했으며, 이후 조선영화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는 한편 「신체제에 순응하는 조선영화의 장래」(매일신보)라는 친일적 글을 5회에 걸쳐 연재하였다. 해방 후 조선영화동맹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이후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 예술대의 전신) 학장, 대한민국 문화훈장, 서울시 문화상, 문총(예총의 전신) 최고위원, 예술원 회원 등의 수상과 경력을 가졌다.

* 안석영 : 카프 맹원이었던 안석영은 안석주라는 이름으로 신문에 노동계급 투쟁의 만평을 그리다가 전향한 후 영화계로 들어와서 안종화 밑에서 여러 요직을 거쳤고, 〈지원병〉이라는 본격적인 친일영화의 첫 장을 열었다. 해방 후 조선영화동맹에 대응하는 소규모 써클인 대한영화협의회를 조직했으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작사하기도 했다.6)

* 서광제 : 카프 영화계를 주도했던 인물 중의 한 명으로 카프 주류인 임화, 강호 등에 대항하여 신흥영화동맹을 만드는 등 분파적인 행위를 하였으며, 1938년 재빨리 〈군용열차〉를 만들면서 전향을 하였고, 이후 조선영화인협회, 영화인기능심사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해방이 되자 조선영화동맹 서울시 지부 서기장을 맡는 동시에 좌익계 신문의 편집장도 맡았다. 이후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7)

* 최인규 : 일제 말기 대표적인 감독으로서 조선영화인협회 등에서 요직을 맡았고, 친일영화를 전문적으로 제작하였다. 해방 직후 〈자유만세〉라는 항일영화를 만들어서 인기를 누렸으며, 그 밑으로 신상옥 등 쟁쟁한 감독을 두었고, 전쟁 당시 피북된 후 소식이 없다.

* 이규환 : 〈임자없는 나룻배〉(1938)의 감독으로 유명하고, 그 유명세로 일제 말기 친일영화 단체의 주요 보직을 맡다가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의 설립을 전후하여 만주 등에서 활동했다. 해방 후 역시 주요한 영화인 중의 한 명으로 행세했고, 〈춘향전〉(1955)으로 공전의 흥행 성공을 하였으며, 1974년 후배 영화인들이 모금한 자금으로 만든 〈남사당〉을 끝으로 공적인 활동을 끝마쳤다.

* 친일영화를 만든 신진 감독들 : 대개 해방 직후 평범하지만 한국영화계를 이끌어가는 주도적인 감독으로 부각되었다.

3. 영화계 친일행위의 논리와 성격

이상으로 볼 때, 친일 영화인들의 활동은 조직 결성과 작품 제작으로 구분된다. 그들이 항일 활동에 가담한 적도 없고 처음부터 대중적인 상업영화 제작에 주력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조직결성 행위는 일제에 협력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에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자발성이 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조선영화인협회와 그 전에 안종화가 주도한 조선영화협단 등은 변화된 정국에서 다른 영화인들이 일제에 충성하기 전에 먼저 지위를 선점하려고 했던 행위라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정국이 시시각각 변하고 그들의 용도(사회적 명망성, 작품 제작능력 등)가 수명이 다하자 일제로부터 공식적인 사회적 활동의 측면에서는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일제가 요구했던 것은 선전선동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당시 신진 영화인에 속했던 감독들로 거의 충원되었다(이는 나이를 떠나 이미 기성 영화계에서 활동을 했던 안석영 외에는 아무도 감독을 하지 않았으며, 서광제 같은 이는 1938년에 이미 작품을 했지만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제 말기 작품을 만들었던 감독들인데, 이들은 당시 대개 30대 초반이었다(최인규 1910년생, 방한준 1905년생, 신경균 1912년생). 이들은 대개 한일강제병합 이후에 태어나 삼십 년을 살았던, 그야말로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친일과 비친일의 구분이 없었을 수도 있다. 따라서 그러한 내면의 심리적 동기를 고려한다면 이들이 만든 적극적인 친일영화는 자발성이 아니라 다른 동기의 부재 가운데 이루어진 자동성의 차원에서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러한 자동성은 해방 직후에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최인규가 해방이 되자 버젓이 〈자유만세〉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안종화가 교육계과 사회의 요직을 두로 거칠 수 있었던 저간의 사정과 연관이 있다. 자발적 친일행위가 아무런 반성적 제재를 받지 않았던 사회에서 자동적 친일행위는 더욱 비사회적, 비민족적 행위를 양산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것은 최인규의 제자라고도 불리는 신상옥 감독이 남한에서 박정희 정권과 밀월 관계를 유지했으며, 이후 월북, 탈북을 거듭한 사실에서도 그 맥이 이어져 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적어도 2000년도까지 한국영화인협회 등에서 요직을 맡으면서 극우적인 행위, 무염치한 행위, 체제유지적 행위 등을 일삼아 온 한국 기성 영화인들의 행위와도 맞닿아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발제자는 글머리에서 현재 한국 영화의 문제점은 친일행위의 문제보다는 상업예술주의 이데올로기와 그 세력 확장이 일차적인 문제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하면서, 친일 행위가 현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자문한 바 있다. 이런 자문에 구체적으로 답하기 위해서는 많은 지면이 필요하지만, 상징적으로 압축하자면 다음과 같다. 1960, 70년대 당시를 대표하던 한국 영화인들은 한 번도 정권의 탄압에 저항하지 못했다. 이는 한국 영화계의 정신적 주춧돌이 친일 영화인들의 영향력 아래 놓여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 영화계는 자본이 영화산업에 눈을 돌리기 이전까지, 소수의 젊은 영화인들이 개혁적인 행위를 하기 이전까지, 아무런 자기 문화 작동장치를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한국영화계의 무분별할 정도의 상업적 획일성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러한 발전조차 더디게 된 정치적 원인은 친일 행위를 했던 영화인들이 한국 영화계를 주도했던 사실에 있다는 것이다.

* 각주

1) 현재 한국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존속하고 있는 친일 행위의 부정적인 현상은 각 분야만을 놓고 본다면, 정치와 문화 일부분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치계와 문화의 일부분 특히 문학 등에서 친일의 흔적을 발견하고 청산하는 것은 사회 전체에 새로운 시각과 발전 기회를 제공할 것이며, 덩달아 여러 분야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본다.
2) 졸고, 「친일영화인의 행각」, 『우리 영화의 몽상과 오만』, 민글, 1994, 249쪽.
3) 일제는 1936년에 국산영화(일본 및 조선영화)의 의무상영일수를 1/3 이상으로, 1937년에는 1 대 1로 바꾸는 등 1937년 중일전쟁의 시작과 함께 필름 가격 20% 인상, 수입영화 세금 20% 인상한 후 일본에서 조선으로 들여올 때 다시 20% 세금 징수 등 영화계에 대해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4) 김학수, 『스크린 밖의 한국영화사 1』, 인물과 사상사, 2002, 116쪽.
5) 안정숙, 〈스크린에 쓴 일제하 노동자 계급의 삶과 투쟁〉, 『한겨레신문』, 1990년 7월 20일. 위의 책, 119쪽에서 재인용.
6) 현재의 가사는 안석영이 작사한 가사를 부분적으로 변형한 것이다.
7) 카프 영화계의 활동에 대해서는 졸저, 『한국영화역사강의 1』, 이론과 실천, 1992.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