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강 벤야민의 미디어 이론 Ⅱ

◆ 벤야민의 미디어 이론 ③

▲영화와 다른 예술의 비교

1) 사진과 회화의 비교

벤야민은 사진과 회화를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에 비유한다. 바이올리니스트는 특정한 음을 직접 손으로 짚어서 찾아내야 하지만 피아니스트는 건반에 각각의 음들이 모두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내려고 하는 음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벤야민은 바이올리니스트만 명인이 있는 게 아니라 피아니스트도 명인이 있듯이 사진에도 명인이 있다고 말한다.

2) 연극과 영화의 비교

초기에 영화는 연극을 흉내냈다. 초기영화는 연극을 상연하면 그것을 그대로 필름에 담았다. 즉 초기에는 영화만이 가진 매체성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면서 멜리어스 같은 사람도 서서히 매체성에 주목하게 되면서 극영화를 만들게 된다.

▲몽타주 기법

영화와 연극이 다른 점은 연극은 한번 막이 오르면 그대로 막이 내릴 때까지 극을 끌고 가야하지만 영화는 장면마다 끊긴다는 점이다. 그리고 분절된 필름 뒤에 다시 또 다른 필름이 이어지는 식으로 커트마다 분할이 가능하다.
→벤야민은 영화는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찍고 땅에 떨어지는 장면은 3일 뒤에 찍는 것이 가능하다는 예를 든다.

연극과 영화는 어두운 곳에 앉아서 무대를 본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확연히 다른 점은 연극을 보는 사람의 눈은 움직이지 않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의 눈은 카메라와 동일시identify되어야 하기 때문에 가령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그만큼 눈이 다가가서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콘티뉴이티 편집과 디스콘티뉴이티 편집

현대 영화의 어법을 만든 사람이 그리피스인데 그는 콘티뉴이티continuity 편집을 이용했다. 콘티뉴이티 편집은 분절된 장면이 어떤 일정한 흐름 속에서 지각되게끔, 즉 콘티뉴이티를 유지하게끔 편집하는 기법이다. 그래서 콘티뉴이티 기법은 내러티브narrative의 하위 수단이 되어버린다. 즉 몽타주 기법이 스토리텔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반면 디스콘티뉴이티discontinuity 편집은 장면들을 부드럽게 이어주는 게 아니라 끊어지듯 서로 충돌시키는 것이다. 디스콘티뉴이티 편집은 영화가 가진 몽타주적 성격, 파편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어떤 미학성을 추구한다.

예) 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의 계단 장면

▶ 참고자료

전함 포템킨 [The Battleship Potemkin]
몽타주 화법이 적용된 에이젠슈테인의 대표작이다. 포템킨호의 선상 반란과 오데사 항의 대학살을 중심으로, 영화도 대중 선동의 뛰어난 무기가 됨을 알게 된다. 혁명 이후의 러시아영화는 민중의 계급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교육과 선동의 기제로 이용되었다. 이러한 의도에서 《전함 포템킨》은 실패한 1905년의 제1차 러시아혁명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시기는 1905년의 제정 러시아이다. 흑해 함대의 포템킨호에서 수병들이 선상 반란을 일으킨다. 배를 장악한 이들은 오데사 항에 정박한다.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부둣가 계단에 모여 환호한다. 시민들 뒤로 차르의 군대가 출동하여 무차별 발포의 학살이 시작된다. 분노한 시민과 수병이 합세하여 혁명의 대열에 선다. 에이젠슈테인은 혁명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계급 투쟁과 전투적 민중의 '전형'을 그리려 하였다. 따라서 영화에는 특정 주인공이 아닌 여러 집단의 성원으로서의 전형들만 등장한다.

두 개의 극단적인 대조 쇼트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 것이 몽타주 화법이다. 전함의 장교와 수병, 카자크 군대와 시민들로 반혁명과 혁명이 확실히 대립·양분되며 둘 간의 적대감만 있다. 내려치는 카자크 병사의 칼, 깨어져 바닥에 뒹구는 안경, 피 흘리는 여인의 얼굴 등은 상황 묘사라든가 감정의 고조를 넘어 관객들에게 단호한 선택을 요구한다. 몽타주 화법과 사회 의식은 1930년대 영국의 사회적 다큐멘터리에까지 이어진다. 세계 영화사에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몽타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기술적인 의미에서는 오늘날의 모든 영화가 다 몽타주이다. 하지만 몽타주가 가진 미학적인 의미는 가령, 똑같은 필름 소스를 다섯 명의 감독에게 주었을 때 각각 미학적 효과가 다르게 편집을 할 것이라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 편 집의 미학성

벤야민은 에이젠슈타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세기의 예술관념과 20세기의 예술관념의 차이

19세기까지의 예술관념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이다. 즉 극에서는 기승전결이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극이 유기적인 전체성을 이루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의 사건에 이어서 다음 사건이 등장하는 것과 하나의 사건의 결과로 다른 사건이 등장하는 것은 다르다고 말했다고 한다. 즉 극에서는 사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급작스러운 사건이 등장할 때에도 항상 그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복선을 미리 깔아놓아야 하는 것이다.

영화 매체의 특성은 연극에서 나타나는 유기적 전체성에 있는 게 아니라 벤야민이 보기에는 파편적인 충돌에 있었다.

예) 고전적인 정물화와 피카소가 그린 파편화된 정물화의 미감 차이

몽타주라는 낱말의 의미 자체가 공장 생산에서 나온 것이다. 자동차 부품들을 조립하듯이 몽타주도 조립하는 것이고 유기체가 아니라 무기체적인 것을 다루는 기술이다. 예술은 유기적이지만 기술은 무기적인 것이다.

예) 19세기까지의 건물들은 재료 자체가 자연적인 것이었고 건물의 문양들도 유기적인 문양들이었다. 반면 20세기의 건물은 재료 자체가 인공적이고 기계적이다. 즉 무기적이고 추상적이다. ⇒ 미감美感의 차이

벤야민이 연극와 영화에는 이러한 미감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벤야민은 바로 영화의 등장과 함께 미감이 변했기 때문에 예술은 '아름다운 가상'의 왕국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가상이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내려오는 19세기까지의 미술, 예술의 규정을 말한다.

벤야민은 피카소의 그림의 경우 감상자가 몰입을 하게 되어 주도권이 작품에 있게 되지만 찰리 채플린의 영화 같은 경우 계속 장면들이 자나가기 때문에 몰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작품으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기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벤야민은 영화의 정지그림이 빨리 지나간다는 이유 때문에 관객이 작품에 몰입하지 않게 된다고 보았다.

⇒ 벤야민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낯설게 하기와 관련이 있다. 이것은 브레히트의 개념에 바탕을 둔 것인데 그는 관객의 몰입을 자꾸만 깨는 반아리스토텔레스 연극을 했다. 그는 극적인 현실에 대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그에 대한 관객의 견해와 태도를 요구했다. 이것은 서사극의 교훈적 효과로서 사람들을 의식화시킨다. 벤야민이 영화가 몰입이 안 된다고 말한 의미는 브레히트가 연극에서 행했던 기법이 영화에서는 기술적 조건으로 들어와 있다는 맥락에서 가능한 것이다.

▲예술적 수용의 주체로서의 대중

일반적으로 비평적 태도와 감상적 태도는 대립이 된다. 감상을 하면 비평을 못하고 비평을 하면 감상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비평과 감상이 모두 가능하다.

영화는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역사상 최초로 대중이 예술적인 수용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적인 수용의 주체뿐만이 아니라 연출의 주체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예) 소비에트의 영화 같은 경우 정치적으로 혁명적이면서도 미학적으로도 의미가 있었고 영화의 출연진들은 노동자나 농민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그대로 쓰기도 했다. 에이젠슈타인의 '전함포템킨' 같은 경우엔 특정한 주인공이 없고 선상 반란을 일으키는 포템킨호의 선원들이 주요인물들이다.

◆ 벤야민의 미디어 이론 ④

▲대중매체의 등장과 현존성의 문제

대중매체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필자와 독자의 구분이 신분적이었다. 하지만 대중매체가 등장한 이후로 그러한 계층 차이가 사라지고 필자와 독자의 구분은 기능적인 것으로 변했다. 독자도 언제든지 필자가 될 수 있고 필자도 언제든지 독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벤야민은 신문의 독자투고를 보고 그렇게 대중들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또한 벤야민은 발레리의 말을 인용하면서 손가락의 동작만으로 집안에서 이미지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보았다. 벤야민은 바로 영화가 기존의 시간과 공간의 형식을 무너뜨렸다고 본다.

'tele-presence'의 문제⇒ 복제로 인해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지금 여기'의 현존성이 가능해진다. 이것은 대중매체의 가장 보편적인 속성인데 처음엔 영화였고 그 다음엔 텔레비전이다.

영화는 수용조건이 집단적이기 때문에 사적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공적인 공간으로 끌어낸다. 즉 private한 것을 public으로 끌어내어 정치화한다. 벤야민은 영화가 가진 정치적 기능들, 조직화의 기능들을 높이 평가했다.

▲지각방식의 변화

벤야민의 테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각과 관련된 것이다.
(1)아우라의 파괴
(2)시각적인 지각방식을 촉각적인 방식으로 바꿈

벤야민은 영화를 지각하는 것을 건물을 지각하는 것에 비유한다. 우리가 가령 어떤 건물에 들어가서 10층에 간다고 할 때 머릿속에 그 경로를 그려보고 그에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일단 몸으로 들어가서 시시각각 변하는 경로를 몸에 기입한다. 그래서 딴 생각을 하면서도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촉각적 지각방식이다.
⇒ 벤야민은 영화가 속도감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촉각적 지각방식을 훈련시켜준다고 본다.

예) 농촌에 사는 사람과 대도시에 사는 사람은 지각방식 자체가 다르다. 농촌 사람들이 서울에 올라오면 속도감 자체가 농촌과는 다르기 때문에 적응하는데 곤란을 느낀다. 즉 대도시의 사람들은 농촌의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지각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속도감에 있어서 고전주의자들은 달리는 마차를 그릴 때에는 바퀴의 살을 모두 그렸다. 하지만 인상파라면 바퀴가 구르는 모습의 인상을 포착해서 속도감이 살아나게 그릴 것이다. 이것이 속도감의 문제이다. 우리는 자동차를 배울 때 자동차의 이론에 대해서 배우는 게 아니라 몸에 익숙하게 만드는 연습을 한다.

벤야민은 현대사회가 지각에 부여한 과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영화매체라고 본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현대사회의 속도에 맞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지각을 훈련시켜주고 있다는 것이다. 벤야민은 이것을 '산만한 지각'이라고 부른다.

인간 자체가 미디어와 결합된다. 공장에서 노동하는 것도 자연적인 속도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계의 리듬에 맞추어 일하는 것이다.
⇒ 벤야민은 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훈련은 이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몸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벤야민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 단지 영화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매체 환경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벤야민의 이론은 범례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파시스트들에게 이용당했던 영화

벤야민은 처음에 자신의 이야기가 절대로 파시스트들에 의해서 이용될 수 없다고 했었는데 나중에 이에 대한 보론을 덧붙인다. 사실 영화만큼 파시스트들에 의해 효율적으로 이용된 매체가 없다. 가령 히틀러의 선전 영화들을 보면 병정들이 도열해 있는데 그 사이를 걸어오는 히틀러의 모습이 마치 홍해를 가르고 걸어오는 모세와 같은 인상을 준다.

⇒ 이와 같은 점들 때문에 벤야민의 테제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영화가 영화적이려면 아우라를 강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영화를 가지고 아우라를 강화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가지고 아우라를 강화하는데 쓰게 되면 영화가 망가진다는 것이다.

예) 나치들이 아우라를 강화할 때에는 신고전주의 미학과 이상한 낭만주의 미학을 가져다 쓴 것이다. 히틀러의 아우라를 강화하기 위해서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익숙한 예술언어를 구사한 것이다. 따라서 벤야민이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영화는 매체 자체가 아우라를 파괴하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그러한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벤야민은 스타시스템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영화는 아우라를 파괴하는데 다시 아우라를 부여하기 위해서 영화제를 열고 감독과 배우들을 불러서 일종의 재림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이 스터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벤야민은 스타시스템이 영화 매체가 아우라를 파괴하는 성격과는 거꾸로 간다고 보았던 것이다.

▲정치의 유미화와 예술의 정치화

영화가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파시스트들에 의해 너무나 오용이 많이 되었기 때문에 벤야민은 미래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한다.

모더니티는 복제에 대한 쾌감과 속도에 대한 쾌감을 가지고 있다. 히틀러의 나치돌격대는 처음엔 우리나라로 말하면 오토바이 폭주족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이들이 전차를 몰고 항공기를 몰게 되는 것이다.

미래파들도 인간 신체의 금속화, 기계화, 속도를 이야기하는데 이러한 것들 가장 극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전쟁이다. 그래서 전쟁은 아름답다는 식으로 나아가버리는 것이다.

⇒ 벤야민은 이에 충격을 받고 허탈한 대안을 하나 내놓는다. 기계는 인간에게 복무해야 하는데 오히려 도시를 폭격하고 파괴하며 인간을 절멸시키는 도구로 사용되는 현상을 목도하면서 파시스트들은 전쟁을 유미화한다는 것이다. 속도에 대한 쾌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전쟁이라는 것이다.

벤야민은 파시스트들은 전쟁을 예술화하고 그에 맞서기 위해서 공산주의는 예술을 정치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치의 유미화가 파시스트들의 공식이라고 한다면 공산주의는 거기에 예술의 정치화로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의 기능전환

옛날의 예술은 종교적 기능이 있었다. 그래서 아우라를 가지는데 예컨대 신상이 미술관 안에 들어오면 그 때부터는 감상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벤야민은 예술이 과거에는 종교적 기능, 미적 기능을 가졌었지만 아우라가 파괴되면서 정치적인 기능을 갖게 된다고 본다. 바로 그 예술의 정치적 기능에 구원을 기대하는 것이다. 독일미학자들의 특징이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예술에서 해결하려고 하는데 이는 쉴러 이후의 전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