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의 키워드로 읽는 근현대미술

7강.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 : 죽음과 근대성

1. 죽음에 관한 이야기 몇 개

어느 인디언부족들의 죽음

클라스트르는 남아메리가 인디언들의 죽음의 의식에서 아주 흥미로운 점을 발견한다. 그들에게는 과거에 죽은 자들(조상)과 최근에 죽은 자들이 구별된다는 점이다.

전자는 태고 이전의 시간(신화의 시간)에 존재하지만, 후자는 고령이나 병으로 공동체를 떠나간 동시대인들이다.(“살아 있는 죽은 자”) 또 전자는 살아 있는 자들에게 친근하고 긍정적인 존재인 반면, 후자는 공동체의 잠재적 파괴자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조상을 위한 의식과 장례식은 엄격하게 구별된다. 장례식은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음이 갖는 해롭고 공격적인 힘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의식이다.

산 자들의 의무는 죽은 자들을 완전히 잊어주는 것, 그들과의 접촉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cf.족내식인풍습)


어느 인디언부족들의 죽음

미다스왕이 디오니소스의 시종인 실레누스를 잡았을 때 그에게 물었다.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 가장 훌륭한 것이 무엇인가고.
그러자 실레누스는 이렇게 답한다. “가련한 하루살이여, 우연의 자식이여, 고통의 자식이여, 너는 내게서 무엇을 들으려 하는가? 가장 좋은 것은 네가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 좋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곧 죽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니체에 따르면, 그리스인들은 바로 그런 이유로(!) 삶을 욕망했다. 그들에게 신은 “인간적 삶을 살아감으로써 인간의 삶을 긍정”하는 존재들이며,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삶 때문이 아니라 삶으로부터 이탈하는 것, 즉 죽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니체는 실레누스의 말을 뒤집어 말한다. “그들에게는 곧 죽는다는 것이 가장 나쁜 것이고, 그 다음으로 나쁜 것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다.”
(<비극의 탄생>)

니체는 그리스 비극에서 삶의 비극성을 위대한 명랑성으로 극복한 그리스인들의 ‘운명애’를 본다.


디오니소스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죽음.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진 디오니소스의 죽음에는 최악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생성으로 되돌아오는(‘부활’) 위대한 긍정성이 담겨 있다. 이에 비해 그리스도는 ‘누군가를 대신해’ 죽고(그럼으로써 죄의식을 길러내고), ‘누군가를 심판하기 위해’ 되돌아온다는 점에서, 지독한 염세주의다.
(cf.소크라테스)

중세 이후 서양인들의 ‘죽음’에 대한 의식과 감성을 지배한 것은 기독교였다. 모든 종교가 어느 정도는 ‘사후’의 문제에 기대고 있지만, 특히 기독교는 사후세계(죽음 이후)에 대한 이미지를 통해 살아간다.(예수천당,불신지옥) 삶은 죄의 문제이고, 죽음 이후에야 ‘영생’을 얻는다는 기이한 역설!


붓다의 죽음.

“아난다여! 내가 입멸한 뒤, 너희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선사의 말씀만 남아 있지, 우리들의 큰 스승은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라고. 그러나 아닌다여! 너희들은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입멸한 후에는 내가 지금까지 너희들에게 설해 왔던 法과 律, 이것이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니라.” 이게 붓다의 마지막 말씀이다.

그런 다음, ‘최초의 선정’으로부터 제2,3,4선정을 지나고 ‘空無邊處’, ‘識無邊處’, ‘無所有處’, ‘非想非非想’, ‘想受滅’를 거치고는 ‘열반’에 들었다. 당연히, 제자들의 슬픔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러자 그 중 한 존자가 이렇게 말한다. “그만두시오, 여러분! 비탄해 하지 마시오. 세존께서는 항상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사랑하고 마음에 맞는 이도 마침내는 달라지는 상태, 별리의 상태, 변화의 상태가 찾아오는 것이다. 그것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生하고 만들어지고 무너져가는 것. 그 무너져가는 것에 대해, 아무리 무너지지 말라고 해도 그것은 순리에 맞지 않는 것이니라’라고. 여러분! 세존의 몸도 그것은 마찬가지인 것이오.”

죽음은 生主異滅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그저 그 흐름 위에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사건이다.



죽음은 삶과 대립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삶의 극한, 혹은 삶 속에서 사유가 불가능한 지대다. 그런 점에서 죽음은 삶을 위협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죽음을 사유하는 것은 삶을 사유하는 것이며, ‘죽음의 기예art’(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는 결국 ‘삶의 기예’(어떻게 잘 살 것인가)이기도 하다.

2. 죽음에 대한 멘털리티의 역사

프랑스 아날학파의 대표적인 학자 필립 아리에스는 <죽음 앞의 인간>이라는 책에서 ‘죽음’에 대한 서양인들의 망탈리테memtalite를 추적한다. 아리에스에 따르면, 서양에서 죽음은 네 개의 주제에 따라 다섯 가지로 나뉜다.
(이른바 ‘네 개의 주제에 의한 다섯 가지 변주’)


‘죽음’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네 가지 주제

1) 개인적인 죽음 or 공동체적 죽음
2) 죽음에 대한 방어전략
3)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
4) 죽음과 악의 관계


이 변수들의 조합에 따른 죽음의 다섯 가지의 유형

1) 우리의 죽음(대략 중세)
2) 나의 죽음(중세말-르네상스)
3) 멀고도 가까운 죽음(바로크)
4) 너의 죽음(낭만주의 시대)
5) 역전된 죽음(현대)

3. 죽음은 어디에 있는가?

미셸 푸코는 근대권력을 ‘죽게 내버려두고 살게 만드는 권력’이라고 정의한다.
즉 삶과 죽음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던 근대 이전의 권력과 달리(어기면 죽는다!), 근대권력은 죽음을 방치하고 삶을 ‘관리’함으로써 작동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근대 이전의 지배자는 누군가를 ‘죽일 권리’를 통해 삶에 대한 권력을 분명히 하지만, 근대 이후의 권력은 ‘삶’을 위해 ‘죽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죽게 하든가 살게 내버려둔다는 낡은 권리 대신에 살게 하든가 죽음 속으로 내쫓는 권력”의 등장.

예컨대 근대 이전에 자살은 군주만이 행사할 수 있는 죽음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죄’였지만, 근대 이후 ‘자살’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죽을 권리를 출현시키면서 사회학적인 차원에서 분석되기 시작한다. 근대권력은 말한다. 죽는 건 네 자유다, 하지만 살아 있는 한 내 말에 복종하라!


우리 시대에 죽음은 어디에 있을까? 아리에스는 말한다. 죽음은 더 이상 공동체 안에도, 내 침상에도, 타인에게도 있지 않다고. 병원으로 숨어버렸다고. 병원이 죽음을 판단하기 전에, 우리는 아직 죽은 것이 아니다. 죽음을 만나려면 병원에 가야한다. 병원은 질병을 다스리는 권력인 동시에, 죽음을 다스리는 권력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도처에서 죽음을 본다. 온갖 사건 사고와 전쟁은 점점 죽음에 대해 무감해지게 만든다. 또 드라마와 영화를 보라. 문제가 꼬이고 꼬여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면? 그냥 죽으면 된다. 그럼 모든 게 해소된다. 해소되진 않더라도, 최소한 스타일은 산다.

(죽음에 대한 그 과잉적인 파토스를 보라!) 삶의 자리에서 추방된 죽음(‘죽음의 의료화’)과 도처에서 발생하는 죽음. 죽음은 사유되어야 하는 ‘삶의 외부’가 아니라 삶을 위해 처분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 되었다.
(cf.보험)



‘죽음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믿음에 익숙해져랴. 왜냐하면 모든 좋고 나쁨은 감각에 있는데, 죽으면 감각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게 되면, 可死性도 즐겁게 된다. 이것은 그러한 앎이 우리에게 무한한 시간의 삶을 보태주기 때문이 아니라, 불멸에 대한 갈망을 제거시켜주기 때문이다.

‘죽음은 두려운 일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은, 살아가면서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가장 두려운 악이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와 아무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산 사람에게는 아직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은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때로는 죽음을 가장 큰 악이라고 생각해서 두려워하고, 다른 때에는 죽음이 인생의 악들을 중지시켜준다고 생각해서 죽음을 열망한다. 반면 현자는 삶을 도피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삶의 중단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삶이 그에게 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삶의 부재가 어떤 악으로 생각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음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현자는 단순히 긴 삶이 아니라, 가장 즐거운 삶을 원한다. 그래서 그는 가장 긴 시간이 아니라 가장 즐거운 시간을 향유하려고 노력한다.
(에피쿠로스, <쾌락>)


내가 아는 한, 죽음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사유다. 이런 사유 속에서 죽음은 아무런 이미지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이 죽어가면서 남긴 마지막 말은 ‘이 정도면 충분해’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또 스토아 학파의 제논은 어느 날 문득, 최선을 다해 살 만큼 살았다는 생각이 들자, 그 때부터 곡기를 끊었다고 한다.
몸과 마음을 다해 삶을 산 자들은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죽음 ‘이후’를 생각하지 않는다. 유황 속에서 만 년 동안 불타든 낙원에서 풍요를 누리든, 그건 어차피 ‘상상가능한’ 삶의 이미지를 투영한 것일 뿐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즐거운 마음으로 철학을 하거나, “지금 해야 할 일과 그것을 수행할 도구에 생각을 집중하라”는 것, 그게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이자 (에피쿠로스로부터 이끌어낸) 아우렐리우스의 가르침이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은 봄철의 장미나 여름철의 과일처럼 친숙하고 잘 알려진 것들이다.”
(아우엘리우스, <명상록>)


사랑도, 이별도, 희망도 절망도. 물론 죽음도. 그러니 그저, 있는 힘을 다해, 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