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물학의 등장

17세기가 되어서야 보다 합리적 형태의 생물학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데카르트의 기계론은 생물학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기계론은 한계를 드러냈고 또 그 과정에서 '기계론'이라는 말의 의미 자체가 점차 변형되어 갔다.
⇒ 근대 과학의 역사는 기계론이라는 사고방식이 진화하는 역사이다.

데카르트는 기계론적 생리학을 펼쳤으며 심지어 영혼까지도 어떤 측면에서는 기계론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그런 설명들은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조악(粗惡)했지만 적어도 그 정신은 19세기 초 '생물학'의 탄생 이전까지는 주된 경향을 만들어냈다.
→ 여기에 1624년에 발명된 현미경의 중요한 역할과 베살리우스 등에 의해 수행된 해부학 등도 큰 역할을 했다. (거시세계에서 망원경이 했던 역할을 미시세계에서는 현미경이 했다.)

과거의 인식은 관조contemplation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근대 이후의 인식은 조작operation이다.

생명세계를 기계론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곧 생명세계와 물리세계를 한 관점에서 본다는 뜻이다. 이 두 세계가 분리되면서 '생물학'이 성립하게 된다.

17세기는 데카르트의 '동물-기계(animal-machine)' 개념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 때에도 (훗날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조직화(organization)' 개념은 단지 물질 구조의 복잡성을 뜻할 뿐이었다.
⇒ 인체는 기계들을 통해 비유된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기계였다.

그러나 이미 17세기에 기계론의 한계는 여러 곳에서 노정되었다. 데카르트를 이어받은 '의역학(醫力學)'은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반면 피의 순환에 대한 하비의 위대한 발견을 이끈 것은 데카르트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였다. 물론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생물학 발전에 영향을 준 거의 마지막 형태였고, 또 하비가 여러 가지 기계론적 사고(예컨대 피의 양의 계산)를 사용한 것도 사실이다.

▶ 참고자료

하비 [Harvey, William, 1578.4.1~1657.6.3]

켄트주 포크스턴 출생. 1597년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한 후, 이탈리아 파도바대학에 유학하여 의학을 공부하였다. 1602년 졸업 후 귀국, 1609년 런던 세인트바솔로뮤 병원에 근무, 1623년 제임스 1세, 1627년 찰스 1세의 시의(侍醫)가 되었다. 인체의 구조 '기능, 특히 심장 '혈관의 생리에 대해 연구하였으며, 1615년 내과의사로서 해부학과 외과학 강의를 하였다.

1628년 《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 Exercitatio Anatomica de Motu Cordis et Sanguinis in Animalibus》를 출판하였다. 이 책은 실험에 입각하여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생리학설을 밝혀 갈레노스 학설을 부정하였다. 심장의 박동을 원동력으로 하여 혈액이 순환된다고 하는 그의 새 학설에는 당시 반론이 많았으나, 그 후 일반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또 동물의 발생에 관해서도 실험 연구를 하고, 1651년 《동물발생론 Exercitationes de Generatione Animalium》을 저술하여, '모든 생물은 알에서 생겨난다'고 주장, 중세 이래의 고전의학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었다.

그럼에도 고전 시대를 전반적으로 이끈 것은 기계론적 사고였다. 다만 기계론적 사고가 생명체를 너무 조악하게 다룬다는 사실이 여러 곳에서 드러남에 따라서 기계론 그 자체가 점차 성격을 바꾸어갈 수밖에 없었다.(물리학에서의 힘을 상기)

⇒ 기계론적 사고로 설명되는 것은 생명체가 아니라 로봇이다.
→ 로봇의 발달은 결국 기계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범위의 극한을 보여준다. (현재 로봇 기술은 지각sense의 수준에 있다.)

19세기에 이르러 무기물과 유기물이 명확히 구분되고 비로소 '생물학'이 뚜렷이 성립하게 된다.

⇒ 基는 생명체에만 존재하는 화학구조이다. 이것은 현대식으로 설명하면 탄소 구조에 해당한다. 생명체는 탄소(C), 수소(H), 질소(N), 산소(O), 인(P), 황(S)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탄소의 구조는 계속 이어진 구조인데 이것은 fiber가 된다.

organic/inorganic은 사실 두루뭉실한 용어이고 무기물이라는 번역어는 organic/inorganic라는 개념이 화학적으로 규정된 다음에 번역된 것이다.

⇒ 오늘날의 생물학은 물론 기계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이 기계론은 더 이상 과거의 기계론이 아니며 또 목적론을 배제할 이유도 없다.